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꽃향기, 장미(薔薇|Rose)/ 오월의 향수, 소수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프리미엄 니치 향수(niche perfume)/ 오월의 신부, 프랑스 왕국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5월은 어린이와 어버이, 그리고 스승을 상징하는 달이다. 근데 예전엔 자주 듣던 말이 하나 더 있었다. 이제는 점점 듣기 힘들어지는 ‘5월의 신부’다. 사시사철 결혼을 할 수 있는 데다 결혼 자체가 줄어드는 세상이다 보니 사라지는 말이 되고 있지만 말이다.
이 표현의 기원은 유럽이다. 유럽인들은 기본적으로 땀구멍이 커서 몸 냄새가 강할 수밖에 없었는데 목욕 문화나 시설이 요즘 같지 않다 보니 잘해야 한 달에 한 번 정도 씻는 게 대부분이었다. 귀족들조차 얼굴에 물을 찍어 바르는 정도의 세수를 했으니 목욕은 ‘계절 행사’ 비슷한 수준이었다. 요즘 말로 지독한 체취가 ‘디폴트’였던 것인데, 가족이야 같이 부대끼고 사니 그렇다 쳐도 연애결혼도 없던 시절엔 처음 만나는 남녀들, 특히 결혼 당사자들에겐 고민거리일 수밖에. 귀족들은 비싼 향수로 냄새를 숨길 수 있었지만 서민들이야 어디 그럴 수 있는가. 그래서 이제 막 피어나는 꽃향기로 몸 냄새를 가리는 5월이 결혼 성수기였고, 그러다 보니 5월의 신부라는 표현이 생겨났던 것이다.
이런 꽃향기가 중세 시대를 지나 근대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인 상품인 향수가 되었고 시장 역시 발달하기 시작했는데, 냄새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나타내고 계급을 구분하는 풍조가 더 심해진 것도 이때다. 도시는 빠르게 커져 가는데 하수도 같은 위생 시설이 없다 보니 거리는 오물로 넘쳤고 악취가 진동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귀족이나 부르주아들은 넓고 공기 좋은 곳에 사는 데다 향수로 치장할 수 있었지만, 일반인들은 악취 가득한 거리 주변에서, 밀집된 상태로, 그것도 목욕 시설조차 절대 부족한 생활을 하니 몸에 배는 냄새를 어쩔 수 없었다. 프랑스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가 ‘인간 희극(La Comédie humaine, 人間喜劇)’에서 파리 곳곳을 냄새로 구획 지은 게 이래서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이럴 정도는 아니지만 냄새는 여전히 사람을 판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른 감각기관과 달리 후각은 24시간 항상 가동하고 인간의 뇌가 유독 후각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시각적 기억은 3개월이 지나면 50% 이하로 떨어지지만, 향기 기억은 12개월 후에도 무려 65%나 남아 있을 정도다. 사람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아 있는 감각인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니치 향수(niche perfume: 소수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프리미엄 향수)’를 원하는 것도 아마 이래서일 것이다. 니치 향수란 화장품 브랜드에서 내놓은 ‘패션 향수’와 다르게, 전문 조향사가 특정한 사람의 취향을 위해 만든 프리미엄 향수인데, 한마디로 ‘나만의 향기’를 원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나만의 향기 하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프랑스 혁명으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프랑스 왕국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다. 혁명의 물결이 왕궁으로 몰려오자 앙투아네트는 시녀에게 대역을 시켰는데 그녀만 쓰는 향수 때문에 결국 잡히고 말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찾아보니 세상에, 앙투아네트 역시 5월의 신부였다! 당시 14세였던 그녀가 나중에 루이 16세가 되는 왕세손과 파리 베르사유 궁전에서 결혼한 날이 1770년 5월 16일이었다.
[출처: 동아일보 2024년 05월 15일(수) 「서광원의 자연과 삶(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 Daum, 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 아내와 나 사이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 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이생진(李生珍, 1929~) 월간 《우리詩》(2008년 10월호)
제1회 "섬진강에 벚꽃 피면 전국 詩낭송대회"
박경리 문학관 주최 시낭송 대회 대상 수상 작품.
2019년 봄 평사리 최참판 댁 행랑채 마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