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CIM 9:38 – 9:47_구원과 하느님의 뜻
VI. Salvation and God's Will
VI. 구원과 하느님의 뜻
38 God's Will is your salvation. Would He not have given you the means to find it? If He wills you to have it, He must have made it possible and very easy to obtain it. Your brothers are everywhere. You do not have to seek far for salvation. Every minute and every second gives you a chance to save yourself. Do not lose these chances, not because they will not return, but because delay of joy is needless. God wills you perfect happiness now. Is it possible that this is not also your will? And is it possible that this is not also the will of your brothers?
38 하느님의 뜻은 너의 구원이다. 네가 구원을 찾을 수단을 하느님이 주시지 않았겠는가? 하느님이 네가 구원을 갖기를 뜻하신다면, 구원을 가능하고도 아주 얻기 쉽게 만드셨을 것이다. 너의 형제들은 어디에나 있다. 구원을 찾으러 멀리 다닐 필요가 없다. 매분 매초가 너에게 너 자신을 구할 기회를 준다. 이런 기회들을 잃지 말라. 그런 기회가 돌아오지 않아서가 아니라, 기쁨을 미룰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너에게 완벽한 행복을 지금 뜻하신다. 이것이 또한 너의 뜻이 아닐 수 있겠는가? 이것이 또한 네 형제들의 뜻이 아닐 수 있겠는가?
39 Consider, then, that in this joint will you are all united, and in this only. There will be disagreement on anything else, but not on this. This, then, is where peace abides. And you abide in peace when you so decide. Yet you cannot abide in peace unless you accept the Atonement, because the Atonement is the way to peace. The reason is very simple and so obvious that it is often overlooked. That is because the ego is afraid of the obvious since obviousness is the essential characteristic of reality. Yet you cannot overlook it unless you are not looking.
39 그렇다면 오로지 이러한 공동의 뜻에 있어서만 하느님과 너와 네 형제들이 모두 일치한다는 점을 숙고해 보라. 다른 것에서는 의견 차이가 있겠지만, 이 점에 있어서만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이 뜻이야말로 평화가 머물러 사는 곳이다. 그리고 그렇게 결정할 때 너는 평화 속에 머물러 사는 것이다. 그러나 네가 속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평화 속에 머물러 살 수 없다. 속죄는 정녕 평화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고 명백하기에, 너는 그것을 종종 못 보고 넘어간다. 명백함은 실재의 본질적인 특징이며, 따라서 에고는 명백한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가 안 보고 있지 않는 한 그것을 못 보고 넘어갈 수는 없다.
40 It is perfectly obvious that if the Holy Spirit looks with love on all He perceives, He looks with love on you. His evaluation of you is based on His knowledge of what you are, and so He evaluates you truly. And this evaluation must be in your mind because He is. The ego is also in your mind because you have accepted it there. Its evaluation of you, however, is the exact opposite of the Holy Spirit's because the ego does not love you. It is unaware of what you are and wholly mistrustful of everything it perceives because its own perceptions are so shifting. The ego is therefore capable of suspiciousness at best and viciousness at worst. That is its range. It cannot exceed it because of its uncertainty. And it can never go beyond it because it can never be certain.
40 성령은 자신이 지각하는 모든 것을 사랑으로 바라보기에, 너도 사랑으로 바라볼 것이다. 이는 너무도 명백하다. 너에 대한 성령의 평가는 너의 정체에 대한 성령의 앎에 기반하며, 따라서 성령은 너를 참되게 평가한다. 이런 평가는 분명 너의 마음 안에 있을 것이니, 왜냐하면 성령이 너의 마음 안에 있기 때문이다. 에고 또한 너의 마음 안에 있으니, 왜냐하면 네가 에고를 너의 마음 안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고는 너를 사랑하지 않기에, 너에 대해 성령과 정반대로 평가한다. 에고 자신의 지각이 너무도 쉽게 변하므로 에고는 너의 정체를 알지 못하며, 자신이 지각하는 모든 것을 완전히 불신한다. 그러므로 에고는 최선의 경우라고 해봤자 의심스러워할 수 있을 뿐이며, 최악의 경우 사악하다. 이것이 바로 에고의 범위다. 에고는 자신의 불확실성 탓에 이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 에고는 결코 확신할 수 없기에, 결코 그 너머로 갈 수 없다.
