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야 이선자
한 해를 막가림해야할 시기,
요즘 전해 오는 소식마다 부고 소식이 더 많다.
내가 아는 지인들이, 친구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벌써 우리 나이가 그리됐나? 싶기도 해서
쓸쓸한 마음과 서글픈 마음이 교차한다.
얼마 전에도 대구에 사는 친구가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 왔는데,
“허양언니가 하늘나라로 떠났어! 그 언니 불쌍해서 어쩌냐? “ 했다.
1970년, 함께 비행기 타고 베를린 와서 같은 병원에서 일하게 된 인연과
그 전, 서울에서 3개월간 독일어 교육을 받을 때도 유달리 눈에 띄는 분이었다.
얼굴이 새하얗고, 인형 같이 예쁜 작은얼굴과 세련된 옷차림에 날씬한 몸매의
언니는 꼭 청순한 소녀 같아서 모두가 한 번씩 더 쳐다봤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이쁠 수가 있어? 인형이야! 사람이야! 할 정도였다.
한 번은 연분홍색 레이스의 천으로 된 원피스와 같은 원단의 덧 저고리를 입고
수업에 참석했는데, 60여 명의 수강생들이 모두 그녀만 바라봤다.
피부 톤이 희지 않으면, 연분홍색은 촌스런 색깔일 테지만, 귀티 나는 용모는
공주가 따로 없다고 다들 칭찬했다.
유난히 춥던 1970년도의 엄동설한,
태어나서 한 번도 새벽 5시 전에 일어나본 적이 없던 나는
모진 삭풍이 부는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 오전 근무를 나가는 게 제일 힘들었다.
참으로 혹독한 형벌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이를 악물고 견디어 가는 나날이 무척 버거울 때마다 고국에 계신 부모님과
동생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힘이 났다.
“어디 나 혼자만 고생하는 가? 이곳에 온 모든 이들이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
하고 독백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하루는 부산이 고향인 허양언니가 한다는 말이,
„난 말이야, 새벽에 알람종이 울릴때마다, 하나님, 제발 이 자리에서 제가 콕 꼬구라져
죽게 해 주이소!“ 라고 기도까지 했다 아이가. “
그 자리에 모인 동료들이 모두 웃었지만, 속으로는 모두 울었다.
어쩌다 우리가 이 이역만리까지 와서 생고생을 하는 가? 하고.
통닭집에 가서 닭을 주문할 때, 닭이란 이름이 생각이 안 나서,
“달걀의 엄마를 주세요! “ 해도 희한하게 알아듣는 이곳 사람들이 고마웠다.
허양언니는 유머가 많고, 재치가 많아서 모두를 웃기는 재주가 있었다.
예전에 폐결핵을 앓은 이후, 허약한 체질이라 자주 몸보신을 해야 했다.
자주 가든 푸줏간 집에 소꼬리곰탕할 재료를 사려갔는데,
그날따라 눈에 보이지 않아서, 몸으로 연기를 했다고 한다.
왼손은 입에 대고 오른손은 엉덩이에 대고, „어무우~“ 하고는 오른손을 흔들다가
손가락 끝을 탁! 하고 잘라내는 시늉을 하며, “이 끝을 주세요 “ 했더니,
웃음을 참지 못한 주인집 남자가 잠깐 기다리라 하곤 안으로 들어 가더란다.
그래서 소꼬리 가지려 갔나보다 했더니, 동료여자를 데려와서는,
무엇을 원하는지 한 번만 더 보여달라고 하더란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또 소의 시늉을 하며 꼬리를 흔들다, 오른손 끝을 탁! 하고,
자르는 시늉과 이 끝을 주세요! 했더니, 두 사람 다 웃음이 폭발해서 얼마나 크게 웃던지,
가계 안이 진동할 정도였다고 한다.
주인 왈: “내 생전에 오늘처럼 이렇게 많이 웃은 날이 처음이니, 이 소꼬리는
그냥 가져가세요! 웃게 해 준 댓가로 이건 선물이요!“하더란다.
공짜로 받은 선물에 기뻐하던 하양언니 얼굴이 오늘따라 눈앞에 어른거린다.
우리 님들,
모두들 성탄은 은혜롭게 잘 보내셨나요?
며칠 남지 않은 올 한 해도 막가림 잘 하시고, 다가오는 새해에도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축복의 새해가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이곳 성탄 시장의 이모 저모
아래는 ,
얼마전에 함박눈이내린 순야의 겨울 정원
성탄 시장에도 눈이 내려 겨울 운치를 더해 주는 듯
지난 주 함박눈이 내린 후 영하 12도까지 내려가, 눈이 내린 정경은 아름다워도 코 끝을 매섭게 하는
강추위였습니다.
사람이 아직 걸어보지 않은 순야의 뜨락은 순백색의 세계입니다.
아래서 부터는 괴팅겐의 성탄시장 풍경입니다.
첫댓글 태어난 존재는 누구나 죽게 마련이지만
맑고 밝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일찍 돌아가시는 것은 안타깝네요.
새해에는 좋은 일 많이 생기시고
건강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나보다 4살 연상인 허양언니는
동안이라서, 우리 모두 동갑내기인줄 알고, 처음 만나서 허양!허양! 하다가
나중에 진짜 나이를 알고는 허양언니라고 부르게 되었다.
3년 후 귀국했고, 결혼해서 부산에서
살고있었으나, 남편의 잦은 외도로
결혼생활이 붏행했다고 한다.
미인박명이란 말이 이 언니에게
딱 맞는 말인 것같아요.
대구의 허양언니 혹시 진주에도다녀 갔는지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성탄에 눈내린 뜰 안의 풍광이 아름답습니다.
인명은 재천이라하지만 이제는 건강을 돌보며 챙겨야할때입니다 . 새해에도 모두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 하시기바랍니다.
진주에 왔었던 분은 현언니라고 해요.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있고요.
그 당시 나이 많은 선배언니들께
김언니, 박언니, 하고 불렀는데
유독 이 허양언니한테만 양자를 붙혀
불렀던 것같아요.
2010년, 40주 년 기념으로
대구 사는 친구 두 명이 나를
방문올때도 허양언니가 함께
무척 오고싶어 했는데, 그때 기관지염에
걸려서 올 수가 없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