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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九章 용유진, 흑점(黑店)에 가다(四) 1. "조금 과한 수(手)가 아니었습니까?" "손(手)가 아니라 발(脚)이지." 우습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말로 대꾸하곤 임태풍은 변명을 덧붙였 다. "이놈은 대단히 위험한 놈일세. 혼자로는 별게 아니지만 수하들을 거느리고 있을 땐 무섭지. 기회가 있을 때 죽여버리는게 세상에 도움 이 돼. 앞으로 자네가 해야 할 싸움에도." "내가 오행마군과 싸울 거라고 보시는 겁니까?" "자네가 원하지 않더라고 그쪽에서 자넬 그냥 내버려두질 않을 걸세." 시체 앞에서 염불을 하던 사대금강이 이때 한 마디 거들었다. "무당파도 그럴 거요. 그들은 원래 표국연합 쪽 일에 크게 상관하지 않고 있었소. 하지만 오늘을 계기로 달라지겠지요. 그리고 그건 용 표 상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거라는 걸 예상할 수 있소." 용유진이 말했다. "황금을 찾고 흉수를 밝히지 못하면 무당파가 개입하건 않건 제겐 불리한 일뿐일 겁니다. 그러니 그걸 찾는게 급선무지요." "그래.그게 가장 중요하지." 임태풍이 말했다. "도대체 황금이 어디 있나?" "모릅니다. 하지만 대강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사대금강이 끼어들었다. "중원대협 이장도는 어디 있소?"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대강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대금강이 놀라서 물었다. "그 말씀은 그가 살아 있을 거라는 뜻으로 들리는 군요. 과연 그렇 소?" "아마도 그럴 걸로 짐작합니다. 그런데 역시 소림사는 다르군요. 황 금보다는 인명에 관심을 두시니." 임태풍이 희미하게 얼굴을 붉혔다. "그건 내 욕인가? 인명보다 황금에 더 관심을 가졌으니 말일세. 욕 을 먹어 싸지. 하지만 나는 솔직히 말해서 이장도 따위의 목숨보다는 북경성 밖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빈민들이 더 걱정된다네." 사대금강이 말했다. "그거야 말로 대인대의(大仁大義)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지요. 임 총표 파자께서는 듣던 대로군요. 그러나 대인대의 근본에는 한 사람의 목 숨을 아끼는 마음이 깔려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임태풍은 코방귀를 뀌었다. "흥, 내게 도덕을 말하지 마시오. 나는 대인이니 대의니 하는 것은 모르오. 그냥 내키는 대로 할 뿐.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살리고 싶으 면 살리는 게 나요." 용유진이 손을 저었다. "황금이든 사람이든 찾아야 중요한 것이겠죠. 그나저나 여기서 이러 고 있지 맙시다. 당장 임 총표파자의 발밑에 깔린 사람들이 매우 답답 할 테니 말입니다." 임태풍이 비킨 자리에서 없던 문이 만들어졌다. 바닥이 사각으로 천 천히 들리고, 강위명의 얼굴이 나타났다. "밖에서 악적들이 여자를 노리고 있는데, 달리 피할 방법이 없어서 이리 숨었습니다." 요점을 말하고 그는 사각 구멍 아래를 향해 손짓했다. "그만 나오세요." 멍한 눈의 여인, 옥봉이 천천히 기어 올라왔다. 대충 구한 옷으로 감 싸고 있는 데다 위치가 아래였기 때문에 흰 가슴속이 들여다보였다. 사 대금강은 돌아서서 외면했다. "이건 한 번 본 분이군. 여긴 웬일로 나타났을까?" 말하던 용유진은 그녀의 흐릿한 눈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 아픈가? 정상이 아닌걸?"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임태풍이 주위를 환기시키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옥봉이 아픈 것 같다는 말에 사대금강 중 여태 한 번도 말을 않았던 화상이 다가와서 진맥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자 하나의 특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강호에 나와 돌아다닐 때 없어서는 안 될 능력을 중심으로 소림사 내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교육은 소림사답 게 고도의 수준을 자랑하는 것이다. "약에 중독되었습니다. 미혼약 계통인데, 보통 강한 게 아니라 쉽사리 풀려나지 못할 듯합니다. 하지만 당한 지 오래되어 약기운이 떨어질 게 분명한데도 아직 이 상태인것은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한 가지 알 수 없는 기운이 상세를 악화시키고, 미혼약의 기능과 상승작용을 일으키 고 있다는 거지요. 더 자세히 진단을 해봐야겠습니다만 그 힘을 제가할 수 있다면 약에서도 깨어날 겁니다. 하지만 그게 내가기공, 그것도 사 공 종류의 기운 같은데, 이 여인 본래의 것이 아니라 겉도는 어떤 것입 니다. 즉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주입된 힘 같습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 보는 것이라 소승으로서는 더 이상 알 수 없습니다. 치료할 수도 없고." "제가 잠깐 볼까요?" 용유진이 나섰다. 기공 종류에 관한 것이라면 동창에 있을 때 거의 안 배운 것이 없었기 때문에 알 만할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옥 봉의 몸 속에 돌아다니는 그 기운은 그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다. "천마불사공!" 용유진의 나직하면서도 놀란 소리가 임태풍과 사대금강 역시 놀라게 했다. "그게 왜 이 여인의 몸에? 