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962호
그럴 때가 있다
이정록
매끄러운 길인데
핸들이 덜컹할 때가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눈물로 제 발등을 찍을 때다.
탁자에 놓인 소주잔이
저 혼자 떨릴 때가 있다.
총소리 잦아든 어딘가에서
오래도록 노을을 바라보던 젖은 눈망울이
어린 입술을 깨물며 가슴을 칠 때다.
그럴 때가 있다.
한숨 주머니를 터트리려고
가슴을 치다가, 가만 돌주먹을 내려놓는다.
어딘가에서 사나흘 만에 젖을 빨다가
막 잠이 든 아기가 깨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촛불이 깜박,
까만 심지를 보여주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가 있다.
순간, 아득히 먼 곳에
불씨를 건네주고 온 거다
- 『그럴 때가 있다』(창비, 2022)
***
오늘은 이정록 시인의 시집 『그럴 때가 있다』의 표제시를 띄웁니다.
- 그럴 때가 있다
이정록 형의 시집은(청소년 시집이 아니더라도)
어른보다는 청년들이, 청년보다는 청소년들이, 청소년보다는 조금 더 어린아이들이 읽어도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참 많습니다.
시인이 전하는 파동에 공명하기에는
대개의 어른은 자신만의 주파수가 이미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렵사리 공명한다 해도 생각의 변화, 삶의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시에 공명하는 어른이 많다면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니 당신이 지금 이 시를 읽고,
마음에 어떤 울림이 없다 해도, 공명하지 못한다 해도 그다지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실망할 일도 아닙니다.
이런 시를 꾸준히 읽다보면
언젠가 내 안에 불씨 하나 문득 되살아날지도 모르니까요.
문득 그럴 때가 정말로 올지도 모르니까요.
그런데 정작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에게도 정말 그럴 때가 있긴 했을까요?
나에게도 그럴 때가 오긴 올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출근길 흐린 가을 하늘에서
노란 별 하나가
툭
어깨에 내려앉더군요.
이성선 시인은 그걸 우주가 손을 얹었다 했지요.
2024. 11. 11.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