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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특집] 부활하신 예수님의 실제 이동 거리는?
예루살렘 무덤부터 올리브 산까지... 40일간 330km 넘는 거리 움직여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의 굵직한 행적을 자세하게 담고 있다. 예루살렘의 무덤에서부터 승천한 장소로 알려진 올리브 산까지, 예수님은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다양한 장소에서 나타나시며 세상에 당신의 부활을 선포하셨다. 그렇다면 성경을 바탕으로 살펴봤을 때 부활한 예수님은 승천 전까지 몇 킬로미터를 이동하셨을까?
- 신약성경에 기록된, 부활 이후 예수님의 행적을 현재 지도에 표시해 봤다. 40일간 최소 330km 이상 이동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루살렘과 엠마오 왕복
부활한 예수님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곳은 예루살렘의 무덤 인근이었다. 안식일이 지난 주간 첫날 새벽, 마리아 막달레나를 비롯한 여인들이 천사에게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무덤을 나서 달려가던 중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며 “평안하냐”고 물으셨다.(마태 28,1-10 참조)
지금 예수님의 무덤 자리라고 알려진 곳은 예루살렘의 구시가지로, 주님 무덤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부활한 예수님의 여정이 시작됐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나타나신 후, 같은 날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도 동행하셨다. 특히 루카복음은 이 여정을 자세하게 다룬다. 교회사 전승은 엠마오의 위치를 대략 예루살렘의 서쪽 혹은 북서쪽으로 본다. 어찌 됐든 루카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 여정만큼은 확실히 ‘걸어서’ 이동하셨다.
루카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까지의 거리를 예순 스타디온이라고 언급하는데, 1스타디온은 대략 185m 정도로 예순 스타디온은 11km를 웃돈다. 예수님은 이 거리를 두 명의 제자와 함께 걸으시며 이야기 나누셨고, 제자들의 집에서 그들의 눈을 열리게 하신 뒤 돌연 사라지셨다.
루카복음은 예수님을 목격한 마리아 막달레나와 여인들, 열한 제자, 엠마오로 간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고 말한다. 갑자기 그들 가운데에 예수님이 서시어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당신을 유령이라고 여기는 제자들을 나무라신 뒤 상처 난 손과 발을 보여주신다.(루카 24, 36-49 참조)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토마스에게 옆구리를 만져보라고 하신 것도 언급한다.(요한 20,24-29 참조) 예수님은 이렇게 부활 후 만 하루 동안 엠마오와 이스라엘을 왕복하며 약 22km를 이동하셨다.
- 예수님이 묻혀있던 무덤 위에 세워진 예루살렘 주님 무덤 성당의 입구. 출처 위키미디어
부활 후 예수님이 이동하신 가장 먼 거리는 150여km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5)
요한복음은 어느 날 새벽 예수님이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일곱 제자에게 또 한 번 나타나셨다고 밝힌다.(요한 21,1-14 참조)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다른 두 제자가 고기를 잡던 중 예수님과 만났다.
그들이 작은 배에서 던진 그물은 고기로 가득 찼고, 예수님은 자신을 못 알아보는 제자들을 위해 호숫가에서 손수(?) 숯불과 물고기, 빵을 준비하셨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당신을 사랑하는지 세 번 물어보신 후, 양들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신다.
티베리아스 호숫가는 갈릴래아 호수의 남서쪽에 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150km를 이동해야 했다. 빠른 길로 곧장 갔다면 고산 지대를 넘어가야 했을 것이다. 다만 예수님이 이 거리를 어떻게 이동했는지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
티베리아스는 당시에도 팔레스타인 북부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고 지금도 약 5만 명이 거주하는 휴양·관광도시다.
갈릴래아의 한 산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는 성경 말씀도 있는데(마태 28,16 참조), 티베리아스 호숫가와 같은 여정 중에 들렀다고 가정해 본다면 예수님은 호숫가를 떠나 갈릴래아 지방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셨을 수 있다. 어찌 됐든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티베리아스 호숫가까지 왕복 약 300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셨다.
