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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닉학파와 스토아학파
서양에 있어서의 현세적인 윤리사상은 소크라테스에서 비롯된다. 사실상 고대 윤리사상의 4개학라 1)메가라학파 2)플라톤학파 3)키닉학파 4)키레네학파의 이론들이 소크라테스의 사상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장 소중한 재산은 지식이며, 최고선에 관한 지식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목표라고 주장한 소크라테스의 이론을 받아들인 것이다.
제1절 소크라테스의 윤리사상
1. 덕은 지식이다. -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덕은 곧 지식’ 이며 덕과 지식은 동일한 것이다.(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선에 대한 지식이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아는 사람은 그 지식으로 인하여 옳은 것을 행할 것이며, 무지한 사람은 그른 일을 행할 것이다. 덕과 지식이 동일한 것으로 규정되지만 사실상 덕은 지식의 결과이며 지식에 의존하는 것이다.
2. 너 자신을 알라 - 지식은 도덕적인 통찰력으로 정의되는 덕이며, 그것은 선한 행동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자신에 대한 지식은 너무나 소중하다. 왜냐하면 그 것은 자신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고 자신과 관계가 먼 우주에 관해서도 거의 모르고 있는 사람들을 자각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정당한 것은 건강한 상태이고, 부당한 것은 영혼이 병든 상태이다.
3. 소크라테스 윤리학에 대한 비판 -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가 인간의 도덕적인 결함과 의지의 역할을 인식하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소크라테스는 우리들에게 인생의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자 못하고 있다.
제2절 키닉학파
1. 안티스테네스: 덕의 추구 - 안티스테네스는 쾌락을 악으로 본다. 안티스테네스에 있어서는 ‘덕이 곧 최고선’이었다. 키닉학파의 사상가들은 덕이 최고선일 뿐 아니라 그들에게 유일한 선이며 행복의 절대적은 조건이라 보았다. 부정적으로 말하면 키닉학파의 목표는 피할 수 있는 모든 욕망을 거부하는 데 있다.
제3절 스토아학파
1. 제논의 윤리사상과 초기의 스토아주의자들 - 제논의 철학은 감정으로부터의 해방, 즉 기쁨과 슬픔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 스토아주의자들은 자신의 본성과 인간의 불문율(혹은 관습법)이 금지하는 것을 하지 않는 생활에 있다고 선언한 최초의 사람이다.
2. 내적인 선과 외적인 선 - 내적인 선은 우리들의 내면에 있으며, 다른 종류의 선은 외적인 것이다. 내적인 선은 덕이며 외적인 선은 우정에 의해 대표된다. 완전한 선은 완전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완전한 선은 4가지가 있는데 정의, 용기, 절제, 지식 등이 그것이다.
3. 에픽테투스 : 고통에 대한 스토아적 무관심 - 스토아주의의 이상은 인생의 영고성쇠에 좌우되지 않는 절대적인 정신적 자유를 얻는 데 있다. 스토아주의자들에게는 덕이 신의 의지와 조화를 이루는 인간의 의지를 의미한다. 유일한 선은 덕이며, 유일한 악은 악덕이다.
현명한 사람은 달성할 수 없는 욕망은 버려야 한다고 에픽테투스는 가르쳤다. 왜냐하면 인생의 목표는 평정 혹은 내면적인 정신의 영원한 평온을 얻는 데 있기 때문이다.
4. 스토아학파의 생활철학 - 철학은 도덕적 결함을 제거하고 덕을 쌓는 엄격한 훈련이라고 에픽테투스는 규정한다. 그의 윤리사상은 유신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인간은 신의 섭리에 의해 지배되고, 인간의 마음은 신의 마음과 유사하며, 자연은 그 본질에 있어서 합리적이라는 신념에 근거하고 있다. 에픽테투스는 악이 불합리한 것이요, 불필요한 것이라는 신념, 즉 악이란 선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이론에 반기를 든다.치통과 같은 아픔도 ‘수단적인 악’이라고 설명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신적인 평정은 성적인 자제력과 상호 연관성이 있으며, 성적인 충동으로부터 어느 정도 초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에펙테투스에 의하면 도덕적인 원리는 인간의 내면에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인간이 갖는 유일한 힘은 그의 의지와 합리적인 관념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5.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스토아주의의 요약된 견해 -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는 인간의 영혼이 이성과 일치하기 때문에 이성의 법칙에 따라 생활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평화로운 생활이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생활이다. 감정적인 격변과 좌절은 갑자스런 경악에서 비롯된다.
