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한 예수님의 긴 여정은 예루살렘 입성으로 완성돼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입성합니다. 예루살렘 군중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온다는 소문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나귀를 타고 오는 예수님을 위해 군중들은 길에 겉옷을 벗어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군중들이 예수님에게 환호한 이유는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기쁨을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군중들은 예수님과 함께하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습니다. 아픈 이들은 병을 고치고 굶주린 이들은 배를 채우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면 삶의 근심 걱정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예수님을 만나보라며 추천해 주기도 했습니다. 군중은 점점 불어나 예수님이 편하게 식사하지도 못할 정도로 사람들은 몰려들었습니다. 군중들에게 예수님은 그야말로 슈퍼스타였습니다.
하지만 군중의 환호가 욕설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이 바라는 기준과 다르다고 느낀 순간부터 그랬습니다. 자신들의 기대와 다른 모습을 예수님에게서 발견하자 군중들은 태도를 바꿉니다. 예수님에게 환호하던 군중들은 수군거림을 넘어 당당하게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하고 싶으냐는 빌라도의 질문에 군중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조롱하고 침을 뱉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군중의 외침 속에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군중은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가슴을 치며 후회합니다.
오늘 [사제의 눈]은 영화배우 김새론을 기억합니다. 설리, 구하라 등 지금 우리 곁에 있지 않은 많은 연예인을 기억합니다. 모두 군중이 외치는 소리 속에서 죽어간 이들입니다. 충격과 함께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죽음까지 이끌었던 군중을 지금 여기에서 다시 만납니다. 먼저 악성 댓글러입니다.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샌드백처럼 연예인에게 악성 댓글을 달았습니다. 반성하지 않는다고 자숙하지 않는다고 조롱하고 공격했습니다. 여기에 악성 댓글러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준 언론이 있습니다. 알 권리 보장이라는 말로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연예 생활을 중단해도 끝까지 찾아내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그런 기사는 조회수가 올라가고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기사로 인격이 살해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 죄 많은 인간은 또 비난하고 악성 댓글을 달 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양심이 살아있다면, 그 옛날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간 군중은 막을 수 있습니다. 언론의 윤리와 연예 기사에는 댓글을 허용하지 않는 등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합니다. 이 죽음의 행렬을 막아내야 합니다.
오늘 [사제의 눈] 제목은 <우리가 죄인이다>입니다. 생명에 반하는 악성 댓글러가 사라지고 언론 윤리가 회복되길 바라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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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