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진 한 장 -11회-
“여기 앉으시오.”
노인 중 한 사람이 내게 앉을 것을 권하는데 주인 여자가 내가 먹던 짬뽕과 소주병을 그들의 탁자
위로 날라다 놓는다. 그것도 의례 그렇게 하고들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잠시 앉아 술을 나누는 동안 몇 사람의 군인들이 들어와서 음식을 시켜 먹고 나가고 그러는
사이 버스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최씨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어르신들 드시고 가세요, 명희가 오나봅니다.”
나는 그가 일어서자 덩달아 일어서며 그의 인사말에 맞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그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나도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 버스가 회전을 하여 정류장 앞에 멈춰서고 문이 열
리자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하고, 버스 기사도 잠시 쉬어 가려는지 버스에서 내리고, 그 사이 학생들
도 여럿이 내리는데 한 여학생이 내리면서 최씨를 보고 반색을 한다.
“어! 삼촌이 웬일이야?”
하면서 그 뒤에 서 있는 나를 본다.
“그래, 학교 다녀오느라 수고했다. 그리고 이 분은 오늘 오시기로 하신 손님이시다.”
최씨는 몸을 돌려 나를 보면서 조카딸에게 내가 누군지 알려주고는
“선생님, 제 조카 명희입니다. 박명희라고 부르지요.”
“선생님 오신다고 준비를 하느라 했는데, 반찬이 시원치 않네요. 죄송해서 어쩌지요?”
식탁위에 차려진 음식을 보면서 자리에 앉는데 부인은 미안한 얼굴로 국을 떠서 식탁에 올려놓으며
말한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정성껏 차려진 식탁을 대해 본지가 꽤 오래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
데도 말이다. 하긴 부인의 표현대로라면 도시의 사람이 시골 음식을 즐기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지례
짐작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비록 고기반찬은 아니어도 꽤나 정갈하게 차려진 식탁은 절로 입에 침이
고이게 만들고 있었다.
“찬은 없지만 맛있게 많이 드세요.”
그리고는 돌아서서 주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나는 부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남자끼리 식사
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한 술 떠서 입으로 가져간다. 구수한 된장 냄새가 코
로 먼저 들어온다.
“선생님, 반주 한 잔 하시지요?”
나는 낮에 식당에서 노인들과 마신 술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사양하지 않았다. 최씨가 일어서더니 냉
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낸다. 그리고 잔을 찾아온다.
“그런데, 사모님과 조카 명희라 했던가요?”
“아! 집 사람은 명희와 함께 뒤채에서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왜 같이 들지 않고요?”
“그게,”
최씨의 말끝이 흐려진다.
그의 곤란한 표정을 보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그가 술을 한 잔 마시더니 입을 연다.
“선생님은 주로 어떤 글을 쓰십니까?”
“저요? 시를 중심으로 쓰지만 이번에는 소설 한 편을 쓰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잘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명희가, 그 아이가 대학은 국문학을 전공하겠다고 하거
든요. 며칠 계시는 동안 명희를 조금 관심 있게 보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습니까? 명희학생이 국문학에 관심이 많군요.”
“그렇습니다. 그 아이의”
그는 여기까지 말을 하곤 입을 다물었다. 필시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은 확실한데 말하기는 쉽지 않은 모
양이었다.
“알겠습니다. 여기 있는 동안 대화라도 나누면 도움이 되겠지요.”
하긴 며칠 지내는 동안에 학생에게 무슨 문학적 이론을 알려 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
면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