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은 제가 젊은 시절 군대 생활을 하던 곳입니다. 제 고향인 울산과는 자동차 거리로 55km. 그리 멀지 않는 곳이지만 지금도 멀게 느껴집니다. 난 제대하면 포항 쪽을 향하여 오줌도 누지 않겠다! 모두 제대할 때 이런 말을 하면서 제대했지만 항상 생각나는 그리운 곳입니다. 특히 도구 앞바다는 훈련장으로 유명하고 지금도 해병대 훈련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제가 군대 생활 할 시절에는 해병대 수색대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도구 바다가 영일만이며 연오랑과 세오녀의 설화가 서린 곳입니다. 일본으로 건너가서 왕이 되었다던 연오랑. 삼국유사에 영일현이란 기록이 나온다고 합니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은 연오랑과 세오녀의 전설이 서린 영일만에 대일 청구권 자금을 몽땅 털어넣어서 제철소를 짓기로 결정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功過) 중에서, 공(功)으로 평가해야할 항목 중의 하나는 대일청구권자금에서 정치자금으로 한푼도 전용하지 않고 포항제철 건립에 몽땅 투자한 것입니다(박태준씨는 중앙일보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 돈을 조상의 피를 팔아 받은 돈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박대통령은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한 사람을 선임하여 믿고 전적으로 맡겼습니다. 많지도 않은 청구권 자금으로 할 것도 많은데 제철소 건립에 올인하여 산업의 기반을 구축하여 우리나라를 부국강병하겠다는 의지. 그 당시 우리나라의 조강능력은 제로였지만 일본의 조강 능력은 년간 1억톤이었습니다. 이런 우리나라가 가진 현금을 몽땅 털어넣어서 제철소를 짓고 일본을 따라잡겠다는 야심은 계란으로 바위치는 것보다 더 무모한 억지에 가까웠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요.
해병대 포항 제 1 상륙사단은 도구 앞바다의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크냐하면 정문(서문)을 통과하여 걸어서 우리 부대까지 가는데 대략 40분이 걸렸습니다(우리 부대는 동문 쪽에 위치).
사단에 들어 있는 각 부대들.
우리 부대는 73공수대대. 주로 포항 주변에서 훈련을 하였는데 이번에 가보니 정말로 많이 변하여 어디가 어디인지를 잘 알 수없었습니다. 젊은 시절 부대 남문을 나와서 오어사 쪽으로 나가서 경주 기림사 쪽으로 가면 끝없는 산길 비포장 길이 이어졌고 숨을 할딱이면서 산으로 오르곤 했습니다. 이 비포장 길은 지금은 모두 포장되어 있었고 옆의 저수지를 보고서야 옛날 훈련을 받으면서 다녔던 길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은 말끔히 포장되어 그 옛날 힘든 고개길인줄은 알 수없었고 연못이 있어 확인할 수 있었다.
건빵으로 야외 훈련 점심을 떼우면 쌀쌀한 늦가을 날씨가 더욱 으스스했고 찬바람이 더욱 춥게만 느껴졌는데...집에 가서 뜨뜻한 소고기국과과 흰쌀밥을 실컷 먹어봤으면... ♬언제 한번 집에 가나 작대기하나 아직 쫄따구 그리운 집에 도착하니 마누라 여보 왜 왔소 요즘 군대 좋다는데 말뚝박지 왜 왔소~~
미행병대와도 같이 훈련을 받았지요. 아는 영어는 ‘체인지오케이?’ 서로서로 잠바를 바꿔입다보니 우리 대대에는 모두 미제야전잠바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기억으로는 그 친구들 우유 박스가 무지 크더군요.
