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지혜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서, 하나이면서 셋이고 셋이면서 하나입니다.
아라한은 일체지에 치우쳐 있고 보살은 도종지에 치우쳐 있으며, 오직 부처님만이라야 원만합니다. 우리가 불법을 배우면서 가장 총명한 수학 방법은 지견(知見)이 원만해야 하며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주관적이면 곧 치우치고 객관적이면 곧 원만합니다. 모든 부처님 여래는 터럭만큼의 주관적인 관념이 없고 원융하고 자재합니다.
아라한은 자신의 주관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고, 보살도 약간의 주관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으므로 원만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만약 우리가 총명하게 공부하고 싶다면 객관을 배워야 하며, 주관적인 관념이 존재하지 않아야 비로소 원만한 지혜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 가지 지혜는 어디로부터 얻을까요? 한마음[一心] 가운데로부터 얻습니다.
수행 법문[行門]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무상정등정각 을 구하는 것이 바로《아미타경》에서 사용하는 방법인 일심불란(一心不亂 ) 입니다.
중국에서는 어느 종파이든 염불을 하지 않는 종파는 없습니다. 선종도 포함됩니다.
선종의《예불독송본》에서 저녁예불에는 모두《아미타경》을 읽으며 다들 아미타불을 외웁니다. 《화엄경》에는 수행하는 방법이 2천여 가지나 있으니 상당히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염불법문입니다.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참방하는 것은 시작부터 끝까지가 바로 염불법문을 닦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보현보살이 극락으로 돌아가도록 인도한 것은, 어느 법문이든 정각을 성취할 수 있고 정등정각을 성취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할 수는 없으며, 만약 무상정등정각을 이루고자 하면 반드시 염불법문을 닦아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 보여준 것입니다.
염불법문은 일심불란을을 대표하니, 오직 일심불란이라야 일체종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염불법문은 일체종지를 수학하는 방법과 수단으로서, 참으로 불가사의합니다.
¤》출처: 나무아미타불이 팔만대장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