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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오신(三省吾身)
날마다 세 번씩 내 몸을 살핀다는 뜻으로,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의 행동을 반성함을 이르는 말이다.
三 : 석 삼(一/2)
省 : 살필 성(目/4)
吾 : 나 오(口/4)
身 : 몸 신(身/0)
(유의어)
삼성(三省)
일일삼성(一日三省)
자원자애(自怨自艾)
출전 :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
삼성(三省)은 ‘세번 반성한다’는 뜻이고, 오신(吾身)은 ‘나의 몸가짐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즉, 날마다 세번씩 자신을 반성한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에 나오는 다음 구절(句節)에서 유래한 성어이다.
중국의 춘추시대(春秋時代)에 공자(孔子)의 제자 증자(曾子)는 항상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잘못한 점이 있는지를 반성하였다. 증자(曾子)는 "나는 매일 내 몸을 세 번 살핀다(吾日三省吾身).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하는데 충실하지 않았는지(爲人謀而不忠乎), 벗과 함께 사귀는데 신의를 잃지 않았는지(與朋友交而不信乎),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못하지는 않았는지(傳不習乎)"라고 하였다.
증자(曾子)의 말에서 나온 삼성오신(三省吾身)은, 날마다 자기 스스로 행한 일 가운데서 남의 일을 정성을 다하여 도와주었는지, 친구에게 믿음이 없는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스승의 가르침을 잘 배웠는지 등 이 세 가지를 반성한다는 말이다.
첫째, 남을 도와 주면서 정말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만큼 성실하게 도와 주었는가 하는 점이다.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건성에 불과할 뿐이니 진정한 도움이라고는 할 수 없다.
둘째, 친구와 교제를 하면서 혹 신의(信義)없는 행동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면 결국 신의를 해치는 것이 되며 나아가 자신의 해악(害惡)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요즘 깊이 새길 만하다 하겠다. 여기서 친구는 굳이 벗의 개념을 넘어 타인과의 인간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셋째, 스승에게 배운 바를 잘 익혔던가 하는 점이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게을리하면 결국 그 도(道)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고, 또한 잘못된 지식을 다시 제자에게 전하는 이중(二重)의 죄악을 범하게 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진실, 신의, 노력을 강조한 것이다
하루의 일 세 가지를 살핀다는 뜻으로,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의 행동을 반성한다는 일일삼성(一日三省)과 같은 뜻이다.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고 수양에 힘쓴다는 뜻의 자원자애(自怨自艾)와 비슷한 말이다.
증자(曾子)는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에게 전했다. 자사는 증자의 제자로 중용(中庸)을 지어 공자의 중용사상(中庸思想)을 후세에 전했다.
맹자(孟子)는 자사의 제자로 공자의 도를 전하는 맹자(孟子)를 썼다. 대학(大學), 중용(中庸), 논어(論語), 맹자(孟子)를 사서(四書)라고 하는데 모두 유교(儒敎)의 경전이며 동양의 지도사상(指導思想)이다.
일찍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제자가 있었기에 소크라테스가 대철인이 되었고, 장자(莊子), 열자(列子), 한비자(韓非子) 같은 제자가 있어서 노자(老子)가 대성이 될 수 있었다. 공자(孔子)가 위대한 성인이 된 것 역시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 같은 제자들의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논어(論語)의 태백편(泰伯篇) 제4장(章)이다.
曾子 有疾이어시늘 孟敬子 問之러니 孟敬子는 魯大夫仲孫氏니 名은 捷이라 問之者는 問其疾也라
증자가 병이 있거시늘 맹경자가 문병하더니, 맹경자는 노나라 대부 중손씨니 이름은 첩이라. 묻는다는 것은 그 병을 물음이라.
曾子 言曰鳥之將死에 其鳴也 哀하고 人之將死에 其言也 善이니라
증자 말씀하여 가라사대 새가 장차 죽음에 그 울음이 슬프고, 사람이 장차 죽음에 그 말이 선하니라.
