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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21
ㅡ 상고사를 마치며 ㅡ
(환단고기 위서 논쟁)
이번 편부터는 상고사를 끝마치고 우리나라 본격적인 고대사인 '삼국시대'로 들어 가려 했지만 뭔가 조금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런 아쉬움을 정리하기 전에 먼저 상고사에 관한 제 개인적인 소신부터 밝히겠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상고사이던, 전세계 상고사이던 민족주의 입장 이나 국가주의 시각으로만 보지 않았음 합니다.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5천년 그 이 전 이야기는 민족주의이나 국가주의 입장이 아닌 그냥 인류사 입장에서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 논쟁의 주제가 될 '환단고기'를 보겠습니다.
'환단고기'(桓檀古記)라는 이름을 그대로 풀이하면 대략 '환웅과 단군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 한민족 뿌리인 '단군' 이 전에 '환'국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민족 역사를 단군조선 보다 까마득히 더 앞 서 몇 만년 전까지 올려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도 환국이 다스린
영역은 자그마치 남북이 5만 리에 동서가 2만리였다 합니다. (아래 지도 참고)
환단고기 및 그 추종자(소위 '환빠')가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사이 우리 역사학에 큰 열풍을 일으켜 학문과 민간에 끼친 영향이 지대했지만, 오늘날 역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를 인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연구부정행위로 직결될 수 있어 매우 금기시되어 있습니다.
소수 재야 민족주의 논단이나 역사학자를 참칭하는 집단에 의해서만 향유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환단고기'를 우리 한민족 영광의 역사로 보고
환단고기 속 역사를 열열히 지지하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이 들은 환단고기를 부정하는 정통사학을 일제강점기시대 만들어진 일제식민지사학자들로 몰아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아주 극렬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학계나 사학자들은 '환단고기' 이름조차 말하기를 꺼려합니다.
저는 앞 서 제 소신을 밝힌대로 5천년 이 전 역사는 하나 민족 역사가 아닌 인류역사로 돌려야 한다고 말했듯이 환단고기 내용이 일부 사실이라 하더라도 우리 '한민족' 역사로 보지 않습니다.
제가 오늘 쓴 글에도 환단고기를 지지하는 분들의 거센 공격 댓글이 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지만 '환단고기'에 관한 논쟁을 정리하려는 이유는 환단고기가 위서 논쟁을 떠나 환단고기 이야기를 정리하지 않고서는 '조선상고사'가 뭔가 빠진듯한 찜찜함이 남기 때문 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상고사는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도 있지만 환단고기와는 아주 다릅니다.
신채호 조선상고사는 단군조선부터 시작해 제가 지금까지 정리한 글 속에 어느 정도 녹아있습니다.
제 <고대사는 흐른다> 시리즈 중 '환단고기' 이야기는 가능한 배제하려 했습니다. 제가 모르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정리하려는 내용은 '환단고기' 열풍이 몰아칠 때인 1999년 방영한 kbs 역사 다큐 '역사스페셜'이란 프로에서 방영한 <환단고기 열풍을 말한다>프로를 찾아 보고 그 다큐 내용을 토대로 '환단고기'에 대해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환단고기'가 나온 배경부터 살펴보고자 합니다.
환단고기는 다음과 같은 다섯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삼성기(三聖紀) - 삼국유사 이전의 고대 역사를 기록
- 단군세기(檀君世紀) - 단군조선의 건국과 그 이후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단군 왕조의 계보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
- 북부여기(北夫餘記) -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의 건국 이야기와 함께, 부여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을 서술
- 태백일사(太白逸史) - 고대의 역사와 풍속, 전설, 민속 등을 기록한 책입니다. 환국, 신시, 배달국등 기록
- 발해고(渤海考) - 발해의 역사와 문화, 지리 등을 다루고 있는 책
이 책들은 고려시대와 조선 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자는 여러 명으로 추정되며, 각기 다른 시기에 걸쳐 여러 편찬자가 추가하거나 수정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 책들 저자로 알려진 인물이 실존 인물이었는지도 의문입니다.
이 책들을 모아 정리하고 처음으로 '환단고기'라는 명칭을 썼던 사람은 '계연서(桂延壽)'로 알려지고 있지만 원본은 남아있지 않고, 계연서란 인물의 역사적 기록도 명확하지 않아 그의 존재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가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1979년에 '이유립'이란 사람이 '계연서' 책을 바탕으로 출간한 뒤 우리나라에서는 큰 주목을 끌지 못 했으나, 이 책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서 인기를 끈 뒤 다시 한국으로 역수입되어 들어와 환단고기 열풍을 크게 일으키면서 입니다.
이처럼 '환단고기'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이후에 쓰여진 책입니다. 그런 만큼 '환단고기'는 역사적 자료로서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 책을 통해서 우리의 상고사를 복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단 이 책이 19세기 말, 20세기 초 이후에 우리 선인들이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권력화하려고 하였느냐는 당시인들 역사의식을 파악하는 데에는 유효한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또 환단고기 무시할 수 없는 근거를 아래와 같이 들기도 합니다.
1. 삼국유사에는 단군이 한 명으로 2000년 가까이 살며 고조선을 통치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환단고기에는 단군이 47명으로 그 계보까지 자세히 나와 고조선을 신화 속 나라가 아닌 현실 속 고대국가로 받아 들일 수도 있게도 합니다.
2. 환단고기 내용 중 BC1773년 천체 상황이 현대과학으로 풀어보니 비슷했다 합니다.