- 갈릴래아 호수 서안의 도시 티베리아스 전경. 출처 위키미디어
종착지는 승천하신 올리브 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루카 24, 50-51)
예수님은 그 후에도 500명의 제자에게 모습을 보이셨다.(1코린 15,6 참조) 즉 성경에 구체적으로 언급된 장소들 말고도 예루살렘 인근을 활발하게 이동하셨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구체적인 지명이 언급된 곳은 40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승천하신 올리브 산이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강복하시고, 복음 선포 사명을 주신 다음 하늘에 올라 구름에 둘러싸인 채 승천하셨다.
예루살렘 중심부에서 동쪽으로 4.5km정도 떨어진 올리브 산은 해발고도 약 820m로, 갈릴래아 지방 타보르산보다도 높다. 다만 예루살렘도 700m가 넘는 고지대라 올리브 산은 상대적으로 얕은 산처럼 보인다. 바로 동쪽에는 베타니아가 인접해 있다.
예수님이 부활 후 40일 뒤에 승천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올리브 산 정상에는 팔각형으로 봉헌된 ‘승천 경당’이 있다.
이처럼 예수님은 빈 무덤에서부터 올리브 산에 이르기까지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표징을 보여주시며 당신의 부활한 사실과 복음의 기쁨을 전하셨다. 부활한 예수님이 인간의 방식으로 이동하셨다면 예수님이 소화한 거리는 약 330km다. 500명의 제자를 만난 나머지 여정을 고려한다면 이는 최소거리다.
-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한 올리브 산. 출처 위키미디어
[묵시록으로 읽는 믿음과 삶] (15) 한가운데 더불어 하나 되는(묵시 5,1-6ㄱ)
주님은 모든 이에게 보편적 사랑 펼치시는 분
요한묵시록 5장의 주된 질문은 이러하다. “이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펴기에 합당한 자 누구인가?”(묵시 5,2) 어린양의 등장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하늘과 땅 위, 땅 아래 모든 곳을 살펴봐도 오직 어린양만이 봉인을 펼 수 있다고 서술한다. 요한묵시록 5장의 서술은 어린양에게 집중된다.
요한은 어린양을 찾을 때까지 울었다.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는 ‘울음’은 어린양에 대한 집중도를 더욱 부각시킨다. 천상의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을 향한 시선이 어린양을 향해 변화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구약의 하느님이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어좌에 앉으신 분이 들고 있던 두루마리가 어린양에게 전해진 건, 요한묵시록이 말하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하느님 섭리의 연장이고 완성이라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루마리는 안과 밖으로 쓰여 있는 글묶음이다. 전통적으로 안의 것을 신약성경으로, 밖의 것을 구약성경으로 이해하곤 했다. 이미 알려진 구약의 내용을 신약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해 주실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라틴 교부들이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설명하는 유명한 문구와 일맥상통하는 해석이다. “Novum testamentum in vetere latet, Vetus in novo patet.”(신약은 구약 안에 숨겨져 있고, 구약은 신약 안에서 밝히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 해석은 요한묵시록 5장의 서사 흐름과 얼마간 상이한 점이 있다. 어린양에게 주어진 두루마리는 ‘읽히기 위한 글묶음’이 아니다. 진즉에 주어진 질문은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펴는 이’를 찾는 것이었다. 어린양은 물론이고 요한묵시록은 두루마리 안과 밖의 내용에 대해선 침묵한다. 두루마리는 읽히는 것이 아니라 열리는 것의 상징이다. 그리고 열기 위해 등장하는 어린양이 누구인지에 대한 읽기가 우선이어야 한다.
어린양은 사자와 연동되어 서술된다. 전통적으로 메시아와 그 집안을 가리켰던 힘센 사자가 요한의 눈에는 어린양으로 나타난다. 사자와 어린양은 힘의 구도 속에 공존할 수 없는 두 동물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구약의 전통과 신약의 새로운 해석이 서로 부딪히나 그럼에도 만나고 있음을 감지한다.
하느님은 인간의 역사 안에, 인간의 새로운 해석과 상상 안에 다양한 상징과 은유로 서술되고 전파된다. 미국의 성경학자 웨인 A. 믹스(Wayne A. Meeks)는 한 세미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은유의 상징으로 소개했다. 그 자리에서 다른 성경학자는 은유라는 표현에 대해 비판적이었는데, 비판의 요지는 “십자가는 문자적 사실”이라는 것. 사도 바오로에 의해 십자가가 소개되고 서술되는 것은 십자가에 대한 사실적 요소를 바탕으로 적혀졌다는 이른바 역사비평적 견해를 드러낸 것이다. 그런 비판에 웨인 믹스는 이렇게 답했다. “십자가가 은유가 아니라면 그저 나무 두 토막을 겹쳐놓은 것 뿐”이라고.
