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흙이 되려나 [이병진]
흙이라고 다 같은 흙이 아닐진대
흙의 성질이 도자기의 질감을 바꿀진대
딱딱해서도 물러도 안 되고
입자가 거칠거나 색이 도드라져도 안 되고
1300℃의 불을 무던하게 견뎌야 하고
가마의 시커먼 손장난에도 진득해야 한다
혹여 귓불에 뜨거운 바람이 들어오더라도
몸을 비틀거나 마음이 갈라져서는 안 된다
그래야 매끈한 세상을 만나고
나무처럼 버티는 힘이 생기고
한낱 질그릇과는 결이 달라질 터
저 흙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만들어진 것
풍파에 뒤틀려 불순한 나는
어느 화장터에서 몸을 뜨겁게 굽더라도
반듯한 자기磁器 하나 못 얻을 나는
죽어 어느 골짜기에서 어떤 흙이 되려나
- 애지 2024년 여름호
* 민들레 씨앗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다가 자기의 뜻과는 다른 곳에 안착한다.
옥토인지 박토인지는 씨앗이 발아해서 커봐야 안다.
옥토에 안착하면 자손을 번성시키고 잘 살 수 있지만
박토에 안착하면 큰 돌멩이 틈에서 고생만 하다가 자손 번식도 못하고 삶을 마감할 것이다.
똑같은 흙이라도 화분이 크면 꽃이 크게 되고 작은 화분이면 꽃이 초라하게 자란다.
바람이 부는 때에 맞춰서 씨앗들은 낙하산처럼 날아오르고
바람이 잦아질 때쯤 활강을 한다.
아뿔싸! 박토에 떨어졌네.
바람아 불어다오, 제발!
오홋! 옥토에 떨어졌네.
바람아 멈추어다오, 제발!
옥토인지 박토인지 환경이 그러하더라도 발아하고 열심히 살다가 가면 좋겠다.
흙이 좋으면 도자기가 되겠지만
흙이 나쁘더라도 생활자기가 되어 쓸모있는 삶을 산다면 그게 잘 사는 일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