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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大藏經) 천년기획 다르마(Dharma)에서 국보 제32호이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흔히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 부르는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이 올해로 간행 1000년을 맞았다. 고려대장경 간행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다큐멘터리 <다르마(Dharma)>...
고려대장경은 총 8만 1258개의 판에 약 5200만 자가 새겨져 있다. 차례로 쌓으면 그 높이가 3000미터를 훌쩍 넘어가고, 매일 여덟 시간씩 꼬박 읽어도 무려 30년이 걸려야 다 읽을 수 있다.
장경판전(藏經版殿)의 문이 열리다.
<다르마>에서는 지금껏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해 온 장경판전의 내부를 대대적으로 공개한다. 장경판전의 촬영은 제작 과정에서 가장 큰 난제였다. 대장경을 보관하는 목조 건물인 장경판전(藏經板殿)은 깊은 산 속에 자리해서 임진왜란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고, 800년 동안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해인사 스님들도 죽기 전에 한번 들어가 보는 게 소원이라고 할 만큼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곳이다. 촬영 중에 장비가 경전에 닿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했고, 조명도 쓸 수 없다. 장경판전 내부 외에도 해인사 승가대학 스님들의 생활, 경판에 먹을 칠해 경전 문구를 찍어 내는 인경 장면 등 대장경과 관련해 여느 매체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모습들을 공개하였다.
진리라면 현실에 적용되어야 한다
<다르마>는 지금까지 고려대장경을 다룬 기존의 다큐멘터리와는 뚜렷하게 차별화된 접근법을 택하고 있다. 기존의 다큐멘터리들이 대장경의 역사적 의미, 과학적 보존 방법 등에 초점을 맞춘 반면, <다르마>는 경전의 내용 자체와 그것이 던져 주는 메시지를 파고든다. 1편 '붓다의 유언'에서만 대장경의 역사를 총괄적으로 다루고, 2편 ‘치유’, 3편 ‘환생과 빅뱅’, 마지막 4편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로 각편에서는 대장경이 담고 있는 부처의 가르침과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가에 시선을 돌린다.
“결국 대장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는 괴로움이 있고, 그것을 어떻게 치유하느냐 하는 이야기다. 그것이 진리라면 단순히 기록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든 현실에 잘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을 ‘진리’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rma)’로 지은 것도 그런 의미다.
과감한 도전과 획기적인 시도
<다르마>는 내레이션이 없다. 인위적인 느낌을 배제한 채 최대한 절제된 영상을 만들어 내고, 시청자들을 영상에 좀 더 집중시키려는 의도다. 다만 내레이션이 없는 대신 한 가지 흥미로운 시도를 했다. 부처가 열반하던 순간을 상세하게 묘사한 두 페이지짜리 경전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을 20여 개 언어로 번역, 그것을 인도의 불교 성지를 찾은 순례자들에게 낭독해 달라고 부탁해 영상에 담은 것이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순례자들은 모두 흔쾌히 촬영에 응해 주었다. 이들이 각자의 언어를 사용해 릴레이로 경전을 읽는 독특한 장면은 3편 <환생과 빅뱅>에 등장하는데, 이는 내레이션 대신 경전을 생생한 육성으로 들려주며 흐름을 끌어 가는 역할을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르마>의 크레디트를 살펴보면 눈에 익은 이름이 등장한다. ‘일본 음악계의 보석’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뮤지션 류이치 사카모토가 <다르마>의 음악을 맡은 것. 제작 팀은 영화 음악부터 클래식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사카모토의 음악 세계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주제와 공간 배경을 넘나드는 <다르마>의 조합이 잘 어울린다고 판단하여 그에게 촬영한 일부 클립과 함께 편지를 보냈다. 사카모토는 무엇보다 <다르마>의 내용과 취지에 매력을 느껴 흔쾌히 승낙했다는 후문이다.
