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니다
나는 그저 마을 어귀의 그루터기에 앉아 사람들을 향해 욕을 하거나 소리 지르는 사람
내게 무슨 놀랍거나 슬픈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적 드문 날 혼자 물소리를 듣는다거나 다른 이들 모르게 무슨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마을 어귀의 그루터기에 앉아 사람들을 향해 욕을 하거나 소리 지르는 사람이 된 것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부터였다
내 역할은 이야기를 반전시키는 의외의 목격자 같은 것이고
그 이후로 나는 나오지 않는다
여기선 물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다
이야기는 나도 모르는 새 끝나버렸다고 한다
아마 해피엔딩이었을 것이다 악을 물리치고 소중한 일상을 되찾지만 무고한 이들의 희생이 마음 속에 언제고 남아 있다는 식의
수많은 사상(事象)을 짊어지고, 그 자체로 복잡한 인과가 되어버린 주역들에게 미래란 말은 조금 무거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등장인물의 미래는 상상 속에만 있는 것이니가
믿고 맡겨야지 그 모든 미래를
끝 이후의 시간을
바야흐로 지금은 어떤 이야기 속의 봄날 저 여린 빛의 꽃은 피어 있는 채로 지지 않고 투명한 물은 흐르지 않는 고요한 동심원이고
나는 쓰러진 악과 함께 앉아 있다
[사랑을위한 되풀이],창비,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