그보다 자넨 그걸 어떻게 아나?" "천마불사공? 전설의 그 기공이 실제로 있었습니까?" "예....." 용유진은 말꼬리를 길게 늘이다가 대답했다. "자세한 건 천천히 말씀드리지요만, 저도 좀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의 몸에 돌아다닌 게 그게 맞다는 걸 확신할 수 있죠. 대충 말하면 누군가가 이 여인을 이용해서 내공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엄청 난 내공을. 이 정도 내공에 이 여인의 신분을 근거로 추측해 보면 아마 동방척에게서 당소기에게로 옮겨지다가 중간에 빠져나오게 된 모양인 듯합니다." "그게 가능한가?" 임태풍의 눈이 커졌다. "나도 그걸 배웠지만 그게 가능한 줄은 몰랐는걸?" 사대금강이 복잡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지는 천마의 무공을 익힌 두 사람, 아니 적어도 네 사람이 동시에 강호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하나같이 강호의 절정고 수들이다. 소림사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 쨌든 당면한 문제는 여자였다. 용유진이 말했다. "약에 관한 건 모르겠지만 그 기운에 대한 거라면 해결책은 간단합 니다. 천마불사공을 배운 누가 이여인의 몸에서 그 기운을 받으면 되 는 거죠." "방법은?" 임태풍의 질문에 용유진이 대답하려다가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임 태풍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임태풍도, 사대금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사대금강은 속으로 절대 그 방법을 말하지 말아 줄 것을 빌고 또 빌었다. 용유진이 말했다.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말씀드리기 어렵군요. 이유는 짐작 하시겠죠?" 임태풍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물론 짐작하고 이해하네. 나 같은 대 도적이 기연까지 얻으면 천하 만민을 위해 큰일이다 이거겠지?" 용유진은 웃었다. "표사들에게 특히 큰일이죠." 임태풍도 웃었다. "믿을지 모르지만 나는 더 이상 내공에 의존하지 않네. 더 있어도 필요 없고, 욕심도 없어. 방법을 물어본 건 솔직히 다른 마음이 있어 서인데.., 그래 말하지. 내가 배운 천마심공, 즉 천마불사심공이라고도 부르는 그 심법이 어딘지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걸 보완할 수 있지 않 을까 해서지." 임태풍의 솔직한 고백은 이런 것이었다. 즉, 그는 과거 모종의 기연 으로 마교 멸망 시에 빠져 나온 비급을 익히게 되었다. 거기에는 세 가 지 무공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천마군림보, 검법 아수라파천무,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천마심공이었다. 문제 는 그 천마심공이 불완전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두 무공을 시선할 수는 있었지만 매우 무리를 하게 되어 한 번 시전하고 나면 탈진한다는 것 이다. "만인평에서는 안 그랬잖습니까." 임태풍은 그때 몇 번이고 천마군림보를 썼다. 조금도 지치는 기색도 없었다. "그 뒤로 나름대로 방법을 강구해서 보완했지.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물론 당연한 일이다. 한 번만 사용하면 탈진하는 무공은 아주 쓸모 가 없다고는 볼 수 없어도 매우 위험한 것일 터이다. 어떤 식으로든 보 완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용유진도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가 궁금해한 것은 어떤 방법을 썼느냐 하는 것인데, 이건 물어서는 안 되는 질문이었다. 그가 옥봉의 몸에서 내공을 빼내는 방법을 안 가르쳐 준 것처럼. 그래서 그는 얼굴을 붉혔다. "어쨌든 그건 불완전한 방법일 수 밖에 없지. 그래서 자네가 말한 방 법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 것일세. 그걸 알면 내 천마심공을 보완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용유진이 알고 있기로는 천마심공과 관련된 무공을 아는 사람이 적 어도 아홉 명은 되었다. 과거 유황도에서 탈주 후 죽은 팔황신마(八荒 神魔) 가뢰도(賈賴度)에게서 배운 중주사견, 자칭 천마불사공을 익혔다 는 생사판, 그리고 중주사견에게서 배웠을 동방척과 당소기, 역시 중주 사견에게서 배운 용유진 자신, 지금 앞에 있는 임태풍이었다. 이 중 생사판은 자칭인 데다가 실제로는 오행진독신공을 응용한 천 마호심결이었지만, 나중에 그가 중주사견에게서 배운 천마불사공의 원 리와 적지않게 맞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천마호심결이라는 것도 같 은 계통에서 흘러나온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동방척과 당 소기도 중주사견에게 배우기 이전에 이미 그 계통의 내공을 익힌 것으 로 의심되는데, 이는 진장자와 겨룰 때 사용한 오행마공이 역시 천마심 공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편 용유진 자신은 아마도 상당히 변형된 데다가 일부에 불과할 가 능성이 높은 천마호심결을 익혔고, 중주사견을 통해 천마불사공을 배 웠다. 둘 다 방계의 것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지만 실제로는 가 장 완벽한 천마심공을 익혔다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그는 공손영령 과 함께 천마령의 비밀을 풀고 천마환을 복용함으로써 천마심공의 진 수를 흡수했고, 나중에 중주사견의 품에서 천마경까지 탈취해서 거기 수록된 무공들을 익힌 것이다. 