君子 所貴乎道者 三이니 動容貌에 斯遠暴慢矣며 正顔色에 斯近信矣며 出辭氣에 斯遠鄙倍矣니 籩豆之事則有司 存이니라
군자가 도에 귀히 여기는 바가 셋이니, 용모를 움직임에 이에 포만(暴慢; 포악스럽고 거만함)을 멀리하며, 얼굴빛을 바로 함에 이에 미더움에 가까우며, 말 기운을 냄에 이에 비루하고 거스림을 멀리하니 변두(籩豆)의 일(제사지내는 일)인즉 유사(有司)가 있느니라.
너무도 유명한 증자의 이 말은 후대에까지 전해진다. '죽으려는 새의 울음소리는 슬프고, 죽음에 임하는 사람의 말은 착하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죽을 때는 선(善)한 말을 한다'는 것이다.
지도자들이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용모에 공손하며 포악하고 거만함을 멀리하며, 둘째 얼굴 표정을 단정히 하고 성실성을 지키며, 셋째 말씨를 부드럽게 해서 야비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피하라는 것이다.
그는 세 가지 실천도덕으로 삼성(三省)을 가르쳤고, 임종(臨終) 시에는 지도자의 세 가지 지도지침(指導指針)을 유언으로 남겼다. 또한 논어(論語)의 태백편(泰伯篇) 제3장(章)에서는, "증자가 병이 있어 문제자를 불러 가라사대, 내 발을 열며, 내 손을 열라. 시에 이르길 전전긍긍하여(두려워하고 두려워하며 조심하고 조심하여) 깊은 못에 임하는 것같이 하면 얇은 얼음을 밟는 것같이 한다 하니, 이제인 뒤에야(앞으로는) 내 (불효를) 면함을 알았노라, 제자들아(曾子 有疾하사 召門弟子曰啓予足하며 啓予手하라 詩云戰戰兢兢하야 如臨深淵하며 如履薄氷이라 하니 而今而後에아 吾知免夫와라 小子아)!"라고 하였다.
증자는 공자의 제자 중에서 효행이 가장 두터운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임종시에 제자들을 불러서 몸에 이상이 없는가를 살펴보라고 했다. 그는 시경(詩經)을 인용하여 깊은 못을 들여다보듯, 살얼음을 밟고 건너가듯, 두려워하고 조심하면서 몸을 지켜왔다가 이제 완전한 몸으로 죽으니 걱정이 없다고 한 것이다.
또한 효경(孝經)의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에서는 "신체의 머리털과 피부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몸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孝)의 시작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몸을 소중히 보존하는 것이 효의 근본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立身行道, 揚名於後, 以顯父母, 孝之終也)"라 하였다.
이것은 효를 다했다는 즐거움과 충실한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다는 안도감, 그리고 이제는 의무에서 풀려났다는 승리감에서 하는 말일 것이다. 사도(使徒) 바울은 “나는 달려갈 길을 다 달렸다”라고 했다. 사람이 죽을 때 이와 같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위대한 죽음이다.
논어(論語)의 태백편(泰伯篇) 제5장에서는 증자가 말하기를(曾子曰), “재능이 있으면서도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 물어보며, 학식이 많으면서도 학식이 적은 사람에게 물어보며, 학식이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하고, 학식이 충실하면서도 공허한 것처럼 하며, 자신에게 잘못을 저질러도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것은 옛날 나의 벗(顔淵)이 일찍이 이런 일에 종사(從事)하였던 것이다(以能, 問於不能; 以多, 問於寡; 有若無, 實若虛; 犯而不校, 昔者吾友嘗從事於斯矣)”라고 하였다. 이것은 증자가 옛 친구 안회(顔回)의 겸허한 인격을 평한 것이다.
안회는 공자의 제자로 32세에 요절했다.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증자와 함께 그의 스승 공자의 말씀을 전하는데 쌍벽을 이루었을 것이다. 안회 자신은 훌륭한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 물어본다. 자신은 지식과 견문이 풍부한데도 그렇지 못한 사람의 의견을 듣고 받아들인다. 있어도 없는 것처럼 하고 충실한 인격을 갖추었어도 겸손하게 행동하며 다른 사람이 싸우려 해도 대항하지 않는다. 옛날 나의 벗 중에 이처럼 훌륭한 인격자가 있었다고 안회를 추모하는 동시에 그의 겸허한 생애(生涯)를 자신의 철학으로 삼았다.
