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괴롭다고 느낄 때, 그 괴로움을 가만히 오온으로 해체하여 사유해 보면 오온 중 어느 요소 때문에 괴로운지가 드러난다.
직장 상사가 그런 일 하나 제대로 못 하느냐고 부하직원들 보는 앞에서 화를 냈고, 그로 인해 화와 수치, 괴로움이 일어났다. 이런 경우에 수상행식이 전부 괴롭다. 가장 큰 것은 아마도 의지작용 즉, 행온일 것이다. 부하직원 앞에서 상사에게 욕을 얻어먹고 싶지 않은 욕구, 칭찬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의지가 있다. 그 의지와 욕구가 깨지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이런 식으로 행온이 나를 ‘인정받지 못한 나’, ‘부하들 앞에서 창피한 나’를 조작해 내고, 식온은 축 쳐져 있고 부끄럽고 창피한 나를 인식하게 된다. 이 때 수온과 상온은 함께 순환적으로 괴로움을 증폭시킨다.
사실 현실은 절대적인 ‘괴로운’ 상황이 아니라, 어느 회사에서든 ‘그럴 수도 있는’ 보편적인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큰 괴로운 일이 되는 이유는 바로 오온을 ‘나’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인정받고자 하는 의도를 내려놓고, 비판 받을 수도 있음을 겸허히 인정하고 수용하게 된다면, 행온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욕을 먹고 마음 상한 느낌을 ‘나’라고 동일시하지 않은 채, 그 순간 있는 그대로 올라오는 느낌을 관찰함으로써 그 느낌, 수온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올라오는 모든 생각에 힘을 실어 주지 않고, 그 생각을 계속해서 증폭시키지 않게 된다면,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을 뿐더러, 그 생각은 ‘허망한 생각일 뿐’ 실체가 아님을 관찰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사념처 혹은 위빠사나라고 알려진 불교 명상의 핵심, 관(觀) 수행이다. 이처럼 그 상황 자체를 오온으로 분석하고 해체해서 사유해 보게 되면, 오온의 괴로움에서 점차 벗어나게 된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