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0일 연중 제31주일 평신도 주일
평신도는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으로서, 성직자가 아닌 모든 신자를 가리킨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역할을 크게 부각하면서, 평신도를 통하여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이러한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1968년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지금은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단체 협의회’)의 결성과 더불어 해마다 대림 제1주일을 ‘평신도 사도직의 날’로 지내기로 하였다. 평신도들에게 주어진 사도직의 사명을 거듭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뒤 1970년부터는 연중 마지막 주일의 전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내 오다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연중 마지막 전 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정하시면서 2017년부터 한 주 앞당겨 지내고 있다.
오늘은 연중 제32주일이며 평신도 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고아들과 과부들의 아버지, 떠돌이들의 피난처, 억눌린 이들의 정의이시니, 하느님 사랑에 의탁하는 불쌍한 이들을 지켜 주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자유와 빵을 넉넉히 얻어,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가진 것을 형제들과 함께 나누도록 합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8-4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38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교만하고 오만한 저희를 용서하소서.
어려서 교리를 배울 때 요리강령이라는 그림을 그린 책으로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나는 그 그림교리서를 볼 때마나다 그 정교하고 자세한 그림설명이 얼마나 마음이 설레고 좋았는지 지금도 자주 그 그림교리서를 본답니다. (요리강령(要理綱領) : 그림교리서, 프랑스 파리의 본느 출판사에서 간행된 원본을 한기근(韓基根) 신부가 번역하고 뮈텔 주교가 감준 하여 1910년 서울의 성서 활판소에서 간행된 그림교리서인데, 한 면에 그림을 싣고, 다른 한 면에 해설을 한 교리서랍니다. 그 교리서에는 칠죄종(七罪宗 : 죄를 짓게 만드는 일곱 가지 대 마루)이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 7죄종은 교오, 간린, 미색, 분노, 질투, 탐도, 해태로 죄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것들이라고 경계하고 삼가도록 하였습니다.
그 첫 번째 것이 교오(驕傲 :교만하고 오만한 것)였습니다. 나는 여기서 요리강령에 나와 있는 대로 교오를 옮겨 적습니다.
<교오는 망령되게 자기가 남보다 높고 남보다 초월한 줄로 여기는 것이니 교오는 마귀가 천주께 거역할 때에 비로소 시작한 죄이니라. 교오에서 조차 나는 것은 자기 모든 것을 드러내어 사랑함과 자기가 무소불능한 줄로 여김과 없는 것도 있는체하여 겉만 꾸밈과 부모와 어른들에게 불순함과 도무지 남은 경(輕:가볍게)히 여기고 저는 자만자족(自慢自足)한 줄로 여김이니라.
(상본 하의 왼편은)바벨탑이니 노아의 후손들이 망령되게 교오한 생각을 내어 하늘까지 올라가는 탑 하나를 쌓아서 이후 홍수도 피하고 우리 이름을 후세에 전하자 하는지라 천주 그 미친 생각하는 자들을 벌 하사 그 말을 각각 달러지게 하시니 물을 떠오라하면 불을 떠오는지라 할 수 없이 역사를 중지하고 천하에 흩어졌으며 그 탑은 중도에 폐하여 이름이 바벨이니 이는 뒤죽박죽이란 뜻이니라.>
오늘 주님께서는 복음에서 율법학자들의 교오함에 대하여 조심하고 경계하여 세상을 살도록 자세히 가르쳐 주십니다. 참으로 자상하신 주님이십니다.
1. 긴 겉옷을 입고 있는 그들을 경계하고 그 삶을 본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긴 옷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학위 가운 중에서 박사학위가운은 가장 길게 되어 있습니다. 학사가운이나 석사가운과 달리 소매의 길이도 다르고, 가운의 길이도 각각 다릅니다. 이것은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즉 학문의 깊이가 하늘에서 땅까지 뻗어 있다는 의미이고, 하늘에서 땅까지 진리를 꿰뚫고 있다는 상징입니다. 그런 옷을 입고 자랑스럽게 돌아다닌다는 것은 이 세상에 자신들보다 하느님에 대해서나 세상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없다는 교만하고 오만한 태도입니다.
2. 장터에서 사람들에게 인사 받기를 즐기고 있는 그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음을 상징적으로 과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박수갈채를 받기를 간절히 소망하기도 합니다. 각종경연대회에서 우승하고자 노력하고, 유명한 배우나 가수는 그 박수갈채에 인생을 모두 걸고 삽니다. 그래서 장터에서 사람들에게 인사 받는 것에 재미를 붙이면 우쭐해져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찬미를 받으려고 한답니다.
3.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즐기는 율법학자들은 위대한 스승으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정말 위대한 스승은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존경합니다. 그러나 없는 권위를 가지고 권위 있는 스승이 되려는 사이비 스승이 많이 있는데 그들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4. 잔치자리에서는 윗자리에 앉기를 즐기고 있는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은 대접받기를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대접을 받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대접할 줄 모릅니다.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으시고,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대접받기를 즐기는 그 태도를 조심하라고 경계의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5. ‘과부의 재산을 등쳐먹고’, 이 말씀은 아주 대단한 말씀입니다. 우리 속담에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입니다. 그 당시의 과부는 남편도 없고, 남편의 형제들도 없는 아무도 돌볼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과부들을 돌보아주어야 하는 법칙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국가 보조금으로 나오는 작은 돈을 갈취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라는 것입니다.
6.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는 말씀을 들으면, 그들의 가장 가증스럽고 위선적인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기도를 길게 하려면 좋은 말을 많이 찾아내서 목소리도 높여야 하고, 음악가처럼 목청도 좋아야 합니다. 자랑스럽게 기도하려면 유식한 말이 아주 잘 배합되어야 하고,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처지와 환경을 잘 들먹여야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저렇게 기도를 잘할까?’하는 부러움을 받으려는 태도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도하면 기도발이 좋아서 하느님께서 꼭 들어주신다는 확신에 차 있어서 하느님을 마치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런데 그렇게 교오(驕傲)에 빠져있는 율법학자의 모습이 꼭 나를 닮은 듯한 생각이 들어갑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처럼 살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제게 경계하여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아니 사실이 그렇답니다. 무조건 언제나 그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은 많이 우울합니다. 무조건 용서를 청한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