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의 맛을 찾아 ⑦ 의령장 쇠고기국밥 이 맛 안보고 가면 섭섭하제~ 기사입력 : 2008-06-26 00:00:00
의령 수정식당 김희남씨가 가마솥에서 국을 푸고 있다.
새벽 4시부터 푹 곤 수육과 육수 입안에서 살살 녹는 40년의 손맛
걸쭉할 만큼 진하게 우려낸 육수 맛에 반했을까. 손 큰 주인장의 후덕한 인심이 마음에 들었을까. 의령장에 들렀던 각지 장꾼들의 입을 타고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의령장의 쇠고기 국밥이 가히 진국이더라'고. 소문이 정확히 언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났는지는 모른다. 다만 서울의 이씨도, 전라도의 박씨도 국밥 맛을 보러왔다며 의령을 찾아드니, ‘소문이 나긴 났는가 보다’ 하는 거다.‘발 없이 천리를 갔다’는 그 소문을 좇아 의령읍 의령장(3·8일장)으로 향한다. 달리는 차 안으로 사정없이 내리쬐는 햇발이 따갑다. 갑갑해지려던 찰나, 보슬비가 창문에 뚝뚝 점을 찍는다. 후텁지근한 장마철의 여우비라,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말아먹기에 딱 좋은 날씨다.
의령장터에서 40년간 쇠고기 국밥을 끓여 왔다는 ‘수정식당’에 도착했다. 입구부터 사골향이 진동한다. 하얀 김을 내뿜고 있는 거대한(?) 무쇠 가마솥에서 나는 냄새다. 가마솥 안에는 빠알간 쇠고기국이 부글부글 거품을 내며 끓고 있었다.
25년간 한결같이 쇠고기 육수를 끓여왔다는 이 가마솥은 이 식당의 터줏대감이다. 40년 전, 처음 장사를 시작한 남순덕 할머니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할머니의 딸 김희남(62)씨와 아들 김영호(55)씨 내외가 그 맛을 이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식당의 메뉴는 쇠고기 국밥(5000원), 쇠고기 곰탕(6000원), 쇠고기 수육(대자 4만원, 소자 3만원)이다. 대표 메뉴인 국밥을 주문하고, 입에 살살 녹더라는 지인의 자랑을 떠올리며 한우 수육도 한 그릇 시킨다.
국밥을 주문할 때는 국물에 밥을 넣을 것인지, 국수를 넣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선택에 고민이 된다면 국수와 밥을 섞어달라고 말하면 된다. 가격은 5000원으로 동일하다.
쇠고기의 각종 부위인 갈비, 물피(소의 맑은피), 소머리, 양지가 소복히 담긴 수육이 먼저 나온다. 쇠고기 부위 중에서 좋은 것만 올린 것이라 한다. 선지처럼 보이는 물피는 소의 된피를 빼고 맑은 피만 사용해서 만든 것이라 맛의 깔끔함이 격이 다르다. 갈비와 소머리, 양지도 부드럽고 고소하다. 누린내가 나지 않는 것은 질 좋은 한우를 쓰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육 그릇을 비워갈 즈음에 국밥 두 그릇이 나온다. 급하게 먹은 수육 덕분에(?) 밥 대신 국수로 부탁했다. 양념장을 넣은 쇠고기 육수의 빠알간 빛깔이 식욕을 자극한다. 그 위에 국수, 콩나물, 쇠고기, 각종 야채들을 얹어 나온다. 말 그대로 ‘쇠고기 국수’다. 구수하고 담백한 육수 맛에 흔한 국수도 별미가 된다.
주인 김씨는 새벽 4시부터 소머리, 사태 등을 푹 고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렇게 곤 솥에서 수육 고기를 빼낸 후, 파·무·고추 등 양념을 넣어 끓인 뒤 간을 맞추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손님의 상에 오를 때는 국에다 다진 마늘 등을 듬뿍 넣어 맛을 살린다. 이 방법은 40년 전, 어머니 때와 변함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쇠고기 국밥만 먹었으니 그 맛은 내가 못 잊지. 그리고 어머니 도와서 일을 익힌 게 몇 년인데요. 20년 전쯤인가, 어머니 계실 때부터 국은 내가 펐다아이가.”
국 푸는 게 별건가 싶지만, 김씨의 말은 다르다. 국 하나 푸는데도 각별한 요령이 필요하다는 것. 기름과 국물, 건더기를 한 번에 얼마만큼 적정량을 퍼내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의령장 인근에는 쇠고기 국밥집을 하는 집이 4~5곳 더 있다. 하지만 가격은 다르다고 한다. 지난 5월 일제히 가격을 6000원으로 올렸는데, 수정식당에서는 단골손님들의 타박(?)에 가격을 다시 내렸다고 한다. “쇠고기 국밥이 의령 사람들한테는 늘 옆에 두고 먹어야 하는 고향 같은 음식이고, 타지 사람들에게는 의령을 알리는 중요한 음식이거든. 조금 힘들어도 어쩔 수 없지 뭐. 앞으로 당분간은 가격을 안 올릴 생각이야.”
