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의 교육 이념 : 북한엔 친일파가없다
개소리에 대한 증빙자료
이 땅의 쓰레기 좌파들의 말 중에는 한국은 친일파가 세웠고, 한국 동란을 일으켜 수백만을 고통 속에 빠뜨린 북의 김일성 정권이 친일파를 청산한 정통 국가라는 해괴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리영희 같은 쓰레기들의 말에 속아서 그런 무식한 말을 하고 있지요. 과연 그러한지 알아 봅시다.
1. 우선 초대 내각에는 어떤 인물을 기용했는가?
대통령 이승만(李承晩) - 상해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부통령 이시영(李始榮) - 상해임시정부 재무총장 국회의장 신익희(申翼熙) - 임시정부의 내무총장 대법원장 김병로(金炳魯) - 항일변호사 국무총리 이범석(李範奭) - 광복군 참모장 외무장관 장택상(張澤相) -일제시대 청구구락부 사건으로 투옥된 경험 내무장관 윤치영(尹致暎) -일제시대 때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투옥 재무장관 김도연(金度演) -3.1운동에 앞선 2·8독립선언을 주도하여 투옥 법부장관 이인(李仁)- 항일변호사 국방장관 이범석(李範奭)씨가 겸임 문교장관 안호상(安浩相)씨는 철학교수 농림장관 조봉암(曺奉岩)씨는 공산주의자에서 공산주의체제에 실망을하고 민족주의자로 전향 상공장관 임영신(任永信) -독립운동가이고 교육가 사회장관 전진한(錢鎭漢) -일제시대에도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 교통장관 민희식(閔熙植) -교통전문가 체신장관 윤석구(尹錫龜) -교육 사회운동가 무임소 장관 이청천(李靑天) -광복군 총사령관 무임소장관 이윤영(李允榮)- 북한에서 항일 기독교 목사로 일했고 조만식 선생의 제자 국회부의장 김동원(金東元)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던 독립운동가 국회부의장 김약수(金若水)- 독립운동가 등등
이승만이 독립유공자들을 이토록 중용했다는 말이 사실 아닌가요? 어느 장관에 친일파를 기용했는가요? 전혀 없죠. 그런데 친일파를 확실히 청산해서 한국의 정통성을 이어왔다는 좌파들이 그토록 공경하는 김일성은 초기 내각에 어떤 인물을 기용했는가를 한번 봅시다.
김영주 - 북한 부주석, 북한내 당시 서열 2위, 김일성 동생 (일제 헌병 보조원) 장헌근 - 북한 임시 인민위원회 사법부장, 당시 서열 10위 (일제 중추원 참의) 강양욱 - 북한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당시 서열 11위 (일제하 도의원) 이승엽 - 남조선 로동당 서열 2위 (친일단체 "대화숙" 가입, 일제 식량수탈기관인 "식량영단" 이사) 정국은 - 북한 문화선전성 부부상 (아사히 서울지국 기자, 친일밀정, 즉 일본간첩출신) 김정제 - 북한 보위성 부상 (일제하 양주군수) 조일명 - 북한 문화선전성 부상 (친일단체 "대화숙" 출신, 학도병 지원유세 주도) 홍명희 - 북한 부수상 (일제 임전대책협의회 가입 활동) 이 활 - 북한 인민군 초대공군 사령관 (일제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허민국 - 북한 인민군 9사단장 (일제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강치우 - 북한 인민군 기술 부사단장 (일제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최승희 - (일제하 친일단체 예술인 총연맹 회원) 김달삼 - 조선로동당 4.3사건 주동자 (일제 소위) 박팔양 - 북한 노동신문 창간발기인, 노동신문 편집부장 (친일기관지 만선일보 편집부장, 문화부장) 한낙규 - 북한 김일성대 교수 (일제하 검찰총장) 정준택 - 북한 행정10국 산업국장 (일제하 광산지배인 출신, 일본군 복무) 한희진 - 북한 임시인민위원회 교통국장 (일제 함흥철도 국장)
이거 뭐 친일파 천국이죠. 그런데 이 땅의 개정일 숭배하는 좌파들이 입만 열만 한국을 이끈 자들은 전부 친일파라고 우깁니다.
