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4월은 각종 기념일이 가장 많은 달이다.
우선 4월 초 청명은 조상의 산소에 찾아가 벌초를 하고 제사를 하는 날이다. 북한은 해방 후부터 한식에 조상묘를 찾는 전통을 유지했었지만 약 10여년전 한식이 중국 명절이니 대신 청명을 쇠라는 김정일의 지시가 떨어졌다.
지난해부턴 달력에 청명이 공휴일로 지정됐다. 북한은 추석도 쇠지만, 한식도 추석 못지않게 중시한다. 남과 북을 비교해보면 추석은 북한에 비해 한국에서 더 중시하지만 봄에 산소를 찾아가는 전통은 북한이 더 열심히 지키는 것 같다.
4월에 가장 중요한 명절은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이다. 태양절은 북한의 최고 명절이다.
북한은 김일성 50주년 생일인 1962년부터 이날을 기념해왔는데, 1974년엔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으로 아예 민족 최대의 명절로 못 박았다.
김일성 생전엔 이날을 숫자 그대로 ‘사일오명절’이라고 불렀는데, 김일성 3년 상이 끝난 1997년부터 이날이 태양절로 명명됐다.
북한의 최대 명절이니만치 각종 기념행사가 성대히 열린다. 주민들에게 가장 피부에 닿는 대표적인 행사로는 ‘충성의 노래모임’이 있다. 각 기업소, 농장별로 예술 공연을 보름 넘게 준비한 뒤 최종 우승자를 가린다.
15일 당일에는 역시 직장 또는 학교별로 체육대회를 진행한다. 체육대회가 끝난 뒤에는 집에서 각자 준비한 도시락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오랜만에 허리띠를 풀어놓는다.
국가급 행사로는 ‘4월의 봄 예술축전’, 군 열병식 등의 행사가 평양에서 열린다.
북한에서 살면 4.15를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명절로 인식되도록 어려서부터 세뇌 당한다. 이를 위해 ‘선물통치’가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돼 왔다.
김정일은 김일성 65주년 생일이었던 1977년에 4월 15일을 맞아 주민들에게 선물을 하사하면서 본격적인 대국민 선물정치를 폈다.
1977년 이후 매년 12일~13일경엔 전국 모든 학교에서 선물 전달식이 열린다.
소학교부터 중학교 3학년(한국의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나이)까지 학생들에게 1㎏ 정도의 당과류가 전달되는데, 학교 강당에 부모들까지 다 모아놓고 ‘선물전달식’을 벌이면서 수령님과 장군님의 사랑의 배려라고 크게 선전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시장에서 사탕과자를 사먹을 수 있게 됐지만, 그 이전까진 북한에서 아이들이 사탕과자를 먹으려면 4월15일과 김정일의 생일인 2월16일에 하사받는 방법밖에 없었다.

또 학교 교복도 4월 15일을 기념해 2년에 한번씩 내주었다. 당연히 아이들은 사탕과자와 새 옷이 생기는 4.15를 손꼽아 기다리게 됐다. 이것이 어린 시절부터 4월 15일은 손꼽아 기다리는 명절이란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악화되면서 약 20년 전부터 북한은 교복을 돈을 받고 팔아주기 시작했다. 어쨌든 4.15가 교복이 생기는 날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어른들의 경우엔 세대마다 술 기름 간장 등을 1병씩, 돼지고기 500g, 빨래비누 칫솔 몇 개 하는 식으로 특별공급을 해주었다.
이런 공급은 국가에서 자기 돈을 들여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 행정기관에 위임해 어떤 일이 있어도 주민들에게 명절공급은 하라고 내리 먹인다.
이를 집행하지 못하면 무능한 간부가 되기 때문에 북한 간부들은 어떻게 하나 명절공급을 보장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다보니 어른이 돼서도 아이 때부터 머리 속에 세뇌된 ‘4.15는 푸짐하게 받는 즐거운 명절’이란 학습효과가 되풀이해 각인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좋을 때는 명절공급도 푸짐했다. 명절공급은 곧 국가의 경제사정을 반영하는 지표처럼 인식됐다.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올해 15일엔 아이들에게 당과류만 겨우 공급했을 뿐 각 가정에 대해선 아무런 명절 공급도 없었다고 한다. 이런 전례는 없었다.
이렇게 되면 주민들은 “우리나라가 해마다 망해가는구나. 김정은이 올라서서 사정이 더 안 좋아졌다”는 생각을 품을 수밖에 없다.
4월 25일은 북한군 창건 기념일이다. 김일성이 1932년 중국에서 항일유격대를 만든 날이라고 한다. 4월 25일은 어떻게 보면 북한의 가장 불운한 기념일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5년, 10년 단위로 꺾어지는 정(正)주년 행사를 매우 중시한다. 김 부자의 생일, 1948년 9월 9일 공화국 창건일, 1945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과 더불어 4월 25일은 북한의 5대 명절엔 들어갈 수 있는 기념일이다.
하지만 북한군 창건일이 정주년이 될 때는 김일성 생일(1912년)과 김정일 생일(1942년)도 정주년이 된다. 따라서 군 창건일은 두 생일행사에 가려져 중요한 명절이란 위상을 얻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지난해부터 4월에 두 개의 기념일이 더 추가됐다. 4월 11일은 김정은이 노동당 제1비서가 된 날, 13일은 국방위원회 1부위원장이 된 날이다.

북한의 4월은 청명을 시작으로 25일까지 연이어 명절을 보내는 ‘축제의 달’이었다. 또 5월초부터 6월까지 전국이 농촌지원전투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노력동원 전에 재충전을 하는 달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4월의 축제 분위기는 점점 꺼지고 있다. 선물은 점점 줄어들고 대신 각종 기념보고대회를 열어 때우는 기념일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매년 똑같이 반복되는 재미없고 진부한 기념보고대회 따위의 행사에 억지로 참가해 충성심을 입증해 보여야 하는 주민들은 고달플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