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https://youtu.be/2iUFv5ZrZS8?si=jj0J50I7E0B9rqhy
(2024.07.21. 주일 낮 예배)
본문 말씀 : 누가복음 7장 36-50
주 제 : 성령이 임하시기를 간구하라.
1. 산티아고 순례길
그전에 우리 교회에서 새벽예배를 열심히 다니시던 목사님 사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사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목사님도 굉장히 우울해 하셨고 또 힘들어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얼마전에 다시 목사님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그전보다 훨씬 얼굴이 좋아지셨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가 물어보았더니 얼마전에 스페인에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갔다 오셨답니다. 거의 한 달 정도 걸렸다고 하셨고, 거리로는 약 500키로였답니다. 순레길이 원래 800키로인데 중간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500키로만 걸은 것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체중도 많이 가벼워졌고, 우울했던 마음도 많이 없어졌다고 했어요. 사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참 보기가 미안했을 정도였는데 그렇게 바뀌게 되어서 얼마나 안심했는지 모릅니다.
살아가다가 한 번씩 분위기를 바꾸어 볼 필요가 있어요. 어제 영인이 아기가 태어난 곳에 가보았지 않습니까? 아기가 새로 태어난다는 것 많은 부분에서 우리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 줍니다. 아마 영인이도 이제 삶이 많이 바뀔 거예요.
2. 어떤 죄많은 여자와 바리새인
누가복음 7장 36절부터는 예수님의 조금 다른 모습을 또 보여주십니다. 많은 여자들이 예수님을 따랐으며 예수님을 섬겼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진리의 말씀을 이어 갑니다. 예수님 당시에 여자들은 사실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여자들이 예수님에게 고침을 받았습니다. 많이 고침을 받았으니까 많이 사랑하게 되고 사랑이 많으니까 예수님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여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주위에는 12제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많은 여자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대개 이름도 없었고 빛도 없었습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따른 이런 여자들 때문에 예수님의 역사가 그만큼 빛나게 된 것이라 믿습니다.
먼저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청해서 예수님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이때 한 여자가 들어와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에게 향유를 붓습니다. 그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여자는 죄를 지은 여자라고 말합니다.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은 예수가 진정한 선지자라면 이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알았으리라고 합니다. 그 동네 사람이라면 그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다 압니다. 어쩌면 그 여자는 창녀일 수 있습니다. 또 아니면 그 여자는 일곱 귀신 들렸던 여자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 여자는 이 둘 모두일 수 있습니다.
그 여자는 예수님 뒤로 와서 울면서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고, 그 발에 입까지 맞추었습니다. 이것은 전부 그 여자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극심하다는 것입니다. 여간 사랑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행동할 수 없습니다.
그에 비해서 바리새인은 전혀 다른 행동을 취합니다. 물론 그는 예수님을 청했어요. 이것은 아주 귀한 일입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사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사람 취급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 사람은 예수님을 그나마 자기 집으로 청해서 같이 밥을 먹자고 했어요. 이만만 해도 대단한 일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는 자기 집으로 청하기는 했지만 예수님이 오셨을 때, 발 씼을 물도 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머리에 감람유도 부어주지 않았습니다. 청하기는 했지만 정식으로 손님 대접은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저도 전에 신천지에서 오신 분을 교회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이야기를 잠깐 나누어 본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그분이 신천지인줄 알았어요. 알고서 들어오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에게 그렇게 친절하게 대한 것 같지는 않아요. 물은 주었을 거예요. 아마도 커피 한 잔 정도는 주었을 거예요. 그 이상은 없었어요. 그저 몇가지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들어오라고 했을 뿐입니다. 아마도 이때 이 바리새인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3. 그의 사랑함이 많으니라.
그런데 예수님은 그 여자를 향해서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이어서 왜냐하면 그의 사랑함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씀하세요. 그리고 또 그 여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렇게 말합니다. 더 나아가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맇게 말씀하세요.
우리 다 같이 한 번 답해봅시다.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답을 해보세요.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했는데 그것이 믿음으로 인정을 받아서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가르침을 받았습니까?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침을 받았고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으려고 애를 쓰고 노력하지요.
그런데요. 이 여자는 예수를 믿은 건지 어떤 건지 그런 것은 모릅니다. 다만 그 여자는 자기를 사람 취급해주고 자기의 병을 고쳐주고 자기가 건짐을 받은 것이 너무 고마워서 그 사랑을 주체할 길이 없어서 그 사랑의 표현으로 자기가 가장 아끼는 향유를 한 병 깨서 예수님에게 부어 드렸어요.
이것이 대단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귀한 손님이 오면 그 대접으로 기름을 부어드렸습니다. 건조한 중동 기후에서 기름을 부어주는 것은 관례로 그렇게 합니다. 다만 보통 올리브 기름이나 좋은 기름을 조금 부어서 거칠어진 피부에 보습제로 그렇게 부었어요. 무슨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특별한 것은 그것이 일상적으로 쓰는 올리브유가 아니라 값비싼 향유였고, 조금 부은 것이 아니라 한 병을 다 부은 것이 특별했어요. 왜 그렇게 했느냐 예수님을 향한 그의 사랑이 도저히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예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그 사랑을 보고서 그녀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었어요. 그리고 그것을 믿음으로 인정하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하셨어요. 이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4.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여기서 우리는 구원을 가져오는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번 대답해 보십시다.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내가 믿습니다. 그렇게 입으로 고백하면 믿음이 오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좌우편에 강도가 있었습니다. 한 강도는 예수님을 조롱했지만 한 강도는 예수님에게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라고 했어요. 그때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어요. 그 강도는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왜 구원을 받았습니까? 나를 기억하소서. 이렇게 하면 믿음을 인정받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까?
바울과 실라가 옥중에서 찬송을 부르니까 지진이 나고 옥문이 다 열렸어요. 간수가 죄수가 다 도망갔으리라 생각하고 자살을 하려고 하다가 바울이 자살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 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선생이여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했더니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했어요. 그때 그 간수는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그가 어떻게 했기에 구원을 받았을까요. 믿습니다. 이렇게 고백을 했을까요? 그래서 그 고백이 그를 구원했을까요? 아니면 바울을 대접했기 때문일까요?
이 여자는 어떻게 했기에 구원을 받았을까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지극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인정받는 것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서 다 다릅니다. 나는 어떠한 이유로 구원을 얻게 되었을까요? 정확하게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아마 모를 겁니다. 이 여자도 왜 자기가 구원을 얻게 되었는지 모를거예요. 이 여자가 한 것은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했다는 것밖에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이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을 뿐입니다.
5.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여러분 오늘도 나는 여러가지 환경 하에서 살아갑니다. 때로는 악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때로는 천사같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거지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때로는 전철 안에서 이상하게 전도를 하시는 분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때 그때 나는 그 사람들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대해야 한다 답이 있습니까? 그런 답 없어요. 그때 그때 내 마음이 가는대로 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성령께서 가르쳐주시는대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요한 16: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여러분 성령이 우리들에게 이 모든 것을 알게 하시고 가르쳐주시고, 우리를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이것이 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셨지만 그것은 돌에 새겨져 있어요.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알 수도 없고 기억할 수도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고 그것을 우리의 마음판에 새겨주시겠다고 하셨어요.
예레미야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마음에 기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 성령을 내 안에 모시면 그 성령께서 그때 그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생각나게 하시고 기억하게 하시고 그 말씀대로 따르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이 성령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그때 그때 우리가 해야할 일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