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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당소기는 격렬한 상하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의 아래에는 삼채삼봉 의 둘째, 은봉(銀鳳)이 거의 탈진한 모습으로 누워 그에게 몸을 바치고 있었다. 원래는 대단히 흥분된 분위기가 깔려 있어야 할 이 방 안에 그 런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떤 의식을 치르는 듯한, 아니 마치 도 살장과도 같이 체념한 절망과 일상적인 살기의 비린내가 풍기는 듯했 다. 은봉의 옥 같은 피부에는 군데군데 멍이 들었다. 그녀의 동공은 풀 려 있고, 팔은 늘어뜨린 채 맥없이 흔들렸다. 그녀는 거의 죽어 있었 고, 지금 이 순간도 급격히 죽어가고 있었다. 반면 당소기는 적어도 행위만은 분명한 정사를 나누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냉정했다. 그의 표정에는 한 점의 감정도 없었다. 그는 맛진 음 식을 햝아먹는 어린아이처럼 집중해서 은봉을 눌러 짜고 있었다. 그녀 의 몸 깊은 곳에 남겨진 동방척의 내공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빨아 먹겠다는 일념이 담겨 있는 몸짓이었다. 은봉의 안색이 점차 파랗게 변하더니 결국 사색이 되고 말았다. 당 소기는 그러고도 몇 번 더 움직이고는 아쉽다는 듯 혀를 치며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침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삼채삼봉이 동방척에게서 내공을 흡수하는 데 각각 하루가 걸리고, 당소기가 다시 그녀들에게서 내공을 흡수하는 데 하루씩 걸린다. 그렇 게 받아들인 내공을 본신의 그것과 융화해서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 드는 데에는 그보다 몇십 배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초조할 것은 없었다. 일단 흡수하기만 하면 언젠가는 그의 힘이 될 것이므로. 그리고 이미 상당한 수준의 내공이 그의 것이 되었 으므로 몸 안에 넘쳐나는 기력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두려울 지경이었 다. 지금의 그는 어제의 그와는 완전히 다른 경지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 다. 그는 긴 운기조식을 마치고 침상에서일어났다. 오십대의 나이라고 는 전혀 보이지 않는 탄탄한 몸매가 온전히 드러났다. 피부 또한 우윳 빛을 띠고 있어 여인의 속살보다 고왔고, 은은히 엷은 오색의 빛이 감 돌아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때, 방문이 예고도 없이 열리고 두야랑이 뛰어 들어왔다. 당소기 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담담하고 고요한 눈빛이었지만 두야 랑은 뱀 앞에 선 개구리처럼 얼어붙었다. 그 경직은 경고로 삼기에 충 분한 시간이 흐른 후 당소기가 입을 벌림으로써 비로서 풀렸다. "무슨 일이냐?" 두야랑이 털썩 부복하며 내뱉듯 말했다. "셋째가 도망갔습니다." 당소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셋째라면 삼채삼봉의 셋째, 옥봉(玉鳳) 을 말하는 것일 터였다. 그 외에는 달리 셋째라고 불릴 사람도 없고 갑작스러운 행동을 극도로 싫어하는 그의 심기를 거슬려가며 두야랑이 뛰어 들어올 일을 만들 사람도 없다. 충분히 두야랑이 그러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옥봉은 대공의 마지막 제물이 될 여자였다. 그가 은봉에게서 정기를 빨아들이고 있는 동안 바 로 옆방에서 동방척으로부터 같은 일을 하고 있어야 할, 그리고 실제 그러고 있었던 여자였던 것이다. 나중에 이 방으로 와서 그에게 마지막 힘을 넘겨 주었어야 할 그 옥봉이 도망쳤다는 것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느냐?" 삼채삼봉에게 먹인 약은 애초에 그녀들에게 설명해 준 대로 이지를 잃지 않게 하는 약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이지를 잃게 하는 약이 었다. 