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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불행이 나의 밥줄
"똑, 똑, 똑" 현관문을 두드리는데 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다. "쾅! 쾅! 쾅!" 손바닥으로 문을 더 세게 두드렸지만 마찬가지다. 함께 간 열쇠수리공이 강제로 문을 열었다. 컴컴한 방에 누군가가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방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머리를 박박 깍은 모습이 남자고등학생처럼 보였다. "왜 문을 냉큼 열지 않니?" "미안합니다. 일어 설 힘이 없어 열지 못~했~습~니~다.“ 들릴락 말락 힘없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는 놀랍게도 아주머니 목소리였다. 불을 켜고 보니 핼쑥한 얼굴 뼈만 앙상한 몸에 머리를 빡빡 깎은 여인은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모습이다. "법원에서 나온 집행관입니다. 아주머니 어디 많이 아프신가요?" “예. 대장암 말기래요.” 아주머니는 집행관이 왜 왔는지 알고 있다는 듯 "집을 빨리 비워 드려야 하는데....."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숨을 몰아쉬며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집은 조그만 거실과 방 두 칸에 화장실 하나 15평짜리 다가구 주택이었다. 세입자는 월 20만원의 월세로 사는데 월세를 내지 못해 현재 보증금 500만원을 몽땅 까먹은 상태다. 결국 집주인은 법원에 명도소송을 냈고 승소하자 강제집행을 하게 된 것이다. 원래 남편은 조그만 인형공장을 운영하다가 중국산에 밀려 부도를 낸 후 빚에 몰려 여섯 달 전에 집을 나갔고 고등학생과 중학생인 두 딸은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겠다며 집을 나갔다는 것이다. 자신은 일도 못하고 말기암과 싸우면서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애처롭고 참혹한 모습의 아주머니 두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렀다. 뒤에 서있던 집주인도 세입자의 딱한 사정을 이제야 알았는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서있을 뿐이다. 아니 오히려 세입자가 딱하고 불쌍했는지 먼저 밖으로 나가 버렸다.
참담한 생활에 삶의 희망조차 없는 환자 앞에 재판 판결문이 어쩌구 하면서 집을 비워야 한다고 말하는 내 자신 스스로 밉기까지 했다. 하물며 당사자는 나를 얼마나 미워하고 저주할까? 직업상 가는 곳마다 만나는 불쌍한 사람들, 모두 남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실 딱한 사람들이 있기에 내가 먹고 사는 건데............ "아주머니, 집을 빨리 비워줘야 하는데..... 혹시 어디 가실 데는 있나요?" "..............." "가실 데가 없으면 집주인에게 다시한번 사정해 보시지요.“ 더 이상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강제집행을 포기하고 그 집을 나왔다. "아! 정말 신은 있는 것입니까? 생명이 꺼져가는 이 가련한 여인을 이렇게 내팽겨쳐도 되는 것입니까? 정녕 자비는 없는 것입니까?“
언젠가는 신혼부부에게 20평 아파트를 월50만원에 임대를 했는데 몇 달 채 월세를 못 내자 화가 난 주인은 명도소송을 냈다. 주인은 공기업에서 정년퇴직한 60대였으며 강제집행을 위해 주인과 함께 세를 준 아파트를 찾아갔다. 혼자 집에 있던 30대 초반의 새댁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주인이 "왜, 전화를 받지 않는거요?" "겁이 났구요. 집을 비우라고 하실 게 뻔하잖아요.“ "그렇다고 피하면 되나요? 사정 있으면 미리 얘기를 했어야지요.“ "월세도 못내는 주제에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무슨 대책이라도 있는 거요? 시간을 주면 해결할 수 있느냐구요?" "예, 한 달만 시간을 주시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해결을 못하면 그때는 저희 스스로 이사 가겠습니다." 대화가 계속되는 가운데 그동안 새댁이 살아 온 과거를 털어 놓는 것이다. 이들이 궁핍하게 된 사연은 친정과 시댁의 결사 반대 때문에 결혼식도 못 올리고 동거생활을 시작했지만 양가의 경제적 지원이 없다보니 남편 혼자 버는 돈으로는 살기가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양가의 노여움도 많이 누그러져 이제는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새댁의 말에 집주인은 화가 풀렸는지 점점 말소리가 부드러워 졌다. 집주인은 대화가 끝내고 집행관을 향해 강제집행을 취소할테니 그만 나가자고 한다.
집주인은 "저렇게 세상물정을 모르는 것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다 부모들 책임이지. 나도 딸아이가 하나 있지만 마치 내일 같군요.“ 오늘 집행 비용은 제가 다 부담하겠습니다.“ 살다보면 이렇게 좋은 분도 있구나. 참으로 기분 좋은 하루였다.
채무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행복을 집행관이 앗아간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실제 남의 작은 행복을 앗아갔는지도 모른다. 빚더미에 앉아 갈 곳 없는 채무자를 보면 이 직업을 포기하고 싶다. 고난과 절망을 극복할 때 인생승리라고 하지만 고난과 절망이 사람들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집행관을 악마처럼 여기며 뜨거운 라면 국물을 집행관 얼굴에 끼얹던 할아버지, 집안 가구에 압류딱지를 붙이자 목놓아 우는 어머니를 달래며 두 주먹 움켜쥐고 달려들던 어린아이....... 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어두운 구석이 너무나 많다. -담아 온 글-
La Llorona(흐느끼는 여인) / Joan Ba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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