6. 스토아학파에 대한 평가 - 스토아주의는 인류의 지성사에서 그리고 윤리사상사에서 가장 설득력 있고 당당한, 그리고 오래 지속된 철학 중의 하나이다. 이 사상은 거의 2세기 동안이나 기독교와 대결한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으며, 그 이론의 상당한 부분이 후세의 기독교신학에 융합되었다. 그리고 스토아 사상은 칸트, 스피노자를 비롯한 현세적인 철학자들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스토아학파의 이론에도 문제가 있다. 스토아학파의 염세적인 생활관, 즉 사람들은 누구나 생에 대하여 환멸을 느낄 때는 무관심과 환멸을 느낄 때는 최종적으로 자살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신념 때문에 삶에 대한 무관심과 환멸이 몇몇 스토아 철학자들에게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제논이나 클레안테스 같은 스토아주의자는 이 이론을 방편으로 죽음을 택했으며, 차가운 사색으로 일관해온 세네카도 에픽테투스의 정신과 아우렐리우스의 교훈에 따라 마지막 순간까지 감정이 없는 냉담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스토아학파의 사상가들은 악이 무지와 이해의 부족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악이 이해의 부족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선도 또한 선이 아닌데도 ‘무지에의 논증의 오류’, 즉 입증할 수 있는 명확한 사실을 제시하지 않고 상대방을 무식하다고 몰아붙이면서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우기는 논리인 것이다. FIN
윤리학 제2장 요약.정리
❖ 쾌락주의 - 쾌락의 추구
➽ 쾌락주의라는 말은 철학사에서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인간의 심리학과 관계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규범윤리학과 관계된다. 이 용어가 도덕적인 가치와 관련하여 쓰여질 때는 윤리학적 쾌락주의로 불려지며, 쾌락은 본래적인 선이며 고통은 악이라는 신념으로 나타난다.
❖ 제1절 키레네학파의 쾌락주의 : 순간적인 쾌락의 추구
➽ 키레네학파의 쾌락주의를 창시한 사람으로 알려진 아리스트푸스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키닉학파나 스토아학파와는 달리, 그는 덕 있는 사람이 추구해야 할 행복의 원리를 강조했다. 아리스트푸스는 덕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규정했으며, 즐거움이란 쾌락의 충족으로 얻어지는 행복한 행태라고 규정했다.
키레네학파의 사상가들은 지금 당장의 감각적. 육체적인 즐거움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현재만이 우리들의 능력이 미치는 영역이며, 미래는 우리들의 능력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 제2절 에피쿠로스학파 : 정신적인 쾌락과 만족의 추구
➽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주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며,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쾌락에 대하여 정신적인 쾌락의 우위성을 강조하면서 번창해 갔다. 이들의 쾌락주의는 교양 있고 고상한 사람들의 쾌락과 절제할 줄 아는 정신적인 쾌락을 내세웠다.
1. 아테네의 에피쿠로스
이 학파의 창시자인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목표라고 생각했지만 그 자신은 지극히 검소하고 절도 있는 생활을 영위했다. 왜냐하면 그는 빵과 물 정도의 단순한 식사를 하고 육체적인 욕구를 최소한으로 충족시킬 때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2. 에피쿠로스학파와 키레네학파와의 관계
에피쿠로스학파는 육체적인 만족에 정신적인 쾌락을 추가함으로써 아리스트푸스의 쾌락주의를 보다 고상하고 세련된 것으로 만들었다. 아리스트푸스는 순간적인 쾌락을 강조했지만, 에피쿠로스는 영원한 쾌락을 추구했다.
3. 고통 없는 상태의 추구
만약 어떤 사람이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번뇌를 피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는 단순하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도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적당한 만족이 따르는 절제된 쾌락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 장래의 보다 훌륭한 선을 보장해 주는 고통은 가끔 바람직하다. 반면에 육체적인 탐닉보다는 정신적인 쾌락이 더 바람직하다. 에피쿠로스의 견해에 따르면, 즐거운 생활이란 번뇌로부터 해방된, 마음이 평온한 감미로운 생활이다. 완전한 행복이란 달성될 수 없다. 따라서 조용한 만족이 추구되어야 한다. 근심걱정은 마음의 평화에 크 위협요소가 되며, 가장 나쁜 공포는 죽음에 대한 공포이다.