복용한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평소의 이지를 잃고 시키는 일만 하게 되도록 하는 약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도망을 갈 생각을 했을까? 그것이 당소기가 떠올린 첫 번째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모르는 것을 두야랑이 알리가 없었다. 그는 송구스러 운 듯 고개를 조아렸다. "모르겠습니다. 단지 시간이 되어 가보니 문이 부서져 있고 그녀는 없었습니다." "동방 늙은이는?" 당소기는 질문을 던지고 바로 속으로는 쓸데없는 질문을 했다고 생 각했다. 동방척도 같이 없어졌다면 그렇게 보고했지 왜 옥봉이 없어졌 다고만 보고했을 것인가.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예상한 대답이 나왔다. "있었습니다." "어떤 상태더냐?" "예상과는 달리....." 두야랑은 말하기 꺼려진다는 듯 우물쭈물했다. 이번 일에 대해서 그 가 아는 것은 극히 적었다. 그런데 무슨 예상을 했다는 것인가. 예상은 당소기에게서 들은 것이 아니라 순전히 그의 예상이었고, 당소기가 싫 어하는 또 하나의 금기, 관심 갖지 말아햐 할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 다는 사실을 한 번의 말실수로 드러내고 만 것이다. 그러나 당소기는 그런 잘못을 탓할 기분이 아니었다. "예상과는 달리 어쨌다는 거냐?" "탈진한 듯하나 살아는 있습니다." 그것이 두야랑의 예상과 다른 점이었다. 정기를 완전히 빨려서 껍질 만 남은 매미처럼 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당소기의 예상은 달랐 고, 지금 동방척이 보이고 있는 상태는 그의 예상과 한 치도 다르지 않 은 것이었다. 동방척은 무공을 사용할 수는 없는 몸이 되었지만 당장 죽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그 나이의 보통 노인보다는 훨씬 건강할 것이다. 나중 엔 약간의 무공을 회복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애초 무공은 절대 회복할 수 없고, 그대로 시들듯 천천히 죽어갈 것이다. 이게 당소기의 예상이었다. 옷을 다 입고 두야랑과 함께 달려가 만난 동방척은 이제 제법 기력 을 찾아 눈까지 뜨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비웃어 줄 기운까지 있었다. "꼴 좋게 됐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당소기는 옥봉이 도망간 이유를 짐작할 수 있 었다. "사부님께서 그녀에게 도망치라고 말했군요." "그래, 말을 잘 듣더구나." 동방척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대소를 터뜨렸다. 반면 당소기는 치명 적인 실수를 확인하고 비참한 기분이 되었다. 그 약을 먹으면 그의 말만 듣게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말이든지 듣게 되는 것이다. 목숨을 빼앗기는 일에 순순히 협력하지 않을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먹인 약이었는데, 이렇게 거꾸로 이용당할 줄은 몰랐 었다. 동방척의 내공을 흡수해 일시적으로나마 괴력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것을 간과한 것도 그의 실수였다. 이 방과 감금장치는 잘 만들어진 것 이었지만 삼채삼봉이 원래 실력만 발휘해도 뚫고 나가기 어렵지 않은 정도였다. 거기에 동방척의 내공이 합해져 이지를 상실한 상태로도 손 쉽게 도망갈 수 있었던 것이다. 감시병 또한 없엇는데, 그건 일의 비밀스런 성격상 어쩔 수 없는 일 이었지만, 그래도 몇쯤은 배치해 놨어야 했다고 그는 후회했다. 하지만 후회하려면 한도 끝도 없는 것. 한시라도 빨리 옥봉을 찾는게 급선무 였다. 다른 누군가에게 발견당해 그 비밀을 드러내게 되기 전에. 지금 사천에는 숱한 무림고수들이 들끓고 있지 않은가. 당소기는 두야랑에게 지시했다. "네가 책임지고 찾아라. 찾아서 끌고 와. 몇 명을 풀어도 좋다." 두야랑이 절하고 나가려 하자 그는 한 마디 덧붙였다. "사정이 정 급하게 되면 죽여라." 