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멈췄다 가야 해
- 류시화
'잠깐 멈췄다 가야 해.
내일은 이 꽃이
없을지도 모르거든.'
누군가
이렇게 적어서 보냈다.
내가 답했다.
'잠깐 멈췄다 가야 해.
내일은 이 꽃 앞에
없을지도 모르거든.'
-류시화시집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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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일리 없는 현상은 매우 드뭅니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은 있고, 급사한 이도 남 모를 사정은 있으니까요
앞만 보고 걷거나 달리는 이들도 가끔은 멈추어서 주위를 둘러봐야 합니다
이정표도 살피고 속도까지 조절해야 하는 게 삶이거든요
살아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뿐일리야 있을까만
그 중에서도 온 마음 다바쳐야 할 부분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남들 입길에 오르지 많고 구설에 휩쓸리지 않아야 합니다
평택에서 영주로 돌아오는 길섶은 온통 가을 물이 짙게 드리워졌더군요
군데군데 안개가 짙었으며 오가는 길에 자동차들이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직 내가 살아있으며
살아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