물론 그는 이것들에 큰 비중을 두지는 않았다. 그것말고도 그에게는 여러 무공이 있었고 어딘지 근본이 의심스러운 마교의 무공보다는 차 라리 다른 쪽이 쓰기가 편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임태풍은 다른 심법으로 보강하는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이 태청강기나 옥로진기, 대력금황기 등과 같은 그 자체 만으로도 구대극품강기에 포함되는 심법을 배웠을 가능성은 그렇게 크 지 않았다. 그래서 용유진에 비하면 더욱 천마심공에 의존하는 것일 텐 데...... '역시 이 사람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방법이 있는데도 손을 쓰지 않을 수는 없지.' 용유진은 결단을 내렸다. 그는 강위명을 가리켰다. "저 아이는 어떻습니까?" 임태풍은 이 엉뚱한 말에 잠시 주춤하다가 곧 무뚝뚝하게 말했다. "아직은 모르겠네." "나는 이 아이가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부 가 되고 나서 한 가지도 제대로 가르쳐 준 것이 없어 미안하게 여기던 차였지요. 이제라도 하나 전수해서 한때의 사부였던 의무를 다학자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강위명이 급히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러실 필요는....." "자네가 뭘 가르쳐 준다면 나는 반대하지 않겠네." 임태풍이 강위명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강위명에게 들으라는 한 마 디를 덧붙였다. "반드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용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이는 아직 열다섯이지만 한 여자를 책임질 만큼은 컸다고 생 각됩니다. 그러니 이 아이가 이 여자를 데리고 사는 조건으로 치료법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으외의 해결방법이라 임태풍도 약간 놀라서 되물었다. "그건 무슨 소린가?" "이 여인의 문제를 내가 고치려 한다면 단번에 고칠 수도 있죠. 하 지만 이 아이가 고치려면 우선 제가 알고 있는 천마심공을 배워야 하 고, 가외로 하나 더 배워야 합니다. 옥방심결(玉房心訣)이라는 건데, 이 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방중술이죠. 이걸 사용하면 치료할 수 있습니 다. 대신 혼인해야 할 수 있는 방법이죠. 배우고 익혀가면서 한 십 년 쯤 치료하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혼인을 해야 하 는 거죠." "옥방심결? 방중술?" 강위명은 물론 임태풍과 사대금강까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용유진은 덤덤하게 말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게다가 그걸 익히면 한 가지 부수입도 있죠. 옥로진기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자네 옥로진기도 알고 있었나?" 놀라던 임태풍은 다시 인상을 썼다. "그걸 방중술로 익혔단 말인가?" 임태풍은 녹림도의 괴수로 윤리도덕을 우습게 알고 파격을 좋아하지 만, 음란한 것에 대해서는 질색을 하곤 했다. 그래서 방중술이라는 이 야기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인데, 용유진은 그게 어떠냐는 태도였다. "재미 삼아 한다면 재미도 잃고 몸도 망치겠지만 이치를 궁구하고 실제에 응용하면 좋은 겁니다. 저야 그게 아니고 고루천강기를 사용해 서 익히게 되었지만요." "고루천강기?" 임태풍과 사대금강은 다시 놀란 빛을 보였다. "그건 또 어떻게 배웠나?" 임태풍은 손을 저었다. "아니아니, 전에 싸울 때 이미 그걸 배웠다는 건 알아봤지. 근데 정 말 자넨 아는 무공도 많군. 도대체 자네가 안 배운 무공은 뭔가?" 용유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많이 안다고 잘하는 건 아니고, 내공이 무공의 전부인 것도 아니라 는 건 잘 아시잖습니까. 저는 어찌어찌 기회가 되어 이것저것 섭렵하게 되었지만 그야말로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대충 훑었을 뿐, 잘 하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게 문제죠." 그리고 고루천강기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게 했다. "안사람이 지금 강시당주입니다." "아!"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특히 사대금강의 얼굴에 안도하는 빛이 스쳤다. "강시당..... 아. 그랬군요. 과연 그래서......" 강시당의 전대당주 공손조덕은 정파로부터 마중협(魔中俠)이라고 불 릴 정도의 인물이고, 현 당주 공손영령은 지혜로우면서도 공정해서 강 호명문의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사람의 손주사위요 남 편이라면 어느 정도 믿어도 될 것이다. 사실 그들은 용유진의 그 너비 와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무공에 은근히 걱정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 던 것이다. 만약 이러한 인물이 마도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강호에 끼칠 해악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두 분 사부님은 중요한 것을 잊고 계십니다." 강위명이 끼여들었다. "혼인은 당사자 마음에 달린 것인데, 허락도 받지 않고 어찌 제 맘 대로 하겠습니까." 