두야랑이 답하고 나가는 것을 보며 동방척이 비웃었다. "내 내공의 삼분의 일이나 지니고 있는 계집인데 아깝지도 않은가 보지?" 당소기는 냉랭하게 말했다.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제자는 단지 남에게 넘기고 싶 지 않을 뿐이지요." 그는 여전히 침상에 묶여 있는 동방척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천천히 말했다. "그나저나 제 일에 결정적인 방해를 한 사부님께 어떤 벌을 줘야 좋 을까요? 뭔가 만족하실 만한 걸로 해야 할 텐데, 고민스럽군요." 동방척의 눈에 일순 두려움이 스쳤지만 그는 곧 오만한 표정으로 되 돌아갔다. "내가 누구냐,. 마도의 일대 거두로 온갖 잔인하고 악랄한 일을 해왔 던 대종사가 나다. 어린애 장난같은 고문으로는 내 입에서 비명 한 마 디 못 들을 것이다." "사부님이 온갖 잔인하고 악랄한 일을 해왔다는 것은 인정하지요. 하지 만 당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을 겁니다." 그 말에 동방척은 찔끔한 표정이 되었다. 당소기는 그것을 햝듯이 스쳐 보고는 돌아섰다. "일단은 다른 일이 급하니 나중에 다시 와서 의논하기로 하지요. 기 대하고 계십시오." 두야랑에게 다른 일을 맡긴 이상 그에게 원래 맡겼던 일들은 그 자 신이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중 그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은 동방척의 일과 또 하나밖에 없었다. 그 일을 처리하러 가는 것이다. 동방척을 가두었던 곳보다 훨씬, 그리고 본격적으로 감옥 같은 분위 기가 풍기는 곳이었다. 피비린내와 고기 타는 냄새가 아직까지 난다는 것은 옥봉이 도망가는 순간에 두야랑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해 주었다. 당소기는 철문을 열고 들어가 석실의 중아에 도마처럼 놓인 탁자, 그리고 그 위에 생선처럼 올려진 사람을 보았다. "잔인했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실 그는 그런 광경을 보면서도 전혀 감정의 변화를 느끼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감정 의 움직임이 있었다면, 이러고서도 제대로 대답을 듣지 못한 데 대한 짜증 정도였다. 팔다리가 한 토막씩 끊겨 네 발굽을 잘린 돼지처럼 보이는 사람, 고 목대사는 새로운 목소리에 흥미를 느낀 듯 부어오른 눈꺼풀을 간신히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찢겨진 입술을 움직여 웃음지었다. "오랜만이네. 그동안 안녕하셨던가?" "덕분에." "나도 덕분에 잘 있었네. 누추하지만 거기 아무데나 앉게나. 나만 이 렇게 편히 누워 있고 손님은 서 있게 하니 실례가 이만저만이 아니군." "이해하지. 그리고 나는 서 있는 게 편하니 그냥 이대로 있겠네." "사실은 나도." 고목 대사는 갈라진 혀로 입술을 햝으며 말했다. "서 있는 걸 좋아한다네. 누워 있는 것도 좋지만너무 오래 누워 있 으면 가끔 서서 걸어 보고 싶기도 하고 그렇지. 산해진미만 매끼니 먹 다가 보면 간혹 길거리에서 파는 만두 같은 소박한 음식을 먹고 싶어 지는 것처럼 말일세." "그럴 때도 있지." "그러니 나 좀 일으켜 주겠나? 나가서 잠시 바깥바람을 쐬고 돌아와 서 계속 이야기함세. 자네와의 대화는 항상 재미있고 유익하기까지 해 서 좋거든." "좋은 생각이지만 순서를 바꾸지. 먼저 이야기를 하세. 그 다음에 걷 도록 도와주겠네. 나야말로 자네의 유익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이 순간 을 기다려왔다네. 더 기다리기가 싫군." 고목대사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래, 그럼 차 한 잔 하세. 주전자는 저 구석에 있고, 잔은 그 옆 에 있네. 용정이나 철관음처럼 좋은 차는 아니지만 대강 마실 만하네. 일어나는데 조금 도움을 주면 내가 직접 따라 주겠네만..., 아, 날 묶은 이 밧줄도 좀 풀어 줘야 하겠지." 당소기는 석실 구석에서 깨진 밥사발과 질주전자를 찾아서 그 안에 든 것을 따랐다. 좋은 차는 커녕 썩은 냄새가 나는 물이었다. 그러나 고 목대사는 애써 고개를 돌려 탐욕스럽기까지 한 눈빛으로 물 따르는 것 을 보고 있지 않은가. 