4.최고선
에피쿠로스학파의 최고선인 ‘사려 싶은 분별력과 통찰력은 즐겁고 선한 생활을 창출하는 덕의 실현을 위하여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따러서 고상한 쾌락이나 정신적인 가치는 육체적인 만족보다 우월한 것이다. 우리들은 정신적인 쾌락에 의존할 때 현재의 불행을 극복할 수 있다.
5. 에피쿠로스학파의 사회윤리
에피쿠로스학파의 사상가들은 우정을 제외한 모든 사회적 관계를 무시한다. 모든 형태의 공공업무와 함께 결혼도 걱정과 책임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들은 만족이라는 개인적이 이상이 우정이라는 사회적 이상과 일치한다고 믿는다.
❖ 제3절 쾌락주의에 대한 비판
1. 증거의 결여
쾌락주의자들은 적절한 증거를 제시하지도 않고 “쾌락은 선”이라고 규정한다. 우리들이 실제로 버린다고 하더라도 먹고 싶은 음식이 건강을 해치듯이, 바람직하지 못한 대상이 얼마든지 있으며 쾌락 자체가 반드시 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2. 가치 없는 쾌락
밀이 주장했듯이 쾌락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질적으로 서로 구별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며 폭군 네로와 히틀러와 같은 미친 사람의 쾌락도 건전하게 살고 있는 합리적인 사람들의 쾌락과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3. 만족없는 쾌락
성적인 쾌락이 가끔 그렇듯이 쾌락이란, 반드시 만족을 주는 것은 아니다. 쇼펜하우어는 성적인 쾌락이 만족을 주는 것이 아니, 순간적으로 고통을 완화할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프롬은 사랑을 갈망하는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성적인 것과 혼동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적인 경험이 사랑에서 오는 충족감과 일치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4.쾌락의 역설
인간생활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좋은 일들이 마치 의학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공부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쾌락을 주는 것도 아니고 바라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역설적인 것이다. FIN
윤리학 제3장 요약.정리
❖ 자아실현설 - 잠재력의 발휘로서의 좋은 삶
➽ 윤리학에서의 자아실현설이란, 개인에 있어서의 최고선 혹은 도덕적인 이상은 그의 여러 가지 타고난 잠재력과 특수한 재능, 그리고 능력과 함께 그의 본질의 실현을 통하여 달성된다고 주장하는 완성론적 철학이다.
❖ 플라톤 - 선의 실현
➽ 플라톤사상의 가장 풍부한 원천은 “윤리학적 지식이 수학보다 더 명확하다 ”고 주장한 그의 ‘국가편’에서 발견된다. 그에 있어서는, 선에 포함되는 윤리학적 지식의 원리나 개념들은 기하학적 지식보다 더 추상적이다.
1. 행복과 선 : 궁극적이 도덕적 동기
플라톤에 있어서의 선은 철학자의 궁극적인 사색의 대상과 동일시된다. 왜냐하면, 선은 우주의 궁극적인 본질인 동시에 목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선이며 행복이다. 따라서 진정한 행복은 도덕적인 기초 위에서만 달성된다. 신적인 이데아의 세계와 친밀하게 교류하는 행복한 영혼은 인간 존재의 축복받은 상태이다. 최고선과 친교 하는 가운데 발견되는 천국의 행복 이외에 감각적인 쾌락과 같은 낮은 단계의 선이 있다.- 감각적인 쾌락에서부터 심미적인 쾌락까지의 선의 단계를 말한다.
플라톤에 있어서는 한 사물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선을 위한 것이고,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고 활용하기 위하여 유익한 것을 행한다는 것은 자연에 의하여 주어진 최선의 것을 행하는 것인데, 이는 자아완성을 가져오며, 자신의 덕을 개발하고 선을 실현하는 일이 된다.
