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지난 1999년 우들스에서 12월 29, 30, 31일에 썼던 '세기말 내맘대로'의 시리즈중 하나로 썼던 글(나머지 두 글은 순풍산부인과와 서태지...)입니다. 이승환의 곧 발매될 앨범리뷰에 앞서서 올리는 글이고, 저에게 있어서는 우들스에 들어간지 1년만에 제 이름을 밝히고 쓰게된 첫번째 글이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 글이기도 합니다. 그때는 이게 참 큰 프로젝트(-_-)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순풍산부인과'가 드라마에 있어서 독특한 존재라면 이승환은 가요계에서 무척 독특한 존재이다. '순풍산부인과'가 2년여간 방송되면서 결국 '정상'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열성적인 컬트팬을 중심으로 꾸준한 시청률을 올리듯이 이승환은 '10년'(!)째 계속해서 최소 5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신도'들을 이끌고 있다. PC통신업체에서 발표한 팬클럽 이용실적에서 HOT, 젝스키스와 같은 '조카같은' 가수들의 팬클럽 사이에서도 한 자리를 차지했고, 한국의 가요계 상황에서 '30이 넘은' 발라드 가수가 초호화판 3장짜리 라이브 앨범을 발매하고, 그것이 1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는 것은 그가 가요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판매고도 판매고지만, 그 팬들의 이승환에 대한 '열성'이 놀라운 것이다. 수많은 발라드 가수들이 등장해 인기를 모으고 사라지는 동안 그는 90년대를 그대로 뚫고 나간 것이다.
그럼 이승환의 이 '불가사의'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한국 발라드 음악계의 특징을 말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발라드계는 '황제' 조용필을 제외하자면 이문세 이승철 변진섭 신승훈(물론 신승훈은 아직까지 상당한 대중적 지지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음 앨범까지는 지켜봐야겠지만)등 한 시대를 풍미한 발라드 가수들은 모두 한 가지 패턴을 가지고 있다. 즉, 이전 세대와는 다른 감성의 멜로디 라인을 가지고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후 그 스타일을 반복하면서 결국 서서히 잊혀졌다가 어느 시점에서부터 다시 이전의 팬들을 중심으로 '성인가수'로서 자리잡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 해당가수의 능력부족이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말 천재가 아니라면 고정적인 자기 스타일이라는 것이 있고, 멜로디 위주의 발라드 가수들은 더욱 그렇다. 특히 한국의 발라드는 예나 지금이나 노래의 기승전결을 통해 절정에 이르는 스타일(간단하게 말하면 목에 핏대 올리고 불러야 하는)이 인기 있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더욱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때는 세월이 흐르길 기다리면서 여러 경험을 하고, 자신에게 다른 감성이 생기길 기다리는 것이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그런데 이승환은 바로 그것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사실 그의 음악은 멜로디만 놓고 본다면 2집이후로 거의 발전이 멈췄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음악은 결코 좋은 멜로디 하나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멜로디는 음악의 극히 일부분일 수 있다. 이승환은 바로 이 사운드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그의 '기이한' 음악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멜로디는 자신의 감각이 크게 변하지 않는한 달라지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사운드가 그것을 어떻게 바꿔주느냐이다. 어떤 세션을 기용해서 베이스를 연주하게 하느냐, 혹은 이 부분에서 퍼쿠션을 넣느냐 마느냐, 현악기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고, 어떤 장르를 시도하느냐에 따라 그 가수는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 음악풍토에서 보면 시도하기가 상당히 무리일수도 있는 일이다. 멜로디가 감성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면 사운드는 음악적 지식과 '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녹음은 어떻게 해야하고, 연주는 누굴 해야 좋으며, 또 어떻게 악기를 배열해서 어떤 분위기를 낼 것인가등 사운드를 중심으로 해서 음악을 만들면서부터는 해당 뮤지션이 배워야 할 것이 한도끝도 없고, 그만큼 충분한 시간과 많은 돈이 소요된다. 그런데 한국의
대중들은 예나 지금이나 워낙 멜로디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그 노력을 몰라주는 경우도 많고, 그렇게 공들인다고 해서 알아줄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양질의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조건도 열악해서 정말 '돈 억수로 써가며' 외국에 가서 녹음을 하거나 외국 엔지니어들을 대거 기용하거나 해야 한다.
