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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의 부르심에 합력하여 겸손하게 순종해야합니다.(출4:10-17)
2024, 10/27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출4:10-17절 말씀으로“주의 부르심에 합력하여 겸손하게 순종해야합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오늘 2시에 광화문에서 전국교회가 초교파적으로 모여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동성결혼합법화 법, 성전환수술 없는 성별 정정 등을 반대하는 집회를 합니다.
우리나라도 반 하나님적인 PC주의로 가고 있는데 그 선봉에 민주당이 섰습니다. 기독교가 자신들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고 지금까지 수천 년 이어져온 성경적 삶의 질서를 송두리째 바꾸는 법에 왜 저렇게까지 집착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기독인들이 더 정신차리고 기도해야합니다. 정말 걱정입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바른 태도는 순종입니다.(10절)
둘째로,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한다고 생각하면 교만해집니다.(10절)
셋째로, 우리는 서로 협력하여 주의 일을 해야 합니다.(15-16절)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은 인생의 전환점이고, 또 수시로 부르셔서 내 인생에 네비게이션이 되어주시는데,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그러니까 내 삶에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깨닫게 되면 즉각적인 순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종을 할 때 보람과 긍지가 있지만 이게 도를 넘어 교만함으로 변질되면 절대 안 됩니다. 항상 보잘 것 없는 나를 천지의 대 주제이신 하나님께서 불러주심에 감사하며 겸손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돕고 협력하고 함께 기도하며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나는 너보다 더 낫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 마귀에게 사로 잡히게 됩니다. 그러면 교만하게 되어 결국 갈등과 반목을 일으키고, 주의 일도 망치고, 나의 일상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나아가 내 인생 전체가 꼬이며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항상 겸손한자가 되어야합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주의 부르심에 왜 순종해야 하는지, 어떻게 순종해야할 것인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바른 태도는 순종입니다.(10절)
본문 1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아멘.
모세는 하나님이 애굽으로 내려가 이스라엘백성들을 구원하라고 부르셨지만 모세는 백성들이‘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하’며 내 말을 듣지 않을 거라고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모세의 손에 문둥병이 발병하고 치유되는 기적을 보여주셨고, 또 지팡이가 뱀이 되는 기적도 보여주셨습니다.
이 정도 되면 믿음 좋은 여러분들은 바로 순종했을 건데 모세는 요지부동입니다. 10절에는 자신의 언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소명을 또 거절하는데, 이로써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지금까지 4번이나 거절합니다. 정말 대단한 배짱이고, 강심장입니다. 한편으로는 지독한 고집불통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세가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집요하게 거절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는 정말로 자신이 무능해서 막중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랬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그는 이미 40년 전에 동족을 편들다가 사람을 죽인 후 너무도 무기력하게 왕자로서의 모든 지위와 명예와 권세를 빼앗기고 살기위해 멀리 미디안으로 도망갔던 트라우마가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큰 실패를 경험한 그로서는 저런 태도를 취할 수 있었겠다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인내하시면서 끈질기게 모세를 설득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천사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구하라고 부르셨지만 기드온이 자신이 없어 거절하자 하나님은‘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해줍니다. 그럼에도 기드온이 다른 표징을 요구하자 천사는 기드온이 가져온 음식을 태워 하나님께 올려드림으로 기꺼이 표징을 보여줍니다.
이에 용기를 얻은 기드온이 군대를 모아 전투를 앞두고 또 다시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이슬이 양털에만 내리고 주변은 마르게 하고, 또 양털은 마른데 주변에만 이슬이 내리는 기적을 보여 달라 요청했고 이걸 통해 확신을 얻어 전투에 임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하나님은 묵묵히 참으셨는데, 이는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보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최악의 영적상태로, 심지어 기드온의 아버지까지 우상을 섬길 정도로 타락이 극심했던 사회적 분위기에서 기드온의 얕은 신앙으로서 이런 중요한 결정이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태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거듭된 부르심에도 응답하지 않는 것은 겸손이라기보다는 책임회피이며 불순종입니다.
이런 불순종의 태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큰 장애가 됩니다.
여러분도 입장 바꿔 생각해보십시오. 자녀에게 심부름을 시키는데 애가 들은 척도 안하면 어떨까요? 환장하죠. 회초리가 올라갈 겁니다.
하나님도 모세에게 큰 능력을 주셨고, 함께하겠다고 약속까지 했음에도 무려 5번이나 거절하자 급기야 열 받으신 하나님께서 진노하지 않았습니까?(14절)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 비록 자신이 좀 부족하여도 내 주장을 앞세우지 말고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께 순종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앞에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렇게 말씀하시자 이사야가 바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렇게 반응합니다. 이런 순종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지 못할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이사야가 능력이 없어도 하나님은 그를 능력자로 세울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할 일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에 어떻게 순종할 수 있을까요?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깨달음이 있으면 그걸 붙들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권위로 교회가 직분을 임명하고, 단체와 구역을 조직하며, 선교와 구제 등 여러 일들을 함께 감당하는 것도 순종입니다. 또한 공동체구성원으로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공동체를 겉돌지 마십시오. 이건 불순종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실 때 저들은 잡은 물고기와 그 전 재산인 배까지 버리고 주님말씀에 순종하여 따랐습니다.
바로 이런 자세가 신앙인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삼상15:22절에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하셨고, 완고한 것은 죽은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순종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으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정말 순종하셔야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깨달음이 오면 즉각적으로 순종하셔서 복된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한다고 생각하면 교만해집니다.(10절)
본문 1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아멘.