부대가 있는 오천과 경주 양북면까지의 거리는 24km라고 적혀있었습니다. 행군을 할 때 양북면 검문소가 반환점이었으므로 행군거리가 적어도 60km 정도는 되었지 싶은데 이 거리를 무거운 무장을 메고 어떻게 걸었던가 신기하기도 하고 역시 젊음이 좋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당시는 그리 먼거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는데 차로 이동해보니 장난이 아니더군요. 윗 사진은 행군 반환점인 양북검문소 앞
내무반에는 언제 사귀다 왔는지 모두 애인 사진이 걸려있었지만 난 처녀로부터 편지 한 장 받은 적없었다. 오른 쪽 사진은 81년 3월 강원도로 팀스피리트 훈련을 가기 전에 찍은 사진이다. 담벼락 뒤에 보이는 것이 영일만 도구 앞바다. 왼쪽 여자는 제대 후 알게 되어 사귀게 되었는데(현 마누라) 그 당시 처녀라도 모두 헤어스타일이 보리짚 빗가리 스타일이었다. 자기~ 일찍 만났다면 포항으로 맛있는 것 사들고 면회갔을건데요. 그래 라면 끓여먹지말고 나에게 면회 좀 오지 바보야~~
한많은 도구 앞바다 IBS 훈련 장면. 멀리 보이는 육지가 우리나라 지도상의 호랑이꼬리부분임. 우리는 공수대대이므로 IBS는 일년에 일주일만 받으면 되었다.
아래 사진은 제 2 훈련단에서 공수교육 받는 모습. 담배를 꼬나들고 있는 사람은 우리 대대에서 파견 온 교관(이모 중사)였는데 세상에 남들은 교육받는다고 죽을 판인데 담배를 들고 교육시키는 교관은 처음봤습니다. 힘든 공수교육이었지만 인심이 좋은 분이었다.
도구 앞바다에 가려면 사단 북문을 나서야한다. 북문도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지금은 북문 옆에는 4차선 도로가 나있었습니다. 내가 군대생활 할 때는 구룡포로 가는 비포장 도로가 있었고 주위는 참외밭이었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었습니다. 밤이 되어 담을 뛰어 넘어 참외서리를 간 적도 있었다. 걸리면 바로 영창이다. 바같에서 보면 담이 높지 않으나 사단안에서는 담 아래가 파져 있어서 높이가 2미터 정도되는 높은 담이었다.
다시 가본 도구 앞바다. 산천은 변했고 이제는 도요새를 구경하러 왔습니다. 세월은 엊그제 갔은데 이제는 내일 모레 50입니다. 사진은 위장막에서 열심히 찍고 있는 김동현씨.
내가 군대생활 할 적에 히트한 노래는 조용필의 ‘슬픈 미소’. 나에겐 장미꽃 피는 날에 돌아오마던 당신이 있었던가요.
♬돌아서면 잊혀질까/ 세월가면 잊을 수 있을까/ 슬픔은 흘러흘러 가슴을 적시네/ 장미꽃 피는 날엔 돌아오마던 당신/ 여울지는 꿈속에서 그 미소를 찾아헤맸지
가버리면 잊혀질까/ 눈감으면 잊을 수있을까/ 서러움은 물들어 가슴을 적시네/ 장미꽃 피는 날에 돌아오마던 당신/ 여울지는 꿈속에서 그 미소를 찾아헤맸지
밧줄에 묶여 끌려가는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저는 다음 조에 있었지요. 원칙은 훈련 장면을 찍을 수 없지요. 허나 사단 사진사 아저씨는 조그만 카메라(그당시는 아주 귀한 제품)을 가지고 와서 무조건 찍어서 훈련이 끝나고 나면 회람시켜주었습니다. 이 아저씨 덕에 이런 좋은 기념물이 남은 것입니다.
이 훈련은 아무 장비도 없는 구식훈련법인데 요즘은 첨단 방식으로 훈련을 하더군요. 얼마전인가요? 너구리백이라는 분이 공수부대에 찾아가서 송풍기 바람 위에 사람이 붕 떠 있는 훈련이 위의 훈련과 같은 훈련입니다. 사실은 이 훈련이 힘든 것이 아니고 공수교육의 힘든 훈련은 구보였습니다. 지금도 생생.