용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꼭 그런 건 아니다. 둘 다 원하는 혼인도 있겠지만 둘 중 하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경우도 있지. 이 여자는 네가 아니면 이렇게 살다가 죽 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네가 거둬 주면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갈 거다. 아이와도 같이 조금씩 변해가는 거지. 십 년쯤 후에는 완전히 정신을 찾겠지만 그땐 아이가 둘셋은 되겠지. 행복한 부부가 되는 거다. 그때 가서 혼미한 상태로 억지로 아내로 삼았다고 원망하진 않을 거다." "중요한 게 또 하나 있지." 임태풍이 말했다. "여자는 그렇다 치고, 이 아이는 그걸 원하느냐 하는 거야. 내가 알 기로 삼채삼봉은 오행마궁 내에서의 위치가 묘하지. 즉, 당소기의 애첩 에 가깝다는 거야, 그렇지?" 방 한쪽 구석에 나란히 꿇어앉아 있는 세 사람, 천리안, 순풍이, 취 장비가 임태풍의 질문을 받고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여자에게서 내공을 뽑아내는데에 방중술이 필요하다면 애초에 내공을 불어넣을 때도 그랬을 것 같은데, 그건 어떤가? 내가 잘못 생 각했나?" 이번에는 용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랬을 겁니다." "그러니까 문제지. 근본도 모르고 행실도 의심스러운 여자를 그렇게 함부로 아내로 삼을 수 있겠나?" 용유진은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이 되어 강위명을 보았다. "그게 문제라면 나도 더 이상 못 권하겠군. 네 생각은 어떠냐?" 강위명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건 상관없습니다. 이 소저는 제가 구했으니 제가 끝까지 책임을 져야겠지요.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옥봉을 향해 말했다. "일어나 보시오, 소저." 옥봉이 시키는 대로 일어났다. "앉으시오, 소저." 옥봉이 말 잘 듣는 어린아이 처럼 주저 앉았다. "이렇습니다. 누가 시키든 시키는 대로 다 합니다. 그건 좀 문제죠." 용유진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한때 공손영령이 저럼 모습이었다는 것이 갑자기 기억났던 것이다. 물론 그때 그녀는 연극을 한 것이고 이 여자는 진짜로 그런 상태라는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왜 웃나? 정말 심각한 문젠데." 용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시키는 대로 다 하고 불만도 없으니 마누라로서 그렇게 좋은 조건 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이건 결코 나쁜 조건이 아닌걸요." 그렇게 말하고 그는 다시 한 번 웃었다. 그리고 옥봉을 향해 말했다. "일어나라." 물론 옥봉은 그의 말대로 했다. 용유진은 빙긋 웃고 다시 말했다. "이제부터 이 사람이 네 남편이다. 너는 네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 이 시키는 것은 하면 안 된다." 그 말을 반복해서 하되 그 목소리에 모종의 힘을 불어넣어서 했다. 당사자가 아닌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들까지도 그 심령을 뒤흔드는 목 소리에 영향을 받을 정도였다. 그리고 나서 그는 다시 옥봉을 향해 명령했다. "앉아라." 옥봉은 머뭇거리며 그와 강위명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나 끝내 앉지 는 않았다. "이번에는 네가 명령해 봐라." 강위명이 말했다. "앉으시오, 소저." 옥봉은 주저없이 앉았다. 용유진은 그 모습을 보고 다시 한 번 웃었 다. "이젠 됐지?" "무슨 방법을 쓴 건가?" 임태풍이 물었다. "돌이킬 수 없는 명령을 한 것이죠. 거기 약간 요령을 부렸지만 사 공(邪功)에 불과하니 밝히기가 부끄럽군요." 용유진은 간단하게 대꾸하고 낯빛을 굳히며 말했다. "이제 이 문제는 일단락된 것 같으니 중요한 이야기를 하죠. 지금부 터 하는 말을 들으면 불쾌할 분도 계시겠지만, 끝까지 들어 주십시오." 임태풍이 천리안 등 세 사람을 가리켰다. "저 친구들이 들어도 되나?" "저 사람들의 능력이 필요한 시점이니 당연히 들어야지요." 순풍이가 말했다. "저희들은 아까 도망간 비익조를 십 년이나 옆에서 모셨습니다. 그 런데 위급한 때가 되니 헌신짝처럼 버리고 도망가버리는구요. 그런 사 람을 어찌 다시 모시겠습니까. 저희는 이제 대협을 주인으로 삼아 평생 모시고자 합니다." 천리안과 취장비가 순풍이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임태풍이 그들 둘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너희들은 다른 생각이냐?" 천리안과 취장비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대협. 저희도 용 대협을 모시겠습니다." 용유진이 손을 저었다. "내가 주인 노릇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오. 하지만 이번 일에는 귀 하들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니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만 도와주시오. 그후에는 마음대로 하시고. 며칠 걸리지도 않을 거요." 임태풍이 물었다. "그 일이란 당연히 표물을 찾는 거겠지?" "사람 찾는 일도 있구요." "그게 며칠이면 가능하단 말인가?" "제 추측대로라면 그렇습니다." "그 추측이라는 걸 들어보고 싶군." "먼저 아가 말씀드리지 않은 부분부터 이야기해 보죠." 