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11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9-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사랑의 삼각형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Sternberg 1949년 생 미국의 코넬 대학교 교수)는 심리학자이며 교육학 이론가입니다. 그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으로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사람입니다. 그는 ‘사랑의 심리학’(로버트 스턴버그 저 최연실 역 하우기획출판 2001.02.10.) 제 2장 사랑의 삼각이론에서 사랑의 유형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삼각형의 위 꼭지 점은 친밀감, 왼쪽 꼭지 점은 열정, 그리고 오른 쪽 꼭지 점에는 결심이 자리 잡고 있는 삼각형을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친밀함만 있는 사랑을 좋아함이라고 합니다. 열정만 있는 사랑을 도취된 사랑이라고 하며, 결심이나 헌신만 있는 사랑을 공허한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좋아함으로 완성될 수 없고, 열정으로 사랑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또한 너무 이지적이며 이성적인 사랑의 결심과 의지만 가지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감성과 이성을 모두 가진 존재로서 모든 것을 포함하고, 모든 것을 함께 가지고 있을 때에 사랑이 완성될 것입니다.
로버트 스턴버그가 1986년에 발표한 ‘사랑의 삼각형’이론에 의하면 친밀감- 포근함, 열정 - 뜨거움, 결심 -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차가움이 결합하였을 때 성숙한 사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부족한 사랑에는 1) 친밀감과 열정만 있다면 사랑은 낭만적이 되며(친밀감 + 열정), 2) 열정에 헌신만 있다면 얼빠진 사랑이 되며(열정만 있음 - 결심의 결여), 3) 친밀감에 헌신만 있다면 우애적인 사랑(친밀감 + 결심)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말 하는 것에는 1) 좋아함-친밀감이 없는 좋아함, 2) 열정만 가진 도취된 사랑, 3) 공허한 사랑 - 결심만 있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이론을 많이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진실한 사랑이 될 것입니다.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사랑의 감정도 주시고,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열정도 주시고, 사랑을 지켜갈 수 있는 의지도 주시며 성숙한 사랑을 하도록 완성시켜 주십니다.
그러나 내가 과연 진실한 사랑을 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때가 많습니다. 내가 이웃에게 얼마나 친절하고,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결심과 헌신에서는 얼마나 의지적이며 이성적인지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여도 내가 어떤 사랑을 봉헌하고 있는지 반성해 봅니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조금씩 비교해 보기도 합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요한 15, 12-15)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이란 아주 성숙한 사랑입니다. 그 성숙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지 한 번 반성해 봐야 합니다. 내 사랑을 한 번 점검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이론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감정과 열정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헌신과 결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또한 아닙니다. 그런 모든 것들이 결여되어 있다면 또한 사랑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감히 '사랑한다.'고 고백하기 어렵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미완성일지라도 인간은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면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을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5,7-21
그 무렵 7 오랜 논란 끝에 베드로가 일어나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다른 민족들도 내 입을 통하여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나를 뽑으신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8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9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10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11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12 그러자 온 회중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표징과 이적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13 그들이 말을 마치자 야고보가 이렇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4 하느님께서 처음에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당신의 이름을 위한 백성을 모으시려고 어떻게 배려하셨는지,
시몬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15 이는 예언자들의 말과도 일치하는데,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6 ‘그 뒤에 나는 돌아와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다시 지으리라.
그곳의 허물어진 것들을 다시 지어 그 초막을 바로 세우리라.
17 그리하여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모든 민족들도 주님을 찾게 되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하고 이 일들을 실행하니
18 예로부터 알려진 일들이다.’
19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고,
20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상에게 바쳐 더러워진 음식과 불륜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고 해야 합니다.
21 사실 예로부터 각 고을에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모세의 율법을 봉독하며 선포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축일5월 11일 성 프란치스코(성 예로니모의) (Francis of St. Jerome)
신분 : 신부
활동 지역 : 나폴리(Napoli)
활동 연도 : 1642-1716년
같은 이름 : 방지거, 예로니무스, 제로니모, 제롬, 지롤라모, 프란체스꼬, 프란체스꾸스,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쿠스, 프란치스꼬, 프란치스꾸스, 프란치스쿠스, 프랜시스, 히에로니모, 히에로니무스
프란치스코 디 지롤라마(Franciscus di Girolama)로도 불리는 성 히에로니무스의 프란치스코(Franciscus de Hieronymus, 또는 프란체스코)는 이탈리아 타란토(Taranto) 근방 아풀리아(Apulia)의 그로타글리에(Grottaglie)에서 태어났다. 그는 타란토의 예수회 대학에서 인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베키오(Vecchio)에서 신학과 교회법을 수학한 후 1666년 나폴리에서 교구사제로 서품되었으나 28세 때에 스스로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정식으로 서원을 발하고 죽을 때까지 농촌 선교사로서 나폴리 지방에서 활동하였다.
그의 뛰어난 설교는 단순하고도 힘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말할 때는 양 같고 설교할 때는 사자 같다”는 말이 생겨났다. 그만큼 그의 설교로 감화를 받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회개자를 얻기 위하여 감옥과 매음굴을 서슴없이 찾아다녔고 작은 촌락과 뒷골목 그리고 길모퉁이에서도 그의 선교활동은 계속되었다. 또한 그는 무어인들도 개종시켰을 뿐만 아니라 터키 죄수들까지 신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를 통해 회개한 이들 중 가장 뛰어난 이는 자신의 부친을 살해한 어느 프랑스 여인이었다. 그 여인은 회개한 후 남장을 하고 에스파냐 군에서 복무하였다. 또한 그는 위험한 환경에 있는 수많은 어린이들을 구하였다. 그의 장례식 때에는 나폴리의 거의 모든 걸인들이 관 주위에 모여 그를 애도하였다. 그는 1806년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839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시성되었다. 예수회에서는 7월 2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한다.
오늘 축일을 맞은 프란치스코(성 예로니모의) (Francis of St. Jerome)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