증자에게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증자의 부인이 저자에 가려고 할 때 아이들이 따라 나섰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돌아와서 돼지고기 반찬을 해서 저녁밥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하고 집으로 돌려 보냈다. 부인이 돌아오니 증자는 돼지를 잡고 있었다. 부인이 놀라서 말하기를 “아이들에게 말한 것은 농담이었어요” 라고 했다. 그러자 증자는 말했다.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면 안 되오. 순진하고 무지한 아이들은 부모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것이오. 지금 아이들을 속이는 것은 자식에게 사람을 속이라고 가르침과 같소.”
증자는 사마천(史馬遷)의 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 의하면 공자보다 46세 연하의 사람이다. 그러니까 공자의 말년의 제자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아버지 증석(曾晳)이 공자의 제자였음으로 그러한 연줄로 자연스럽게 제자가 되었을 것이지만, 증자는 결코 공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공자에 의해 중요하게 언급된 바가 없다. 공자가 말년에 잠깐 가르쳤던 인물인 것 같다. 공자는 그가 좀 아둔한 인간이라고 가볍게 평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자는 논어속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효경(孝經)의 제자로서 유교학사에서 매우 중후한 인물로 다뤄지고 있다. 증자의 제자들은 증자를 공자 이상으로 중후한 인물로서 다루고 있고 논어를 읽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증자가 성인인 것처럼 인식을 강요당하게 된다.
논어(論語)의 태백편(泰伯篇) 3~7장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공자의 사후에 어느 일정기간 증자가 노나라의 공자교단(孔子敎壇)을 확고하게 리드했다는 사실이며, 그 공자 증자 교단 속에서 자사가 교육되었고, 또 자사의 문하에서 맹자가 배출되었다.
맹자는 청년시절 한때, 공자의 고향인 곡부(曲阜)로 유학을 갔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자사도 죽고 없어 맹자는 자사의 문하생에게 배웠던 것이다. 따라서 맹자의 증자에 대한 존경심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권위 때문에 후대에 증자는 효경(孝經)의 저자로 추앙되었을 것이다.
효경(孝經)
효경은 유교 십삼경(十三經) 중의 하나로서 효도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증자의 문인이 지은 것으로 보고 있다. 효경은 두 종류가 있다. 금문효경(今文孝經)과 고문효경(古文孝經)이다.
금문효경은 진(秦)나라 분서(焚書)때 안지(顔芝)가 보관했던 것인데, 이를 정현(鄭玄)이 주석(註釋)하였다 하여 정주본(鄭註本)이라 한다. 고문효경은 한무제(漢武帝)때 노나라의 공왕(恭王)이 공자의 옛집을 헐면서 나온 것인데 이를 공안국(孔安國)이 주석을 하였다 하여 공안국전(孔安國傳) 또는 공씨전(孔氏傳)이라 한다.
금문효경은 18장(章), 고문효경은 2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효경은 어주효경(御注孝經)인데 이것은 당나라의 현종(玄宗)때 금문효경을 중심으로 소(疏)를 달은 것을 말한다. 내용으로는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 천자장(天子章), 제후장(諸候章), 경대부장(卿大夫章), 사인장(士人章), 서인장(庶人章), 삼재장(三才章), 효치장(孝治章), 성치장(聖治章), 기효행장(紀孝行章), 오형장(五刑章), 광요도장(廣要道章) 등이 있다.
효경에 나타난 효의 의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종족의 영속(永續)이라는 생물학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가문의 명예라는 가치 혹은 문화적 측면이라 하겠다.