당소기는 그 물의 냄새를 맡아보고는 인상을 쓰며 바닥에 부어버렸 다. 고목대사의 눈빛에 절망에 가까운 빛이 스치는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이건 도저히 마실 물이 아니군. 이와 같은 물을 준비한 시비가 있다면 당장 목을 잘라버리길 권하네." 고목대사가 대꾸했다. "나도 그러고 싶네만 요즘 좋은 시비 구하기가 어디 쉬운 일이라야 지. 그런 물로도 참고 산다네. 가뭄에 고생하는 농부들을 생각하면 그 런 물이라도 감사하게 마셔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당소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러하군. 감사히 마실 필요도 있긴 하네." 그는 다시 한 잔을 따라서 고목대사의 옆에 섰다. 그리고 보이도록 목젖을 움직여 가면서 마셨다. 고목대사의 눈빛이 그의 목에 아프도록 와닿는 것을 그는 느낄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잔을 완전히 비우고서 야 고목대사와 시선을 주었다. "자네는 왜 안마시나?" 고목대사의 눈빛이 이제 분노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초인 적인 인내력으로 그 빛을 억누르며 오히려 히죽거리며 웃었다. "난 아까 배가 처지도록 마셨기 때문에 더 마시고 싶지 않네. 아마 그게 닷새 전이었을 거야. 역시 사람은 무슨 일이든 심하게 하면 질린 다니까. 절제가 필요하지." 당소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절제, 좋은 말이지. 사실 자네에게 절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간혹 하곤 했네.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자네 재산 같은 것이지. 내가 알기로는 자네의 재산이 황제를 능가 할 정도라고 하던데 그렇게 쌓아 놓고 다 어디다 쓰겠나. 적당히 벌고, 적당히 쓰는 것이 오해려 행복 아닐까? 이거야 말로 절제가 필요한 일 이지." "누가 내 재산이 황제를 능가한다고 말하던가?" "황제가 아니라 왕소팔이었나? 햐여간 많다더군." "황제든 왕소팔이든 내가 그들보다 부자라고 말한 수하가 있다면 그 녀석 목도 잘라버리기를 권하네. 헛소문을 주군에게 전하는 수하야 백 이 있어도 소용없지. 평소에 말은 많아도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는 전해 주지 않거든." "중요한 이야기라니 어떤 걸 말하는 건가?" "예를 들면...." "예를 들면?" "나와 같이 진실하고 도움이 되는 친구는 흔치 않으니 잘 대접하고 성의로써 사귀어야 한다든가 뭐 이런 이야기지." 당소기는 손가락을 가볍게 흔들었다. "자네와 나는 이미 친구고 충분히 친하니 그런 이야기를 더 할 필요 가 있었겠는가." 고목대사는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친구라, 좋은 말이지. 절제만큼이나 좋은 말이군. 그래서 말이지만 자넨 친구 대접에 신경을 좀더 쓸 필요가 있네. 전부터 말하고자 햇지 만 기회가 없었지." "나는 항상 친구가 잘 대해 준다고 자부해 왔지. 하지만 자네가 내 접대에 부족함이 있다고 말한다면 겸손히 받아들이겠네. 내 친구 대 접의 어떤 점이 부족하던가?" "그걸 내 입으로 어찌 말하겠자. 스스로 생각해 보길 권하는 바일세." 당소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생각해 보겠네. 그나저나 오늘은 자네에게 한 가지 긴히 상 의할 일이 있어 왔다네." "뭔가? 난 사실 지금쯤 낮잠을 자야 할 시간인데 자네를 위해 조금 만 시간을 내주지. 아, 근데 지금 낮인가, 밤인가?" 당소기는 고목대사의 비아냥거림을 무시하고 말을 계속했다. "자네를 이 꼴로 만든 그놈을 기억하겠지? 용가 표사 놈 말일세. 그 놈에게 비참하게 당한 자네를 이 정도라도 고쳐 놓기 위해 우린 적 잖은 돈을 썼다네." "용가 표사라....." 고목대사의 눈이 분노와 원한으로 이글거렸다. 용유진을 향한 것이 아니라 당소기를 향한 분노와 원한이었다. 그날 용유진에게 크게 당하 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잠시 부상으로 힘을 못 쓰는 정 도였는데, 그 틈을 타서 당소기에게 제압당해 이 꼴이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애써 분노를 억누르고 태연히 말했다. "그놈 괘씸하긴 하지. 