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적봉에서 동쪽 조망, 넘어야 할 산릉
의미 있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다시금 되새기자.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므로 우리가 가야 하는 것이다.
――― 홍세화, 2014.6.19. 한겨레신문 칼럼, ‘갈 길이 멀지만 포기하지 말자’에서
▶ 산행일시 : 2014년 6월 28일(토), 맑음, 더운 날씨, 한차례 소낙비
▶ 산행인원 : 11명(영희언니, 스틸영, 다훤, 미선, 드류, 대간거사, 도자, 백작, 승연, 가은,
상고대)
▶ 산행시간 : 8시간
▶ 산행거리 : 도상 9.7㎞(1부 5.2㎞, 2부 4.5㎞)
▶ 교 통 편 : 스틸영 님 스타렉스(갈 때는 상고대 님이, 올 때는 스틸영 님이 운전)
▶ 시간별 구간
06 : 40 – 동서울 출발
09 : 14 – 정선군 화암면 석곡리(石谷里) 석공예품전시관 주차장, 산행준비
09 : 30 – 산행시작, 하돌목교
10 : 00 – 사모바위
10 : 14 – 취적봉(吹笛峰, 728.2m)
11 : 25 – 787m봉, ┤자 갈림길, 왼쪽은 덕산기계곡 가는 길
12 : 46 – 889m봉에서 남진하여 방평교, 1부 산행종료, 점심, 이동
13 : 46 - 정선군 정선읍 덕우리(德雨里) 하북교, 폐가, 2부 산행시작
14 : 28 – 734m봉
15 : 31 – 785m봉
17 : 00 – 830m봉에서 남동진 하여 △783.2m봉, 산불감시초소
17 : 30 – 정선군 화암면 북동리(北洞里) 화동초교 북동분교장 위, 산행종료
1. 취적봉 정상에서,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드류, 가은, 대간거사, 스틸영, 상고대, 승연,
백작, 도~자, 다훤, 미선 (영희언니 촬영)
▶ 취적봉(吹笛峰, 728.2m)
지난 주말에 오늘 산행인원을 꼽아보니 예닐곱 명이 될까 말까 했는데 막상 산행당일이 닥치
니 11명이나 된다. 스타렉스 만차다. 몇몇은 비좁은 좌석에 배낭을 안고 간다. 어쩌다 한번쯤
은 이렇게 서로 부대끼며 산행하는 것 또한 별스런 즐거움이다 싶다. 닭병 걸린 듯 졸다가 차
안 가가대소에 깨고, 고산준봉 자락 물굽이 돌고 돌아 덕우리 석공예전시관 주차장이다.
석공예전시관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모양이다. 너른 주차장 바닥이 잡초 돋도록 한산
하고 주변 정원에는 개망초와 고들빼기가 화초 노릇한다. 취적봉 등산로 방향표시 따라 어천
을 하돌목교로 건너고 둑길을 간다. 마치 비행기가 이륙하려고 활주로로 이동하는 것 같다. 옥
수수 밭과 고추밭 사이 두렁을 지나 산자락 끄트머리로 가서 방향 틀어 달린다.
더운 날이다. 지열이 후끈하다. 등로 초입에 도열한 우람한 노송들이 볼만하다. 밑둥에 새겨진
V자 송진채취자국은 풀숲으로 가렸다. 일제 아픈 역사는 이곳이라고 비켜 가지 않았다. 무덤
지나고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다. 외길. 날 섰다. 양쪽 사면은 가파르다. 오르다 숨차면 뒤돌아
어천 물도리동 내려다보며 삭힌다. 불쑥 바위벽 두른 첨봉이 막아선다. ‘사모바위’다.
등로는 사모바위 오른쪽 자락을 돌아 오른다. 밧줄이 길게 매달려 있다. 수직사면이다. 한바탕
비지땀 걸게 쏟고 나니 능선마루고 곧 암봉인 취적봉 정상이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취
적봉 정상은 바로 건너편 동봉인데, 이 서봉을 표지석 놓고 정상으로 대접한다. 사방 훤히 트
인 조망 때문이어서가 아닐까 한다.
취적봉 산 이름은 연산군의 네 아들이 이곳 버드내(유천리)로 유배와서 감자로 연명하고 피리
를 불며 고향생각을 달랬다고 한 데서 유래한다. 세자 이황을 비롯한 연산군의 네 아들은 연산
군이 폐위된 지 22일만인 1509년 9월 24일에 중종이 내린 사약을 받고 죽었다. 이덕일이 쓴
『조선선비 살해사건』에 의하면 연산군의 세 아들 중 세자 이황은 강원도 정선, 창녕대군 이
성(李誠)은 충청도 제천, 안양군 이인(李仁)은 황해도 수안(遂安)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각각
사약을 받고 죽었다.