개인적으로 웨인 믹스의 견해는 요한묵시록을 읽는 데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수많은 시간들 안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새로운 은유와 상징으로 신앙인들 안에 소개되고 전파되어야 한다. 하나의 글과 표현에 얽매여, 그 글과 표현을 ‘사실’이라고 우겨대는 완고함은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하느님을 인간의 한계지워진 인식과 사유 안에 가두어 버리는 교만일 뿐이다. 오늘 우리 시대에 하느님은 또 어떤 식으로, 어떤 상징으로 해석될 것인지, 그리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좀 더 가까이, 그들의 폐부 깊숙이 닿아 있는 하느님을 어떻게 소개할 것인지 교회는 고민해야 한다.
사자를 어린양으로 새롭게 소개하는 요한묵시록의 해석을 좀 더 세심히 살펴보자. 어린양은 홀로 자랑스런 사자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어린양의 공간적 형식을 가리키는 ‘한가운데’(ἐν μέσῳ)라는 말마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말 성경 번역은 어린양의 공간을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사이에’로 해석하지만, ‘사이’가 아니라, ‘한가운데’이다. 어린양은 하느님을 가리키는 어좌에 앉으신 분과 지상의 하느님 백성인 스물네 원로, 어디든 계시는 하느님의 보편적 현존을 가리키는 네 생물과 ‘하나의 공간’ 안에 함께한다. 그러니까 어린양은 특정 공간이나 지위를 바탕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어린양은 시공간의 배타적 인물이 아니라 모든 시공간을 아우르는 친교의 장으로서 현존하시는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이런 분이시다, 저런 분이시다 고백하는 건 쉬운 일이나 이런 분도, 저런 분도 되신다는 사실을 겪는 건 때론 고통스럽다.
‘내가’ 찾아 나서는 메시아가 뚜렷할수록, ‘우리의’ 메시아는 흐릿해질 수 있다. 예수님은 특정 개인의 구세주가 아니라 선인이나 악인이나, 죄인이나 의인이나, 아픈 이나 성한 이나 모두에게 구세주라는 사실은 때론 따뜻한 이야기이나 때론 불편하여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이기도 하다. 특히 나와 불편한 이들을 위해서도 예수님은 사랑으로 다가오신다는 사실은 받아들여야 하는 신앙의 당위이지만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거북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린양을 살펴본다는 것은 긴 호흡과 용기를 필요로하는 일인지 모른다. 지금 글을 쓰는 순간에도, 오늘의 예수님은 또 어떻게, 어떤 이들을 향해 당신의 보편적 사랑을 전개하고 펼쳐나가실지 질문해 본다.
민감하여 함부로 이야기하기 힘든 정치, 경제, 사회의 이슈들로 우리나라가 오늘처럼 두 쪽으로 완전히 갈라진 험악한 순간에도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하실지 고민해 본다. 뜻이 안 맞는다며 내뱉는 단절과 배타의 언어에 우리는 참담했고, 그로써 우리는 조금씩 안정과 평화를 이 나라 이 땅에 만들어갈 것이다. 어린양은 늘 우리 ‘한가운데’ 저 혼자 돋보이지 않고 더불어 하나 되는 데 당신을 온전히 내어놓으실 것이다.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67) 간음하다 붙잡혀 죽게 된 여성
구약시대에 여성은 남자의 재산목록 중 하나로 매매가 가능한 존재였다. 그래서 여성은 외부 세계와 완전히 격리되었고 철저히 아버지나 남편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최근에도 이슬람 지역에서 여성이 몹쓸 짓을 당하고 집에 오면 가족 중 오빠나 사촌들에게 피해를 당한 여동생을 돌로 쳐죽이는 명예살인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가장(家長)의 명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딸이나 아내, 친척 여성을 살해하는 범죄로 매년 5000여 명이 명예살인으로 목숨을 잃고 있고, 실제로는 그 이상이라 추정된다.
