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편백을 가져다 쓴다
자르고 다듬었다
편백 한 조각 위에 앉아 무릎을 쭉 편다
편백 벽에 발바닥이 간신히 닿지 않는다
직각을 포기한 발목으로 발끝 정도는 편뱍 벽에 닿는다
편백은 나를 품는다
얼마나 있을 수 있을까
왜 늘 못 견딜까
왜 못 견뎌 할까
온탕에 단 몇 분도 있기 힘들어서 분리되기 힘들었던
나와 나의 노폐
세신할 것이다
쇄신할 것이다
편백은 나를 품는다
진짜 왜 못 견뎌 할까
못 견뎌
할까?
못 견뎌
하지 마
나의 노폐 배출된다
밖으로 끼쳤던 폐를 떠올려본다
나는 가끔 맑은 날에 순식간에 장마를 만든 적도 있다
사람들은 알아서 잘 피했다
사람들은 방수가 잘되었다
나와 편백은 수용한다
편백은 나보다 수용성이 좋다
편백은 나의 모든 말을 들었다
편백 안으로 내가 내뱉고 저질렀던 모든 말이 떠돌아
다녔다
생각이 말로 배출된다
말이 문장으로도 배출될 수 있다
편백의 표정을 보고서 내뱉는 나의 낡고 늙은 탄식
견디지 마
향균에 참여한다
살균이 이루어진다
내게서 낡음이 배출될 것이다
내게서 늙음이 배출될 것이다
내게서 젊음이 배출될 것이다
내게서 시간이 배출될 것이다
모래시계는 사라졌다
편백은 내게서 새롭게 배출된 표정을 처음으로 본다
[시 보다 2024],문학과지성사,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