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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교회
(사도행전 2:41~47)
41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교회는 예수 십자가 복음을 듣고 회개하며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어 성령을 받은 자들 그 자체입니다.
이것이 사도적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인 것입니다.
42절의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라고 했는데 사도들이 무엇을 가르쳤을까요?
이 때는 신약 성경이 없었을 때이니까
“구약 성경 전체를 성취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라고 얘기 했을 것입니다.
자기들이 직접보고 배운 것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자기들 앞에서 승천하셨던 것, 그리고 기다리고 해서 그대로 했더니 성령이
내려왔습니다. 이를 다 보고 배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증언은 보고 배운 증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사도처럼 우리도 이를 보게 해달라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 사도들의 증언을 보고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역사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이 사도의 가르침 위에 세워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도의 가르침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즉 구약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 졌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것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을 받아서
교회로 살아가고 하나님 나라가 소망 가운데 있다는 것, 주님 다시 오신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
이것이 사도적 가르침인 것입니다.
46절의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과 집에서 모이기를 힘썼다고 하는데
그 당시 초대교인들은 두 군데서 모였다고 합니다.
하나는 성전 하나는 개인 집입니다.
넓은 성전에서는 큰 규모로 집회를 갖고 사도들이 계속 가르쳤고 개인 집에서는
소 그룹으로 모여 그 가르침 받은 것을 나누고 묵상하고 복습하고, 기도하고 좋아하고 하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교회로서 유지되고
교회적인 삶을 살아나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도의 가르침은 주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방식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어떻게 교회를 다스릴까요? 바로 말씀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목자장 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목자장의 권한을 위임받은 목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이 말씀이 바로 주님의 통치하심 입니다.
너 이리가 저리가 하는 물리적인 통치가 아니라 교회의 치리나 통치는 같은 말인데
이는 말씀으로 통치를 하는 것입니다.
사도의 가르침, 이 사도의 가르침이 담긴 성경, 이 말씀을 잘 가르치면 주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의 직분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헌법에는 교회의 성령의 사람들에 의해서 투표로 결정되도록 한
것입니다. 물론 장로나 권사나 집사를 투표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 그 사람들은 우리가 뽑았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주님의 권한을 탈취하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세우셨다고 해야 합니다.
성령의 사람의 생각을 움직여서 다수에게 생각을 주시고 그들의 결정에 의해서
직분자를 세우면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이 우리에게 직분자를 주셨다고 얘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목사가 위임 목사가 되면 그 때부터 가르칠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가 잘못 가르치기 시작하면 교회는 난리가 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머리 되신 주님으로부터 이탈하게 되는 것이고 반대로 제대로 가르치게 되면
그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한없이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구원의 생명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목사로부터 선포되는 말씀에 의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말을 잘 들어라 그러면 복받는다는 얘기는 이번에 놀러 가는데
목사님 어디로 갈까요? 동쪽인가요? 서쪽인가요? 하고 물어보고 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함께 의논해서 결정하면 되고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이것에 관한 한 이 말씀을 따르고, 의지하고,
순종해라, 그리고 목사는 이 성경 말씀을 함부로 가감하면 안 되고 목사 자신도
그 말씀에 순종하고 하는 이런 것이 바로 주님의 말씀으로 교회가 통치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진심으로 아멘 하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아멘 하고 순종할 때 하늘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도의 가르침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가 가장 잘 드러나는 형태이고 예배 중에 선포되는 권위 있는
말씀은 하나님 말씀이 전달되는 가장 좋은 방식이고 그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모든 은혜의 수단과 방편이 부어지고 은혜를 가장 많이 누리는 시간이 바로 예배
시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배를 잘못 드리게 되면 영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교회는 예수 십자가 복음을 전하고 그것을 믿는 자들의 믿음을 확인한 후 세례를 통해
교회의 회원으로 받아들입니다.
세례는 참된 믿음으로 성령을 받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이 죽고 또한
그 안에서 새 생명으로 재창조된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롬 6:4~8)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교회는 참되게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베풀어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공적으로 확증하고
교회의 회원으로 삼고 주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
교회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곳입니다.
(마 28:19,20)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것은 교회가 가장 힘써야 할 일입니다.
초대교회가 날마다 성전에 모인 것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도는 예수 십자가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구약 성격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 어떻게 전개되었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어떻게 성취되었으며 그 분의 가르침은 무엇인지 사도들은 가르쳤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믿음으로 받아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교회가 되었고 그 이후
지속적으로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교회적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의 가르침은 주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이미 임했고 신자는 그 나라에 들어가 주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장 중요한 삶의 자세는 순종인 것입니다.