그런데 이승환은 그 '바보짓'을 했다. 그는 3집 앨범에서부터 점차적으로 앨범 판매량 수익을 거의 전부 쏟아붓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돈을 들여서 사운드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발라드 음악을 만드는 방법론적 전환이고, 한국 음악도 감성과 아이디어가 유일한 밑천이던 시대에서 음악에도 '투자'가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다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이것을 처음 시도한 것이 3집 앨범 'MY STORY'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앨범에서부터 이승환의 음악은 단순한 악기구성에 멜로디가 부각되었던 음악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편곡과 음색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후반부에서 록적인 전개를 보여주며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내게'나 부분적이긴 하지만 타악기를 사용해 색다른 맛을 냈던 '덩크슛'은 이전의 소박한(?) 음악들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4집 'HUMAN'에서는 이것이 하나의 스타일로 완성되 '스트링의 달인'(^^;)이라고 해도 좋을 김동률과 함께 '거대 발라드'라는 표현이 어울릴 '천일동안'을 만들어냈고, 동시에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통해 '이승환식 댄스'를 확실히 보여줬으며, '너의 나라'를 통해 프로그레시브 록 형태를 띈 대곡에 손대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 그에 대한 평가는 둘로 갈리기 시작한다. 그의 음악을 꾸준히 들어왔던 '신도'들은 그의 이런 노력에 '역시 이승환'이라는 말을 붙이기 시작했고,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그의 행동들을 '의미없다'거나 '전혀 성장하지 못했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 과연 그렇게 수많은 투자를 해서 그런 음악을 한다고 누가 알아주겠으며, 그렇다고 해도 그의 스타일은 별로 변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과연 이승환이 이런 투자를 하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이 만들어낼 수 있는 멜로디는 한정되어 있고, 남은 것은 사운드 뿐이다. 하지만 그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방법도 그렇게 잘 알지 못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가? 자신이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투자'하는 방법밖에 없다. 되던 안되던 일단 쏟아붓는 것 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천재적인 감성이 생기지 않는한 할 수 있는 것은 노력하는 것 밖에 없다. 그것에서 얻어지는 결과물이 비록 작은 것이고, 남들이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면 할 수 밖에 없다. 아니면 길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10억을 들여서 단 10원이라도 이익을 낼 수 있다면 무조건 하고 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10원도 얻지 못하고 평생 '그저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는 한국 대중음악계에 투자의 중요성을 일깨운 음악인이다. 사운드건 재킷이건 홍보건 간에 일단 투자부터 하고 수익을 기대하는 것이지, 돈벌고나서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가 과연 '의미없는' 행동을 했거나 성장이 정지한 것인지는 다시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뮤지션이 자기 만족을 위해 음악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그의 행동은 이미 의미있는 일이다. 그 돈 들여서 자신이 원하는 앨범을 만들어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닌가?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그는 사운드에 대한 지식을 하나씩 익혀가게 되고, 그것은 그의 말처럼 '점점 귀가 예민해져' 사운드의 질에 있어서 상당한 발전을 이루게 했다. 또한 이런 음악적 지식의 축적은 그의 음악이 간혹 '백화점식 앨범'이라는 폄하를 듣기는 하지만 어떤 곡에건 들으면 '이승환의 노래'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사운드를 자신의 멜로디에 맞춰 능수능란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물론 그것은 역으로 매번 똑같은 스타일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중요한 것은 만약 이승환이 지금까지 쌓인 노하우가 없었다면 이승환의 노래들은 다 똑같은 분위기의 그저 그런 발라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는 투자한'만큼'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의 팬들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10년동안 팬들이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고, 성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의미없고 변화없는 음악을 10년동안 사줄 바보는 세상에 흔치 않다.
그리고 그 역량을 총집결해 자신의 사운드적 학습 결과를 내놓은 것이 바로 6집 'THE WAR IN LIFE'이다. 진중함과 가벼움, 이승환식 멜로디와 유희열적인 감성이 뒤섞이면서 여러 가지로 과도기적인 혼란스러움을 보였던 'CYCLE'에 이어 2년 2개월만에 발매된 이 앨범은 이승환이라는 가수의 음악 여정을 한꺼번에 담은 앨범이다.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어 자신의 발라드 가수로서의 정서와 '유치'하고 냉소적인 면을 동시에 부각시켰고, 사운드는 5집앨범까지 이승환이 다루었던 모든 음악들을 다루는 동시에 보다 양질의 그것을 들려주고 있다.
