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마음 밭은 어떻습니까?(마 13:1-23)
신약성경 디모데후서 4:3,4절에 보면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처럼 실제로 오늘날 현대인들은 바른 교훈의 이야기, 진리의 말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주로 허탄한 이야기, 돈, 술, 쾌락과 같은 자극적인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정말 귀를 기울려서 들어야 할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오늘 말씀에서 9절, "귀 있는 자는 들으라" 16절,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같이 11,12절을 읽겠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천국의 비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귀를 기울려 듣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귀를 기울려서 간절한 심정으로 들으면 무궁무진한 천국의 보화들을 캐낼 수가 있습니다. 귀 기울려 듣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지만 귀를 기울려 듣는 자는 상상할 수 없이 귀하고 엄청난 진리의 보화들을 소유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말씀을 귀기울려 듣는 자는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에 귀기울려 듣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가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예로 드셨습니다.
3-8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여기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씨에다가 비유하셨습니까? 씨는 작고 보잘 것이 없습니다.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향기도 없습니다. 그래서 눈에 띄지도 않고 별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자라납니다. 자라나되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며 탐스러운 열매를 맺어서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도 겉보기에는 눈에 띄게 재미가 있거나, 드라마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안에는 생명이 있어서 말씀을 들을 때 죽어가던 사람을 살아나게 하고, 절망에 빠져 있는 자에게 희망을 주고, 슬픔과 좌절가운데 있는 자에게 기쁨과 활력을 제공해 줍니다.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던 사람에게 말씀의 씨가 떨어지게 되면 꽃이 만발한 꽃밭과 같이 그 얼굴과 마음이 활짝 피어나게 됩니다. 이전에 목적이 없이 살아가며 방황하던 사람이 말씀의 씨가 떨어지게 되면 열매맺는 인생, 그래서 자신에게도 기쁨이 되고, 가족들에게도 기쁨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을 가져다 주는 보람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요즘 우리가 묵상하는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은 아무 소망과 기쁨도, 기대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떨어졌습니다.
(창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이 한마디 말씀이 씨가 되어 아브라함의 마음밭에 떨어졌을 때에 아브라함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다 죽어가던 잡초와 같은 인생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에 모래와 같이 수많은 믿음의 열매를 맺는 위대한 인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소심함과 두려움 때문에 포도주 틀에서 밀타작이나 하고 있던 기드온의 마음에 떨어졌습니다. (삿 6: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랬을 때에 그 소심하던 기드온이 메뚜기 떼와 같이 무수한 미디안 군병들을 단숨에 물리치는 큰 용사가 되었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물고기나 잡던 어부들의 심령에 예수님의 말씀의 씨가 떨어졌습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눅 5:10). 그러자 갈릴리의 어부들이 인류역사를 바꾸어 놓는 복음의 일군들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말씀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까지 달라지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씨에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씨가 과연 어떤 밭에 떨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씨 자체에는 놀라운 생명력과 가능성이 있는데 그 씨가 떨어진 밭의 상태에 따라서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마음밭의 상태를 네 가지로 나누어서 비유를 드셨습니다.
1. 길가에 뿌려진 씨(3-4,18-19절)
본문 3,4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여기서 "길가”란 팔레스틴에서는 밭과 밭 사이로 나 있는 작은 통행로입니다.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 길은 단단하고 굳어져 있습니다. 이 씨는 길가에 떨어졌기에 새들이 와서 쪼아 먹음으로 도무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같은 본문의 말씀이 마가복음 4장 15절에서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여기서 새들을 "사단"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왜 사단이 와서 우리의 마음속에 떨어진 이 말씀의 씨를 빼앗아 갑니까? 동일한 사건을 취급하고 있는 누가복음 8장 12절에 보면, 그 이유는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라고 설명합니다. 이 “길가”는 처음에는 그냥 밭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니고, 또 다니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므로 굳어진 길가가 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밭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옥토였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녀도 여전히 육신의 생각대로 살고 세상의 생각에 끌려다니며 반복되는 죄악 때문에 그 마음의 생각이 점점 굳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씨가 떨어져서 발아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흙 속에 일정한 깊이로 묻혀야만 합니다. 즉 말씀이 그 마음을 뚫고 들어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자기생각과 교만과 편견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어서 좀처럼 말씀이 뚫고 들어갈 구멍이 없습니다. 자기 생각으로 가득차 있어서 말씀을 들어도 톡톡 튕겨나오기 때문에 한 마디로 씨알이 먹히지 않습니다. 밭에서 싹이 날려면 일단 씨알이 먹혀야만 하는데 씨알도 안 먹히니 싹이 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마음이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길가는 여러 사람들이 오고가며 밟고 다녀서 흙이 단단하게 굳어져 버린 것이 문제입니다.