그런데 연산군에게는 4남 2녀가 있었으며, 왕자 돈수는 황해도(?) 우봉으로 유배되어 사사되
었고, 두 딸은 목숨을 부지하여 시집가서 살았지만 그리 순탄한 삶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때
이황의 나이는 겨우 10살이었고, 중종은 19살이었다.
2. 석공예전시관 정원에 만발한 개망초(Erigeron annuus), 두해살이풀, 북아메리카 원산의 귀
화 식물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는 화초 신분이었다.
3. 어천 둑길 따라 들머리로 가는 중
4. 고들빼기(Youngia sonchifolia), 국화과의 두해살이풀, 고채(苦菜)
5. 취적봉 오르는 도중 뒤돌아 조망, 가운데 멀리는 백이산(?)
6. 오른쪽 멀리는 행산(808.8m)
7. 취적봉 가는 도중의 사모바위, 등로는 오른쪽 사면을 우회한다.
산상에서 팥빙수 만들어 먹는다. 미선 님의 작품이다. 빙수로는 우유를 얼려왔다. 양푼 그득하
여 수대로 넉넉하다. 오장육부까지 시원하여 취적봉 서봉을 내린다. V자 협곡이다. 밧줄 잡고
슬랩 내렸다가 발자국계단 바짝 기어오르면 취적봉 동봉(728.2m)이다. 고사목 한 그루, 사방
가린 나무숲이 동봉의 풍경이다.
뻥 뚫린 길 상태와 뭇 산행표지기들의 위세로 본다면 취적봉 또한 명산반열에 들었다. 봉봉 오
르고 내리는 굴곡이 심하다. 뚝 떨어졌다가 길게 올라 무덤이 있는 787m봉이다. 산행표지기
앞세운 일반 등로는 여기서 왼쪽 덕산기계곡으로 가고 우리는 인적 희미한 직진이다. 스틱 치
켜들고 풀숲 헤쳐 나아간다.
그나마 희미한 인적은 준봉인 889m봉에서 왼쪽 산허리 돌아가고, 우리는 오른쪽 가파른 사면
지르고 얇은 지능선 잡아 남진한다. 내리막은 잡석이 아우성하여 풀숲이 그다지 무성하지 않
지만 완만하거나 평평한 데 이르면 간벌한 나뭇가지가 널려 있고 옻나무, 산초나무, 두릅나무
가 기세등등 유세한다. 어천 가까이 기슭에 이르러서는 절벽이다. 흙더미 사태 만들어 내린다.
방평교. 도로확포장 공사 중이다. 점심 먹으러 근처 농가로 들어간다. 연로한 내외 두 분과 장
년인 아들이 산다. 텃밭에서 마늘 뽑다말고 “어디서 왔드래요?” 물으며 마당에 자리 펴주고
밥과 술도 내온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건 묵밥과 “고맙습니다”라는 말뿐이다.
8. 취적봉 오르는 도중 뒤돌아 조망
9. 취적봉 오르는 도중 뒤돌아 조망, 어천
10. 취적봉 정상에서 동쪽 조망, 넘어야 할 산릉
11. 멀리 희미한 산이 고양산
12. 취적봉 정상에서
13. 스틸영 님과 도~자 님(오른쪽), 도~자 님은 오늘 헬멧 덕을 좀 보았다. 1부 산행의 889m
봉 내리는 도중에 길을 잘못 들어 바위 슬랩을 지나 골로 갔다.
▶ 하북교~734m봉~830m봉~△783.2m봉~북동리
2부 산행들머리는 북동리 하북교다. 문치(732m)가 준령이다. 구불구불 한참 올랐다가 구불구
불 한참 내려간다. 하북교. 인적의 유무는 관심 밖이다. ‘들어가지 마시요’ 팻말 붙인 더덕밭을
지나 폐가 뒤 생사면을 치고 오른다. 고도 300m를 올라야 한다. 첫발자국부터 수직으로 가파
르다. 잡목 생사 선별하여 붙잡는다. 늑목이다.
암릉이 차라리 낫겠다. 암릉 비켜 사면을 오르다가 흙과 함께 뒤로 물러 내린다. 잠시 멈춰 가
쁜 숨 고르기도 조심스럽다. 그때마다 튼튼한 참나무 골라 기댄다. 속이 메슥거리고 눈의 초점
은 흐려지고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734m봉 정상이다. 아무리 시원한 탁주라도 웬만해야 맛이
나는 법. 다 싫다. 그저 널브러져 물만 들이켠다.