그래서 친일 청산을 위한 무슨 위원회를 많이 만들어 많은 이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지요. 그 중 일부는 자신의 조상이 독립운동을 했다고 우기다가 친일파로 밝혀진 좌파들이 많았지요 ㅋㅋ
2. 대한민국이 세워졌을 때 중도주의 민족주의자들은 초대 내각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는가?
① 김구 : 국연총회에서 절대 다수 국가의 찬성으로써 한국을 승인하였다는 것은 우리의 독립운동 과정 중에 있어서 영원히 기억할만한 거대한 역사적 사실이다. (남북협상결렬 후인 1948년 12월)
② 김규식 : 남북협상이 결렬된 후인 1949년 김규식, 조소앙, 최동오, 유동열, 윤기섭, 김붕준, 명제세...등 임정 요인들이 주도한 민족진영강화위원회의 강령은 첫째, 대한민국에 충성을 다하고 그 발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둘째,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공산진영은 배제하고 일방 그들의 전향을 촉구한다. 셋째, 정치적 종파 관념을 해소하고 민족진영의 총역량을 강화한다.
③ 조소앙 : 조소앙씨를 중심으로 하는 현실치중파에서는 현남조선정부를 시인하고 야당으로서 처하자고 주장. (강원일보 1948년 9월 7일자)
3. . 친일경찰을 경찰로 고용하여 독립군 후예들을 혹독하게 다루었다는 말들이 있지요. 진실은 눈아 열려라
초대 경찰의 중심에는 한민당이 있었지요. 한민당 주요인사들 중 항일과 친일의 비율 이 46 : 8 정도 됩니다. 친일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네요. 단지 소수이지요
다음은 한민당 주요인사 명단입니다.
송진우, 원세훈, 허정, 백남훈, 조병옥, 김도연, 서상일, 나용균, 이병헌, 정광호, 이인, 조헌영, 김약수, 백관수, 박용희, 장진섭, 유기원, 송남헌, 임봉순, 이길용, 김덕은, 홍성 하, 이헌, 김용무, 나경석, 유자후, 유진희, 최윤동, 김법린, 김병로, 이중화, 최승만, 이경희,서정희, 김양수, 최두선, 송필만, 박찬희, 서상국, 홍종숙, 김준연, 이갑수, 신윤국, 이석주, 장덕수, 김동원, 구자옥, 함상훈, 백낙준, 현제명, 이관구, 윤치영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공산진영의 테러와 파업 등으로 당시 상황이 너무 급했고 구체적으로 친일 행적을 따지기가 쉽지 않은 환경에서 대다수의 인물을 친일보다는 독립 운동을 한 인물로 한 것은 대단한 일이었죠.
4. . 좌파들의 단골 메뉴 중에는 이승만이 독립운동을 한 번도 안했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 미국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과 면담, 한국 독립유지에 대한 지원 요청 - 세계감리교 총회에 한국 대표로 임명, 총회에서 한국독립을 호소, 국제여론 환기 - '신한민보' 와 '국민보' 라는 기관지를 발간하여 항일의식을 고취. - 태동실업주식회사, 권업동맹단 등을 설립하여 실업을 장려. - 소년병학교와 숭무학교, 국민군사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 사관을 양성. - 1919 파리강화회의에 대표 김규식이 참석하도록 진력하여 한국독립 지지 호소 - 태평양 지역에서의 일본의 침략적 야욕을 폭로한 『일본 내막기』 출판. - '미국의 소리' 방송을 통하여 국민들의 단결과 항일투쟁을 호소 - 미국정부에 대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할 것을 1945년까지 여러 차례 요구. - 미국 OSS 부대와 군사적 합작 노력의 일환으로 광복군의 전력향상에 크게 기여
독립 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잡혀 두 번이나 옥고를 치루고 미국으로 간 이승만 대통령, 참으로 힘들고 고독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부분이 보이지 않나요?