첫째로 효는 종족 보전이라는 생물학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또한 인류문명의 전수라는 의미를 갖는다. '사람의 신체와 머리털과 피부는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는 구절에서 볼 때, "나의 몸은 부모(조상)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그것을 다시 후손에게 물려주어 자자손손 대를 이어 조상으로 부터 물려받은 문화와 문명을 후대에 잇게 해야 한다. 대를 잇지 못하고 단절하는 것은 조상에 대한 최대의 불효가 되는 것이라 한다. 그러므로 효경의 오형장(五刑章)에서는 죄 중에서 가장 무거운 죄가 불효라고 하였다. 이에 맹자는 불효 중에서 가장 큰 불효는 대를 단절시켜 후손이 없어지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 (孟子 離婁章句上)
둘째로 효는 가치적 문화적 의미를 갖는다. 자신의 인격을 올바르게 세우고 도리에 맞는 행동을 하여 후세에 이름을 날려 부모님의 명예를 빛나게 하는 것이 효의 끝이다.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라는 구절에서 볼 때, 사람은 훌륭한 일을 하여 그 이름을 세상에 떨쳐 가문의 명예를 빛나게 하는 것이 보다 더 큰 효행이라 하겠다. 여기에서 후세에 이름을 드날려 부모의 명예를 빛나게 한다는 것은, 속된 의미에서의 명예가 아니다. 즉 삶이란 생물학적인 생명보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가치적 삶을 실현하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도를 바탕으로 집안의 질서를 세우는 일이 치국의 근본이며, 효도야말로 천(天), 지(地), 인(人) 삼재(三才)를 관철하고 모든 신분계층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최고덕목, 윤리규범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로써 한국, 중국, 일본의 봉건사회에서 효가 통치사상(統治思想)과 윤리관(倫理觀)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효는 온갖 행위의 근본이라 한다. 그 어떤 무엇으로도 견줄 수 없는 부모님의 사랑을 감히 논한다는 것 자체가 불효가 아닌가 한다. 우리의 고전속에 수 없이 등장하는 효와 관련된 구절들을 통해 우리의 마음가짐을 바로 잡는 계기로 삼는 것이야말로 효의 정신을 바로 하는 것일 것이다.
효경에서 표현된 효의 가치는 단순히 부모님만의 효가 아니다. 가정에서의 자식의 도리를 다해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사회와 국가에 대해 규칙과 의무를 다해 그것을 바탕으로 항상 효와 충의 가치를 몸소 실천하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지덕(知德)을 끝없이 연마함과 동시에 바른 행실로 정의를 실천하는 자세속에서 부모님에 대한 효행의 자연스러운 몸가짐을 지닐 수 있을 것이고, 사회와 국가에 대한 봉사의 자세가 갖추어질 것이다. 결국 효는 백행(百行)인 것이다. 가정의 화목에서부터 사회의 평온을 희망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평범한 진리이다.
공자가 주장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의 명분론(名分論)의 가치를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자화상에 비춰볼 수 있는 계기로 생각해 봅니다.
삼성오신(三省吾身)
하루에 세 가지로 자신을 반성한다.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증자왈 오일삼성오신 위인모이불충호 여붕우교이불신호 전불습호
증자가 말하였다. "나는 하루에 세 가지로 나 자신을 반성하나니, 남을 위해 일을 함에 진실하게 했는가? 친구와 사귐에 믿음을 주었는가? 스승에게서 배운 것을 복습했는가?"
증자는 하루에 세 가지로 자신을 반성하여 진실되게 산 결과 공자의 도(道)를 이어받을 수 있었다.
첫번째 반성의 내용은 충(忠)이다. 충자를 풀어보면 위는 가운데 중(中)이고, 아래는 마음 심(心)이다. 가운데 마음이라는 뜻이다. 가운데 마음은 거짓이 아닌 진실한 마음이므로 충은 진실되게 사는 것이다. 사람들과 무슨 일을 할 때 가운데 마음으로 진실되게 하면 상대방은 자신을 믿게 된다. 그러면 다음에 또 일이 생겼을 때 그 사람을 찾게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두번째 반성하는 일은 믿을 신(信)자이다. 신(信) 자를 풀어보면 '사람 인(人)'과 '말씀 언(言)'이다. 사람이 한 말이라는 뜻이다. 자신이 한 말을 친구들이 믿어 주어야지 만약에 자신이 한 말을 친구들이 믿어주지 않으면 그동안 친구들에게 어떤 행동을 하면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세번째 반성의 내용은 '익힐 습(習)'이다. 선생님이 가르쳐준 것을 잊어버리기 전에 반복하여 복습하는 것이다. 그래서 습자를 주자(朱子)는 '새가 자주 나는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풀었다. 새가 자주 나는 연습을 하면 완전히 날게 되고, 학생이 선생에게 배운 것을 자주 복습을 하게 되면 완전히 자기 것이 된다.