화려한 케이스부터 호화 세션과 스탭들까지 국내에서는 유래를 찾기 힘든 '자본 집약적'인 앨범을 통해 이승환은 자신의 음악을 지탱한 것은 바로 이 사운드에 대한 '바보같은' 투자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양음악, 테크노, LA 메탈, 어쿠스틱, 가스펠의 장르들과 윤상, 유희열, 이규호같은 개성있는 음악인들의 감성까지 모두 'HIS BALLAD'로 소화해내면서 지금의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극단을 보여준 것이 'THE WAR IN LIFE'이다. '천일동안'의 폭발하는 구성은 보다 보컬을 절제하면서 섬세한 편곡을 시도한 '그대는 모릅니다'로 변했고,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보다 짜임새 있고 다양한 악기구성에 랩이 첨가된 '애인 간수'와 '귀신소동'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이 앨범의 끝에 수록되어 있는 '당부'는 이승환이 'WAR'를 끝내고 'Future'로 갈 방법을 알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그의 사운드에 대한 투자의 자부심은 음악 외의 다른 곳에도 연결된다. 그렇게 시간과 자본과 노력(!)을 들여 만든 음악을 싸구려 취급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사운드가 화려해지면 화려해질수록, 그의 앨범 재킷과 뮤직비디오에도 더욱 일반적인 상상을 초월하는 투자를 보여주고, 그것은 다시 팬들을 '감동'시킨다. 과연 한국의 어느 가수가 그 앨범 재킷만을 가지고도 그 팬들로 하여금 '사길 잘했다'는 생각을 들게 하겠는가.
이런 것들이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그의 라이브 콘서트이다. 데뷔당시 소극장 라이브라고 해도 좋을만큼 소박한 공연에서 앨범이 발매되면 발매될수록 라이브 공연의 규모는 커졌고, 노하우는 쌓여 갔으며, 사운드적 지식은 점점 늘어가면서 말그대로 '무적'의 모습을 보여주는 공연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의 라이브 앨범 '무적전설'은 그 10년의 세월, 10년의 발전을 10년동안 함께한 팬들에게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최초의 1장짜리 라이브 앨범 'THE SHOW'의 소박함이 어느덧 초호화판 케이스에 3장짜리 앨범(심지어 가격도 싼)으로 바뀌었듯이 그의 라이브 앨범에 들어있는 음악은 그가 10년간 이루어놓은 음악과 공연에 대한 발전을 빽빽하게 담아놓았고, 동시에 자신의 'Future'가 어떤 길로 갈 것인지 제시하고 있다.
97년의 'Dream Factory Tour', 98년의 'Silence Tour', 99년의 'No Enemy Tour' 세장으로 이루어진 이 앨범은 각 앨범마다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다. 우선 'Dream Factory Tour'는 시기상으로 처음이지만 내용상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되므로 뒤에서 얘기하기로 하고, 우선 'Silence Tour'부터 살펴보자.
'Silence Tour'는 간단하게 말해 이승환의 음악적 발전사이다. 이승환 스스로가 'Silence Tour'는 화려한 쇼적인 면은 자제하고 음악 자체를 느끼도록 하는데 주력했다고 밝히듯이 이 음반에는 이승환이 얼마나 자신이 하는 음악의 사운드와 라이브 공연의 본질을 '알고' 있다는 것을 들려준다.
이 공연은 6집 앨범이 발매되기 1년전에 열린 공연으로 1집부터 5집까지의 수록곡들이 실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짧게는 곡을 발표한지 1년, 혹은 거의 10년된 곡들도 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이승환은 사운드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축적했고, 이를 라이브 공연을 통해 풀어놓는다.
이 음반의 모든 수록곡들은 경우에 따라 원곡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바뀌어 있고, 라이브 공연에 맞게 편곡이 세팅되어 있다. 주 멜로디를 기타로 변주해 시작해 어쿠스틱 기타로 참신한 분위기를 준 '기다릴 날도 지워질 날도'를 시작으로 해서 이어지는 'Silence Tour'의 곡들은 모두 정규 앨범과는 다른 변화를 보이고 있다.