2. 이상으로서의 선
진정한 선은 이상적인 것이다. 그리고 현실세계는 순구하고 시간을 초월한 형상(즉 이상)의 단순한 모조품에 불과하다. “선은 그 본성에 있어서 부단히 추구되는 것이나 달성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존재 가운데(선은) 다른 모든 이데아를 넘어선 궁극적인 이데아이다. 그것은 또한 존재의 원리를 규정한다. 선은 지식이나 진리보다 더 소중한 것이며, ”선의 이데아는 다른 이데아보다 더 숭고한 것이다.
3. 선한 생활의 본질
진리에 대한 통찰력을 지닌 사람만이 이 세상에서 선과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러나 덕은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의 목표와 도덕적인 수양의 목표는 결국 같은 것이 된다. 비록 각 개인의 생활에서 선은 불완전하게 달성될 수밖에 없지만, 가능한 한 최대의 선을 실현함으로써 선의 모방을 통한 도덕적인 자기 수양을 할 수가 있다.
4. 네 가지 기본덕목
플라톤은 덕을 탁월성으로 정의한다. 인간은 어느 하나의 기능에 탁월한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 1)지적인 능력과 이성에 탁월한 사람은 ‘지혜’의 덕을 지니고, 2)의지의 활동에 탁월한 사람은 ‘용기’의 덕을 지니며, 3)감각적인 욕망의 활동에 탁월한 사람은 ‘절제’의 덕을 지니게 된다. 이상의 세 가지 덕, 즉 지혜, 용기, 절제가 서로 조화롭게 기능하고, 이성에 의하여 질서 지워지고 규제될 때 총괄적인 덕인 ‘정의’가 구현된다.
❖ 아리스토텔레스 : 자아실현과 행복주의
➽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사상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근거할 것이며, 해석상의 목적을 위하여 그의 행복주의적인 관점에 촛점을 맞추면 된다.
1. 행복의 철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모든 측면에서 철저하게 목적론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의 최고목적인 선은 행복으로 귀착될 뿐 아니라 그 자체로서 행복한 상태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관점은 덕이 곧 행복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이론과 자주 비교된다. 소크라테스는 지식은 덕이요, 덕은 곧 행복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덕은 도덕적인 덕의 그 실현을 위해서는 실천적인 의지에 의존해야 하기 이유로 반대한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의 지적인 의지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도덕적인 선택은 자발적이면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선택한 행동을 실현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에, 선악의 선택 문제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결정에 달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2. 이성적인 생활
인간의 탁월한 자질은 동물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본질을 지니는 것이다. 행복이란 사색하는 생활에서 얻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같은 이상적인 생활을 행복주의의 관점에서, 신에 대한 가장 풍부한 사색을 가져오는 생활이라고 규정한다.
3. 도덕적인 덕과 지적인 덕
플라톤은 덕을 탁월성이라고 정의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습관화된 중용이라고 규정한다. 실천적인 이성은 도덕적인 덕을 통제한다. 지성은 지적인 덕을 통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의지는 올바른 통찰력과 반대되는 부도덕한 행동을 선택할 능력도 있다고 주장한다.
4. 중용의 이론
옳은 행동, 즉 중용은 양편에 악덕을 두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도덕적인 덕은 중용의 상태를 말한다.
5. 사회적인 것으로서의 도덕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의 도덕성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를 떠나서는 도덕적인 것이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FIN
윤리학 제4장 정리.요약
의무론적 직관주의 - 의무에 대한 직각
⇛ 의무론, 즉 의무의 윤리는 의무나 도덕적 의무에 대한 이론으로 이루어진다. 의무 혹은 필연적인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도덕적 필연성을 뜻하는 것이다. 현대윤리학에 있어서 직관주의는 의무론자들이 지배해 왔으며, 의무론자들은 최고선에 대한 인식이 도덕적 의무에 대한 인식을 끌어내는 데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왜냐하면 도덕적 의무란 직관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ꁵ 제1절 칸트의 직관주의 : 의무에의 존중
⇛ 칸트의 체계는 보편적인 특성을 갖는 도덕법칙에의 존중을 요구한다. 도덕법칙은 우리들에게 반드시 도덕적 의무를 지킬 것을 명한다.
ꁲ 선의지
① 칸트의 윤리설은 '선의지'라는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②그 자체로서 선한 것은 오직 선의지뿐이다.
③ 선의지란 것은 행위를 오로지 그것이 옳다는 이유에서 택하는 의지이다.