증자는 하루가 가기 전에 충(忠), 신(信), 습(習) 세 가지로 자신을 반성한 결과 마음속에 한 점의 먼지도 남아 있지 않게 되어 스승 공자의 마음과 하나가 되었다. 그 내용을 다음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증자야 나의 도(道)는 하나로 모든 것을 꿰뚫을 수 있다"라고 하시니, 증자가 "예"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공자가 나가시자 옆에 있던 다른 제자들이 질문하기를 "무슨 말씀입니까?" 하니 증자가 대답하기를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이다"라고 하였다. (이인편)
공자가 갑자기 증자를 불러 자신의 도는 하나인데 너는 이 하나를 알겠느냐? 증자도 하나를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예'라고만 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질문과 답변이다. 옆에 있던 다른 제자들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자가 밖으로 나간 틈을 타서 증자에게 질문한 것이다. 증자 선생님 방금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는데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증자가 만약 답변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으면 불교의 부처님과 마하가섭이 서로 말을 하지 않고 미소로 답을 했던 장면과 비슷할 수도 있지만 아쉽게도 증자는 답을 했다. 충(忠)과 서(恕)라고 했다. 충은 속마음을 의미하므로 진실된 마음이다. 이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접하면 상대도 기분이 좋아서 자신을 진실되게 대접한다. 이것을 서(恕)라고 한다. 같은 마음이라는 뜻이다.
공자는 이것을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충'이 뿌리면 '서'는 뿌리 위에 자란 가지라고 할 수 있다. 나무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이다. '충'과 '서'의 말은 두 가지이지만 결국은 하나이다. 공자의 말씀대로 하나로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것은 진실이었다. 증자는 공자의 마음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 三(석 삼)은 ❶지사문자로 弎(삼)은 고자(古字)이다. 세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 젓가락 셋을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셋을 뜻한다. 옛 모양은 같은 길이의 선을 셋 썼지만 나중에 모양을 갖추어서 각각의 길이나 뻗은 모양으로 바꾸었다. ❷상형문자로 三자는 '셋'이나 '세 번', '거듭'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三자는 나무막대기 3개를 늘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대나무나 나무막대기를 늘어놓은 방식으로 숫자를 표기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三자는 막대기 3개를 늘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숫자 3을 뜻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호의를 덥석 받는 것은 중국식 예법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최소한 3번은 거절한 후에 상대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다. 三자가 '자주'나 '거듭'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도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三(삼)은 셋의 뜻으로 ①석, 셋 ②자주 ③거듭 ④세 번 ⑤재삼, 여러 번, 몇 번이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석 삼(叁)이다. 용례로는 세 해의 가을 즉 삼년의 세월을 일컫는 삼추(三秋), 세 개의 바퀴를 삼륜(三輪), 세 번 옮김을 삼천(三遷), 아버지와 아들과 손자의 세 대를 삼대(三代), 한 해 가운데 셋째 되는 달을 삼월(三月), 스물한 살을 달리 일컫는 말을 삼칠(三七), 세 째 아들을 삼남(三男), 삼사인이나 오륙인이 떼를 지은 모양 또는 여기저기 몇몇씩 흩어져 있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삼삼오오(三三五五), 삼순 곧 한 달에 아홉 번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집안이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다는 말을 삼순구식(三旬九食), 오직 한가지 일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경지를 일컫는 말을 삼매경(三昧境), 유교 도덕의 바탕이 되는 세 가지 