41 You, then, have two conflicting evaluations of yourself in your minds, and they cannot both be true. You do not yet realize how completely different these evaluations are because you do not understand how lofty the Holy Spirit's perception of you really is. He is not deceived by anything you do because He never forgets what you are. The ego is deceived by everything you do, even when you respond to the Holy Spirit, because at such times its confusion increases. The ego is, therefore, particularly likely to attack you when you react lovingly because it has evaluated you as unloving, and you are going against its judgment.
41 그렇다면 너의 마음에는 너 자신에 대한 두 개의 상반되는 평가가 있다. 그리고 둘 다 참일 수는 없다. 네가 아직 이 평가들이 얼마나 철저히 다른지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너에 대한 성령의 지각이 정말로 얼마나 지고한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령은 너의 정체를 결코 잊지 않으며, 따라서 너의 어떤 행위에도 속지 않는다. 에고는 네가 행하는 모든 것에 속고, 심지어 네가 성령에게 반응할 때조차 속아 넘어간다. 그럴 때 에고의 혼동은 심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고는 네가 사랑으로 반응할 때 특히 너를 공격하기 쉽다. 에고는 너를 사랑이 없는 자로 평가했는데, 그럴 때 너는 에고의 판단을 거스르고 있기 때문이다.
42 The ego will begin to attack your motives as soon as they become clearly out of accord with its perception of you. This is when it will shift abruptly from suspiciousness to viciousness, since its uncertainty is increased. Yet it is surely pointless to attack in return. What can this mean except that you are agreeing with the ego's evaluation of what you are? If you are willing to see yourself as unloving, you will not be happy. You are condemning yourself and must therefore regard yourself as inadequate. Would you look to the ego to help you escape from a sense of inadequacy it has produced and must maintain for its existence? Can you escape from its evaluation of you by using its methods for keeping this picture intact?
42 에고는 너의 동기가 너에 대한 에고의 지각과 확실하게 어긋나는 순간, 그것을 공격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럴 때 에고는 불확실성이 증가하여 의심하던 상태에서 사악한 상태로 급격히 옮겨간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반응으로 공격하는 것은 확실히 무의미하다. 이것은 단지, 너의 정체에 대한 에고의 평가에 동의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너 자신을 사랑 없는 자로 보고 싶어 한다면, 너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너 자신을 정죄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을 부족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너는 에고가 발생시켜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유지해야 하는 이런 부족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게 도와달라고 에고에게 기대려는가? 에고가 이런 그림을 고스란히 간직하려고 사용하는 방법을 가지고 너에 대한 에고의 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43 You cannot evaluate an insane belief system from within it. Its own range precludes this. You can only go beyond it, look back from a point where sanity exists, and see the contrast. Only by this contrast can insanity be judged as insane. With the grandeur of God in you, you have chosen to be little and to lament your littleness. Within the system which dictated this choice, the lament is inevitable. Your littleness is taken for granted there, and you do not ask, "Who granted it?" The question is meaningless within the ego's thought system because it opens the whole thought system to question.
43 제정신이 아닌 믿음체계를 그 안에서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믿음체계의 범위 자체가 이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 믿음체계 너머로 가서 제정신이 존재하는 지점에서 돌아보아야 비로소 그 대비를 볼 수 있다. 오로지 이런 대비를 통해서만 정신이상을 정신이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너는 내면에 하느님의 장엄함을 지니고도 왜소해지기로 선택해서, 자신의 왜소함을 한탄하기로 선택했다. 이렇게 선택하도록 명한 체계 안에서는 정녕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서는 너의 왜소함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서, 너는 “누가 나의 왜소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는가?”라고 묻지 않는다. 이 질문은 에고 사고체계 전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사고체계 안에서는 무의미하다.