이러한 악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있었다. 결혼한 사람이 자신의 아내나 남편이 아닌 자와 성적 관계를 맺는 것은 십계명의 제6계명에서 금하는 것이다. 예언자들은 간음의 심각성을 알리며 간음을 우상 숭배 죄의 표상으로 보았다.
구약시대 여성들은 사회뿐 아니라 종교적인 면에서도 불리했다. 엄격한 토라, 율법, 랍비 문헌에서 여성의 참석을 금지하는 성전 의식을 실행했다. 이스라엘의 연중행사인 유월절, 초막절, 오순절에도 여성들은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다. 여성들은 율법을 배울 수 없었고 율법 교사가 될 수도 없었다. 여자의 손에 토라가 들어가느니 불에 태워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시대였다.
이스라엘 여성의 위치가 노예와 법률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은 단 두 가지였다. 혼인 지참금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고, 남편과 이혼·사별할 때 여성에게 지급될 액수가 담긴 혼인 증서를 가지고 있었다. 신약시대에도 여전히 공적인 삶은 철저히 남자들에게만 허용됐다. 집안에서도 딸들은 모든 궂은일을 도맡아 했지만 남자 형제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지 못했다.
예수님이 살았던 시대는 여성의 인권이 보장되던 시대가 아니었지만, 예수님은 여성들을 비하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여성도 한 인격체로 받아들이셨다. 어느 날 갈 길 바쁜 예수님의 일행을 막아섰다. 일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한 여인을 질질 끌고 왔던 것이다. 그 여자는 머리칼은 헝클어져 있고 몸에 피가 흐르고 옷도 찢어져 있었다. 여자는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선생님, 이 여자는 간음하다 현장범으로 붙잡혔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이런 여자는 돌로 쳐죽여야 하는데 선생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사실 당시에 간음은 돌로 공개처형을 하는 중죄였다. 교활한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수작이었다. 예수님이 그녀를 용서하라면 율법을 거스리는 것이고 율법대로 돌로 죽이라고 한다면 평소 가르침에 위배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모든 이들은 예수님을 주목했다. 예수님은 적막을 깨고 별안간 입을 여셨다.
“여러분 중에서 여태까지 죄지은 적이 없는 사람이 저 여자를 돌로 쳐죽이시오.”
나이가 많은 사람들부터 하나둘씩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예수님 앞에는 여자만이 남게 되었다. 예수님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여인을 쳐다보았다. “이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젠 다시 죄짓지 않도록 하여라.”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종려나무와 타마르
신명 8,8에는 가나안의 일곱 토산물이 나오는데, 바로 밀, 보리, 포도주, 무화과, 석류, 올리브 기름 그리고 꿀입니다. 옛 랍비들은 “꿀”을 대추야자 꿀로 풀이하였는데요, 지금도 대추야자 열매를 시럽처럼 만든 것을 꿀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땅의 절반은 광야지만, 대추야자는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랍니다. 성경에는 대추야자가 “야자나무” 또는 “종려나무”로 등장합니다. 영어로는 palm tree이며, 이는 라틴어 [팔마](palma)와 통합니다.
당도가 높아 꿀로 만들 수 있는 대추야자는 예부터 광야의 길손들에게 요긴한 식량이었습니다. 긴 여정에 지친 이들은 영양분을 빠르게 공급받을 수 있고, 열매를 말리면 휴대도 가능합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마태 3,3)인 요한이 그곳에서 먹었던 “들꿀”(마르 1,6)도 대추야자 꿀로 보입니다. 대추야자는 히브리어로 [타마르]인데요, 생긴 모양이 싱그럽고 예뻐 타마르는 여인의 이름으로도 종종 사용되었습니다.