여러분!!! 하나님께 부름 받으면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나는 하나님께 어떤 메시지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기 전부터 이미 부름은 받았고, 그걸 깨닫고 교회공동체 안에 들어오면서 주의 일을 해야 하는 순종의 자리에 들어선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모세가 4번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할 때 했던 말로, 자기는 말재주가 없어서 하나님의 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10절을 볼 때 주의 일을 하는 주체가 모세인지 하나님인지 모르겠습니다. 누구일까요? 하나님입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자신이 주의 일을 하는 주체로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무능을 이유로 소명을 거절한 것입니다.
물론 모세가 말하고 모세가 행동하니 언뜻 보면 모세가 다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세도 자신의 무능을 이유로 하나님의 소명을 거절한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과연 인간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주체가 될 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역사 속에 살아가는 인간이 모든 걸 결정하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개입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단 1도 없습니다.
제 4차 중동전쟁에서 남쪽에서는 이집트가 북쪽에서는 시리아가 동쪽에서는 요르단이 모든 사람이 일손을 놓고 하나님 앞에 회개의 시간을 갖고 있던 대속죄일에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항복직전까지 갑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이집트 시리아군이 상부의 명령을 받지 못해 공격을 멈춥니다. 이에 전열을 정비한 이스라엘이 반격하는데, 겨우 29살 나이로 대대장이 된‘카할라니’는 불과 소대병력으로 시리아 전차 60-70대를 파괴하며 대승을 견인합니다. 미국과 영국도 이스라엘을 지원하여 전쟁을 승리로 바꾸어 놓습니다.
여러분, 이게 우연일까요? 하나님의 도우심이 이스라엘과 함께한 결과입니다.
6.25전쟁 때 김일성이 서울을 점령하고 3일간 공격을 멈췄는데, 이에 우리는 전열을 재정비하고 반격의 기회를 만듭니다. 김일성이 이를 두고두고 후회했다는데, 당시 반격을 멈춘 것은 소련이 한반도에 미군을 오랫동안 붙잡아 두어 힘을 빼 쉽게 동구권을 공산화하려는 전략으로 김일성에게 작전명령을 하달하지 않아 멈췄던 것입니다. 이게 우리를 살리는 기회가 된 겁니다.
이것 또한 그냥 역사 속에서 우연히 생긴 일일까요?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자기의 계산으로 일하고 돈 번다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님께서 계획을 생각나게도 하시고, 바꾸기도 하시며, 못하게 막기도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지 잘났다고 설쳐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 어떤 것도 할 수도 없고, 이룰 수도 없습니다. 당장 사고를 통해 주저앉히거나 데려가면 어떡할 건데요? 모든 게 스톱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능력으로는 가장 하찮게 보이는 하나님의 일 하나도 감당할 수 없음을 아셔야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유한한 인간이 어찌 무한하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오직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십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이루시기위해 사용하시는 수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이든 세상의 일이든 내가 한다는 교만한 생각을 버리십시오. 도리어 무익한 나를 사용하여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그 부르심에 겸손하게 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 되어 날마다 은혜 안에 살아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셋째로, 우리는 서로 협력하여 주의 일을 해야 합니다.(15-16절)
본문 15-1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아멘.
모세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말재주가 없다고 거절하자 하나님은 그의 형 아론을 그에게 붙여주어 그가 네 입을 대신해서 백성들에게 말할 것이고,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될 것이라고 정말 엄청난 은혜를 주셨는데, 이렇게 하나님은 모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면서까지 당신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지혜를 봐도 신체를 봐도 한계가 분명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래서 태어난 것이 에덴동산의 하와입니다.
이런 마인드는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그래서 천상천하유아독존, 독불장군 뭐 이런 단어는 인간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가진 모세도 혼자가 아니라 그의 형 아론이 옆에서 도왔기에 끝까지 주의 일을 잘 감당하여 큰 업적을 이뤘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을 보십시오. 그가 얼마나 뛰어나고 위대한 종입니까? 그럼에도 그의 사역의 현장에는 항상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을 지칭할 때 바울일행이란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가 그토록 큰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많은 동역자들이 함께하였기 때문인데, 그래서 바울서신 말미를 보면 함께했던 동역자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그들을 기억하고 대접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걸 통해 우리는 특히 주의 일을 할 때 형제들 간에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요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대만 침공임박 등으로 우리나라 무기가 날개돋힌 듯이 팔리고 있는데, 우주항공 등 첨단무기는 어느 한 분야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전 분야의 기술수준이 향상되어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서로가 협력하고 도울 때 기술이 발달하고 더 많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가장 뛰어나고 위대한 존재이지만 혼자서 다 하도록 되어있지 않습니다. 아니 하나님도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이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데, 하물며 우리가 혼자 한다는 것은 교만입니다.
사실 우리는 주의 일을 포함하여 혼자서 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하지 못합니다. 내가 보지 못한 걸 형제가 보고 형제의 단점을 내가 보완하면서 나가면 서로 간에 시너지효과가 발휘되어 다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형제를 매장시키는 기회로 삼는다면 그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협력하고 결점을 보완하여 더욱 큰 성과를 낼 수 있어야합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 주님도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혼자 보내지 않고 둘씩 짝 지워 보내셨던 것입니다.(눅10:1)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한 하나님 안에서 협력자와 동역자가 되어야합니다. 기도도 함께하고, 복음도 함께 전하며, 봉사와 구제도 함께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는 더 크고, 더 높고, 더 깊게 나타납니다. 갈6:2절에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주의 일이든 세상일이든 함께 감당하고,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며, 서로의 짐을 대신 지고 가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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