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대는 옛이야기가 되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거동이 어려워져 대소변까지 남의 손을 빌려야 하는 부모는 이제 요양원으로 모신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선택을 하게 될 줄 알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오고 보니 생각처럼 담담하지 않았다.
우리 시어머니는 102세다.
어머니는 나에게 참 따뜻한 분이었다.
86세 때의 일이 눈에 선하다. 어머니는 내가 떡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큰아들에게 미안해서 우리에게 떡을 가져가자는 말을 선뜻 하지 못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자식에게 무엇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은 마음에
떡과 포도를 배낭에 짊어지고 풍기역에서 기차를 타고 단양역까지 오셨다.
단양에 내려서는 버스를 타고 시장에 들러 아들이 좋아하는 사과까지 사셨다.
어머니는 기역자로 굽은 허리에 돌덩이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다시 버스를 타고 우리 집까지 오셨다.
문을 열고 마주한 어머니의 등에는 포도물이 흠뻑 배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대성통곡을 했다.
"자식이 뭐라고, 이 무거운 것을 지고 여기가 어디라고 여기까지 오셨어요."
그때의 어머니는 자식에게 무엇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자식 사랑이 지극했던 어머니도 이제는 요양원에 계신다.
그래도 요양원 주변의 경치가 좋고, 작은 건물은 양지바르며 마당에는
빨랫줄에 빨래가 가지런히 널려 있어 정겹다.
그곳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직원들도 친절하고 무엇보다 깨끗해서
자식으로서는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이다.
다행인 것은 맏동서네가 자주 찾아뵐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는 것이다.
며칠 전 나는 어머니를 뵈러 갔다.
연명으로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들은 말없이 허공만 바라보고 계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에서 연세가 가장 많으신 102세의 어머니만 정신이 또렷하셨다.
어머니는 나를 보면 늘 같은 것을 물으신다.
"우리 딸들은 잘 있나?"
"밭에는 뭐 심었노?"
어머니는 밭에서 농사가 잘되어야 자식들이 고생하지 않고 잘살 것이라는 생각뿐이다.
처음 요양원에 오셨을 때는 "나는 일도 안 하고 밥만 축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러다 정부에서 다 해준다는 말을 듣고는 조금 안심하신 듯했다.
어머니는 성경도 열심히 읽으셨고, 빨래도 정성껏 개셨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귀찮다고 하신다.
"나는 이제 밥만 축낸다."
그 말씀을 듣는데 가슴이 먹먹했다.
어머니는 하루에도 열 번씩 사 남매에게 돌아가며 전화를 하시던 분이었다.
이제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전화기마저 치웠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직원들에게 안부를 물으라고 하신다.
전화하는 낙도, 성경 읽는 낙도 사라졌다.
이제는 혼자 걷지도 못해 침대 대신 매트에서 지내신다.
한때 어머니는 "왜 안 죽고 이렇게 오래 사는지 모르겠다"고 노래처럼 말씀하시던 분이다.
우리 집에 계실 때 내가 물었다.
"엄마, 정말 살기 싫으세요?"
그러면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부에서 돈도 주고 살기 좋은 세상인데, 자식한테 미안해서 그렇지 오래 살고 싶지."
그런데 지금도 같은 마음이실까.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아 겨우겨우 대화가 이어진다.
요양보호사 아주머니가 우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누구세요?"
어머니는 "둘째 아들"이라고 대답하셨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하나씩 펴 보이며 육 남매인데 '사 남매'라고 하셨다.
큰딸은 암으로 먼저 보내고, 막내아들은 교통사고로 떠나보냈다.
그 두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가 지금도 그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계셨다.
"사 남매"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남편은 놀랍고도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정신이 이렇게 또렷하신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있다는 사실이 남편에게는
마음 아픈 불효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어머니는 기저귀를 채워 드리면 자꾸 빼려고 하셔서 요양보호사들이 애를 먹는다고 한다.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힘드시지요?"
그러자 요양보호사 아주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직업인데요, 뭐."
그 한마디가 오히려 고마웠다.
자식들보다 더 살갑게 어머니를 돌봐주는 그분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머니는 식혜와 시루떡을 좋아하신다.
하루라도 효도하는 마음으로 가져가면 조금만 드셔도 설사와 구토로 고생하신다.
자식들은 눈치를 보며 조금만 드려도 어머니도 힘들고 요양보호사도 힘든 날이 되기에 좋아하는
떡 한 조각도 마음 놓고 드리지 못한다.
생각해 보면 참 서글픈 일이다.
평생 자식을 위해 살았던 어머니가 이제는 떡 한 조각도 마음 놓고 드시지 못하고,
대소변마저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야 한다.
그 삶이 얼마나 지루하고 외로울까.
팔순을 바라보는 자식들은 요양원에 누워 계신 어머니를 바라보며 어쩌면 머지않은 날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양보호사들은 나를 친딸로 생각한다.
나는 정말 친정엄마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러나 돌아서는 순간에는 그 생각마저 아무 소용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요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애잔하고, 가슴이 아리고, 결국 눈물이 난다.
평생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요양원에 모시고 있는 것이 한없이 죄송하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또 다른 모습인지도 모른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사랑하지만 함께 살 수 없는 현실도 있다.
그렇다면 자식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자주 찾아뵙고, 손잡아 드리고, 이야기를 들어 드리고, "엄마 사랑해요"라는
말을 한 번이라도 더 해드리는 것.
어머니가 마지막 계절을 외롭지 않게 보내실 수 있도록 곁을 지켜드리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효도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를 두고 돌아오는 길, 나는 또 한 번 뒤돌아본다.
평생 자식만 바라보고 살아온 어머니의 마지막 계절이 부디 외롭지 않기를.
그리고 언젠가 나에게도 그 계절이 찾아왔을 때, 나 역시 누군가에게 부담이 아니라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기를 조용히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