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20
ㅡ 역사서술 방식과 삼국시대 성립 ㅡ
*******************
본격적으로 삼국역사 속으로 들어 가기 전 이 삼국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기술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나라 별로 해야할지, 아님 인물중심으로 해야할지에 대해 고민하다 제 글이 무슨 정식 역사서도 아니고 그저 읽기 쉽고 알기 쉽게 그 시대를 정리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형식을 크게 따지지 않고 정리 해 나가겠습니다.
사실, 제가 지금까지 써온 역사 글도 어떤 형식의 틀을 갖추고 써 온 것은 아닙니다. 그냥 그때 그때 시대 상에 맞춰 내 편의대로 써 왔을 뿐입니다.
역사는 역사가의 관점과 목적에 따라서 다양하게 서술 방식이 선택됩니다. 아마도 그 목적은 역사 글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역사 서술방식의 대표적 방식인 '기전체'와 '편년체', '기사본말체'에 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기전체>는 중국의 사마천이 쓴 ‘사기( 史記)’에서 처음 사용된 역사 서술 방식으로, 역사를 인물 중심으로 서술하는 방식입니다. 본기(本紀), 열전(列傳), 표(表), 지(志)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며, 인물의 생애와 업적을 중심으로 서술하기 때문에, 인물의 성격과 행동,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자세히 파악하기 용이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역사를 보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사인
'삼국사기'와 '고려사'가 '기전체' 형식으로 작성 되었습니다.
<편년체>는 역사를 시간 순서대로 서술하는 방식으로, 연월일 순서에 따라 사건을 기록합니다. 주로 일기나 연대기 형식으로 쓰이며, 사건 발생과 전개, 결과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편년체' 장점은 편찬이 용이하다는 점과 역사기록을 분산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과 연대가 정확하지 않은 자료를 싣기 어렵다는 한계점이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편년체 역사서로는 중국 '자치통감'이 있고, '조선왕조실록' 도 기본적으로는 '편년체'로 쓰여 졌습니다.
<기사본말체>는 역사를 시간 순서대로 제목을 앞세우고, 관계된 기사를 한데 모아서 서술한 것입니다. 어떤 사건을 중심으로 해서 역사를 파악하려고 할 때, '기전체'는 그 사건에 관계된 인물의 전기를 모두 찾아보아야 하고, '편년체'는 해당 시기를 중심으로 앞뒤를 뒤져서 관련된 기사를 모두 찾아보아야 하는 단점이 있는데,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건을 중심으로 편찬한 '기사본말체'가 유용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대상 사건을 체계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자치통감'이나 한국 '삼국유사'가 이 방식으로 쓰여 졌습니다.
제가 써 온 역사 글을 굳이 따지자면 아마 '기사본말체'와 가장 비슷한 형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삼국시대 (三國時代)는 고대 한반도에서 북부 고구려, 중서부 백제, 동남부 신라를 주요 3국으로 묶고, 북부 부여, 남부 가야, 제주 탐라 등을 비롯한 기타 소국가들이 정립했던 우리나라
시대구분을 말한다.
정사 '삼국사기'를 보면 삼국 중 국가 건국연대가 가장 빠른 나라는 우리 일반생각과는 다르게 '신라'이다.
신라가 기원전 57년,
뒤이어 고구려가 기원전 37년, 마지막으로 백제가 기원전 18년 건국된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백제와 신라 경우에는 고고학적 실증자료 부재로 인해 삼국사기 기록 연대를 수정해 건국 연대를 내려야 한다는 설이 어느 정도 지지를 얻고 있다.
어쨌든 일반적으로 우리가 '삼국시대' 라고 부르는 것은 고구려 - 백제 - 신라 삼국이 등장하는 시점부터이다.
그러나 실제로 한반도에 다른 소국 없이 삼국만 있던 시기는 '가야' 제국들이 신라에 병합된 562년부터 백제가 멸망하는 660년까지, 고작 98년에 불과하다. 가야가 완전히 소멸한 뒤에도 한반도 외부 지역이면서 한국사 영역이라고 보는
'탐라국' 등 곁가지격인 소국가들 몇몇은 계속 반독립적으로 있었다.