그 마음속에 너무 많은 세상의 문화와 세상의 지식이 가득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공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사단이 빼앗아 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 뜻을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18-19절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종교적인 삶을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마음이 단단해지면서 굳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와서 설교를 들어도 말씀이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잠깐은 마음에 와 닿고 은혜를 받은 것 같다가도 교회문을 나가는 순간 다 잊어버리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또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들은 그 죄로 인해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져 있어서 말씀이 떨어져도 말씀이 뿌리를 내릴 그럴 자리가 없습니다.
이렇게 굳어진 마음을 우리는 철저하게 회개의 불도저로 갈아엎어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 이외에는 이 마음이 깨어지고 변화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호 10:12)에서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지금이 여호와를 찾을 때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땅, 굳어진 땅을 기경하라는 말은 갈아엎으라고 뜻입니다.
주님 앞에 나아와 철저히 나의 죄를 회개하고 영적으로 무기력했던 나의 모습을 회개하고, 은혜받는데 무관심했던 모습을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와 기도를 드릴 때 주님께서 굳은 땅을 깨뜨려주시고 갈아 엎어주셔서 말씀이 떨어질 때 뿌리를 내리게 하시고 자라 열매를 맺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 굳어진 마음밭을 기경하여 변화받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돌밭에 뿌려진 씨(5-6,20-21절)
본문 5-6절,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토지는 석회석이 많고 바위가 많아서 대부분 밭이 돌밭입니다. 그래서 씨앗이 이런 곳에 떨어지면 흙이 조금은 있기때문에 뿌리를 내리지만 밑에 돌이 있어 뿌리가 자라지 못하고 햇빛이 비치면 그 뿌리가 말라버리고 곧 시들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 돌밭의 마음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들을 때 잠깐 반짝하고 은혜를 받는데 돌아가면 그것이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환난과 역경과 어려움 속에 다시 좌절하고 옛모습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 속에 미움의 돌덩어리, 원망의 돌덩어리, 섭섭함의 돌덩어리, 이런 것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돌밭에 대한 해석은 (20-21절)입니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라고 하였습니다.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이 사람은 말씀을 듣고 “참 좋은 말씀이야"라고 받아 들였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쁨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 곧 넘어지는 자요” 말씀을 들을 때는 좋았습니다. "맞았어! 진리야! 이 말씀은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의 진리인가!" 우리는 말씀에 전적으로 반응하며 기쁨으로 수용하지만 이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삶에서 무척 불리하다고 느끼는 순간 그 말씀에서 다시 등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가진 것을 다 팔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예수를 믿으면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으로 알았는데, 예수님이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정말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사실 앞에 “이것은 나를 위한 기독교 신앙이 아니야"라는 결론을 맺고 떠나가는 오늘의 부자 청년들의 얼굴을 우리는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육신의 욕망과 정욕을 쫓아갈 때 우리는 홀로 우뚝 서서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그 말씀에 생명을 걸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 바로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돌밭같은 마음속에 이 진리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오늘의 교인들은 쉽게 왔다가 쉽게 떠나갑니다. 이렇게 당장의 유익만을 기대하는 사람, 자기자신이 전부인 사람은 세상의 시험앞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자갈밭에 뿌려진 말씀은 금방 드러납니다. 여러가지 시험앞에 무너져서 넘어집니다. 이것이 오늘도 계속되는 자갈밭과 같은 마음밭의 비극입니다.
3. 가시밭에 뿌려진 씨(7,22절)
7절,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씨가 가시떨기밭에 떨어졌는데 가시가 자라서 씨의 기운을 막기 때문에, 더 이상 자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22절)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이 사람도 처음에는 말씀을 잘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자라나지 못하도록 이 사람의 생각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설명하십니까? "세상의 염려, 재물의 유혹"입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 밭에 적이 있다면, 그것은 사단입니다. 자갈밭 같은 마음 밭에 적이 있다면, 이것은 육신입니다. 그러나 가시밭 같은 마음 밭에 적이 있다면, 그것은 세상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3대 적 "마귀와 육신과 세상"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사랑, 육신에 대한 정욕과 돈에 대한 욕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교회를 다닙니다. 말씀을 받았습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여전히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어 말씀이 자라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런 가시밭의 마음은 세상의 염려와 물질의 유혹이 그를 사로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염려는 마음이 갈라져 있는 상태입니다. 돈과 하나님을 다 섬기다 보니 마음이 갈라졌습니다.
