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문학관] 임제(1549~1587) 사후 400년만에 개관
백호문학관은 나주시 회진마을 초입에 세워져 있으며 2013년 5월에 개관하였다. 노령산맥 한가닥 힘찬 줄기가 혈을 맺은 신걸산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도도하게 흐르는 영산강을 앞마당 삼아 현대적 감각의 3층 건축물로 준수하게 자리 잡고 있다.
백호문학관 바로 위쪽에는 나주임씨의 상징인 영모정이 빼어난 자태로 푸른 물이 굽이쳐 흐르는 영산강을 바라보며 자리를 잡고 있어, 이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은 임제의 어린 시절 시심(詩心)을 키워준 것으로 생각되며, 영모정 아래에는 임제의 유명한 유언이 새겨진 ‘물곡사비(勿哭辭碑)’가 서있다.
백호문학관이 임제 사후 400년만에 개관한 것은 무인(武人)의 기질을 가진 문인(文人)으로 조선중기 허균과 쌍벽을 이룬 대문장가요, 한문소설의 창시자요, 호남이 배출한 조선의 위대한 사상가인 그를 제대로 평가하고, 시대를 초월하여 그의 정신과 사상이 이 시대에도 관통하고 있음을 더욱 명징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백호문학관 앞뜰에 새워진 시비(詩碑)의 무어별(無語別)은 임제가 6살부터 10년간 외가인 곡성 옥과에서 외가살이를 끝내고 고향 회진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명한은 그의 소설 ‘달뜨면 가오리다’를 통해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옥과의 합강 모래밭에서 첫정을 나눈 ‘아지’를 애달아 잊지 못하고 지은 시(詩)로 묘사하고 있으며, 열여섯 살의 소년이 지은 시라고는 믿을 수 없는 천재성을 보여주는 시(詩)이기도 하다.
(無語別) 수줍어서 말 못하고
(十五越溪女) 열다섯살 아리따운 아가씨
(羞人無語別) 수줍어 말 못하고 이별이려니
(歸來淹重門) 돌아와 겹문을 꼭꼭 닫고선
(泣向梨花月) 배꽃 사이 달을 보며 눈물 흘리네
임제는 당시 법도대로 부모가 정해준 대사헌 김만균의 여식과 혼인을 하고, 22세에 충청도 보은의 북실에서 훈학을 하고 있는 대곡 성운(成運)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 스승 대곡은 임제의 걷잡을 수 없이 격정적이고 자유분방한 성격을 누구려뜨려보고자 중용(中庸)을 천번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가르침을 내려 법주사 경내의 한 암자에서 6년동안 중용을 읽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망아지처럼 온 천하를 뛰어다니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다잡아 보라는 스승의 의중을 깨닫고 중용을 800번 읽은 후 의마부(意馬賦)를 지어 스승 성운에게 올리고 속리산을 떠나면서 다음의 시를 읊는다.
(道不遠人)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건만
(人遠道) 사람이 도를 멀리 하네
(山不離俗)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건만
(俗離山) 속세는 산을 멀리 하네
29세에는 알성문과에 급제하면서 벼슬길에 나아가 예조정랑까지 오르지만, 평안도사를 제수 받아 임지로 가는 길에 송도에 들러 죽은 황진이 무덤 앞에서 추모제를 지낸 것이 탈이 나 훗날 벼슬을 그만두게 된다. 이 때 지은 추모시 때문에 임제의 파격적인 기행이 겯들어져 황진이를 사모했다거나 연모한 것으로 회자되지만 임제보다 30여년 앞서간 황진이는 송도삼절(서경덕 박연폭포 황진이)로 일컬어진 인물이며 많은 시인묵객들이 한번쯤 시(詩)를 대작해보고 싶어 했던 천하명기였으니 천하 대장부 임제도 마주앉아 지필묵을 앞에 놓고 어찌 회포를 풀고 싶지 않았겠는가?
청초 욱어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임제는 한문소설 창시자답게 제주목사로 재직하고 있는 아버지 임진을 뵈러 제주를 다녀온 탐라기행문(南溟小乘), 그리고 꿈속의 원자허를 통하여 단종과 사육신을 찬양하고 수양대군을 비판하는 원생의 꿈(元生夢游錄), 꽃과 사람을 비유하여 꽃은 변함없이 피고지지만 수시로 변하는 사람을 비판하는 꽃역사(花史), 84가지 동식물을 의인화하여 권력층을 풍자한 재판받는 쥐(鼠獄說) 등은 소설을 통하여 양반세력간 알력과 투쟁이 심화되는 당시의 세태를 풍자하고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특히 재판받는 쥐(鼠獄說)는 84종의 동식물을 의인화시킨 우화적 수법을 쓰고 있는데 그들의 형태, 생태, 장점과 단점들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적절한 고사를 삽입함으로써 무능한 권력층을 해학적 표현으로 풍자하여 신랄하게 꾸짖고 있으며, 주인공인 ‘늙은 쥐’는 나라의 재산인 창고의 곡식을 도적질하고 죄를 추궁 받게 되자 교활하고 음흉한 수단과 간교한 지혜로 의인화시킨 복숭아꽃, 고양이, 여우, 원숭이, 앵무새, 까마귀, 독수리, 파리, 지렁이 등 84종의 동식물에게 뒤집어씌우는 핑계를 대고 있는 모습이 이 시대의 권력층과 하등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것은 임제의 400년 시공(時空)을 초월한 통찰력에 놀랄 따름이다.
임제는 관직을 물러난 후 많은 일화를 남기며 전국을 주유천하(舟遊天下)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39세를 일기로 파란 많은 생애를 마치게 되는데, 항상 약한 자의 편에 서고자 했던 의협심이 강한 선비였으며 종속적인 상태의 나라에 대한 주체성을 강조한 사상가였음을 그의 유명한 유언 ‘물곡사(勿哭辭)’에서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사방 여러 나라 중에 황제를 자칭하지 않는 나라가 없는데 유독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하니, 이런 욕된 나라에서 태어나 죽은들 무엇이 아깝겠느냐? 곡을 하지 마라.”
이 얼마나 줏대 있고 위대한 장부의 한마디였던가! 임제의 사상적 철학이 함축된 글이며 격정적인 울분으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그의 짧은 인생 전체가 녹아있는 유언으로 이 시대의 위정자(爲政者)들이 새겨듣기를 기대해 본다.
<나주임씨 카페에서 옮겨온 글>
첫댓글 개관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대단한 분이시네요.함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였습니다.감사해요
어릴때 재판받는 쥐(鼠獄說)를 읽어본적이 있습니다.알고보니 대문호이신 임제님이 쓰신글이시네요.언제 시간나면 백호문학관에 가봤으면 좋겠네요.어느새 단오명절이 왔네요.즐거운 명절 행복한기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