강령과 다섯 가지의 인륜을 일컫는 말을 삼강오륜(三綱五倫), 날마다 세 번씩 내 몸을 살핀다는 뜻으로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의 행동을 반성함을 일컫는 말을 삼성오신(三省吾身), 서른 살이 되어 자립한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견식이 일가를 이루어 도덕 상으로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삼십이립(三十而立), 사흘 간의 천하라는 뜻으로 권세의 허무를 일컫는 말을 삼일천하(三日天下),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뜻으로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남이 참말로 믿기 쉽다는 말을 삼인성호(三人成虎), 형편이 불리할 때 달아나는 일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삼십육계(三十六計), 하루가 삼 년 같은 생각이라는 뜻으로 몹시 사모하여 기다리는 마음을 이르는 말을 삼추지사(三秋之思), 이러하든 저러하든 모두 옳다고 함을 이르는 말을 삼가재상(三可宰相), 삼 년 간이나 한 번도 날지 않는다는 뜻으로 뒷날에 웅비할 기회를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삼년불비(三年不蜚), 세 칸짜리 초가라는 뜻으로 아주 보잘것 없는 초가를 이르는 말을 삼간초가(三間草家), 봉건시대에 여자가 따라야 했던 세 가지 도리로 어려서는 어버이를 시집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좇아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삼종의탁(三從依托), 키가 석 자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라는 뜻으로 철모르는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을 삼척동자(三尺童子), 세 사람이 마치 솥의 발처럼 마주 늘어선 형상이나 상태를 이르는 말을 삼자정립(三者鼎立), 세 칸에 한 말들이 밖에 안 되는 집이라는 뜻으로 몇 칸 안 되는 오막살이집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삼간두옥(三間斗屋), 가난한 사람은 농사 짓느라고 여가가 없어 다만 삼동에 학문을 닦는다는 뜻으로 자기를 겸손히 이르는 말을 삼동문사(三冬文史), 삼생을 두고 끊어지지 않을 아름다운 언약 곧 약혼을 이르는 말을 삼생가약(三生佳約), 세 마리의 말을 타고 오는 수령이라는 뜻으로 재물에 욕심이 없는 깨끗한 관리 즉 청백리를 이르는 말을 삼마태수(三馬太守), 세 치의 혀라는 뜻으로 뛰어난 말재주를 이르는 말을 삼촌지설(三寸之舌), 얼굴이 셋 팔이 여섯이라는 뜻으로 혼자서 여러 사람 몫의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을 삼면육비(三面六臂), 사귀어 이로운 세 부류의 벗으로서 정직한 사람과 성실한 사람과 견문이 넓은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삼익지우(三益之友), 세 가지 아래의 예라는 뜻으로 지극한 효성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삼지지례(三枝之禮), 머리가 셋이요 팔이 여섯이라 함이니 괴상할 정도로 힘이 엄청나게 센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삼두육비(三頭六臂), 세 번 신중히 생각하고 한 번 조심히 말하는 것을 뜻하는 말을 삼사일언(三思一言) 등에 쓰인다.
▶️ 省(살필 성, 덜 생)은 ❶회의문자로 작은(少) 것까지 자세히 본다(目)는 것으로 '살피다'를 뜻한다. 자세히 상대편을 본다는 대서 스스로를 깊이 반성(反省)한다는 뜻으로도 되고, 또 少(소)를 글자체(體)의 부분으로 하기 때문에 少(소), '덜다', '생략하다'란 뜻으로도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省자는 '살피다'나 '깨달다', '관청'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省자는 少(적을 소)자와 目(눈 목)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하지만 省자 갑골문을 보면 目(눈 목)자 위로 生(날 생)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초목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본래 省자는 작물이 자라는지를 살펴본다는 의미에서 '살피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하지만 후에 백성들의 안위를 살핀다는 뜻이 파생되면서 '관청'이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중국에서는 省자가 상위 행정구역의 명칭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省(성, 생)은 (1)옛날 중국에서 궁중(宮中), 금중(禁中)의 뜻 (2)중국의 옛날의 중앙(中央) 정부(政府). 곧 중서성(中書省) (3)근세 이후 중국의 지방(地方) 행정(行政) 구획(區劃)의 이름 (4)미국(美國), 영국(英國), 일본(日本) 등의 일정한 부문을 관리(管理), 지도(指導)하는, 중앙(中央) 행정(行政) 기관(機關). 