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회사 생활을 청산하고, 제주에 내려왔다.
일탈 혹은 도피 아니면 새로운 시작
그것도 아니면 그냥 흘러가는 인생의 한 일부분이겠지.
3개월의 제주 여정
혹은 더 오래 머물 수도 있을 제주
그곳에서 나는 많은 것을 얻으려 하고,
많은 것을 얻고 있다.
멀리서 해가 지면서 깔리는 어둠이 마냥 차갑지만은 않다.
여덟 번째 이야기 : 일몰이 아름다웠던 용눈이오름
용눈이오름
용눈이오름은 구좌읍에 위치한 오름으로 해발 247.8m, 높이 88m, 둘레 2,685m 정도 되는 오름으로 360여 개의 오름 중 유일하게 분화구가 3개인 오름이다.
봄, 여름에는 잔디가 가을, 겨울에는 억새가 덮이며 계절마다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오름이다. 용눈이오름은 다른 오름과 달리 세 개의 능선으로 이어져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경사가 완만해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 편하게 오를 수 있다. 또, 위치상 동쪽 끝에 있어 좋은 날씨에는 멀리 성산일출봉과 우도까지 전망이 가능하며 주변 다랑쉬오름과 지미봉도 볼 수 있다.
이 풍경을 봤다면 이미 누구든 용눈이오름에 반했을 것이다.
용눈이오름의 유래는 부드러운 곡선을 자랑하는 오름의 느낌과는 다르게 거친 느낌을 받는다. '용눈이'라는 이름이 용(龍)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려오는 유래중의 하나는 이 오름의 모습이 용들이 놀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용놀이오름'이라고 불렸던 것이 용눈이 오름으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용눈이 오름을 가보면 세 개의 봉우리가 흘러내리며 겹쳐지고 비켜서 있는 모습이 마치 용들이 춤추는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유래는 위에서 내려보면 흘러내린 능선들은 휘감고 있는 용의 몸통 같고 분화구는 용의 눈처럼 보여 '용눈이오름'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용눈이 오름은 부드럽고 유연한 느낌의 오름임에도 이름은 강력한 느낌을 주는 게 반전인 매력적인 오름이다.
오름의 전설
제주도는 한반도와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화산 섬이라는 특이한 구조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역마다 얽힌 설화가 많다. 그중 제주의 시초가 되는 설문대할망 전설은 빼놓을 수 없다.
설문대할망은 신화적인 인물로서 제주도 설화의 대부분이 이 설문대할망으로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름 역시 설문대할망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제주의 360여 개의 많은 오름의 유래는 설문대할망과 한라산의 탄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설문대할망이 제주를 만들 때 바다의 흙을 할망의 치마폭에 담아 날라 한라산을 만들었는데,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나를 때 치마의 터진 구멍 사이로 조금씩 새어 흘러나온 흙들이 오름이 되었다는 이 가벼운 이야기가 오름의 시초가 된 설화 중 하나이다.
설문대할망의 전설은 가볍고, 재밌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 계속 전해지고 있으며 아직까지 제주도민의 일상에 녹아들어 함께 살아가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용눈이오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용눈이오름은 내겐 꽤나 기분 좋은 추억을 남겨준 장소이다. 어쩌면 내 인생에 새로운 교훈을 준 곳이기도 했다.
용눈이오름을 처음 만난 건 올해 6월쯤이었는데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보니 말이 뛰어노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오름을 오르지도 않았는데 눈앞에 아름다운 모습들이 펼쳐지니 딱히 올라가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날씨가 너무 더워 오르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용눈이오름을 눈앞에 두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오르지 않았다.
다시 찾아온 용눈이오름은 어느 정도 정보를 수집한 상태로 가게 되었는데, 왜 내가 그날 그때 오름을 오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오름 정상까지 15분이면 오르는 것을 그냥 포기했다는 것이 이제 와 후회로 남았다.
용눈이오름은 내겐 최고의 오름이었고, 가장 아름다운 오름이었으며 대한민국에서 보기 힘든, 갖기 힘든 아름다운 뷰와 선셋을 갖고 있는 곳이었다. 어쩌면 나는 최고의 오름을 다시 찾은 사람이 될 수 있었지만, 처음 찾은 사람이 된 것이다.
한 발자국, 딱 생각한 대로 행동만 했더라면 말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인생의 교훈을 얻었다. 한 발자국의 중요성을 말이다.
내게 최고의 오름이었던 용눈이오름
왜 최고였는지, 왜 반했는지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해보려한다.
첫째, 주변에 건물이 없다.
용눈이오름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자연경관이 예술이다. 그 이유가 있다. 주변에 건물이 없기 때문에. 자연을 망치는 건 자연재해도, 동물들도 아니다. 바로 사람이다. 내가 자연에 놀란 경우가 몇 있는데 모두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랜드캐니언, 요세미티 국립공원, 우유니 소금사막 등 사람이 건드릴 수조차 없는 자연은 나를 반하게 했다. 용눈이오름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의 최소한의 개입이 용눈이오름을 반하게 했다.
둘째, 부드러운 곡선의 능선
부드러운 곡선이 주는 아름다움은 바르셀로나 구엘공원만 가봐도 알 것이다. 가우디의 자연 주의와 곡선의 미학이 담긴 곳이니까. 부드러운 곡선이 주는 아름다움은 자연에서 더 빛을 발한다. 능선 위로 떨어지는 해와, 떠오르는 달은 춤을 추듯 곡선을 타고 다닌다. 이 모습을 본 순간 용눈이오름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셋째, 동물과 교감하다.
용눈이오름이 주는 또 다른 행복은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오름이라는 것. 정상에 올라가면 풀을 뜯어 먹는 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말들을 가까이서 바라보며 교감할 수 있던 것이 용눈이오름에 반한 이유 중 하나이다.
기본적으로 날씨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용눈이오름에서 보는 일몰은 많은 감정을 갖기에 충분했다. 멀리서부터 따뜻하게 떨어지는 태양은 오늘 하루의 끝을 알려주며, 누군가에겐 위로가, 누군가에겐 다음날을 준비하기 위한 응원을, 나에겐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