734m봉 넘고 잡목이 성가시지만 큰 오르내림은 없다. 먹구름 드리우고 뇌성이 온 산을 무너
뜨릴 듯 울리더니 그예 소낙비가 줄기차게 쏟아진다. 시원하다. 두 팔 벌려 맞는다. 영화 ‘쇼생
크 탈출(1994)’에서 앤디 듀프레인이 그랬던 것처럼. 키 넘는 잡목숲 헤쳐 유영한다. 금방 속
속들이 흠뻑 젖는다. 20분 정도 산상에서 안마 겸한 샤워했다.
830m봉. 서울 지하철 강변역 막차시간을 역산하면 이제 그만 내려가야 한다. 화동초교 북동
분교 위를 겨냥한다. 주르륵 내렸다가 △738.2m봉에서 잠깐 멈칫한다. 풀숲에 묻힌 삼각점은
임계 442, 2005 재설. 그보다 약간 더 높아 보이는 앞 봉우리에 산불감시망루와 텔레비전 안
테나가 있다. 뚝뚝 떨어진다. 텔레비전 안테나 동축케이블은 북동분교 쪽 사면을 곧장 내려가
고 우리는 능선마루 고수한다.
산기슭 덤불 헤쳐 머리 내미니 뒷골마을과 북동분교 사이다. 스틸영 님이 2부 산행을 포기하
고서 우리를 들머리에 데려다 주고 날머리에서 기다리고 있다.
산행을 마치고 나니 피곤한 중에도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 산행은 여태의 우리 오지산행
중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초라한 산행이 되고 말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얼마 전 우리나
라 월드컵 대표팀의 참담한 성적과 똑 닮았다. 세상물정 모르고 16강 넘어 8강까지 가고자 했
던 거창한 꿈이 한낱 백일몽이었던 예고된 참패 그것과 다름이 아니다.
만천하에 엿새간이나 공지한 당초 산행계획은 자못 뿌듯했다. 취적봉, 문치, 하북동, 재미골
좌측 능선, 고양산 주릉, 승두치, 배재, 동진, 926m봉, 북진, 661m봉, 수터. 도상 18.4㎞! 그런
데 실제는 어떠했는가? 1부 산행은 취적봉 넘기에 급급했고, 2부 산행은 인적 없는 오지이지
만 딱히 의미 부여하기 어려운 고양산 주릉이 한참 먼 지능선을 약간 해작였을 뿐이다. 예전에
누군가 꿰뚫어본 ‘시간 때우다 하산’하는 산행이었다. 도상 9.7㎞!
대간거사 님, 상고대 님과 스틸영 님께서 알뜰한 산행을 위해 종일 무진 애를 썼다. 이만한 것
만 해도 그들의 멸사봉산(滅私奉山)한 덕이 아닐 수 없다. 당일 산행으로서는 확실히 무리였
다. 무박산행이 감당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자가운전의 차량회수가 큰 걸림돌이었
다. 어쨌거나 공지한 계획에 크게 못 미처 부끄럽고 한편 괜히 억울한 생각이 든다.
14. 취적봉 동쪽 내리는 길
15. 왼쪽이 취적봉이다. 2010.9.4. 문치에서 각희산 오르는 도중의 조망이었다.
16. 2부 산행, 734m봉 오름길에 뒤돌아 바라본 여탄리 주변
17. 2부 산행, 북동리 주변, 앞산은 고양산 주릉의 933.1m봉
18.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1부 산행로
19.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2부 산행로
20.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 주변
첫댓글 무더위에 고생하셨습니다...^^ 스틸영누님 수고하셨어요^^
한여름 산상의 뽀얀 팥빙수, 푸짐한 양푼이 도토리 묵밥,연하디 연한 불닭발,
번개 대상의 기똥찬 코다리찜~~~ 두시간 자고 나온 미선양 덕분에 ,
운전보시한 두 분 덕에 고맙고 행복한 하루 였어요~~
드류님의 긴문장과 멋진사진을 보는시간이 산행하는 시간보다 더걸렸읍니다 , 여름계곡산장은 언제인가요 ,,
남당 님 반갑습니다.
하계야영계획은 하계야영추진위원회에서 조만간 발표하리라고 봅니다.
살짝 엿들은 바로는 계곡산장이 아니라 오대산 어드메 산정에서 야영하는 것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습니다.
남당 님께서 못 다들은 도~자 님의 에일리언 얘기도 마저 듣는 좋은 시간을 마련할 겁니다.
소라와 우렁쉥이가 그립습니다.
산행중에 소나기 참 좋았습니다.
저만 그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