그러면서 용유진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즉, 이장도가 그를 암습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였다. 경과가 복잡하지는 않으니 이야기는 간단하 게 끝났으나 그 후의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그는 특히 사대금강을 주 의 깊게 관찰했다. 이장도의 행동에 대한 보고가 그들을 충격에 빠뜨린 듯했으나 소림사의 화상답게 진정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임태풍 이 먼저 말을 꺼내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이번 일은 이장도가 꾸민 일이라는 건가?" "적어도 공모자 중 하나일 겁니다. 아마 주동자는 따로 있겠지요. 이 장도는 공모자 이상의 일을 할 능력을 갖춘 인물은 아닌 것 같았습니 다." "증거가 있나?" "제가 당한 일이 증거죠." 임태풍은 비웃듯 입술을 실룩였다. "미안하지만 그건 증거가 안 돼. 자네가 거기 떨어졌다는 증거를 먼 저 대야 하지 않는가." "그 증거는 여기 있죠." 용유진이 제시한 것은 팔괘검도보였다. 임태풍과 사대금강이 그것을 돌아가면서 살펴보고 다시 용유진에게 주었다. 사대금강은 그게 칠절 신군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인정했다. 확증할 수 있는 것은 아 이었다. 이것이 증거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칠절신군의 팔괘검법을 잘 알아야 하고, 이 검도보를 보고 그 이론과 실제가 부합하는지 알아볼 수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당장은 이것이 엉터리가 아니라는 정도는 알아 볼 수 있었다. "아까의 석현자와 같은 무당파의 검도 명가에게 보이면 더 쉽게 알 아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이 그냥 간 게 아쉽군요." 강위명이 이때 의견을 내놓았다. "다른 방법도 있을 듯합니다. 말해도 좋겠습니까?" "물론이다. 앞으로는 허가 받을 필요 없이 그냥 말해라. 무식한 무림 인보다 네가 나을 수도 있지." 강위명의 지모를 인정하는 용유진이 그렇게 말하자 강위명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 생각한 바를 말했다. "말씀대로 칠절신군이 정말 칠절이라면 그 중에는 서(書)라는 부분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겠군요." "그렇다." "그렇다면 한 일 없이 그냥 유명할 리가 없으니 반드시 명필임을 증 명할 수 있는 족자나 문장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는 임태풍이 대답했다. "우린 그런 부분에 별 관심이 없으니 잘 모르지만 그 사람 서화가 비싼 값에 거래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잘 사는 게 그 이유지." "그렇다면 문제는 간단하군요. 그가 서화로 유명하다면 이 검보를 도성의 실력있는 서화상(書畵商)에게 보여 주면 그의 글씨인지 아닌지 감정할 수도 있을 겁니다." "과연!" 용유진과 임태풍, 사대금강이 동시에 감탄사를 발했다. 무림인으로 서는 좀처럼 생각해내기 어려운 발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제 자네 말을 믿는다 치고, 이장도가 왜 그렇게 했는가, 표물은 어떻게 빼돌렸는가를 생각해 봐야겠군." 용유진이 대답했다. "그 부분은 이게 설명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절벽 아래에서 이걸 발 견했죠." 용유진이 내놓은 것은 나무조각과 벽돌이었다. 불에 탄 나무 조각 과 깨어진 벽돌 조각 하나였다. "그게 뭔가?" "황금을 담았던 상자의 파편이죠." 용유진은 나무 조각을 들어 보여 주었다. 임태풍은 주의 깊게 살펴 보았지만 그게 상자의 파편일 수도 있겠다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 더 이상의 뭔가를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상자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보여 주는 단서입니다. 즉, 태워서 절 벽 아래로 던진거죠." "그럼 놈들이 상자를 그렇게 처리했다면 그 안의 물건은 어떻게 됐 나?" "이게 그 문제를 설명해 줍니다." 벽돌 조각이었다. 임태풍은 그 벽돌 조각을 들여다보며 기가막힌 듯 말했다. "자네 말은 그러니까...,표차에 실려 있던 건 이 벽돌이다 그건가?" "보통 벽돌은 아닙니다. 아주 단단하고 무거운 놈이죠. 강철보다 무 거워요. 이 정도 되니까 황금과 비슷한 무게를 가장할 수 있었겠지요." 임태풍은 더 이상 말을 않고 한참이나 벽돌과 나무 조각을 들여다보 았다. 그러다가 용유진에게 따지듯 말했다. "이건 이번 표행 때의 것이 아닐 수도 있잖은가. 널빤지 조각과 벽 돌은 누구든 버릴 수 있는 거니까. 이게 바로 그거라는 근거는 어디에 있나?" "조각을 보면 압니다." "자네는 널빤지 조각만 보고 그게 표물을 담았던 상자의 파편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있나?" 믿지 못하겠다는 임태풍의 말에 용유진은 당연한 일 아니냐고 대답 했다. "확신하고 있습니다. 문외한에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제대로 된 표사 는 바퀴자국만 봐도 어느 차행의 것인지 알아볼 수 있고, 널빤지 하나 만 봐도 그게 어디 사용된 물건인지 알아봐야 하지요." 임태풍은 고까운 듯 용유진을 노려봤지만 더 따지고 들 수 없었는 지 다른 방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 게 있네. 자네 말대로라면 애초에 황금은 출발하지 않았다는 건데, 그럼 그건 어디로 간 거지? 왕소팔은 왜 이 런 일을 꾸민 거지? 