그래서?" "내가 비록 궁하게 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풍족하지도 않네. 친구 에게 이런 말을 하기는 뭐하지만 약값을 좀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수하 들의 충언이 있었다네." "약값이라고? 물론 줘야지. 얼마면 되겠나?" "아니, 아니. 내가 어떻게 친구에게 약값을 받겠다." 당소기는 크게 손을 저었다. 그 바람에 손에 든 잔의 물이 출렁거겨 고목대사의 얼굴 위로 몇 방울 떨어졌다. 고목대사는 이제까지 지켜온 평정을 잃고 혀를 내밀이 그 물을 햝으려고 애를 썼다. 당소기는 못 본 척하며 말했다. "약값은 내가 어떻게든 부담하겠네. 단지 나는 자네에게 약값과는 상관없이 친구로서 약간의 기부금을 받고자 할 뿐이네." 몇 방울의 물로 오히려 기갈이 심해진 고목대사는 자제력을 잃고 충 혈된 눈으로 당소기를 쏘아보았다. "차라리 약값을 내겠네." 당소기는 묵묵히 그를 내려다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약값도 괜찮지. 자네가 원한다면 그 성의 또한 거절할 수 없겠네." "얼마면 되나? 내 몸에서 걷어간 보석 장신구들과 역시 내게서 가져 간 양팔의 팔찌를 팔면 제법 돈이 될 걸세. 부족하면 이 옷도 벗겨가서 팔게나. 그거면 되겠지?" "아니, 그걸로는 부족하네. 백분의 일도안 되지." "그럼 내가 차용증을 쓸 테니 날 내보게 주게. 지인들에게 발려서라 도 곧 갚도록 하지." "그것 역시 안 되겠네." "날 못 믿는 건가?"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사이에 누가 누굴 믿겠는가? 당소기는 그렇게 말하고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농담일세. 천하의 모든 사람은 안 믿어도 자넨 믿어야지. 하지만 지 금 자네의 상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네. 다네가 이대로 나갔다가 객사라도 하면 돈은 둘째치고 내 마음이 아파서 어떻게 견디 겠나. 그냥 자네 재산을 모아둔 곳을 가르쳐 주게. 내 수하를 보내서 약값만큼만 가져오도록 하지. 더불어 그 길에 튼튼하고 편한 마차도 구 해오도록 해서 자넬 집으로 안전하고 편하게 돌려보내 주겠네. 물론 마차삯도 내가 물지." 고목대사는 울상을 지었다. 매우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그는 말했다. "고마운 제안이긴 하네만 실행하긴 곤란하군. 나는 따로 재물을 쌓 아둔 곳이 없다네. 내가 직접 가서 집도 팔고 말도 팔아야 돈이 좀 만 져지겠지. 모자라는 건 빌리기도 해야겠고. 그러니 직접 가야 한다는 걸세." 당소기는 고개를 저었다. "그 점에선 우린 결정적으로 의견이 안 맞는군. 나는 자네가 모아둔 재물이 있다고, 그것도 아주 많이 있다고 믿고 있네." 고목대사가 단호하게 부정했다. "잘못 안 걸세." 당소기는 손에 쥔 잔을 힘껏 쥐어서 깨뜨렸다. 그 안에 든 물이 손 가락 사이로 흘렀다. "서로 시간이 없으니 나중에 시간이 나면 또 이야기를 하게. 의견을 자주 교환하다 보면 합치하는 부분도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지 않나?" 고목대사는 당소기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을 안타깝게 바라 보며 간신히 말했다. "아마도 그렇겠지. 잘 가게나. 배웅하지 못하네." 당소기는 그러나 그냥 가지 않았다. "이렇게 온 김에 자넬 조금 즐겁게 해주고 가야할 듯하네. 그냥 가 면 물론 섭섭해 하겠지?" "하나도 섭섭하지 않네." 고목대사가 급히 말했지만 당소기는 이미 화로에 꽂힌 인두 하나를 집어들고 있었다. "무슨 소리. 친구의 성의는 거절하는 법이 아니라네." 고목대사의 비명이 석실 안을 가득 메우고 메아리쳤다. |
첫댓글 잘밨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ㅈㄷㄱ~~~~~```````
즐독입니다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보고 있습니다
즐감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