신자는 날마다 임하는 주님의 통치에 순종하고 복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이미 하나님나라에서 주님의 통치는 사도의 가르침 곧 성경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즉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주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철저하게 사도적 가르침인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강해하고,
선포하고, 듣게 하고, 믿게 하고, 나누게 하고, 이야기하고 아멘으로 화답하게 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게 하는 것 이것이 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럴 때 주님이 머리 되시는 것이며 충만함이 드러나고 모든 지체가 자기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섬기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지식 덩어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아멘으로 받으면, 믿는 마음으로 받으면 성령께서 같이
역사하십니다. 이렇게 성령은 말씀과 함께 역사합니다.
이렇지 못하고 믿음으로 받지 않게 되면 그저 냉냉해지는 것입니다.
무슨 좋은 말인지는 알겠는데 하고는 끝인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이 말씀을 받게 되면 놀라운 하늘의 일들이 말씀이 선포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말씀을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그런 의미로 말씀을 적용한다는 말은 생각해봐야 하는 말입니다.
즉, 우리가 필요한 말씀만을 취해서? 순종한다? 는 식의 사고는 버려야 합니다.
머 그 말씀 좋네요? 하는 식의 태도 이것은 우리의 왕이신 통치자께서 하신 명령을
대하는 태도가 아닌 것입니다.
“주여! 말씀만 하시옵소서 제가 듣고 순종하겠나이다”
라고 해도 과분하신 분인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제대로 된 말씀 위에(사도적 신앙고백과 가르침) 서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하며 하나님나라의 복락을 충만히 누릴 수 있습니다.
(딤후 3:16,17)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교회는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서로 교제하는 것은 한 몸 한 가족인 교회의 당연한 삶의 모습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교제할 때 신자들은 떡을 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했고
기도함으로 주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떡을 떼는 것은 성찬식을 가리킵니다.
(요 6:53~57)
5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교회는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의 현시입니다.
초대교회는 사도적 가르침 위에서 서로 교제하는 가운데 이 세상에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를 나타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안에서 하나님나라에 들어간 사람들 그 자체인
것입니다.
세상은 교회가 어떻게 교회적 삶을 사는지를 보고 하나님나라가 임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은 하나님나라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행 2:44~47)
44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4:32~37)
32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36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초대교회는 이 세상에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초월적 공동체였습니다.
교회는 모든 신자가 한 마음 한 뜻을 가졌습니다.
교회는 가진 것을 서로 나누어 가난한 사람을 없게 했습니다.
그 결과 그 초월적 교회의 모습을 본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으며 구원받은 사람이
날마다 더해졌습니다.
위 말씀에서 무엇이 없다고 합니까? 두 가지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 하나는 자기 재물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자가 없다고 했고
34절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신명기 15장 5절의 말씀이 정말로 실현된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하나님이 율법을 주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가 반드시 복을 받고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고 하셨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이를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초대교인들은 해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그리스도로 임재하고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이 그 성령의 역사로 자발적으로 행하였는데 가난한 자가
없어진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던 공동체가 탄생했습니다.
서로 나누면서 살아갑니다. 그러자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나지? 두려움까지 들게 됩니다.
그래서 나도 들어가야겠다 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까
특히 유대인들은 성경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어? 저것이 뭐지? 저것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나라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저 공동체가 만들어진 거니까 나도 믿어야겠다 하고
이 복음을 듣고 믿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함께 생활하는 것처럼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주일 뿐이 아니고 계속 만나서 교제하고, 함께 성경공부하고, 함께 식사하고,
말씀 나누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곁에 있는 하나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면 “아이고 너 안됐네 어렵겠구나 네 팔자지 머”
하고 외면했을까요? 당장 그 어려움이 눈에 보이는데 항상 함께 했었으니까 자기
일처럼 도와주게 됩니다. 이런 공동체는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꿈꿔왔습니다.
유토피아의 유는 부정어입니다. 영어로 not 입니다.
토퍼스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유토피아는 그런 장소는 없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함께 소유하고, 함께 나누고,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고, 다 행복하고,
다 자기가 원하는 만큼 일하고, 자기 재능을 발휘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며,
사랑받고 살아가는 것 이것을 이루기 위해 혁명도 해보고, 법도 만들어보고, 철학을
발전시키고, 학문을 발전시키고, 과학을 발전시키고, 온갖 일을 다했지만 더 나빠지기만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이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법도 없고, 어떤 유능한 정치가도 없고, 어떤 강제력도 없고,
어떤 유인책도 없었고, 그저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고, 믿고, 성령 받고, 세례 받았더니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교회적인 삶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임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요?