아니면 왕소팔은 모르는 건데 이장도가 중간에 빼 돌린 건가?" "이장도..., 이 국주가 중간에 빼돌렸다는 생각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계속 옆에 있었으니까 표행 중에 그런 일은 없었다고 확신해도 좋습니다." "그럼 왕소팔이 꾸민 일이라는 이야기?" "아마도 그렇겠죠." "왜 그런 일을 했을까? 황금은 어디로 갔나?" "우선 황금이 이야긴데.., 저는 황금이 어디로 갔나를 궁금해할 것 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애초에 황금은 없 었다라고. 이번 일은 그냥 한 편의 연극이었다고." "무엇을 위한? 왜?" "정확한 이유는 저도 모르죠. 단지 추측해 볼 뿐인데, 우선 왕소팔에 게는 재산을 정리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건 모두가 아는 일이죠. 하 지만 단지 경사에서 떠난다는 것만으로는 불안했던 겁니다. 그래서 아 예 잠적해 버리는 것을 생각했죠. 그로서는 황금을 감추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감추는 쪽으로 해결을 모색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임태풍은 어리둥절했다. "헷갈리는 이야기군. 어쨌거나 황금은 챙겼을 거 아닌가. 잠적을 하 든 안 하든 그 막대한 재산을 버려두고 가진 않았을 테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이번 표행에 황금을 싣고 가서 어딘가로 빼돌렸다고 생각하는 게 더 옳지 않을까?" "황금이 있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한 상자뿐이었고, 표행에 황 금이 있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버려지는 것이었죠. 이번 일은 뭐랄 까....황소팔의 재산을 황금으로 바꿨다는 점에 집착하는 그 맹점을 찌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양의 황금으로 사람들의 눈을 가린 셈이죠. 그러나 사실 그의 재산은 사전에 옮겨놨던 겁니다." "어디로? 어떤 방법으로?" "다른 사람 명의로요." 임태풍의 눈이 커졌다. 무슨 소리인지 잠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재산을 옮긴다는 것을 물건 옮기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이 해가 안되죠.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왕소팔과 같은 부자가 만 약 재산을 정리하고, 그걸 금으로 바꾸고, 어딘가로 옮겨가서 다시 원 래의 형태, 즉 집과 정원, 서화와 골동품, 많은 점포와 조직망으로 만 든다는게 얼마나 번거로운 일입니까. 하지만 그걸 다른 사람 명의로 넘기는 건 터무니없니 간단한 일이죠. 그러네 만약 그 새로운 사람이 왕소팔 자신이라면?" 임태풍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것은 사실 질문이 아니라 확인행위 에 불과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재산들, 즉 천하에 널린 사업체와 재물, 집과 정원, 서화와 골동품을 산 사람이 왕소팔 자신이란 말인가?" "그랬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근거는 없죠." "거령장으로 가서 확인해 보면 알겠군." "아마 확인할 방법이 없을 겁니다. 왕소팔은 잠적했으니까요." "새주인이 왕소팔 자신이라면서?" "다른 사람일 수도 있죠." 임태풍이 화를 냈다. "장난치나?" 용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왕소팔이 내세운 대리인일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그놈 배경을 조사해 보면 되잖아. 왕소팔과 연결된 끝이 나올지 모 르지." "아마 용의주도하게 숨겼겠죠. 경험상 아는 겁니다만, 동창은 그렇게 녹록한 단체가 아닙니다. 왕소팔에게 주목을 했다면 그와 관계된 모든 것을 들춰내서 확인하죠. 그런데 왕소팔의 재산을 인수한 사람을 조사 하지 않았을 리가 있겠습니까? 왕소팔 자신이 가면을 쓰고 나와서, 혹 은 급조한 가짜가 나타나서 인수한다면 금방 들통이 났을 겁니다. 그는 원래 뭘하던 사람인지, 왕소팔의 재산을 인수할 정도의 재물은 어떻게 모았는지 등등...." "그렇군. 하지만 그건 또 무리가 있는 이야기 아닌가. 왕소팔의 재산 을 인수할 정도의 거부라는 것은 즉, 적어도 왕소팔보다 두 배의 재력 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인데, 그런 사람이 지금 천하에 있을 리가 있 나? "아마 여러 사람이, 그것도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여러 사람이 제각기 인수한 것으로 조사됐을 겁니다. 즉 집은 갑(甲)이 사고, 서화 는 을(乙)이 사고, 강남의 가게는 병(丙)이, 복건의 사업망은 정(丁)이 인수했다는 식입니다." 듣고만 있던 사대금강이 이때 개입했다. "분명 그런 모양이 됐겠지요. 하지만 이 경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즉, 왕소팔 시주가 가상의 자신에게 재산을 넘긴다는 추측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갑을병정 모두 왕소팔의 분신이어야 합니다. 그건 더욱 어렵지요.만약 그들의 배후에 왕소팔이 있다고 해도 역시 문젭니다. 동창이 그 각각을 조사해서 만약 그들이 공통된 어떤 것으로 묶여 있 다는 것을 발견하면 바로 그 끈의 끝에 있을 왕소팔 시주에게 추적이 갈 테니까요. 그럼 아무 연관이 없는 사람들에게 재산을 나눠줬다는 건 데, 왕시주는 도대체 무슨 끈으로 이들을 조정하고 있을까요." 용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핵심에 근접한 것 같군요. 저는 표행에 황금이 없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증거물을 발견하면서부터 모든 것을 되짚어서 생각해 봤습니 다. 