3. 고조선유물 '비파형동검' 출토 지역이 북경 만주와 한반도 전지역에서 발굴되어 환단고기 주장과 일치하기도 합니다.
4.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기록을 보면 '수서령(收書令)' 이 나오는데 '수서령'이란 조선시대 세조와 예종 · 성종 때 8도 관찰사에게 명령해서 특정 서적을 전국에서 거두어들인 일입니다.
조선실록 세조 3년 5월 26일 내용을 보면
[ 8도 관찰사에게 유시하기를, "고조선 비사 · 대변설 · 조대기 · 주남일사기 · 지공기· 표훈삼성밀기 · 안함노원동중 '삼성기'… 1백여 권과 동천록 · 마슬록 · 통천록… 등의 문서는 마땅히 사처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하도록 허가하고…]
환단고기 책 중에 있는 '삼성기'가 나와 삼성기는 최소 세조 이전에 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점에 이덕일 같은 역사학자는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환단고기도 그렇고, 규원사화도 그렇고, 이것을 읽고 많은 분들이 그 많은 분들은 사실로 믿고 또 많은 분들은 이게 위서라고 주장하는데... 저는 이것이 '사실이다 위서다’라는 그 차원에서 이제는 한 차원 좀 넘어가야 된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냐면은 '환단고기 사(史)'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환단고기의 내용이 맞다 틀리다는 차원이 아니라, 환단고기를 한번 본격적으로 연구를 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ㅡ 이덕일, "고구려는 천자..." 저자간담회, 2007.09.12.ㅡ
또한 환단고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혹은 일제강점기를 벗어난지 얼마 안 되어 우리나라 당면과제였던 민족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당시 민족주의사관이 대세였을 때 나온 책입니다. 그래서 환단고기 서문에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과 결부되어 있고, 독립운동가 '홍범도' 등이 책 비용을 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반대 주장도 있습니다. 정작 환단고기 내용을 종합해보면 독립운동의 당면과제는 배제되고 오히려 일본 대동아공영권 사상과 흡사한 확장적 · 공격적 민족주의
의식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환단고기를 올바른 애국심의 발로로 볼 수 없는 근거입니다. 실제로 '임승국' 등 환단고기의 초기 추종자들은 독재정권에 협력을 자청한 이들 이었습니다.
환단고기를 일본에서 역 수입해 열풍을 이끌어 낸 '임승국'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진압한 전두환에게 "공산주의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국수주의 독재를 해야 한다!"고 진언하기도 했다 합니다.
환단고기가 위서이고
사료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유사역사서라는 말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아 제 글에 다 실지는 못 하고 몇 가지만 소개드립니다.
['환단고기'에서 도가사상을 단군 시대의 신교와 연결시키면서 이를 다시 일본의 민족종교 인신도(신궁)와 연계시키는 것은 '한일 문화동원론'이며 나아가 '일선동조론'에 이용될 소지가 있다. 결국 이들 고서는 일제의 논리에 기반한 가치론적 민족개량주의 입장에서 다른 민족주의를 비판했던 책이며 민족주의의 외피를 쓴 '신 일본주의' 노선이 나타날 수 있는 현 상황에서 이들 고서가 지니는 부정적 영향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ㅡ 박광용, 「규원사화」·「환단고기」-"일제 때 씌여진 위작이다", 1990.08.28 ㅡ
[사서 읽지 마세요. 책값도 아까워! 어디 헌책방 같은 데서 한번 뒤져보라고. 완전 거짓말이야. 삼국유사에도 허황된 얘기는 나오지만, 어떤 민중적 사유라든가 그런 걸 담고 있죠. 단군신화는 그냥 신화로 해석해야지. 고대에 천조대신이 어쩌고저쩌고… 이게 말이 되냐고? 석기시대에 돌멩이 들고 싸우던 시절인데 어떻게 제국을 건설해요? 역사발전에서 그 시기는 부족국가 시대예요.]
ㅡ 이이화, "역사의 판단에 맡겨?...", 한겨레, 2015.11.21ㅡ
이처럼 환단고기 논쟁은 아직도 극과극이지만 위서라는 것이 거의 증명된 것 같습니다.
오늘 내 결론은 이덕일 교수가 말한 것처럼 위서이던 아니던 좀 더 연구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환단고기를 열열히 지지하시는 분들도 거의 선사시대나 다름없던 상고사를 우리 민족의 역사로 주장하는 것이 애국심을 고취한다는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단군왕검도 신화로 보는데 그 이 전의 사람들은 나라도 못 만들고 거의 씨족이나 부족사회에서 살았던 사람들인데 무슨 민족의식이 있었겠습니까?
'환단고기'는 우리 한민족이 '환'국이라는 나라를 만들어 5만년 이상 엄청난 영토를 지배했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만 그렇게 믿는다고 그게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로 남기려면 철저히 공인된 기관으로부터 검증받은 기록과 유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괜한 허무맹랑한 지나친 주장으로 진짜 우리 역사까지 의심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환단고기 일부 내용은
민간 설화나 문학 작품 등의 소재가 되어 의도치않게 후대의 문화창작에 기여를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나도 이십대 때 재미있게 보았던 이현세 만화 '천국의 신화' 인가가 지금 생각해보니 '환단고기' 내용이 바탕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환단고기도 민간 설화나 문학 작품 등 소재가 되어 의도치않게 후대 문화창작에 기여를 하는 경우는 있을 수도 있다 봅니다.
그러나 '환단고기'는 아직은 역사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판타지 문학 쪽 이 정도까지라 봅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