특히 주목할만한 곡들은 두 번째 곡 '내게'부터 '한 사람을 위한 마음까지'의 세곡, 그리고 '잃어버린 나'부터 '부기우기'까지의 세곡과 '가족'인데, 이 곡들은 이승환이 생각하는 라이브 공연이라는 것, 혹은 라이브 공연에서의 음악이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라이브'라는 말에 어울리는 현장성과 관객을 라이브에 빠져들게 하는 힘있는 구성이다. 장중한 분위기에 멜로디를 중시했던 '내게'와 '가족'같은 곡들은 콘서트를 통해 빠르고 리듬감있는 곡으로 재편곡되어 라이브다운 스트레이트한 분위기를 내고 있고, 악기 역시 클래식 악기가 사용된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세션들이 모두 연주할 수 있도록 최대한 간소화 되어 있다. 정규 앨범에서는 온갖 소리를 '쑤셔넣던' 그가 라이브에서는 최대한 간단한 구성만으로 사운드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그가 라이브 공연을 '알만큼 아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가족'에서 전반부를 어쿠스틱 기타로 바꾸어놓은 것은 인상적이고, 아예 '댄스타임'이라고 밝힌 '잃어버린 나' '악녀탄생' '부기우기'의 세곡은 각기 다른 성격의 곡임에도 불구하고 세션들에 의해 비슷한 분위기로 새롭게 편곡되어 연주되면서 마치 메들리를 듣는듯한 효과를 내면서 공연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기타, 베이스, 드럼등 기본적인 악기에 건반정도를 첨가시켜 나오는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사운드는 관객들로 하여금 보다 사운드에 쉽게 집중하게 하면서 '음악'을 전달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보여준다. 이는 이어지는 '크리스마스에는'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덩크슛'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곡들은 모두 정규 앨범보다 간단한 사운드 구성에 보다 경쾌한 분위기로 곡이 진행되며, 대신 이승환 특유의 '절규하는' 보컬은 자제하면서 공연의 스트레이트한 분위기를 이어나간다. 또한 마지막의 '흡혈귀'와 '붉은 낙타'는 반대로 사운드적 편곡보다는 '보컬리스트 이승환'으로서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면서 라이브 공연을 이루는 두가지 요소, 즉 사운드와 보컬의 완성도가 모두 어느 수준 이상에 올랐음을 증명한다.
또한 이 'Silence Tour'의 특징은 울려퍼지는 사운드 자체는 상당히 현장감이 느껴지는데도 불구하고 소리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분리되서 나온다는 것이다. 보통 라이브 앨범에서는 현장감을 살리다보면 라이브 공연의 특성상 어느정도 소리가 뭉쳐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음반은 그렇지 않다.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들어도 볼륨을 조금만 높이면 세세한 소리가
들릴 정도로 사운드가 잘 잡혀있다. 사운드의 질감은 그다지 공연에서 녹음한 음원을 손대지 않은 것 처럼 느껴질 정도인데 소리가 정확히 잡힌다는 얘기이다. 이것 역시 그의 '투자'에 의한 것으로, 이것은 그가 부클릿에 적어놓은 라이브 공연에서의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보고서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최상의 사운드 입력/출력 장비를 갖추고 있어서 음원 자체가 뛰어나다 보니 이런 음질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부클릿에 적혀 있는 것은 이 공연이 아닌 'No Enemy'에서의 장비이기는 하지만 그가 어느날부터 갑자기 이런 수준의 장비를 써온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Silence Tour'에도 아쉬움은 있다. 사운드적인 면에 신경을 쓴 것이나 라이브에 맞는 재편곡등은 훌륭하지만 그대신 '음악'을 내세우는 까닭에 하나의 공연을 담은 음반이라기 보다는 그의 공연 베스트를 모아놓은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듣다보면 중간중간 맥이 끊기는 경우가 있어 공연의 감동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No Enemy Tour' 음반은 정확하게 'Silence Tour'의 반대 지점에 있는 앨범이다. 이 앨범은 최근 발표한 6집 앨범의 곡들을 중심으로 한 까닭인지 음악적으로는 별다른 큰 변화가 없다. '세가지 소원'같은 경우는 앨범의 원곡과 똑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아마도 꾸준한 노력과 거기서 쌓인 노하우로 발전해가는 이승환의 스타일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대신 이 앨범은 하나의 완결된 공연음반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Silence Tour'와 달리 공연을 알리는 인트로 'a prelude'를 통해 공연 시작을 알리고, 이어서 오프닝에 알맞는 헤비한 메틀 사운드로 편곡된 '좋은날'로 포문을 열면서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하고, 앵콜과 엔딩까지 수록되어 하나의 완결된 공연으로서의 모습을 갖춘다. 또 'Silence Tour'에서는 사운드를 위해 상당부분이 깎여나갔던 관객들의 함성들이 여기서는 거의 그대로 실리면서 공연의 '환장스런' 분위기를 전달한다.