우리나라의 부(部)에 해당함 등의 뜻으로 ①살피다 ②깨닫다 ③명심하다 ④관청(官廳), 관아(官衙) ⑤마을 ⑥대궐(大闕) 그리고 ⓐ덜다(생) ⓑ허물(생) ⓒ재앙(災殃)(생)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살필 찰(察), 살필 심(審), 살필 고(攷), 살필 체(諦)이다. 용례로는 조상의 산소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산소를 살피는 일을 성묘(省墓), 허물이나 저지른 일들을 반성하여 살핌을 성찰(省察), 제사에 쓸 희생을 검사하던 일을 성생(省牲), 이른 아침에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의 안후를 살핌을 신성(晨省), 자기가 한 일이나 행동을 잘못이나 허물이 없었는지 돌이켜 생각하는 것을 반성(反省), 스스로 반성함을 자성(自省), 깨달아 살핌을 감성(感省), 객지에서 부모를 뵈러 고향에 돌아감을 귀성(歸省), 깊이 반성함을 맹성(猛省), 자기의 사상이나 언동 따위를 스스로 돌이켜 봄을 내성(內省), 자기의 행동에 대하여 스스로 깨우쳐 돌아봄을 경성(警省), 덜어서 줄임을 생략(省略), 글자의 획을 줄이어 쓰는 일을 생획(省劃), 문장 속의 어떤 구절을 생략하는 일 또는 그 글귀를 생구(省句), 줄이고 뺌을 생감(省減), 글자나 문구를 생략함을 생문(省文), 비용을 줄여서 아낌을 생비(省費), 절약해서 비용을 줄임을 검생(儉省), 간략하게 줄임을 약생(略省), 편지를 쓸 때 첫머리를 생략한다는 뜻으로 의례적인 인사말을 줄이고 곧바로 용건을 적을 경우에 쓰는 말을 관생(冠省), 알맞게 덜어서 줄임을 재생(裁省), 덜어서 줄임을 감생(減省), 그만두게 하여 제거함을 파생(罷省), 나무람과 경계함이 있는가 염려하며 몸을 살펴야 함을 이르는 말을 성궁기계(省躬譏誡),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아 마음속에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뜻으로 마음이 결백함을 이르는 말을 내성불구(內省不疚), 겨울은 따뜻하게 여름은 시원하게 밤에는 잠자리를 정하고 아침에는 안부를 살핀다는 뜻으로 부모를 섬기는 도리를 이르는 말을 온정정성(溫凊定省),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여 살핌을 일컫는 말을 자아성찰(自我省察), 자기 자신의 행위나 내면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을 일컫는 말을 자기반성(自己反省), 하루의 일 세 가지를 살핀다는 뜻으로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의 행동을 반성함을 일컫는 말을 일일삼성(一日三省), 정신을 잃고 의식을 모름이란 뜻으로 사람으로서의 예절을 차릴 줄 모름을 이르는 말을 인사불성(人事不省) 등에 쓰인다.
▶️ 吾(나 오, 친하지 않을 어, 땅 이름 아)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五(오)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❷형성문자로 吾자는 ‘나’나 ‘우리’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吾자는 五(다섯 오)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五자는 숫자 ‘다섯’이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吾자는 본래 ‘글 읽는 소리’나 ‘나의 말’이라는 뜻으로 쓰였던 글자였다. 그러나 후에 吾자가 자신을 지칭하는 ‘나’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言자를 더한 語자가 ‘말씀’이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吾(오, 어, 아)는 ①나 ②그대 ③우리 ④글 읽는 소리 ⑤짐승의 이름 ⑥막다, 멈추게 하다 그리고 ⓐ친하지 않다(어) ⓑ친하려고 하지 않다(어) ⓒ소원(疏遠)한 모양(어) ⓓ땅의 이름(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글 읽는 소리 오(唔), 나 아(我)이다. 용례로는 우리들을 오등(吾等), 우리네를 오제(吾儕), 나 또는 우리 인류를 오인(吾人), 우리의 무리를 오배(吾輩), 나의 집을 오가(吾家), 우리 임금을 오군(吾君), 우리 문중을 오문(吾門), 우리 당을 오당(吾黨), 옛날에 동쪽에 있다는 뜻으로 우리나라를 일컫던 말을 오동(吾東), 나의 형이라는 뜻으로 정다운 벗 사이의 편지에서 쓰는 말을 오형(吾兄), 맞서 겨우 버티어 나감을 지오(枝吾), 참된 자기를 진오(眞吾), 나는 그 일에 상관하지 아니함 또는 그런 태도를 오불관언(吾不關焉), 우리 집의 기린이라는 뜻으로 부모가 자기 자식의 준수함을 칭찬하는 말을 오가기린(吾家麒麟), 자기가 도와서 출세시켜 준 사람이라는 오가소립(吾家所立), 내 집의 걸출한 자식을 이르는 말을 오문표수(吾門標秀), 나도 또한 모른다는 오역부지(吾亦不知), 나의 혀는 아직 살아 있오? 라는 뜻으로 몸이 망가졌어도 혀만 살아 있으면 천하를 움질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오설상재(吾舌尙在), 맞부딪치기를 꺼리어 자기가 스스로 슬그머니 피함을 오근피지(吾謹避之) 등에 쓰인다.