✺[대장경 천년기획 다르마] 1편 ‘붓다의 유언’-총괄적인 대장경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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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 1000년 특집 기획 다르마] 2편 ‘치유’-영국 런던의 아마라바티 사원과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 통합의학센터의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MBSR, 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에서 대장경의 가르침을 어떻게 풀어내는가를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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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 1000년 특집 기획 다르마] 3편 ‘환생과 빅뱅’-티베트 불교 사원의 모습과 우주 탄생의 비밀을 연구하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모습을 교차해 보면서 ‘우리는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가는가’라는 근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대장경 1000년 특집 기획 다르마] 4편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한국 선불교의 전통을 잇는 지리산 쌍계사, 오스트리아 성 베네딕트 수도원의 수행 과정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신성(神聖)은 무엇인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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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해인사 일원(伽倻山 海印寺 一圓, 명승 제62호)은 해인사를 두고 있는 가야산은 높이가 해발 1,430m이며, 우뚝하고 기이한 모습으로 우리나라 8경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신령스러운 산이다. 이곳의 돌과 물, 붉은 소나무숲은 다른 절이나 명산에서도 보기 힘든 자연경관을 갖고 있다. 뛰어난 가야산의 자연경관과 역사의 숨소리가 살아 있는 해인사 지역의 문화유산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합천 해인사(陜川 海印寺, 사적 제504호)는 가야산의 서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신라 애장왕 2년(802)에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순응과 이정, 두 대사가 왕후의 병을 부처의 힘으로 치료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이며, 8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법보사찰이라고도 부른다. 조선 숙종 때부터 고종 때까지 2백여 년간 7차례나 불이 나서 건물 대부분이 타버렸고, 지금의 건물들은 대부분 조선시대 후기에 세운 것들이다.
해인사(海印寺)는 가야산 최고의 명당자리에 “행주(行舟)형국”의 형세로 터를 잡았고 이것이 큰 바다에 배가 나가고 있는 모양으로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정신을 담고 있다. 일주문으로 지나 해인사의 실질적인 문인 봉황문을 지나고 해탈문 그리고 범종각과 구광루를 지나야만 비로소 주불(主佛)인 비로나자불이 계신 대적광전을 볼 수 있다.
현재 절 안에는 고려 고종 23년(1236)에서 1251년까지 15년간에 걸쳐 완성된 호국안민의 염원이 담긴 고려대장경판(국보 제32호)이 있다. 그 밖에 장경판전(국보 제52호), 반야사원경왕사비(보물 제128호), 석조여래입상(보물 제264호), 원당암다층석탑 및 석등(보물 제518호), 합천 치인리 마애여래입상(보물 제222호)이 있다.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陜川 海印寺 藏經板殿. 국보 제52호)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8만여장의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로, 해인사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 되었다.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조선 세조 3년(1457)에 크게 다시 지었고 성종 19년(1488)에 학조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다시 지어 ‘보안당’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산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임진왜란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광해군 14년(1622)과 인조 2년(1624)에 수리가 있었다.
앞면 15칸·옆면 2칸크기의 두 건물을 나란히 배치하였는데, 남쪽건물은 ‘수다라장’이라 하고 북쪽건물은 ‘법보전’이라 한다. 서쪽과 동쪽에는 앞면 2칸·옆면 1칸규모의 작은서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긴 네모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건물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장식요소는 두지 않았으며, 통풍을 위하여 창크기를 남쪽과 북쪽을 서로 다르게 하고 각 칸마다 창을 냈다. 또한 안쪽 흙바닥 속에 숯과 횟가루, 소금을 모래와 함께 차례로 넣음으로써 습도를 조절하도록 하였다.
자연의 조건을 이용하여 설계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점 등으로 인해 대장경판을 지금까지 잘 보존할 수 있었다고 평가 받고 있다. 해인사장경판전은 15세기 건축물로서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대장경판과 고려각판을 포함하여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장경판전에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해인사는 법보사찰(法寶寺刹)이라고 불리우고, 이 건물은 정면 15칸이나 되는 큰 규모의 두 건물을 남북으로 배치하였다.
남쪽의 건물을 수다라장(修多羅藏), 북쪽의 건물을 법보전(法寶殿)이라 하며 동·서쪽에도 작은 규모의 동(東)·서판고(西板庫)가 있다. 건물은 큼직한 부재(部材)를 간결한 방식으로 처리하여 판고로서 필요로 하는 기능만을 충족시켰을 뿐 장식적 의장을 하지 않았으며, 전·후면 창호의 위치와 크기가 서로 다르다. 통풍의 원활, 방습의 효과, 실내 적정 온도의 유지, 판가(板架)의 진열장치 등이 매우 과학적이며 합리적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대장경판이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중요한 이유의 하나라고 평가받고 있다.