또한 선곡에 있어서도 완결된 공연으로서의 흐름과 더불어 이승환 나름대로의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좋은 날'에 이어 새롭게 첨가된 기타 연주가 인상적인 '그대는 모릅니다'부터 리메이크곡 '세월이 가면'까지의 곡들은 '발라드 가수', 혹은 '정상'인 이승환의 모습으로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6집의 '비정상' 면의 첫곡인 '귀신소동'을 부르는 시점부터 그의 보컬은 그의 정서와 더불어 변하기 시작한다. "판 몇장 더 팔아보겠다고 조작한 사람처럼 되버렸던 적이 있었습니다."라는 멘트로 시작하는 '귀신소동'에서의 다분히 장난기 어리고 광기가 보이기 시작하는 보컬은 이어지는 '루머'와 '고함'에서 점점더 격정적으로 변하고, '천일동안'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말그대로 '광폭한' 음색을 들려주며 헤비메틀의 보컬리스트를 연상케 하는 보컬로 변하기 시작한다. 실제 공연에서는 이미 세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그 시점에서 그는 곡 전반부의 미성과 후반부의 거친 목소리를 동시에 소화해내는 것이다.
이는 그가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자랑'하는 것으로, 'Silence Tour'에서 사운드적인 면을 부각했다면 이번에는 '가수'로서, 정확히 말해 흔히 '가창력 좋은 가수'로 평가받곤 하던 그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30이 넘어서도 발라드와 헤비메틀의 보컬을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가수가 과연 얼마나 될까?
이렇듯 두장의 음반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발전과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 그리고 팬을 위한 공연의 현장감을 담아낸 이승환은 세번째 음반 'Dream Factory Tour'를 통해 바로 이승환 그 자신을 표현한다. 97년에 나온 공연을 담은 음반임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을 마지막이라 하는 이유는 이 앨범의 수록곡이 다른 앨범의 절반 수준인데다가 공연실황을 담은 음악외에도 각종 동영상과 이승환의 홈페이지로 접속할 수 있는 프로그램등이 담겨 있고, 결정적으로 신곡 '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승환이 'No Enemy Tour'음반에서 자르지 않고 남겨두었던 '마지막곡'에 관한 멘트는 아마도 이 '끝'을 두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Dream Factory Tour'는 97년 열렸던 공연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이승환이 설립한 'Dream Factory'에로의 여행이자 이승환의 'Dream'에 대한 여행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음반에서 이승환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우선 첫곡 '멋있게 사는 거야'를 통해 그는 말 그대로 자신의 '멋있게 살고싶은' 바램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이 곡에서처럼 수많은 관객들의 환호에 둘러싸여 '환장'하면서 사는 것일수도 있고, 그가 지난 10여년간 해온 것처럼 바보처럼 생각될정도로 끝없는 투자를 하면서 자기만족을 하며 살아가는 것일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의 노랫말대로 "꼭 뭔가 이뤄야 한단건 없어 중요한건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볼 때 과연 그만큼 멋있게 사는 인물이 있을까?
이어지는 '애원'부터는 그의 지극히 개인적인 정서와 이야기의 연속이다. 전체적으로 활기차고 장난기 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구슬픈 발라드의 양식을 띄고 있는 '애원'이 이 음반에 들어간 이유는 아마도 그의 명예회복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애원'은 바로 그를 '귀신소동'에 휘말리게한 그 곡으로, 그는 여기서 이 곡을 멋지게 불러내면서 그가 과연 '앨범 몇장 더 팔겠다고 조작할' 인물로 보이는지를 묻고 있는 듯 하다.
