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고양이를 위하여
- 박숙경
아가야
등에 앉았던 오후의 햇살을 기억하니
어제처럼 사뿐히 뛰어내려 보렴
아픈 너를 발 앞에 두고 꽃에 대한 시를 읽다 보면
나의 눈시울은 이미 붉게 젖어 있고
글썽이던 눈망울로 서로를 바라보면
어제의 시간이 다시 오늘의 오후에 와 있어
늘어난 비듬과 빠진 흰털과 마른 눈곱과 귀를 세우고 동그마
니 몸을 말아 잠든 너의 모습과 오후의 눈부심과 올이 풀린 이
불과 구토의 흔적을 쓰다듬다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영원이라
는 말을 믿지 않았지만 가끔 영원이라는 말이 필요하기도 해
너를 위해서
어쩌면 나를 위해서
오늘은 턱시도를 입은 나의 고양이와 하얀 얼룩과 시들어 버
린 오후를 위해 백합의 웃음은 잠시 지울게
너만 좋다면 이란 말을 할 때는 발걸음을 조심할 것
갸르릉
-이제 나비 따윈 오지 않을 거야
-걱정 마 계절의 꼬리가 짧아졌을 뿐이야
별 하나를 가슴에 품었던 기억을 꺼내면 오래된 거짓말들이 나
란히 글썽거린다
두 개의 창 너머 멀리서 빛나는 별아
가까이 다가서지 마라
우리 영원할 수 있을까
-『 문장웹진_콤마,10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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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을 가까이 두고 사는 게 행복이라 여기는 구순의 종숙모를 생각합니다
십오륙 년 동안 돌본 강아지는 목소리 말고는 다 늙어버렸고,
뚫어놓은 구멍으로 먹이를 찾아 드나드는 고양이들은 이름도 헷갈리십니다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겨울나기를 걱정하십니다
낳은 자식과 돌본 자식들 걱정은 개의치 않으면서 곁을 맴도는 동물을 생각하십니다
개도 고양이도 무릎에 앉거나 품안에 깃드는 걸 좋아하고
종숙모께서는 짧아지는 계절의 꼬리를 아쉬워하고 눈시울만 적십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너무 가깝게 다가서지 말라고
어두워진 시력으로 머리맡 찬송가와 성경을 쓰다듬으시는데 이미 '한로'이네요
치과에 가서 치아 손을 보려고 해도 이미 혼자서는 꼼짝도 못하시니...
우리 집안 어른으로 오신지 반세기 가깝게 수많은 기억을 쌓으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