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대

자갈을 밟고 입수 할 수 있는 곳
이런 바다가 흔할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부분의 해수욕장은 개발과 관광 상권중심으로 바뀌었고
그외는 항구이거나 깍아지른 절벽에 출입자체가 불가능한곳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해안은 삼면이 바다라서
수천년동안 해안가에 사람이 살았었다
백운포 패총에서는 5000년전의 신석기,
3000년전의 청동기 유물도 발굴되었었다
100년전만 해도 우리나라 바다는
수천년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연을 이용하고
자연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았기 때문이다

부산의 바다는 신라,고려시대를 막론하고 일본 왜구들이 많이 쳐들어 온 곳이었다
배를 타고 순식간에 들어와서 약탈하고 가 버렸기에
석포,황령산 봉수대에서 동래까지 알리고 출동하면 이미 게임끝이었다
그래서 부산의 작은 바닷가 근처 동네에는 사람이 살지 않은 적도 있었다한다
남구에 감만동은
왜구 때문에 열받은 백성들이 스스로 왜구를 물리치기 시작했다
오랑캐를 무찌른 동네로 소문이 나면서
무찌를 감 오랑캐 만
다른 동네 사람들은 그 동네를 감만이 가마이 동네라 불렀다

일제 강점기 시대
일본놈들은 감만이라는 이름을 싫어했다
자기들을 물리친다는 뜻이 있었기때문이다
그래서 감만동,용당동 대연동이 접해진
나무도 별로 없는 홍곡산(기암이 붉게 보인다)을 이용 적기라 불렀다

감만동 해안에는 모래구찌란 동네가 있다
길이 400미터 폭 20미터 모래가 많은 해변
지금 60세 이상은 되어야 이 해변을 기억할 수 있을것이다
나는 네살때 기억은 없고 발가벗고 찍은 사진 한장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어디 있을까요
힌트.....배
1965년 8월
뒤에 보이는 신선대 산은 지금도 그 모습이 똑 같다
우리 동네는 소나무가 많은 동네라 솔개마을 이라 불리웠고
이 해수욕장 이름도 송포 해수욕장이라 불렀었다
이런 해변이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린게
바다 수영에 푹 빠진 나로서는 더욱 더 아쉽다

1951년 5월 모래구찌
모래 입구라는 뜻으로
우리나라말과 일본말 합성어다
송포해수욕장이 시작되는 곳이다
고깃배가 들어왔기에
싱싱한 회를 파는 횟집이 많았었다
모래구찌는 경관이 좋아 산책하러 많이 왔다고들 한다

경상좌수영자리가 있던 곳은 일본놈들이 완전히 매립을 해서 그 흔적을 없애 버렸는데
그 이유를 정부는 아는지 모르는지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 정권도 따라서 매립을 계속하더니
지금의 감만부두,연합철강,각종 정유회사가 즐비하게 되었다

감만동 우암동 문현동까지 이어지는 적기는
전에 언급한 보물찾기 지역이다
1차대전이 끝나고 일본군이 미처 빼내지 못한 보물이 묻혀진
일본군 지하벙커
박정희 정권때부터 민간인이 찾기 시작해서
80년대초 정찬영씨는 보물이 매장된곳을 찾는데 거의 성공했지만
허가 기간이 만료된 이후 재허가가 나지 않아 작업을 중단하게 되었다
정씨는 그 이후 화병을 얻었고 행방도 묘연해진다
이 보물 찾기는 전설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다

먹고 살기 힘들때라
개발하면 노가다 일자리라도 생기니 좋았을것이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점점 없어지고 있으니 안타깝다

백운포도 해군기지가 들어서 버렸고
신선대도 부두가 되어 버렸지만
이기대 일대만큼은 수천년전 그 모습 그대로이니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물론 손을 안탄 바닷가는 전국적으로 무수히 많지만
대도시인데다가 차를 대고 금방 진입할 수 있는 곳은 정말 귀하다

해운대도 광안리도 다 변했다
물도 점점 더 오염되고있다

오륙도부터 여기 이 섭자리까지
4키로만큼은 온전히 그대로다
진입이 힘든 절벽이 많아 작업도 힘들고
육지와의 연결도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도 언젠가 철저히 통제되거나
개발이 되버리는 날이 올지도모른다

부두를 만들고
회사를 만들면 돈이 되지만
그대로 두면 생기는게 없다

해안 산책로 출발 또는 종착점이 된 이곳

출입금지인 이곳을 안방 처럼 드나드는 사람들

엄마 여섯명이라더니 와이리 많노
부족하면 우짜노
냅둬라 안전핀은 작으면 작은대로 많으면 많은대로 해결 안된적이 없다

철조망이 있고
출입금지 팻말이 있는곳

안전핀은 못갈곳이 없고

못먹은게 없고
안먹은게 없다

어딜가나 쫒아와서
뭐라도 먹이려드는 희빵 모녀

오늘 또 먹거리와 즐거움이란 신세를 지는구려
오늘 이 하루의 기억도 오천년 넘게 길이길이 남으리라
첫댓글 대장님 사진 이마가 넓은것 찾아보니 앞줄에서 왼쪽아이 인가? 아닌가?
맞으면 어릴적에는 순하게 생겼네^^ 지금은 각자 생각할 뿐이고 .... ㅋㅋ
어쩜 그시절에 사진을 찍어 놨는지 ...
참 귀한 사진입니다
이기대가 더 개발 되기전에 한번이라도 더 바다에 들어가야 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