④ 행위의 결과에 대한 고려나 마음의 자연적 경향성에 의한 의향이 아니다.
⑤ 이 때 선을 지향하는 의지 작용에는 선 개념이 선행되어야 한다. 도덕 법칙도 선험적으로 인식한다.
⑥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
ꁲ 정언명법
① 인간에게 도덕은 언제나 당위이며, 도덕적 행위는 인간 이성에게 의무이다.
② 도덕 법칙은 인간 이성이 선의 이념에 따라 자기 자신에게 강제적으로 부여하는 규범이 다.
③ 정언 명령 : 도덕 법칙은 무조건적인 준수를 요구한다. 그래서 정언 명령이다.
↔ 가언 명령 : 조건적인 명령이다. 예) 네가 공부를 잘하고 싶다면(가정) 이 책을 읽어라.
④ 그것은 인간 이성이 스스로 제정한 규율, 즉 자율이다.
⑤ 칸트에 의하면 도덕 법칙의 명령은 방법이나 결과를 위한 것이 아니고,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여 지켜야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언명법이다.
ꁲ 인간의 존엄성과 목적의 왕국
① 인격성의 개념 - 책임(=인간의 의지가 자유롭다)
② 인격 내의 인간성은 신성하다. - 자율성이 인간과 이성적 존재자의 존엄성의 근거이다.
③ 그 자체로 존엄한 인간은 "목적 자체"이다. -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나 인간(성)을 목적으로서 대하라
ꁲ 최고선, 덕과 행복
① 칸트에 있어서 덕의 개념은 용기에 비교될 수 있다. - “덕은 의무에 복종하고자 하는 인간의 준칙이 갖는 힘이다.”
② 가장 훌륭한 도덕적 완성은 자신의 의무를 달성함으로써 성취된다.
ꁲ 칸트 윤리학에 대한 비판
① 가장 주된 비판은 칸트의 이론이 목적록적인 요소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그의 형식주의에 겨냥된다. - 공리적가치의 보완이 필수적으로 요구됨.
② 두 번째의 비판은 칸트의 정언명법이 모두 단지 가언적인 명법에 불과하다는 논박이다.
③ 심지어 정언명법이 두 가지 서로 상반되고 모순 되는 행위를 우리에게 명령하게 되는 경우도 제시할 수가 있다.
ꁵ 제2절 옥스퍼드 의무론자들
ꁲ H.A. 프리차드 : 자명한 것으로서의 의무와 직접적으로 지각되는 옳은 행위
⇛ 의무의 사실은 직관적으로 지각되는 것으로 설명되어야 하기 때문에 의무의 사실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은 그릇된 일이다. “행해야 할 도덕적 의무에의 감각, 특정한 종류의 행위가 옳다는 것에 대한 지각은 절대로 파생적인 것이 아니며 직접적인 것이다.”
ꁲ W.D. 로스 : ‘옳음’의 정의 불가능성
⇛ 칸트와 밀 사이의 중간적 입장을 취한다. 로스는 의무가 사실 그 자체에 의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스의 의무론은, 조건부 의무들 이란, 거기에서 생기는 좋은 결과에 의해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이상적 공리주의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ꁵ 제3절 케임브리지 의무론자들
ꁲ C.D.브로드 : 공리로서 직관되는 도덕적 진리
⇛ 브로드는 윤리설을 문제중심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주관적 감정에 근거한 전통적인 해결책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주어의 속성을 서술하는 객관적 분석에 기초한 해결책에도 반대했다.
✔ C.D.브로드의 의무론 - 옳고 그름은 특수하고 분석할 수 없는 용어이고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경험을 성찰하고 분석해 볼 때 우리는 옳은 것이라고 믿는 바를 행하고자 하고 그른 것이라고 믿는 바르 피하고자 하는 지속적인 욕구를 발견할 수 있다.
ꁲ A..C. 의 이윙 : ‘해야 함’(당위)의 정의 불가능성
⇛ 선, 도덕적 의무 그리고 적절성(세가지 기본 윤리적 개념) 에 대한 분석 혹은 정의를 다루었으며 윤리적 주관주의자와 윤리적 자연주의의 사조를 비판하고 저지하였다.
ꁵ 제4절 의무론자들에 대한 비판
① 실제로 선이라 할 만한 아무것도 생겨 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의 의무라고, 단지 당위성만을 말한다.