이어지는 '그냥 그런 이야기 + 너의 나라'는 그의 정서적인 양면성을 한꺼번에 표현한 곡이다. 두 곡다 록적인 분위기가 강하지만 그가 아직은 신인티를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의, 가볍고 발랄한 감성으로 만들었던 '그냥 그런 이야기'와 보컬과 사운드, 그리고 가사까지 모든 것이 무겁기만한 '너의 나라'는 '유치뽕'과 'HIS BALLAD'같이 정반대 성격의 비정규 앨범을 함께 낼 수 있는 이승환 특유의 양면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이어지는 '천일동안'의 패러디 '백일동안'과 'JERRY JERRY GO GO' 역시 그의 가볍고 유치(?)하며 '율동락커'라는, '록이라고도 하기 힘들고 일반 가요라고도 하기 힘든' 그의 독특한 위치를 보여주는 곡이다. 특히 '백일동안'의 경우는 '천일동안'의 비장미를 스스로 조롱하는 방법으로 잊으려 하는듯한 느낌을 줄 정도다.
하지만 이런 공연실황 트랙들보다 더욱 눈길이 가는 것은 실질적인 마지막곡 '끝'이다. 보통 라이브 앨범에 수록되는 평이한 B-SIDE적인 색깔이 강한 신곡들과 달리 이 곡은 이승환의 앞으로의 음악적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언급했듯이 이승환의 6집 앨범의 실질적인 마지막곡 '당부'는 그 앞의 곡들과 달리 상당히 이질적인 분위기의 곡이었다. 한 곡안에 각종 사운드를 눌러 담은듯한 앞의 곡들과 달리 사운드는 비교적 단순했고, 이승환의 보컬은 '그대는 모릅니다'처럼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지고 서서히 고조되다가 결국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최초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며 종반부에 있어서는 보컬없이 연주로만 상당한 시간을 처리하면서 여백의 미를 주려고 시도한다. 이는 그전까지 멜로디를 중심으로 화려한 사운드로 이를 장식했던 이승환 음악의 특성과 구별되는 것으로, 이승환이 어떤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게했다. 그리고 '끝'은 그 '추측'을 '확신'으로 바꾸게 하는 곡이다.
이 곡은 우선 이승환의 이전 곡들에 비해 상당히 단순한 악기 구성을 보이고 있다.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현악기 하나만이 자리잡고 있으며, 드럼과 베이스, 그리고 약간의 건반정도가 첨가되어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사운드는 단순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깔끔한 맛을 준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이 단순한 사운드로 만들어내는 소리들이 멜로디가 아닌 리듬 위주라는 것이다. 이 곡은 이전의 이승환의 곡들과 달리 드럼이 상당히 강조되어 있다. 이전 곡들에서는 박자를 쪼개는 정도의 역할만을 하던 드럼이 이 곡에서는 곡의 중심에 나서면서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며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고, 이승환의 보컬은 이 드럼의 리듬에 맞춰 진행된다. 드럼의 리듬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서 보컬의 페이스도 변해가는 것이다.
또한 전통적인 이승환 발라드에서 보컬의 멜로디를 보다 강화시키던 현악연주는 이 곡에서는 리프 개념으로 바뀌어 있다. 여기서의 현악기는 '천일동안'처럼 완결된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반복되며 드럼과 보조를 맞추기도 하고, 중간중간에 잠깐 잠깐씩 등장하며 곡의 분위기를 전환하는 역할정도를 한다. 즉, 이 곡의 중심은 '보컬'과 '멜로디'가 아니라 '사운드'와 '리듬'인 것이다. 보컬은 곡의 리듬을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면서 이전의 곡들과 달리 폭발하지 않고 끝까지 매끈하게 처리된다. 분위기가 리듬이 반복되고 멜로디가 진행되면서 고조되는 듯 하면 사운드가 바뀌면서 순식간에 다른 전개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운드의 첨가가 아니라 기존의 사운드중 어느 것은 빼고, 어느 것은 다시 첨가시키는 '감각'에 의한 것이다.
