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우리 식구끼리
월요일 새벽이슬처럼 아들 식구가 들어왔다.
18개월 된 손녀가 자는 시간에 운전대를 잡았다.
날 보자마자 낯을 가려 울었다.
피는 물보다 진해 금방 달큼한 향내를 맡았다.
쉴 틈 없이 천방지축으로 다녀 정신없었다.
소통이 어려워 요구 사항을 바로 들어주지 못하였다.
좋아하는 음식 먹기, 장난감 가지고 놀기, 똘똘이 보기,
밖에 나가기, 낮잠 자기, 서서 응가 하기..
눈치 백 단 해결사 엄마가 기똥찼다.
예쁜 짓도 하지만 가끔 심통을 부렸다.
육아 양육이 제일 힘들고 어려워 보였다.
엄마는 밤낮 가리지 않고 기쁨으로 받아 줬다.
그 힘은 대단하고 놀라웠다.
낮 시간, 아들 식구와 행복을 파는 카페에 들렀다.
가족 단위로 몰려 북적거렸다.
손녀가 좋아한 딸기주스 주문 후 커다란 창가에 앉혔다.
돌아다니고 싶어 손을 폈다.
앉고 내려 손녀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계단을 즐겨 2층으로 올랐다.
난간을 잡고 흔들었다.
개업한 옷 가게 한 바퀴 돌았다.
금세 칭얼대 엄마 품에 안겼다.
예사 주스 맛보고 쭉 빨아 넘겼다.
눈망울을 끔벅거리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난 담백한 빵 조각에 커피를 마시며 일상을 나눴다.
삶에 필요한 여백이었다.
이튿날 새벽 2시, 막내가 ‘아빠!’하고 문을 열었다.
오랜만에 온 막둥이에게 ‘어떻게 내려왔어?’
‘일 끝내고 광주 할머니 댁 방문한 사장님 차 끌고 왔어요.
사장님은 조수석에서 잤어요.
도로가 밀리고 앞 차가 빙판에 미끄러져 천천히 운전했어요.’
원래 기차표 매진으로 영광 터미널에서 내릴 참이었다.
그런데 시내 연수 마친 초보자가 겁 없이 장거리 운전석에 앉았다.
눈 내리는 심야 고속도로를 다섯 시간 밟은 셈이다.
두 달 데리고 일한 사장도 무던하였다.
신뢰해서 그랬는지?
피곤한 탓에 맡긴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공시 포기하고 할 만하냐?
적성에 맞아? 뭔 월급이 그리 많아!’
‘아빠가 잘 키워 줬잖아요!
올해는 더 받을 거예요. 약속하셨어요.’
긴장과 피곤이 겹쳤는지 씻고 곯아떨어졌다.
대견함과 손 상처에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앞 가름하고 부모에게 도움 줄 위치에 서서 눈시울이 뜨거웠다.
아점 먹고 금방 헹구어낸 햇살처럼 어머니 산소로 나섰다.
섣달그믐날, 밤새 퍼부어대던 눈발이 굵어졌다.
어머니와 다닌 길목을 보며 그리움에 젖었다.
하늘이 산자락까지 낮출 때 하얀 버선발처럼 디뎠다.
흰 눈에 표지 석을 찾기가 힘들었다.
웅크려 덮인 눈을 파헤쳤다.
손녀 볼이 빨갰다.
울음 끝이 길어 집중하기 어려웠다.
찬송하고 말씀 전하며 어머니의 유훈을 기렸다.
오는 길, 광주 과학관을 들렸다.
체험하고 볼거리 다양한 별천지로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 틈에 세뱃돈 빵빵한 지갑을 주워 맡겼다.
설날 아침 한 상에 둘러앉아 가정 예배를 드렸다.
복의 근원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나눴다.
경건한 고넬료처럼 하나님 경외하는 자,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며 기도에 힘쓰는 한 해가 되길 원했다.
준비된 음식을 차렸다.
아내의 애씀이 컸다.
오랜만에 기름진 음식에 손을 댔다.
요양병원 계신 장모님을 뵈러 갔다.
주문한 파스타를 막내가 챙겼다.
처제가 미리 모시고 엘베 앞에 기다렸다.
두 딸 식구 14명이 감사 기도로 손을 모았다.
내년 청려장 받을 연세에 기력이 좋았다.
젊은이보다 식욕이 왕성하고 소화력이 나았다.
두 딸이 식사를 거들었다.
조카가 ‘우리도 엄마 저렇게 모시겠네..’ 곧 맞이할 현실이었다.
한 사람씩 장모님 손을 잡았다.
난 예배 때 만난다고 손을 입으로 갖다 대셨다.
가족끼리 인증 사진을 남겼다.
화기애애한 자리! 명절에 찾아뵙는 일이 귀하게 여겨졌다.
자식 얼굴 보는 것 힘이었다.
면회 마치고 들어가실 때 하나같이 박수를 쳤다.
간호사가 흐뭇하게 맞이하며 휠체어를 밀었다.
요양보호사도 부럽게 봤다.
건강한 가족을 세워 나감은 믿는 자의 사명이었다.
돌아와 우리 식구끼리 고기를 구웠다.
열 사람의 입이 무서웠다.
자녀 손들의 세배를 받았다.
믿음 생활 잘하고 건강한 몸과 마음 누리길 덕담으로 던졌다.
아내까지 세뱃돈 주고 아들, 딸에게 받았다.
막내 봉투가 두꺼워 부담이 줄었다.
살다가 처음! 오래 살 일이었다.
손녀 가방에서 영어 교재를 꺼냈다.
앞으로 배울 단어(scary)가 눈에 띄었다.
뜻을 물었더니 지체 없이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사교육 힘이 대단함을 느끼며 더불어 학습법을 가르쳤다.
핸드폰에서 그린 설날 웹툰을 눈여겨보았다.
솜씨가 심상치 않아 우리 집안 내력을 밝혔다.
예술가 기질의 가능성을 열어줬다.
아침으로 보낸 동시와 천자문에 속한 단어 이해도를 물었다.
서당골 생명 샘 내용의 어려운 말도 사전 찾아 섭렵할 정도였다.
1시간 30분 내 강의를 집중해 들었다.
일어서며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잘 가르치세요!’
그 말에 보람을 가졌다.
저녁때 아이들 입맛에 맞는 마라 탕을 시켰다.
어린애는 매운 음식 먹을 수 없어 통닭을 주문하였다.
탐식에 코끼리 배처럼 터진 줄 알았다.
다음 날 목포로 내려갔다.
따뜻한 볕을 쬐이며 평화 광장 바닷바람을 맞았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새우깡으로 갈매기를 모았다.
까악 까악 머리 위에 너풀거리며 먹이를 낚아챘다.
보는 사람마다 추억거리로 찍었다.
점심은 바지락 초무침을 먹었다.
망고 루 카페에서 생 망고 빙수 맛도 봤다.
젊은 날, 애환 서린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웃고 즐기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지친 육아의 삶 내려놓고 닷새 머물다 갔다.
식구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길 구했다.
2025. 2. 1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