조선 세조 3년(1457) 확장·재건한 후 성종 19년(1488) 다시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에도 피해를 당하지 않아 옛 모습을 남기고 있는데, 광해군 14년(1622)에 수다라장을 중수하고 인조 2년(1624)에는 법보전을 중수하였다. 1964년 해체수리시 상량문(上樑文)과 광해군 어의(御衣)가 발견되어 보존하고 있다.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陜川 海印寺 大藏經板. 국보 제32호)은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말하며, 불교경전의 총서를 가리킨다. 이 대장경은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에 걸쳐 간행되었다. 이것은 고려시대에 간행되었다고 해서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하고,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천 법문을 실었다고 하여 8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
이것을 만들게 된 동기는 고려 현종 때 새긴 초조대장경이 고종 19년(1232)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지자 다시 대장경을 만들었으며, 그래서 재조대장경이라고도 한다. 몽고군의 침입을 불교의 힘(佛力)으로 막아보고자 하는 뜻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장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하여 새긴 것이다. 새긴 곳은 경상남도 남해에 설치한 분사대장도감에서 담당하였다.
원래 강화도 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보관되었던 것을 선원사를 거쳐 태조 7년(1398) 5월에 해인사로 옮겨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현재 해인사 법보전과 수다라장에 보관되어 있는데 일제시대에 조사한 숫자를 보면 81,258장이지만 여기에는 조선시대에 다시 새긴 것도 포함되어 있다. 경판의 크기는 가로 70㎝내외, 세로 24㎝내외이고 두께는 2.6㎝ 내지 4㎝이다. 무게는 3㎏ 내지 4㎏이다.
구성을 보면 모두 1,496종 6,568권으로 되어있다. 이 대장경의 특징은 사업을 주관하던 개태사 승통인 수기대사가 북송관판, 거란본, 초조대장경을 참고하여 내용의 오류를 바로잡아 대장경을 제작하였다. 이 대장경판은 현재 없어진 송나라 북송관판이나 거란의 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며, 수천만 개의 글자 하나하나가 오자와 탈자가 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하다는 점에서 그 보존가치가 매우 크며, 현존 대장경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문화재이다. 또한 2007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팔만 여장의 경판이 모두 한 사람이 쓴 것처럼 글씨체가 똑같고 틀린 글자가 단 하나도 없다. 장인들이 한 글자씩 새길 때마다 부처를 향해 세 번씩 절을 하며 정성을 다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도 갈라지거나 썩지 않는 이유는 경판으로 쓸 나무를 3년 동안 바닷물에 담갔다가 다시 소금물에 쪄서 옻칠을 하는 끊임없는 반복의 과정들이, 정성으로 결실을 맺어 세기의 명작을 탄생 시켰기 때문이다.
합천 해인사 팔판대장경판은 800여 년 동안 많은 전란과 화재에도 불구하고 화를 입지 않고 물려받은 우리 선조들이 지켜온 위대한 문화유산을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소중히 보전해야 할 우리의 몫이다.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陜川 海印寺 高麗木板, 국보 제206호)은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시대의 불교경전, 고승의 저술, 시문집 등이 새겨진 목판이다. 이 목판은 국가기관인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새긴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陜川 海印寺 大藏經板. 국보 제32호)과는 달리, 지방관청이나 절에서 새긴 것이다. 현재 해인사 대장경판전 사이에 있는 동·서 사간판전(寺刊板殿)에 보관하고 있다.
후박나무를 짠물에 담가 지방기를 빼고 나무결을 삭혀 잘 말린 다음 판각하였기 때문에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었다. 이 목판에는『금강경(金剛經)』,『화엄경(華嚴經)』등의 대승경전과 신라·고려·중국의 고승이나 개인의 시문집 및 저술들이 있는데, 경전류는 대부분 간행기록이 있어 고려시대 불교경전의 유통 등 불교신앙의 경향을 알 수 있다. 고승이나 개인의 시문집 및 저술 등은 비록 간행기록이 없고 전권을 갖추지 못한 것이 많으나, 그 내용이 전하지 않거나 역사적으로 희귀한 자료들이다.
고려시대 판화 및 판각기술은 물론이고, 한국 불교사상 및 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합천 해인사 내전수함음소 권490 목판(陜川 海印寺 內典隨函音疏 卷四百九十 木板, 보물 제1806호)은 1245년(고려 고종 32)에 대장도감에서 판각하여 완성한 경판이다.
내전(內典)은 부처의 설법을 담은 불경이고 음소(音䟽)는 음에 대한 해석을 뜻하는 것으로, 내용은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여섯 가지 실천덕목인 육바라밀다(六波羅蜜多)를 설명한 것에 대한 주석이다. 본문은 반야(般若)가 한역한 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大乘理趣六波羅蜜多經)의 10권에 대한 음의(音義)가 수록되었고, 권말에는 ’을사세 고려국 대장도감 봉칙조조(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의 간기가 있다.
지금까지 대장경 목록에도 없이 인쇄본만 알려져 있었으므로 이 경판은 대장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