한반도 3세기 중엽을 묘사하는 중국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 나오는 '삼국지위지동이전'에서도 한반도 중부 이남에 78개국이 존재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외 옥저, 예, 부여 등 국가들이 고구려 백제 신라 건국당시 여전히 존재했었다. 게다가 한사군의 잔재였던 '낙랑군'이 망한 것은 4세기 초인 고구려 미천왕 때였다.
따라서 실제로 '삼국시대'로 칭할 수 있는 시기는 아무리 이르게 잡아도 4세기 이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삼국지위지동이전' 국가들을 '삼국시대' 이전 국가들로 배치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내 역사 글도 시기적으로 봤을 때는 순서가 좀 바뀌기도 했다
따라서 일부 학계에서는 대략 3세기까지는 '원삼국시대' 라는 용어를 통해 '삼국시대'와 구분하려는 편이다.
'원삼국시대'는 역사학자 '김원용'이 제창한 용어로서 그의 저서 '한국 고고학 개설' 제3판 (1986년)에 의하면 기원후 1년 ~ 300년 사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김원용은 이 시대가 '삼국사기'에 의하면 삼국시대지만, 실제로는 국가에 이르지 못한 단계로서 이를 '삼국시대 원초기(原初期)' 또는 '원사(原史) 단계의 삼국시대'라는 의미로 proto - 삼국 즉 '원삼국시대'라고 정의했다.
'원삼국시대'는 만주지방에는 부여, 고구려가, 한반도에는 낙랑, 대방, 옥저, 동예, 삼한 등의 정치체가 존재했다.
고고학적으로는 청동기 소멸과 철기의 도래 및 발달, 고인돌의 소멸, 와질토기가 등장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원삼국이라는 용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단순한 예로 '문헌사학계'(문헌사 및 역사학 연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학회)
에서는 이 용어를 채택하고 있지 않다. 고고학계 내에서도 학자마다 다른 명칭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실질적으로 삼국 각국이 주변 일대 패권을 확립한 것은, 고구려는 2세기 ~ 3세기,
백제는 4세기, 신라는 5세기 중엽 이후나 되어서의 일이므로, 빨라도 4세기 ~ 5세기 정도 이후에나 '삼국시대' 라는 용어를 한정지어 사용해야 역사적으로는 맞다
사실, 가야도 6세기 초중엽까지는 존속해있기 때문에 엄연한 의미에서 삼국시대로 통칭할 수 있는 시기는 100여 년 정도이다. 그래서 가야를 포함해 '사국시대' 같은 용어를 미는 경우도 간혹 보인다.
그러나 '사국시대'라는 용어도 허점이 많아 '삼국시대' 용어보다 더 적합한 표현이라기엔 애매하다.
그 이유는 '가야'가 중앙집권국가 로 발전을 완료했다면 '사국시대' 로 명명되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수 있기 전에 '가야'는 망했기 때문이다.
'가야'는 국가라기 보다는 연맹 체제라는 설명도 있는데 그렇게 보면 백제, 신라 또한 연맹 체제였던 기간은 '가야' 못지 않다. 차이는 영도국의 국력이 다른 거수국들을 압도했는가 안 했는가 그 차이 밖에 없다.
때문에 최근에는 가야 연맹설은 부정되는 게 통설이다. 그런데 가야연맹 안에는 리더십이 있는 거수국이 하나가 아닌 여럿이었던 게 한 국가로 까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마한'은 영도국이 교체되었을 망정 유력한 영도국은 늘 하나였다.(건마국 → 목지국 → 백제국),
'진한'은 아예 말할 필요가 없다.(사로국)
반면, 가야는 대부분 복수였다. 그래서 한 국가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
가야 극초기인 1~2세기에는 금관국, 고자국, 안라국, 독로국 사두 체제였고, 3세기 초 포상팔국의 난으로 고자국과 독로국이 쇠퇴한 이후 금관국, 안라국, 반파국 삼두 체제였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우리 역사 속 '삼국시대'는 시작된다.
'삼국사기'에는 '신라'가 가장 먼저 건국된 것으로 나오지만 당시 여러 상황을 살펴보면 '고구려' 건국이 더 빨랐다는 게 다수설이다.
그래서 다음 편은 고구려 건국설화 '고주몽'편을 정리하려 한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