여러분, 환란과 핍박속에서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에 로마제국의 핍박이 시작되면서, 로마의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요구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나를 주님이라고 부르라!"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로마의 황제는 "황제가 주님"이라고 말하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래서 주님 한 분만을 주님이라고 믿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핍박을 받았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말하지만, 로마황제앞에서는 황제를 주님이라고 말하겠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선택하려고 했던 사람들, 주님과 세상을 동시에 선택하려는 유혹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돈을 벌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심이가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돈을 벌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이 물질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합당한 삶을 살고, 내 자녀를 하나님의 뜻대로 키우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사업에 물질을 사용하고, 생명을 구원하고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물질과 세상이 하나님에 대한 나의 사랑을 가로막고, 신앙을 억누르고 그 믿음을 자라나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영적인 적입니다.
예수께서는 (마 6:24)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오늘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물론 교회에 와서는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세상에 나가서 손에 물질이 들어올 때마다 더 커다란 관심이 하나님이 아니고, 말씀이 아니고 세상에 주는 물질에 우선순위가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요일2:16-17)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처럼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저 유명한 헬라의 알렉산더대왕이 마지막 죽기 전에 이렇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으면 관 양쪽에다 구멍을 파서 내 손을 바깥으로 내밀으라!" 무엇을 말하고 싶었습니까? 관 양쪽에 빈손을 내밀어서 자신은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정복할 땅이 없어서 울었다는 이 알렉산더 대왕, 그러나 그도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갈 수 없는 그것을 붙잡기 위해서 영원한 진리를 외면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진리를 위해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그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있는 신앙의 순결, 그것이 바로 가시밭을 걷어내는 비결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가시와 같은 세상의 염려와 물질의 유혹이 있다면 이 시간 다 걷어내십시오. 그리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으로 하나님 앞에 믿음을 지키고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좋은 땅에 뿌려진 씨(8,23절)
8절,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좋은 땅"입니다. 좋은 땅에 떨어지는 씨는 어떻습니까? 싹이 나고 꽃을 피워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23절)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좋은 땅은 어떤 땅을 가리킵니까?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깨닫는다'라는 단어가 5번이나 반복되어서 나옵니다. 그러면 '깨닫는다' 것의 뜻이 무엇입니까? '깨닫는다' 것은 단순히 understand, 머리로 이해하는 차원의 정도가 아닙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그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진리의 말씀으로 깊이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회개도 수반됩니다. 결단도 포함됩니다. 말씀에 자신을 쳐 복종하고자 내적 투쟁도 수반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8장 15절에서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들어도, 또 그 뜻과 의미를 알아도 깨닫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헤롯은 세례요한의 경고와 책망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습니다. (막 6:20)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하면서도 달갑게 들었다고 했습니다. 달갑게 들었다는 것은그의 말씀듣는 것을 좋아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는 세례요한의 말을 듣고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말씀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요사스런 헤로디아의 말만 듣고 세례요한을 목베어 죽이는 큰 죄의 열매만 맺었습니다.
사무엘서에 보면 사울과 다윗이라는 두 왕이 등장합니다. 그들에게는 사무엘과 나단이라는 훌륭한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문제가 있을 때에 그들의 죄를 분명하게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이때 사울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변명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결국 그의 말로는 비참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경고의 말씀을 마음으로 깨닫고 침대가 젖을 정도로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그랬을 때 다윗왕국은 충만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도 처음에는 그 마음이 길가처럼 완악하여서 조금도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완악한 마음이 열리고 귀가 뚫린 뒤에는 비로서 말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랬을 때에 그는 자신이 바로 죄인 중에 괴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구원자이심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골로새서 2:3절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바울은 비로서 좋은 마음 밭이 되어서 그 마음에 떨어진 말씀의 씨는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마음문을 열고 말씀의 씨앗을 받아들이면 이제 내 뜻대로 살지 못하고 얽매이고 붙잡힌다!.“
그래서 일부러 마음 문을 걸어 잠그고 말씀을 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정도까지만 받아들이고, 더 이상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겸손하고 진지한 마음자세를 가지고 말씀을 영접하게 되면 결코 손해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교만과 욕심 때문에 말씀을 영접하지 않고 튕기고, 반발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땅을 치고 통곡할 날이 올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길가밭, 돌밭, 가시밭과 같은 마음이 이전에 우리 마음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모든 것을 기경하고 갈아 엎어서 옥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앞에 내 자신의 강퍅함, 굳어진 마음, 염려하던 모든 것을 하나님앞에 다 내려놓으시고 회개하십시다. 그리고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성령님은 자신의 내면을 다 드러내놓고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고 천국을 체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좋은 땅에 씨가 뿌리워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깨닫고, 지키어, 이 말씀을 내 삶 속에 적용시키기 위해서 성령님의 도움을 의지하고 인내하며 몸부림을 칠 때 비로소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을 변화시킵니다. 가치관이 변하고 인생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 가운데 임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이 시간 여러분 모두에게 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여러분의 마음 밭에 떨어져, 여러분의 삶을 붙잡고,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역사, 즉 하나님 나라가 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