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없는 날
박성준
그랬지요 비가 왔습니다 청량리에서 창동으로, 백석에서 창동으로, 우아동에서 봉명동으로, 올여름은 세 번의 이사를 했습니다 다시 한 곳에 집과 한 곳에 숙소가 생겼습니다 어디로든 움직이기 싫은 마음이 있어, 늘 어디론가 이동해야 했지요 나는 여름이 싫지 않은데 당신이 여름이 싫다고 하면 이미 나의 여름은 다 옮길 수 없는 거대한 것이 되고 맙니다 닭이 ᄭᅩᄭᅮ요 하고 울고, 가갸 거겨 고교 구규 그기가 라랴 러려 로료 루류 르리라 하고 개구리가 울어도, 소월도 한하운도 찾아오지 않는 여름의 아침, 비가 옵니다 이사를 갑니다 집에서 쏟아져 나온 세간들이 비를 맞고 있으면 나는 자꾸 더 부끄러워집니다 누군가는 내 것을 짐이라고 부르고 또 누군가는 내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나는 나를 잘 알지 못합니다 알기 싫은 마음이 있어, 아는 척을 합니다 그리고 때마침 유리잔이 깨집니다 “너는 왜 이사하는 날마다 비가 와” 완벽하게 깨진 유리잔을 주워 담는 채희의 정수리를 위에서 내려다 봅니다 그랬지요 나도 손이 있었습니다 구름은 움직이면서 비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시현실 2022.가을저자예맥 편집부출판예맥발매2022.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