5.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우리나라 국군을 만들었고, 그 중심에는 박정희가 있다. 대한민국 국군의 장성급은 전부 일본육사출신이고 참모총장들도 전부 일본군출신이다. 과연 그럴까요?
군 간부 양성기관인 군사영어학교나 남조선국방경비대의 출신성분을 분석한 논문을 보면 학병 출신이 80%고 일본육사 출신이 10% 만군 출신이 7% 광복군 출신 및 기타 3%로 되어 있지요.
이들 중 군 성분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학병출신은 비록 일본군 출신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제에 강제징집 당하여 끌려간 사람들로서 이 사람들까지 친일파로 본다면 말이 된다고 보시나요?
만군출신 역시 초기 창군 작업에 참여했다고는 하나 한국전쟁 이후 숙군 작업으로 대부분 사형, 파면 당하고 자취를 감춥니다. 문제 삼을 필요없지요. 광복군으로 활약하던 분들 중 지휘관급은 대부분 고령인데다 숫적으로도 열세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남한 내 사회상황이 신병들 모집해다 A~Z까지 가르칠 만한 그런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좌익들이 주동하는 무장폭동, 소요사태, 파업이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국군의 창군은 북한보다 거의 1년쯤 늦게 이루어져있고치안과 국방을 담당할 만한 중추세력도 형성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국내에 귀국한 광복군은 쫄병까지 닥닥 긁어봐야 5000명도 되지 않는데 허울좋은 민족감정 앞세워 이 5000명가지고 무얼 하겠습니까? 숫적으로 월등한 학병 출신들을 이용해야 하는데 일본식 통솔체계를 받던 학병 출신들을 효율적으로 지휘하려면 일본 육사 출신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정규전 경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근대식 군사훈련을 체계적으로 습득한 사람들입니다.
단지 일본 육사 출신이라해서 친일파로 매도한다는 것은 지나친 국수주의의 전형이지요. 항일 무장투쟁으로 눈부신 전과를 올린 김홍일, 이청천, 유동렬, 김경천, 김백일.. 같은 일본 육사출신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 재일 동포 중에 일본에서 돈을 많이 벌어 그 돈을 조국에 투자하는 기업주도 친일파의 반열에 넣어야 옳은 것인가요?
6. 광복군 출신은 전부 배제되었다고 강정구라는 좌파 똘마니가 얘기하고 있는데 과연 그럴까요?
광복군 출신 중 지휘관급은 대부분 고위급으로 퇴역하거나 행정부, 입법부에 진출하여 대한민국 건국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통위부장(현, 국방부장관급)은 유동렬씨에요. 광복군 출신이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의 국방부장관도 이범석씨에요. 역시 광복군 출신 맞죠?
역시 초대 국방부차관이 최용덕씨입니다. 광복군 사령관 출신 맞습니다. 삼군 총사령관도 6.25전까지는 일본 육사 출신(이형근), 만주군 출신(원용덕), 광복군 출신(송호성)이 돌아가면서 역임했구요.
3대 6대 육군참모총장, 초대 해군참모총장, 2대 6대 공군참모총장도 광복군 출신이었지요. 김홍일, 이준식, 채원개, 오광선, 안춘생 등도 각각 군단장, 사단장을 역임했습니다.
광복군 출신으로서 이름 꽤나 날리셨던 분들 중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창군 과정에서 님의 주장처럼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어디 얘기해보시죠.
국민 여러분 이 땅의 좌파들은 거짓말만 양산하는 친북 쓰레기입니다. 재활용이 불가능한 모택동과 북의 김정일 추종자들이 진보라는 간판 속에 남한을 망치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쓰레기들에게 속는다면 안 되지요. 쓰레기를 태워버리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대한민국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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