ㅋㅋ 완전 무식한 훈련모습이었습니다..ㅠㅠ 저렇게 끌고가는 이유는 낙하산으로 땅에 떨어졌을때 낙하산으로 인해 끌려가게되는 상황을 연습하는 것 같은데 제 경험상 절대 저 정도로 끌려갈 상황은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바람이 심하면 낙하를 안 하거든요!~.. 접지함과 동시에 낙하산을 접기에도 바빠요!~
그렇군요. 우리는 고공낙하 자세 잡기 이런 훈련은 한 적이 없고 송풍 훈련은 했습니다. 아마도 위의 훈련이 송풍 훈련이라 기억합니다. 훈련 맨 마지막 주에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난 번에 너구리백님의 사진을 보고 요즘 군대가 많이 첨단화 되었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우리 때는 아무 것도 없는 원시적
첫댓글 와 실감나는 설명과 사진 잘 봤습니다. 밧줄에 묶여 끌려가는 분이 혹시 박선생님은 아니시겠지요? 충격적인 훈련모습이군요. 바닷가의 그 위장막 좀 외롭습니다.^^
조국을 위해 젊음을 불태운 군생활, 특히 해병대----- 그 해변에 수만리를 오가는 도요새, 이렇게 시간은 흘러가는것 같습니다. 한편의 역사드라마를 보는 느낌입니다. 情感어린 글 잘보았습니다.
포항...ㅋ 제가 20년 동안 살던 곳입니다.... 어찌 저보다 더 잘 아십니까....
모래바람은 어디 갔지요?
허걱~ 그 공포의 모래바람! ㅠ.ㅠ 정말 올 봄에 갔다가 모래바람 때문에 카메라, 캠코드, 삼각대..... 거기다가 "장지웅"군 카메라 분실까지.... 아~ 그 "도구해수욕장"의 악몽들.... 그래도 도요새는 좀 보고 왔지요! ㅋㅋㅋ
밧줄에 묶여 끌려가는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저는 다음 조에 있었지요. 원칙은 훈련 장면을 찍을 수 없지요. 허나 사단 사진사 아저씨는 조그만 카메라(그당시는 아주 귀한 제품)을 가지고 와서 무조건 찍어서 훈련이 끝나고 나면 회람시켜주었습니다. 이 아저씨 덕에 이런 좋은 기념물이 남은 것입니다.
이 훈련은 아무 장비도 없는 구식훈련법인데 요즘은 첨단 방식으로 훈련을 하더군요. 얼마전인가요? 너구리백이라는 분이 공수부대에 찾아가서 송풍기 바람 위에 사람이 붕 떠 있는 훈련이 위의 훈련과 같은 훈련입니다. 사실은 이 훈련이 힘든 것이 아니고 공수교육의 힘든 훈련은 구보였습니다. 지금도 생생.
ㅋㅋ 완전 무식한 훈련모습이었습니다..ㅠㅠ 저렇게 끌고가는 이유는 낙하산으로 땅에 떨어졌을때 낙하산으로 인해 끌려가게되는 상황을 연습하는 것 같은데 제 경험상 절대 저 정도로 끌려갈 상황은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바람이 심하면 낙하를 안 하거든요!~.. 접지함과 동시에 낙하산을 접기에도 바빠요!~
그리고 송풍훈련 모습은 전술강하 훈련에는 없구요... 고공강하 하시는 분들의 자세 훈련용입니다... 박병우님이나 저는 그냥 뱅기에서 밀려남과 동시에 낙하산이 전개되는...ㅠㅠ ㅋㅋ 제일 중요한 땅에 떨어질때 충격을 방지하기 위한 접지만 열심히 연습하면....
그렇군요. 우리는 고공낙하 자세 잡기 이런 훈련은 한 적이 없고 송풍 훈련은 했습니다. 아마도 위의 훈련이 송풍 훈련이라 기억합니다. 훈련 맨 마지막 주에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난 번에 너구리백님의 사진을 보고 요즘 군대가 많이 첨단화 되었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우리 때는 아무 것도 없는 원시적
방법이었습니다. 그 원시적인 방법도 우리 때는 첨단 방식이라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요즘 애들은 이런 원시적인 군대생활은 못할 것같군요.
현재의 박병우 선생님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군요. 상상이 안가네요. 해병대 출신이었을 줄이야```` 현재의 몸매만 봐서는```` 군 미필자처럼 보이는데```` ㅎㅎㅎ 돌맞을라```` 빨리 도망가야지```` 쌩 ===3
사진과 설명 재미있게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