성경에도 두 명의 타마르가 등장합니다. 창세 38장에서 유다의 며느리로 소개되는 타마르가 그중 한 명입니다. 그는 유다의 맏아들 에르의 아내였지만, 남편이 자식 없이 죽자 시동생 오난과 재혼합니다. 하지만 오난은 본인이 낳는 자식이 형의 후손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남편의 의무를 제대로 행하지 않았고, 그 역시 자식 없이 세상을 떠납니다. 이에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마저 잃을까 걱정하여 타마르를 친정으로 돌려보내지요. 하지만 타마르가 꾀를 내어 창녀로 분장하고, 시아버지와 동침해 자식을 얻습니다. 레위 18,15에 따르면 이는 이스라엘에서 금지된 일이지만, 타마르는 가나안 여인이었습니다. 가나안의 일부에 해당하는 히타이트의 법전(기원전 14-13세기)에 의하면, 과부가 된 여인은 시형제가 거두어야 했고, 그도 없으면 시부가 거두어야 했습니다(193항). 이런 조치를 통해 약자인 과부를 보호할 수 있었을 터입니다. 타마르는 자신이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여 스스로 살 길을 도모한 것이며, 이후 자초지종을 알게 된 유다도 타마르가 옳다고 인정합니다. 이처럼 특이한 과정 속에 태어난, 유다와 타마르의 쌍둥이 아들 페레츠가 다윗의 조상이 됩니다(룻 4,18-22).
성경에 등장하는 또 다른 타마르는 다윗의 딸이자 압살롬의 친누이입니다. 2사무 3,3에 따르면, 압살롬은 다윗이 헤브론의 임금이던 시절 셋째 아들로 태어납니다. 타마르와 압살롬 남매의 어머니는 그수르 임금 탈마이의 딸 마아카인데, 당시 그수르는 이스라엘의 봉신 국가였던 듯합니다. 말하자면, 다윗이 봉신 국가의 공주와 정략 결혼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타마르가 이복 오빠 암논에게 욕을 당하자 분노한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그수르로 도망갑니다(2사무 13장). 결국 아버지의 용서를 받고 다시 돌아오지만, 왕위를 다른 왕자에게 빼앗길 걸 우려해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게 되지요. 그러고 보면 종려나무와 타마르 열매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도 관련되지만(요한 12,13), 그분의 조상인 다윗에 얽힌 이야기 역시 들려줍니다.
[성경 속 희망의 순례자들] 예언자 에제키엘
진퇴양난에 처하거나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 같은 상황이 닥치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이 떠오르곤 합니다. 이 속담에는 살아있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다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조상들의 깨달음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이닥친 가장 절망적인 상황을 꼽는다면 당연히 바빌로니아의 군대에 의해 성전과 왕궁이 불타고, 나라는 완전히 멸망하였으며, 이스라엘 백성의 상당수가 자기 나라를 떠나 이국땅으로 유배를 가야 했던 기원전 6세기의 상황일 것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울부짖었듯이 하느님께서는 늘 이스라엘의 희망이셨고, 재난의 때에 구원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방인처럼, 하룻밤 묵고자 들어선 나그네처럼” 되셨습니다.(예레 14,8 참조) 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느님이 그들 곁을 떠나버린 듯한 상황을 맞이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절망적인 처지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은 에제키엘 예언서 37장 11절에 등장하는 “우리 뼈들은 마르고 우리 희망은 사라졌으니, 우리는 끝났다.”는 말일 것입니다. 마른 뼈는 되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죽음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들의 삶은 끝장난 듯이 여겨졌고, 더 이상의 미래는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유배민들의 곁에서 그들과 같은 처지의 삶을 살았던 예언자 에제키엘은 절망적인 처지에서 부지런히 희망의 샘물을 끌어 올립니다. 그는 ‘마른 뼈의 환시’를 통해 그들에게 주어질 새로운 삶에 대해 선포합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의 처지가 넓은 계곡 바닥에 수북이 쌓여 있는 바싹 말라 버린 뼈와 같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그 뼈에 숨을 불어넣으시어 그들을 살려내실 것임을 선언합니다.
예언자가 선포하는 희망의 말은 온 사방의 숨을 불러들여 절망으로 죽은 이들을 되살아나게 할 것입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절망의 무덤을 열고 무덤에서 백성들을 끌어 올려 주실 분이시라고 선포합니다. 그들을 되살리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다시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시리라고 말합니다. 그제야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에제키엘 예언자에 따르면 하느님은 누구의 죽음도 기뻐하지 않으시는 분, 그들이 살기를 바라시는 분이십니다.(18,32 참조)
절망할 이유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우리 역시 그의 길을 따라 걷기를 촉구합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숨에게 예언하여라. 사람의 아들아, 예언하여라. 숨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 숨아, 사방에서 와 이 학살된 이들 위로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3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