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1월 1일 월삭예배
○ 마가복음 9장 27절 잡아 일으키시는 주님의 손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셨다가 내려오시는 중에 산 아래에서 일어난 일로 인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간 제자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 세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산에서 내려왔을 때 산 아래에서는 큰 무리가 제자들을 둘려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시는 것을 보자 온 무리가 예수님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몰려와 문안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무리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그러자 그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앞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17-18절 같이 읽겠습니다.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여기서 귀신이 이 아이에게 한 못된 짓을 보면 첫째로, 말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그러니까 이 아이는 귀신들리기 전에는 말을 잘 했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들어간 후에는 말을 못하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귀신은 어른과 아이를 가리지 않고 자기가 들어가 괴롭히고자 하는 사람을 괴롭힌다는 것입니다.세 번째는 25절을 보면 아이로 하여금 듣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네 번째는 어디서든지 귀신이 이 아이를 사로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져 가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간질 증세와 비슷합니다. 이런 아이를 지켜보는 아빠의 마음은 참담하게 이를데 없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아빠로써 아이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한다면 다 해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아이를 위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의 능력을 뛰어 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귀신이 아이의 아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갑자기 아이에게서 간질 증세를 나타나게 합니다. 20절입니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여기서 아이의 아빠와 제자들이 아이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간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 아이를 가까이 데리고 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갔는데 귀신들이 예수님께 시위를 하듯이 마지막 발작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의 아빠에게 물으셨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그러자 아이의 아빠가 대답합니다. “어릴 때부터입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런 일을 당했으니 아빠의 마음이 얼마나 조심스럽고 또 마음이 괴로웠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모든 병을 고치시며, 귀신을 쫓아내신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예수님은 안계시고 제자들만 산 아래 모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아느냐고 하니 예수님을 안다고 하며 자신들은 그의 제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무슨 일로 주님을 찾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빠는 모든 것을 소상하게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은 “우리가 그 귀신을 내쫓아보겠다”하고는 아이를 향해 믿음으로 선포했습니다. “귀신아 나가라” 이 제자도 기도해보고, 저 제자도 기도를 해봅니다. 그러다가 안되니까 모두 합심하여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결국 귀신을 내쫓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보면서 말씀하십니다. 19절입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믿음이 없는 세대입니다. 그들 가운데 예수님이 계실 때는 괜찮지만 예수님이 안계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대입니다.
그만큼 제자들도 역시 믿음없는 세대에 들어갑니다. 그들은 오랫 동안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예수님의 기도의 자리 다시 말해서 아버지와의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영적인 교제의 자리에 앉지 않았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흉내만 내지 살아 역사하는 믿음을 갖추지는 못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흉내만 내는 연약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말씀하시고 그 아이를 자신의 앞으로 데려오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본 아이의 아버지가 부르짖습니다. 22절입니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귀신은 아이를 여러차례 죽이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아이가 오늘과 같이 예수님 앞에 서게 되어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을 얻을 것을 어느 정도 예상했던 귀신은 필사적으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아이를 죽이려고 여러차례 시도한 것입니다. 하지만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은 그 아이를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주셨고 오늘이라고 하는 날에 예수님 앞에 서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기 아이를 고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서도 약간의 희의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말합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23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그러자 그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서 자기의 아들을 고쳐주지 않으실 까 적정이 되어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그 아이의 아버지가 큰 소리로 부르짖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그 아빠의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그것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셨습니다.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여기서 예수님은 귀신의 정체를 말못하고 못듣는 귀신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아 아이에게 들어가 있는 귀신의 정체입니다. 그 귀신 자체가 말을 못하고 듣지 못함으로 인해 그 귀신이 들어간 아이 역시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거기다가 이 귀신은 아이를 죽이기 위해 간질 증세를 보이게 했습니다. 불이나 물 가까이 가면 간질 증세가 나타난 것은 이 귀신이 아이를 죽이고자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귀신을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으로 쫓아내셨습니다. 그러자 이 귀신이 그냥 나간 것이 아니라 반항을 하고 나갔습니다. 26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어찌나 요란을 떨다가 나갔는지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그 아이가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이가 조금 깨어날 때를 기다리셨다가 손을 내밀어 아이의 손을 잡고 일으켜 주셨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일어섰습니다. 귀신이 완전히 나갔고 앞으로도 역시 귀신에게서 지키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귀신에게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는 그 아이에게 들어가지 말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써 이사야 35장 5-6절의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이것은 아이의 육신만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라 아이의 영혼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곳은 구원의 현장이 되며, 놀라운 역사의 현장이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강한 능력으로 사람을 괴롭히며 죽이려 하던 귀신이 도망가 버립니다. 주님이 손잡아 일으키시면 주어 있었던 것 같은 사람들이 힘을 얻고 일어납니다.
그뿐 아니라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나 회당장 야이로의 열 두 살 먹은 딸이 자신을 부르시고 잡아 일으키시는 주님의 음성과 그 손에서 전해지는 능력에 의해 일어나 기운을 회복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우리 교회가 해야할 일들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날도 예전에 하셨던 일은 물론 오늘날의 구원의 필요를 느끼며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가정들, 그리고 사회를 치료하시는 데 자신의 몸인 교회들을 통하여 이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지금은 교회가 주님의 음성이 되고 손이 되어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말하지 못하며 귀신이 주는 그 고통을 그대로 당하는 이 세상을 치료할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성도인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자신을 주님이 마음껏 사용하시도록 내어드려야 합니다. 거기에 구원이 있습니다. 치료가 있습니다. 회복의 은혜가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 교회인 여러분의 손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몸인 교회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치유가 끝내시고 집으로 들어가셨을 때 제자들이 조용히 여쭈어보았습니다. 28절입니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어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귀신을 내쫓으시고 병자도 고치시는 데 자신들은 한 때만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는지 알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왜 예수님에게는 계속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자기들은 더 이상 안일어나는 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9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성경 스가랴 10장 12절을 보면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행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자는 견고한 믿음을 가집니다. 그리고 기도하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다른 나라에 잡혀갔다가 돌아온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셨던 것처럼 귀신에게 사로 잡힌 자들도 온전한 정신을 갖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이 하신 일과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어 마음이 견고하게 되어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일을 행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신에게도 자신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을 믿고 함께 동행할 때에 주님의 거룩하신 능력의 손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5절에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할렐루야!
예수님은 우리의 손을 잡아 죄악 가운데서 건져주시고 일어나 주님을 따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동행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의 손을 꼭 붙잡을 차례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손으로 쓰임받아야 할 때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주님의 손이 되어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던 나면서 한 번도 걸어보지 못했던 하반신 마비의 장애인 거지의 손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로인해 그 사람이 걷고 뛰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11월에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 주님의 사랑으로 약한 자들을 잡아 일으키는 주님의 손이 되는 사람이 되시기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면서 귀신을 떠나가게 하시고 병든 자를 차료하면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향하여 나아가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