애초에 황금은 옮겨지지 않았다. 왕소팔은 잠적했다. 이장도도 사 라졌다. 중원표국은 표사 전원이 죽음으로써, 아마도 핵심인물 몇몇은 살아 있을 것 같지만, 어쨌든 망했고, 왕소팔이 부리던 사람들도 뿔뿔 히 흩어졌다. 이런 모든 상황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가능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했죠." 임태풍이 침을 삼키며 물었다. "그게 뭔가?" 용유진이 간단히 대답했다. "종교입니다." 신분도 배경도 다른 사람들, 어떤 끈으로도 서로 엮이지 않는 사람 들, 그러나 어떤 끈보다도 강하게 서로를 묶어 줄 수 있는 끈, 그것은 종교밖에 없다. 그렇게 용유진은 추측해 본 것이다. 임태풍과 사대금강 은 이 추측에 어느 정도 동의 할 수 있었다. "아마 사교(邪敎)를 신봉하는 무리일 것입니다." 사대금강의 의견이었다. "사교라서 나쁜 일만 한다. 그런 의미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 교를 신봉해야만 그런 결속력이 생긴다. 그 의미입니다." 정통 종교는 개조(開祖) 이래로 오랜 세월을 거쳐 변화 발전을 거듭 하면서 고도로 세련된 교리와 의식을 갖게 마련이다. 그 과정에 애초 가졌던 원시적인 힘도 상당 부분 잃게 되는데, 이것은 좋게도 나쁘게도 작용을 해서 그 신도들을 현실 세계로부터 크게 유리시키지 않는 반명, 장악력은 떨어지게 되는 면이 있었다. 그러나 사교는 대개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조건적인 신봉이라는 것이 남아 있으며, 또한 애초에 사람을 미혹시키고 교단의 지시에 절대 복종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 로 만들어지는 것도 있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교가 천하에 어디 한두 갠가. 그건 아무런 단서가 못 된다네." 임태풍이 실망스러운 어조로 투털거렸다. 용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사교는 한두 개가 아니지만 천하에 세력을 펼친 사교는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대개느 한 지방, 한 고을 정도가 고작이지요. 그리고 단 서는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장도입니다." "이장도가 어떤 단서가 된다는 건가." "우린 왕소팔의 재물이 움직이는 문제에 대해서만 생각했지요. 그러 나 생각할 것이 또 하나의 재물이 있다는 겁니다. 즉, 무인으로서의 삶 입니다." 이장도는 무인이다. 무인에게는 무인으로서의 부분, 즉 무공과 무사 의 삶이라는 것이 황금보다 중요한 재산일 수도 있다. "만악 그런 사람이 한참 활동할 시기에 자취를 감춘다면 죽었거나 무공을 잃은 경우 외에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안 그러면 언젠가 또 나타나겠지요. 하지만 이장도는 이장도로서는 다시 나타날 수가 없습 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표국과 표사들은 이번 사건을 결코 잊지 않을 테니까요." "소림도 그렇습니다." 사대금강의 나직하면서도 분노가 갈무리된 목소리였다. 용유진은 그 를 힐끔보고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장도로서는 이런 사건을 일으키고 잠적해 버리는 것은 무인으로 서의 삶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무인에게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은 금분세수까지 한 동방척이 체면 불구하고 다 시 나타났다는 일에서도 증명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 우리는 이장도도 왕소팔처럼 어떤 다른 모습으로 새로 나타날 계획이 있었다고 봐야 하 는 겁니다. 즉, 왕소팔이 재산을 옮긴 것처럼 그도 무인으로서의 삶을 옮겼다는 것이죠."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임태풍에게는 이 부분이 왕소팔의 일보다도 오히려 더 이해하기 어 려웠다. 재물을 타인의 명의로 옮긴다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무 인의 삶을 어떻게 옮길 수 있을까? 그 대답은 사대금강이 했다. 그들은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이더 니 내키지 않는 듯 입을 열었다. "실은 우리도 이장도가 죽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말씀드리기 어려우나 그가 소림사에 보관된 어떤 물 건을 훔쳐갔다는 의혹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물건은 소림사의 본래 물 건은 아니나 무림에 나오면 매우 곤란한 어떤 것입니다. 그리고 이장도 로 하여금 무인으로서 새로운 모습을 하고 나오게 만들 수도 있는 것 이지요." 가려진 부분이 많았지만 임태풍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를 테면 마도의 무슨 비급과 같은 것인가 보군." 사대금강 역시 내키지 않는 모습으로 긍정했다. "비슷한 것입니다." "이제 이해가 가는군. 하지만 이것 역시 큰 단서는 되지 않네. 이장 도가 그 새로운 모습을 하고 다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 기 아닌가?" "큰 단서가 됩니다." 용유진이 말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종교집단의 일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 고 무인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도 알았습니다. 