② 어떤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아무런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③ 훌륭한 법, 관행, 제도, 규칙들의 합당성을 결정해 줄 적절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
FIN
윤리학 제 8장 요약.정리
윤리적 주관주의와 상대성 - 주관적 의견으로서의 윤리
⇛ 주관주의란, 진리는 단지 의견의 문제에 불과하다는, 즉 객관성에 아무런 근거도 없는 개인의 주관적 상태의 문제에 불과하다는 이론이다.윤리적 주관주위는 보통 다 가지 형태 중 하나로 나타난다.: 1)집단의 의견이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는 사회적 주관주의, 그리고 2) 개인 자신의 견해가 옳고 그름의 유일한 결정요인이 된다는 개인적 주관주의.
ꁵ 제1절 사회적 주관주의 : 사회적 의견으로서의 윤리
⇛ 주관주의자인 흄은 사회적 시인을 도덕적 옳음의 기준으로 간주했는데, 여기에서 시인이란 궁극적으로 사회적 감정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두 번째의 사회적 주관주의자인 섬너는 윤리이론과 사회에 있어서의 도덕적 관행을 구분하지 않는다.
ꁲ 데이비드 흄
① 그의 도덕철학은 이기주의적 공리주의를 옹호하는 철학적 경향에 대립해서 전개되었으며 오직 감정만이 도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② 윤리적 동기를 동정심 혹은 감정 특히 동료감, 즉 다른 사람에게 좋고 나쁜 것을 자신의 것처럼 경험할 수 있는 능력에서 찾는다.
③ 도덕이란 감정으로 환원되며 이성이 아니라 정서에로 환원되는데, 이 점에 관한 한 도덕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즉 우리가 호감을 갖는 도덕적 관념이나 기준은 좋다라고 말하며, 우리에게 역겨운 것은 나쁘다고 불린다.
④ 그러나 도덕적 규제력을 갖는 윤리규범을 갖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좋고 나쁜 감정이 선악이 되는 것이 아니고 집단이 공유할 수 있어야 만 선악으로 불릴 수 있다.
⑤ 도덕적인 분별이 이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나, 이성도 이러한 감정들의 유용성을 판단하고 그것을 평가하며 그들간의 상충을 해결함에 있어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⑥ 자신이 사회와 더불어 공유하는 감정, 감정의 일치, 다시 말하면 사회적 시인(social approvation)만이 인간 공동체가 찬양하는 행위형태라 불리는 도덕적 가치의 기준이다.
⑦ 도덕적 가치는 사회적 가치이다. 정직, 정의, 신의, 명예 , 충선은 이러한 각 덕목을 가진 세인의 이익과 행복을 증진해 부는바 그 가치를 갖는다.
ꁲ 윌리암 그래함 섬너 : 관습으로서의 윤리
① 섬너는 모든 사회에 있어서 그 윤리설과 도덕적 관행이 불가분의 전통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한다.
② 섬너는 관습은 “관례나 전통이 비록 어떤 권위에 의해 조정되지 않느다 할지라도 그것들이 사회복지에 도움이 되는 판단을 내포하고 개인들로 하여금 그것들을 따르도록 강제력을 발휘할 경우의 관례나 전통이다.”라고 정의한다.
③ 관습은 도덕의 기준을 구성하며 어떤 행위가 옳고 어떤 것이 그른가를 결정한다. 그것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로 갖는 역할이나 그것에 대한 존중이 전통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④ 전통적인 것은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전통은 옳음을 보증한다. 그에 대립하는 생각이나 행위는 바로 대립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비도덕적이며 금기가 된다.
⑤ 좋은 관습은 사회를 발전시키기 때문에 유지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유기될 것이며, 당대의 지배적인 관습은 사람들에게 태어날 때부터 뿌리를 내려 윤리적 기준, 편견, 도덕적 관습, 생활습속 등의 것으로 의문 없이 받아들여진다.
ꁵ 제2절 개인적 주관주의 : 개인의 의견으로서의 윤리
ꁲ 애드워트 웨스트마크 : 윤리적 상대성
① 윤리적 상대성 - 도적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도덕판단의 술어는 결국 감정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도덕판단의 객관적 타당성은 입증될 수 없다.