아마도 의령 쇠고기 국밥의 유명세는 ‘20년지기 무쇠 가마솥’, ‘질 좋은 의령 한우’, ‘대를 이어 온 손맛’에 ‘주인장의 인심’이 더해져서 이뤄진 게 아닐까.
글·사진=조고운기자 luc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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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 ∥-맛, 그리고...] (17) 의령 장터 국밥 기사입력 : 2002-08-05 00:00:00
문화의 향기-맛 그리고.... (17) 의령 장터 국밥
그날 해는 아직 중천에 있었지만 장판은 벌써 쓸쓸했다지요. 더운 햇발이 등줄기를 훅훅 볶는 여름날 장터. 메밀꽃 필 무렵 허생원이 다른 장으로 옮겨야겠다고 마음을 정했답니다.
의령 장터. 남순덕 할머니는 「훅훅」 찌는 서른번째 여름을 또 대면하지만 처음 맞던 그날처럼 한 켠에 걸어 둔 커다란 무쇠솥에 쇠고기국을 「절절」 지금도 끓여내고 있습니다. 허생원처럼 할머니가 장터를 떠도는 장사꾼이 아니기에 서른 해를 같은 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여든 두해를 사는 동안 쟁쟁한 도내 인사들이 국밥 하나를 먹기 위해 멀리서 찾아 들던 호시절도 있었어요. 기력이 쟁쟁할 땐 도 음식대표로 도시에 나가 가마솥 비우기를 수차례 한 적도 물론 있었구요.
넉넉하게 건더기를 건져주다보니 나중에 건더기가 없을 때가 있어 불평을 늘어놓던 형사들에게 되레 호통을 치던 기억도 생생한데. 그새 구멍 난 무쇠 솥을 다섯번 갈았습니다.
나이 든 몸을 솥 갈듯 할 수 없었던 남 할머니는 세월과의 정면승부가 무섭다네요. 아침 이른 시간에는 손자가 할머니 말씀에 충실하게 국을 끓여내고 오전에는 딸 둘이 와서 돕고. 집안 형편 상 맡아 키워야 했던 손주들이이제는 「수정식당」에서 몸이 불편한 할머니의 젊은 손발이 되었어요. 「삼대」가 힘을 합쳤습니다.
『여름엔 새벽, 저녁으로 많이들 와. 겨울엔 시도때도 없지. 장이 3, 8로 끝나는 날 서는데 이제는 장날하고는 크게 관계없이 찾아. 마산, 부산 멀리서는 서울서도 오지』 여전히 인기가 있다는 말을 걸죽히 돌려 말씀하셨지요. 참, 비가 오면 또 손님이 많다고도 하셨어요.
장날 뭐 사러 나오든 할일없이 구경나오든 한쪽 구석이나 나무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먹었던 옛날의 모습은 이제 아니예요. 지금은 맛있는 국밥, 이름난 「의령국밥」을 먹기 위한 순진한 탐식의 형태를 띠지요.
즐겨 먹는 이유야 옛날과 지금이 다르지만 맛이야 변할 수 있나요. 고기는 한우만을 골라와 먼저 수육을 만들고 가마솥에서 푹 끓인답니다. 수육은 잘 익으면 따로 건져 냅니다. 수육이 우러난 국물에 설명하기도 힘든 비법이 발휘되죠.
조미료? 할머니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십니다. 콩나물과 무도 넣어 끓인 후 간이 들면 밥을 말지요. 뭐 더 자세한 조리법이야 필요가 있나요. 어차피 집에서 해 먹을 것도 아닐 바에야. 의령 국밥은 의령에서 먹어야죠.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의령 국밥이 의령을 떠나면.... 상상하기도 싫군요.
국밥의 유래요?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면 서비스 국물로 주던 「술국」에 요기되게 밥을 말아 「국밥」의 형태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바쁜 장사치들이 후루룩 먹고 물건 사고 파는데 전념하기 위해 생겨났었을 수도 있지요. 아니면 또 다른 이유들이 한데 합쳐졌을 수도 있구요.
기원이야 어떻든 맛 깊은 「의령장터국밥」을 먹으면 이미 「장터」라는 단어에서 묻어나는 갖가지 상상들을 보너스로 향유할 수 있지요. 한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TV나 소설에서 보았던 이미지를 통해서 말입니다. 시골 장터를 어린 시절 향유했던 이들은 과거의 향수를 깊숙이 느낄 수 있어 더 좋겠지요. 삼대가 함께 이어가는 맛 속에서 옛날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런 조건반사인지도 모르겠네요.
의령에 장이 서도 예전 같지 않겠지만 장터 국밥 맛은 그때와 지금이 따로 없습니다. 되물림 해서 국밥집을 하는 데는 「수정식당」 외에도 두어군 데 더 있답니다.
의령까지 가서 국밥 한그릇만 먹으면 섭섭하죠. 수육도 있어요. 입안에 녹아든다는 상투적 표현은 그 수육의 맛에 녹아 있다 태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허생원이 의령 장터에 왔었으면 국밥 한그릇 더 먹고 가려고 다른 장으로 옮길 마음을 쉽게 먹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혹 그 내용이 소설에서 빠진 것은 아닐까요?
글 권경훈기자 hoon519@knnews.co.kr 사진 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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