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963호
마이크 타이슨을 위한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셋
박제영
s# 아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
플로리다의 낡은 모텔 102호실, 왼쪽 눈 위아래로 뉴질랜드 마오리 부족의 전사 문신을 한 검은 피부의 건장한 중년 남자가 욕실 거울을 보면서 혼잣말을 한다
― 넌 실패자야 넌 좆같은 돼지 새끼야
제트블루 여객기에서 술에 취해서는 자꾸만 깐죽거리던 젊은 백인 녀석을 방금 흠씬 패주고 온 참이다
위스키를 병째 털어 넣고는 침대 위에 벌러덩 누워버린 마이크
그가 살던 브루클린의 슬럼가 브라운스빌은 뉴욕에서 가장 어둡고 가장 위험한 동네였다
― 커스, 당신이 없으니까 모든 게 다 엉망이 되어버렸어 보라고 난 다시 쓰레기가 되어버렸어
s# 아아, 마이크 테스트 둘
마침내 세계 헤비급 복싱 3대 기구 WBC, WBA, IBF 통합 챔피언이 되었을 때
마이크는 이렇게 말했다
― 누구나 얻어맞기 전까지는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맞게 되면 쥐처럼 공포에 떨고 얼어붙을 것이다
돌아보면 내 삶이 꼭 그랬다
나도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처맞기 전까지는
마이크가 말한 대로였다
s# 아아, 마이크 테스트 셋
재기를 꿈꾸던 마이크는 이렇게 말했다
― 어딘가에 너보다 더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네가 배고픈 것이다
아니다
개뿔이 없는 게 문제다
쥐뿔이 없는 게 문제다
노력으로 넘을 수 없는 벽이 문제다
동서고금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넘사벽이
언제나 문제였다
마이크가 이번에는 틀렸다
s# 아아, 다시 마이크 테스트 하나
마이크를 둘러싼 추문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마이크가 사랑한 건 비둘기와 커스 다마토뿐이었다
브라운스빌 뒷골목 양아치들이 마이크가 키우던 비둘기 목을 비틀어 죽였을 때, 마이크는 그 양아치들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소년원에 갔다
소년원에서 나온 마이크가 될 대로 되라지 인생 뭐 있는데 하며 뒷골목을 배회하던 때, 커스 다마토가 그를 입양했고 사각의 링으로 이끌었다
마이크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신문 쪼가리를 꺼내 펼쳐 읽는다
한 소년이 재능의 불씨를 갖고 내게 왔다. 내가 그 불씨에 불을 지피자 불길이 일었고, 그 불길을 키우자 찬란한 불꽃이 되었다. ― 커스 다마토
― 세계 최고의 핵주먹인 내가 핵이빨로 추락한 건 순전히 당신 때문이라고 커스, 당신은 그렇게 훌쩍 죽어버리면 안 되는 거였어
신문 쪼가리를 집어 던지면서 마이크는 다시 한 번 욕을 해댄다
― 넌 실패자야 넌 좆같은 돼지 새끼야
- 『천년 후에 나올 시집』(달아실, 3024)
***
올 가을 첫 영하의 아침입니다.
지난 토요일 쉰아홉 살의 마이크 타이슨이 스물여덟 살의 유튜버 제이크 폴에게 패했다는 소식입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로 불렸던 마이크 타이슨이지만 세월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가 이번에 패한 대가로 받은 돈이 무려 2천만 달러, 우리돈으로 대략 280억 원이랍니다. 백 번을 져도 좋겠다는 자괴감이 들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졸시를 띄우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누군가 이 시를 영역해서 마이크에게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이 시를 읽게 된다면 혹시 모르지요.
나와 한판 붙겠다며 한국 아니 춘천에 올지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삶이란 걸 곰곰 생각하면,
세상의 만물이 마침내 지는 것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니
지금 졌다고 억울해 할 필요는 없겠다 싶기도 합니다.
정신이 번쩍 드는 영하의 아침입니다.
2024. 11. 18.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
첫댓글 시, 재미있고 또 좋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