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901) - 코로나로 힘들었던 2021년을 보내면서
40여년만의 12월 추위가 맹위를 떨친다. 연말연시에도 추운 날씨라는 예보, 모두들 몸과 마음 따뜻하게 보내시라.
12월의 주위에 얼어붙은 무심천
또 한 해가 저문다. 2021년은 전 해에 이어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이 난다. 작년 이맘 때 2020년을 보내며 이렇게 적었다. ‘중국정부가 지난 해 12월 31일 우한에서 정체불명의 폐렴이 발생했다고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한 지 어느새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전 세계의 코로나19 감염자는 8,000만 명이 넘었고 170만 명 이상이 귀중한 생명을 잃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강력한 전염력을 가진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촌을 위협하고 있어 초비상이다. 국내 상황도 매우 절박, 최근 일주일 하루 평균 확진자가 1,000명을 넘는 등 전국이 숨을 죽이고 있다.’
2021년을 마무리하는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어제(12월 28일)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확진자는 3865명으로 한때 8,000명에 육박하던 1~2주 전보다 크게 줄어들었다. 게다가 전염력이 강한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으로 코로나와 공존을 모색하는 징후도 등장하고 있다. 어쩌면 내년에는 확진자 증감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불안의 일상화에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이와 함께 심각한 기상이변과 이에 따른 재난에 대응하는 범세계적 성찰과 대처가 긴요하리라. 하늘과 땅의 기미를 살피는 지혜와 함께.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 코로나로 위축된 일상에도 나름 보람된 날들을 가꾼 한 해가 고맙고 대견하다. 어려움 가운데 자긍심을 살린 1년의 주요결산과 세밑의 미담을 살펴본다.
1. 어느 해보다 열심히 걸은 한 해
지난 1년간 하루 평균 12km, 총 4,000km 남짓 걸었다. 걷기행사주관단체인 (사)한국체육진흥회는 코로나 여파로 여럿이 모여 걷는 행사가 축소됨에 따라 2021년 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회원들이 자율적으로 걷는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시행하였다. 그 덕분에 기록에 관계없이 불규칙적으로 걷던 일상에서 탈피하여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하여 매일 걸은 기록을 등재하는 방법으로 꾸준히 걸은 결과 11개월간의 누적기록이 4,000km를 넘었다. 날마다 걷는 자율걷기 외에도 두 차례에 걸쳐 체육진흥회가 주관한 조선통신사 옛길 서울 – 부산 왕복걷기, 코로나 극복 언택트 워킹 페스티벌, 강원명산 첼린지 등이 걷기를 통한 체력증진과 역사문화탐방의 묘미를 더해주었다. 조선통신사 옛길 서울 – 부산 걷기기록을 동호인이 번역하여 일본인들과 공유한 것은 과외의 소득. 꾸준한 걷기가 노후건강에 특효인 것은 주지의 사실, 이를 어느 해보다 열심히 실천한 2021년이 자랑스럽다.
열심히 걸어서 받은 2021년 완보증
2. 인생은 나그네길, 그 깊이를 더 깨친 한 해
나는 인생은 나그네길이라 여기며 은퇴 전에 나그네 삶의 4단계를 1) 관광(觀光, 풍경을 즐김) 2) 관음(觀音, 역사와 문화를 듣고 배움) 3) 관서(觀書, 글을 통하여 익힘) 4) 관덕(觀德, 덕망을 쌓음)으로 정립한 후 그 다음의 경지를 10년 넘게 궁구하였다. 그러던 중 금년 들어 두 가지를 깨쳤다. 하나는 봄에 접한 관기(觀機, 하늘의 기미를 살핌), 다른 하나는 가을에 새긴 관찰(觀察,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보살핌)이다. 인생의 높은 경지인 관기(觀機)를 접한 것은 정기 구독하는 잡지 샘터 3월호에 설흔 작가가 쓴 ‘우정으로 도를 닦은 관기와 도성’,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수행자들의 이야기다.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두 사람(관기는 하늘의 기미를 살핌, 도성은 도를 이룬다는 뜻)의 신비한 행적이 흥미로웠다. 여행에서 뿐 아니라 사는 동안 하늘의 기미를 살피고 도를 터득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관찰을 살핀 것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서 읽은 공자의 역경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 앙관부찰(仰觀俯察,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 살핀다)이라는 문구.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살피는 일이야말로 성인과 현자들이 찾는 지혜의 덕목이 아니던가. 은퇴 12년 지나서 관기(觀機)와 관찰(觀察)을 새로 깨친 한 해가 뜻깊다. 남은 나그네 길에 추가로 터득하는 관(觀)자 돌림의 더 높은 경지는 무엇일까.
3. 추위를 녹이는 세밑의 미담
- 50년 전 홍합 한 그릇 외상값, 200만원 되어 돌아왔다
1970년대 중반 어느 겨울, 신촌 시장 뒷골목 리어카 노점에서 수중 무일푼의 고학생이 빚진 홍합 한 그릇 값이 50여년 만에 200만원으로 돌아왔다. 당시 홍합 한 그릇이 몇 백 원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단순 계산으로 1,000배가 넘는 금액이 돼서다. 28일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지난달 12일 70대 노인이 신촌지구대를 찾아 미국에 사는 친구 부탁이라며 지구대장에게 봉투 하나를 전했다고 밝혔다. 이 봉투엔 2000달러(약 226만원) 수표와 함께 편지 한 통이 담겨 있었다. 편지를 보낸 이는 뉴욕에 거주하는 장모(72)씨.
200만원으로 돌아온 홍합 한 그릇
사연은 그의 학창시절인 197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도의 농촌마을에서 서울 신촌으로 유학 와 고학생으로 생활하던 장 씨는 어느 겨울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신촌 시장 뒷골목의 홍합을 파는 아주머니에게서 내일 드리겠다며 홍합 한 그릇을 외상으로 먹었다.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그는 그 후 군에 입대했고, 전역 후에는 미국 행 비행기를 탔다. 하지만 홍합 아주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마음의 빚을 항상 지니고 있었고 그 분께 거짓말쟁이로 살아왔다는 죄책감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너무 늦었지만, 친절한 홍합아주머니의 선행에 보답하겠다는 마음에 2,000달러의 돈과 함께 지역 내에서 가장 어려운 분께 따뜻한 식사 한 끼라도 제공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지구대 측은 2000달러를 환전한 226만6436원을 신촌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지역 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노인, 장애인 1인 가구 등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서대문구 산하 단체)에 전달했다. 황영식 신촌지구대장은 기부자의 의사에 따라 가장 어려운 분들에게 연말에 따뜻한 음식을 대접해 드릴 수 있어서 기쁘다며 어려운 시기에 이런 기부문화가 더욱 퍼져 많은 분이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중앙일보 2021. 12. 29 ‘50년 전 홍합 한 그릇 외상값, 美서 200만원 되어 돌아왔다’에서)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잠언 19장 1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