이건 단순하게 무인이 신 도이기도 하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번 일에 참가한 그들 쪽의 무인들 은 적은 수가 아니었습니다. 막판에 나타난 복면인들도 그 일원일 테니 까요. 아마 왕소팔을 호위한 호원무사들도 그랬을 테고. 그러니 이걸 연결시키면......" "생사교?" 임태풍이 외쳤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무림에 유명한 사교로는 생사교가 대표적이지. 아까 말한 조건에 다 부합 되기도 하고. 그들이야말로 생사판의 명령이라면 목숨을 아 끼지 않지. 하지만 이쪽은 아니야. 예전에 무슨 일이 있어서 생사교는 괴멸 직전까지 갔다고 하더군. 게다가 생사판의 불사신공이 사실은 독 을 사용하는 거라는 소문이 나서 신도도 줄어들었고. 지금 생사판은 교 단을 재건하는 데만도 정신이 없다는군. 새 일을 벌일 여유가 없지." '예전의 무슨 일'이 그와 관련된 일이라는 부분은 모른 척하고 용유 진은 생사교가 범인이 될 수 없는 다른 이유를 들었다. "이장도 같은 인물을 휘하에 두기에 생사판을 약하지요." "그럼 남은 것은 하나뿐이군." 유명교(幽冥敎)였다. 유명교는 조정이 금지한 사교의 하나로 그 교주인 유명사군(幽鳴邪 君) 혈련소산(赫連小山)은 십대고수 중 삼군의 반열에 들 정도의 거물이 었다. 이 정도의 인물이라면 이 모든 일의 배후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 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그 유명교를 찾기도 쉬운 노릇이 아닐세." 임태풍은 계속 맥없는 소리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용유진은 그와 반대로 여유만만한 태도를 잃지 않고 있었다. "확실히 저도 기억하는 바입니다만, 유명교는 십여 년 전에 조정으 로보터 금지당한 이후 본거지를 폐쇄하고 활동을 하는데 유명사군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어. 그러니 이장도와 왕소팔이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가 없다는 것이지." "그 유명교 본거지가 폐쇄되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거야 사천.....!~" 임태풍은 깨달았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사천이군!" 용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표행은 왜 사천땅, 그 중에도 이곳을 향해 왔는가?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일 수 있지요." "나는 자네 말을 들은 뒤에도 계속 삭풍애가 여기 여기 때문이라고 만 생각했었네. 수레를 버리고 종적을 감추기에는 좋은 위치니까." "하지만 사람이 사라지기에는 그리 좋은 위치가 아닙니다. 잔도는 앞으로 상당 부분 이어지고, 이곳을 오가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기가 어려우니까요." "그런데도 여기로 온 것은 당연히 몸을 숨길 만한 근거지가 있어서 라는 것이겠지?" "바로 그것입니다. 또한 여태까지는 표물의 행방을 찾았지만 이제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면도 있습니다. 즉, 여태까지는 적어도 상당 분 량의 황금을 휴대한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사람 자체를 찾 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럼 그들의 행방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용유진은 천리안과 순풍이 등을 보며 말을 이었다. "바로 그 부분에서 저 친구들의 도움을 얻고 싶은 거지요. 사람을 찾는데는 전문가가 따로 있는 법이니까." 천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용유진의 인정을 받는 것이 기쁘다 는 듯 뿌듯한 표정이었다. 또한 그에게는 그 기대에 부응할 만한 소득 도 이미 찾아 놓은 것이 있었다. "우선 여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가 지적한 것은 강위명과 옥봉이 숨어 있던 지하도였다. "객잔에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은 심상치 않죠. 그리고 수색은 심상찮 은 것을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일행이 그 추리에 수긍하고 지하도 안쪽을 향해 몸을 날리려는 순간, 문밖에서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수고할 것 없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용유진은 더 이상 추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을 깨달았다.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건 용유진뿐 아니라 일행 모두가 깨 달은 사실이었다. 그들은 어느샌가 포위되어 있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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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ㄷㄱ~~~~~```````
감사해요~^^
잘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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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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