곡 전반부에 드럼과 현악연주등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꽉 채운 사운드를 들려주다가 이승환의 보컬이 등장하면서부터는 다른 소리는 빼고 어쿠스틱 기타와 드럼 연주로 이끌어 가다가 거기에 베이스를 첨가하고,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다시 현악 연주를 첨가시키면서 멜로디라인을 그다지 고조시키지 않고서도 곡의 굴곡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보통 팝음악에서 많이 쓰이는 편곡방식으로 팝음악은 보컬 멜로디보다는 탄탄한 편곡을 통한 다양한 사운드의 창조로 곡의 완성도를 높인다. 이승환 역시 '끝'을 통해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멜로디 중심의 곡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사운드 중심의 곡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비슷한 감성의 멜로디를 사운드로 커버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통해 자신만의 사운드를 만들고, 그 위에서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 동안의 아쉬움들은 그냥 거기 두고서 모른 척 해요 GOOD BYE MY LOVE GOODBYE MY FRIEND 벗어 뒀던 옷을 다시 고쳐 입고 빨리 나가 줘요 문을 닫을 거죠 떠밀려 나가길 바라나요 모든 새로움의 시작은 다른 것의 끝에서 생기죠."라는 노래의 가사는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했던 그 음악들을 모두 '끝'내고 새로운 음악세계로 나아간다는 그의 의지를 담고 있는 듯 하다. 사운드에 대한 부단한 투자가 그에게 음악에 대한 보다 깊은 사고와 새로운 감성을 낳게 한 것이다. '끝'에 이은 마지막곡 .........& more는 앨범을 총정리 하는 뒷풀이 성격의 곡으로 그의 '유치'한 일면을 볼 수 있다.
즉, 이승환은 이 라이브 앨범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역량과 공연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모두 제시한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10년'간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투자하고 노력한 결과이며, 그는 그 대가로 언제나 그의 공연을 가득 메우는 '신도'들과 음악과 공연에 대한 깊은 노하우, 그리고 새로운 감성을 얻었으며, 동시에 일단의 유능한 아티스트들의 음반을 제작해주는 '공장장'이 되었다. 이것이 과연 '의미없는' 것이고 '성장이 멈춘' 것일까. 물론 지금부터 그가 시작할 또 다른 음악들은 실망스러운 것일수도 있고, 정말 성장을 멈춘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말했듯이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다. 그렇다면 그는 이미 충분히 '멋있게 살고있는' 사람 아닐까. 그리고, 정말 의미가 없다면 이 글을 쓰는 나라도 계속 글써서 의미있게 만들겠다. 정말 결과가 어떻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그리고 그 팬들을 위해 '미쳤다'는 소리 들어가면서까지 끝없는 투자와 노력을 하는 사람은 분명히 칭찬받아야 하고, 인정해줘야 한다. 그래야 전반적인 수준도 올라가고, 듣는 사람도 행복해진다. 이승환이 마이크를 놓는 그날까지 지금처럼 '멋있게 사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족 1 : 이 앨범과 함께 발매된 뮤직비디오 '무적전설'은 공연 실황이라기 보다는 이 라이브 앨범과 이승환이라는 가수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부클릿이다. 라이브 앨범과 이승환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이야기와 그의 공연에 대한 이야기가 잘 담겨 있다. 라이브 앨범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공연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겠지만, 반대로 라이브 앨범없이 보는 경우에는 현장감넘치는 공연 모습을 볼 수 없어 실망할수도 있을 것이다.
사족 2 : 사실 세기말 내맘대로를 하면서 계획한 것 중 하나가 이 글, 그리고 이전의 모든 우들스 기사를 썼던 내 이름을 밝히는 것이었다. 원래 이름을 밝히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읽는 사람들이 기사를 혼자 쓴다는 것(물론 자료조사가 필요한 기사같은 것은 모회사인 캐스트넷에서 근무하시는 PD나 작가분들이 도와준다)에 대해 선입견을 가질 수 있고, 또 내 이름을 밝히면 내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선입관을 가지고 기사를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하지 못했고, 계속 미루게 되면서 결국 올해가 끝나는지금까지도 못밝히게 됐다. 하지만 더 이상 밝히지 않는 것은 읽는 분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밝히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