▶️ 身(몸 신, 나라 이름 건)은 ❶상형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아기를 가진 여자의 모습을 본뜬 글자로 몸을 뜻한다. 형성문자로 보면 人(인)과 申(신)의 합자(合字)인데 人(인)은 뜻을 나타내며 부수가 되고 申(신)이 발음을 담당하는 글자로 본 것이다. 부수(部首)로서는 몸에 관계가 있는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身자는 ‘몸’이나 ‘신체’를 뜻하는 글자이다. 身자의 갑골문을 보면 배가 볼록한 임신한 여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身자의 본래 의미는 ‘임신하다’였다. 身자에 아직도 ‘(아이를)배다’라는 뜻이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렇게 임신으로 배가 부른 여자를 그린 身자는 후에 ‘몸의 상태’나 ‘몸’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아이를 가진 여자는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된다는 의미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身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관련된 글자는 없다. 그래서 身(신, 건)은 ①몸, 신체 ②줄기,주된 부분 ③나, 1인칭 대명사 ④자기, 자신 ⑤출신, 신분 ⑥몸소, 친히 ⑦나이 ⑧아이를 배다 ⑨체험하다 그리고 ⓐ나라의 이름(건) ⓑ건독(身毒; 인도의 옛이름)(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몸 기(己), 물건 물(物), 고기 육(肉),스스로 자(自), 몸 궁(躬), 몸 구(軀),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마음 심(心)이다. 용례로는 개인의 사회적인 지위 또는 계급을 신분(身分), 일신 상에 관한 일을 신상(身上), 일신 상의 처지와 형편을 신세(身世), 몸과 목숨을 신명(身命), 몸에 생긴 병을 신병(身病), 사람의 얼굴에 나타난 건강 상태의 빛을 신수(身手), 몸과 몸의 주위를 신변(身邊), 사람의 키를 신장(身長), 사람의 몸을 신체(身體), 제 몸으로 딴 말에 붙어서 딴 어떤 것도 아니고 그 스스로임을 강조할 때 쓰는 말을 자신(自身), 어떠한 행위나 현상에 상응하는 것이거나 그의 대가임을 나타내는 말을 대신(代身), 무슨 지방이나 학교나 직업 등으로부터 나온 신분을 출신(出身), 죽은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을 시신(屍身), 신명을 바쳐 일에 진력함을 헌신(獻身), 마음과 몸을 심신(心身),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몸가짐이나 행동을 처신(處身), 악을 물리치고 선을 북돋아서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아 수양함을 수신(修身), 몸을 움직임을 운신(運身), 몸을 불사르는 것을 분신(焚身), 모양을 바꾼 몸 또는 몸의 모양을 바꿈을 변신(變身), 사회에 나아가서 자기의 기반을 확립하여 출세함을 입신(立身), 온몸으로 열정을 쏟거나 정신을 집중하는 상태 또는 그때의 온몸을 혼신(渾身), 체면이나 명망을 망침을 만신(亡身), 집이 가난하여 종을 두지 못하고 몸소 종의 일까지 함을 신겸노복(身兼奴僕), 홀로 있는 몸이 아니고 세 식구라는 신겸처자(身兼妻子), 몸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신외무물(身外無物),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의 몸 전체를 신체발부(身體髮膚), 남에게 맡기지 아니하고 몸소 맡아함을 신친당지(身親當之), 몸과 태어난 땅은 하나라는 신토불이(身土不二)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