44 We said before that the ego does not know what a real question is. Lack of knowledge of any kind is always associated with unwillingness to know and produces a total lack of knowledge simply because knowledge is total. Not to question your littleness, therefore, is to deny all knowledge and keep the ego's whole thought system intact. You cannot retain part of a thought system because it can be questioned only at its foundation. And this must be questioned from beyond it because, within it, its foundation does stand. The Holy Spirit judges against the reality of the ego's thought system merely because He knows its foundation is not true. Therefore, nothing that arises from it means anything. The Holy Spirit judges every belief you hold in terms of where it comes from. If it comes from God, He knows it to be true. If it does not, He knows that it is meaningless.
44 우리는 전에, 에고는 진정한 질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어떤 종류의 앎이 결여되든, 그것은 항상 알지 않으려는 뜻과 관련이 있으며, 결과적으로 앎의 총체적인 결여 상태를 만들어낸다. 그 이유는 단지, 앎은 총체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의 왜소함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은 곧 모든 앎을 부정하고 에고의 사고체계 전체를 고스란히 간직하는 것이다. 너는 어떤 사고체계의 일부만 간직할 수는 없다. 그것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오로지 그 토대에 대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그 사고체계 너머로부터 제기되어야 한다. 그 사고체계 안에는 그것의 토대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이 에고 사고체계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판단을 내리는 이유는 단순히 말해, 그 사고체계의 토대가 참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토대에서 발생하는 것은 무엇이든 아무런 의미도 없다. 성령은 너의 모든 믿음을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보고 판단한다. 그 믿음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라면, 성령은 그것이 참임을 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무의미함을 안다.
45 Whenever you question your value, say:
45 너의 가치에 대해 의심이 들 때마다 다음과 같이 말하라.
46 God Himself is incomplete without me.
46 내가 없다면, 하느님도 불완전하시다.
47 Remember this when the ego speaks, and you will not hear it. The truth about you is so lofty that nothing unworthy of God is worthy of you. Choose, then, what you want in these terms and accept nothing that you would not offer to God as wholly fitting for Him, for you do not want anything else. Return your part of Him, and He will give you all of Himself in exchange for your return of what belongs to Him and renders Him complete.
47 에고가 말할 때, 이것을 기억하라. 그러면 너는 에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너에 대한 진리는 너무도 지고해서, 하느님께 합당하지 않은 것은 너에게도 합당하지 않다. 그러니 네가 원하는 것을 이런 관점에서 선택하고, 하느님께 아주 잘 어울린다고 여겨 드리고 싶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말라. 왜냐하면 너는 다른 어떤 것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 안에서 네가 차지하는 부분을 돌려드려라. 그러면 하느님은 네가 당신께 속한 것을 돌려드려서 당신을 완성시킨 것에 대한 답례로, 당신의 전부를 주실 것이다.
[출처] [4월 16일] 텍스트 9:38 – 9:47 (한국 기적수업 공부 모임) | 작성자 도서출판 기적의 향기
첫댓글 하느님의 뜻은 너의 구원이다.
매분 매초가 너에게 너 자신을 구할 기회를 준다.
이런 기회들을 잃지 말라.
성령은 자신이 지각하는 모든 것을 사랑으로 바라보기에, 너도 사랑으로 바라볼 것이다.
이는 너무도 명백하다.
에고는 최선의 경우라고 해봤자 의심스러워할 수 있을 뿐이며, 최악의 경우 사악하다.
이것이 바로 에고의 범위다.
하느님 안에서 네가 차지하는 부분을 돌려드려라.
그러면 하느님은 네가 당신께 속한 것을 돌려드려서 당신을 완성시킨 것에 대한 답례로,
당신의 전부를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