② 도덕개념을 형성하게 하는 특수한 감정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도덕감정이 있는데 도덕적 시인과 도덕적 비난이 바로 그것이다. 도덕판단과 도덕개념은 결국 응보적 유형의 감정, 즉 우호적이거나 적대적인 마음의 상태이다.
③ 오직 도덕적 시인과 도덕적 비난만이 도덕적 감정이라고 하는 것이 옳으며 다른 것들은 비록 응보적 감정이기는 하나 도덕감정과 더불어 생겨나는바 도덕과 무관한 감정이다.
④ 도덕의식은 결국 감정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도덕판단에는 객관적 타당성이 없고 도덕적 가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타내는 감정에 따라 상대적이다.
ꁲ 제3절 윤리적 주관주의에 대한 비판
① 귀류논증에 의한, 윤리적 상대주의 논박 -만일 윤리적 상대주의가 옳다면 그것은 합리적 인간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극단적인 결과들을 가져올 것이다.
E.X.) 로마제국에 있어서 범선 노예의 사용, 독일국민에게 지지를 받은 히틀러의 대량학살 등
② 윤리적 주관주의자는 자기 모순적이다. - 상대주의를 위한 일관된 옹호론을 전개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고 그것은 결국 객관주의에로 귀결된다. 나아가서 상대주의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거의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행위를 했을 경우에 그는 도덕적일 수도 있고 비도적일수도 있다.
③ 윤리는 통계적 계산으로 환원된다. - 상대주의적 윤리는 윤리를 단순히 머리수를 세는 일이나 통계적인 열거에 의존하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도덕적 인간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우연히 품게 되는 어떤 의견이나 태도에 순응하는 자와 일치한다. 상대주의적 윤리는 무분별하고 , 개인주의 용납하지 않으며,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대중을 오도하게 된다.
④ 상대주의는 일관성이 없는 윤리이다. - 만일 한 사람은 강탈의 도덕을 옹호하고 다른 사람은 박애를 선택 했으면 두 사람 모두가 도덕적으로 그리고 동등하게 옳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각자는 진지하게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주관적인 의견이 도덕을 결정하게 된다면 어떤 의견이든지 그것이 개인의 선호를 표현하는 것인 한에서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 될 것이다.
FIN
윤리학 제 9장 요약.정리
공리주의 -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 공리주의는 옳은 행위란 최소한의 고통과 더불어 최대한의 쾌락 혹은 행복을 얻는 것이라는 공리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ꁵ 제1절 고전적인 공리주의
⇛ 직관주의 철학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공리주의는 윤리적인 행위란 행복을 가져오는 행위로 규정한다. 행복이 크면 클수록 그 행위의 도덕적 가치가 더욱 크다고 보며, 사람들이 더 많은 행복을 얻으며 얻을수록 그들의 행위는 더욱 더 칭찬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공리주의 대표적인 철학자로는 벤담과 밀이 있으며, 다음의 표와 같은 차이점을 갖는다.
ꁲ 벤담 : 양적인 쾌락주의
① 벤담은 주적인 ‘도덕과 입법의 원리에 관한 서설’에서 이간의 모든 해우이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쾌락과 고통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고 말한다 .
② 또한 공리의 원리를 “우리들의 행복을 증진시키느냐 감소시키느냐에 따라 어떤 행동을 승인하고 거부하는 원리”라고 규정한다. 그는 나중에 이 공리의 원리를 “최대행복의 원리”라 불렀다
③ 벤담의 쾌락주의는 쾌락은 한 가지 종류밖에 없으며, 양적으로만 차이가 있을 뿐이지 질적으로는 차이가 없다는 양적인 쾌락주의이다.
↳ 이러한 쾌락의 양을 측정하는 방법에는 1)강도,2)차이,3)확실성,4)근접성,5)생산성,6)순수도,7)파급범위 등 7가지가 있다.
④ 벤담의 철학은 2가지의 민주주의적인 원리를 제공했다. 1)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의 원리와, 2) “모든 사람은 하나로 계산되야 하며 아무도 하나 이상으로 계산되어서는 안되다” 는 원리가 바로 그것이다.