대부분은 “에이 현실적으로는 힘든 얘기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 라고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로 믿는 걸까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진실인가요? 성경인가요? 아니면 우리의 이 세상 일인가요?
말씀이 진짜 아닌가요? 왜 눈에 보이는 교회의 현실이 `가짜다’ 라고 하죠?
이는 믿음이 없어서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지
원래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요?
이보다 못하다면 이게 무슨 천국인가요?
성경은 그리스도로 한 몸이 된 존재라고 하는데 우리는 전혀 가족 같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면 성경이 다 틀린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우리가 진실이라면 성경은 거짓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능력이 없습니다.
성령은 임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성령을 안 받았어요,
우리는 한 몸이 안되었어요, 우리는 가족이 아닙니다,
무슨 가족이 이렇게 살아갑니까?
그런데 만약 성경이 진짜라면 우리가 가짜인 것입니다.
왜 이것이 현실이고, 성경이 가짜라고 여긴단 말입니까?
왜 우리가 이제라도 한 번 말씀대로 살아보자고 결심도 못하고 그냥 이대로 살다 죽을 것처럼
살아가느냐 말입니다. 기껏 교회 하자고 모여 가지고는
“그래 봐야 안돼” 라고 하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교회 생활은 가짜라고 할 수는 없는데 이것은 아닙니다.
이 정도는 세상 사람들도 다 흉내 낼 수 있는 일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배드민턴 동아리 만도 못합니다.
이것은 아니죠 거룩한 교회와 성도의 교제를 믿는다고 매주일 고백하면서도 그것을
지체들에게 베풀어 주지도 않고, 또 그것을 나눌 기회도 주지 않고, 내가 그런
존재라고 말 해 주지도 않고 이렇게 흘러왔습니다.
게다가 이런 모습을 본 적도 없습니다. 보았다면 아 신자는 이렇게 사는 거구나
하면서 배웠을 텐데 보질 못했으니 배울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다 불행한 세대인 것입니다.
함부로 말씀을 부정하고, 순종하지 않고, 어떨 때는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는 신자가 맞는가?
하고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교회일 텐데, 한 몸일 텐데,
가족일 텐데, 우리 에게도 두 가지가 없었을 텐데, 그렇게 했다면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자가 없고, 가난한 자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자기의 은사를 모든 필요한 지체에게 나누는 일이 벌어지면 가난한 자가 없는
공동체가 이루어질 텐데 말입니다.
영적인 것은 세상 사람들은 보질 못합니다.
영적인 눈이 뜨질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들이 잘 보는 것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돈을 어떻게 쓰는지는 기가 막히게 압니다
우리보다 훨씬 더 뛰어납니다. 아무 이해 관계도 없는 사람인데 도와줘 봐야 아무런
대가도 못 얻을 사람인데 그런데도 자기 것을 팔아서 도우면서 같이 살아가는 새로운 공동체
저렇게 하면 저 사람 돈 다 날릴 텐데 나중에 어쩌려고 저러지?
인생 후회할 텐데 그런데 전혀 그렇게 생각지 않고 나누면 나눌수록 더 부요하고,
하늘로부터 오는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이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지?
하고 충격 받고 놀라고 궁금해하며 다가오게 하는 공동체여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일을 본적이 없다면 믿기라도 해야 하는데 믿음마저 잃어버리고 적당히
종교행위를 즐기는 것으로 변질된 상황 이것이 지금 우리들 믿음의 현주소 인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안 살 수 있느냐고 답해 주어야 합니다.
어느 누가 자기 가족이 아픈데 “아 아프겠구나 이를 치료하자면 돈이 많이 든다는데
너는 지금 암이지만 혼자 아프다가 죽어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한 몸이고 가족이라면 어떻게 이렇게 안 살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렇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더 밀착되어야 합니다.
라이프 스타일 전체가 바꾸어져야 합니다. 교회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방식을 알아가야 합니다.
천국 백성의 삶을 누리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볼 때 저 사람이 하는 말을 잘 못 알아듣겠는데 저 사람 표정을 보면
진짜 같아 저 사람은 뭔가 진짜를 본 사람이야 이 정도는 되어야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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