✔ 벤담의 윤리사상에 대한 비판
① 벤담이 주장한 쾌락은 질적인 쾌락인 쾌락이 아니오, 일반적으로 가치라고 생각하 그런 쾌락도 아니다. 즉 최대행복의 원리에 대한 벤담의 정의는 규정적이고, 설득적이며, 충고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벤담은 그의 윤리학적 전제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② 벤담의 이론은 그릇된 심리학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모든 행동이 목적격이라고 가정하지만 이 가정은 행동이 충동적으로 이루어질 때는 성립하지 않으며, 어떤 행동이 예측했던 행복을 가져오지 못할 때도 성립되지 않는다.
③ 공리의 원리를 자세히 검토해 보면 순환논법을 발견할 수 있다. - 그것(공리의 원리)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이유가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데 있으므로 우리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ꁲ 존 스튜어트 밀 : 질적인 쾌락주의
① 밀은 쾌락은 양적으로만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구별된다는 질적인 쾌락주의로 설명했다. 요컨대 질적으로 높은 쾌락은 소량이라 하더라도 질적으로 낮은 다량의 쾌락보다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② 밀은 벤담의 4가지 제재를 내적인 제재와 외적인 제재의 두 가지로 줄였는데, 이 중 내적인 제재를 더 중요시했다. 외적인 제재란 자신에 불리한 여론이나 신의 응징에 대한 두려움과 같이 개인의 행동을 제약하는 외적인 힘을 말하며, 내적인 제재란 내적인 의무감 혹은 의무의 요청을 말한다.
✔ 밀의 윤리이론에 대한 비판
① 밀은 벤담과 마찬가지로 심리학적 쾌락주의를 주장했다. 그러나 심리학적 쾌락주의의 유용성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윤리학적 쾌락주의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② 밀은 벤담과 같이 공리와 원리에 대한 증명을 결여하고 있다. 도덕감을 도덕적인 옳음의 기준으로 삼는 윤리학적 직관주의자들에게 반기를 들면서도 그들 스스로의 공리의 원리는 도덕감 혹은 직관에 의존하고 있다.
ꁵ 제2절 이상적인 공리주의 : 결과의 윤리
ꁲ 라쉬달 : 좋은 결과의 최대한 산출로서의 원리
⇛ 라쉬달은 윤리학의 기본적인 관심은 어떤 행동이 옳고 어떤 행동이 나쁘다는 것을 명확히 결정하기 위하여 ‘옳음’과‘그름’이라는 낱말의 의미를 규정하고 평가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① 결과의 계산법 - 라쉬달의 방법은 쾌락뿐만이 아니라 관련된 개인의 행복은 물론이고 상황을 전체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선과 선의 요소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그리고 어떤 목적을 위해서는 비교 계량 가능하다는 것을 함축한다.
② 공평의 원리 - 개인적인 선은 타인의 희생을 통해서 얻어져서는 안 된다. 이타주의는, 타인의 선이 나 자신의 자그마한 당장의 선을 희생할 수 있을 만큼 나에게 중요할 때 나타나며, 만약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나 자신의 선의 추구가 다른 사람의 선의 추구를 방해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개인적인 선의 추구가 극대화될 것이다.
ꁲ 무어 : 정의 불가능한 실재로서의 선
① 무어에 있어서 윤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선’이란 어떻게 정의되는가이다. 어떤 것이 선인가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선 그 자체의 정의문제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② 무어에 의하면 선한것에 관한 제반 진술들은 분석적인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진술들은 여러 가지 구성요소로 세분화 할 수 있으나, 선( good) 그 자체는 더 이상 세분화 될 수 없는 궁극적인 단순관념이다.
③ 그는 선한 것에 대해서는 정의 할수 있지만 선 그 자체에 대해서는 정의할 수 없다고 믿는다.
ꁲ 행위공리주의와 규칙공리주의
① 행위공리주의 - 행위공리지위는 행위의 결과를 옳은 행위의 결정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선의 명확한 분배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다.
② 규칙공리주의 - 행위의 규칙을 선악의 결정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적용할 가치가 있는 유효한 원칙을 발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적용되는 규칙이 특수한 상황에서 반드시 적용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FIN
윤리학 제 10장 요약.정리
첫댓글 2,3,4장은 이미 제출, 8,9,10장은 아직 출력본 제출 안 했습니다. 12,15장은 시험보고 올리겠습니다. 그만 이만
수고했다. 영근아
고생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