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 여행3 - 피사의 대성당과 세례당에 사탑을 보고 마르게리타 피자를 맛보다!
이탈리아 서북부 리구리아 해안의 다섯개 마을 친꿰테레를 보고 리오마조레에서 기차를 타고
피사 Pisa 에 도착해 거리를 걸어 아르노강을 건너 피사의 사탑과 대성당을 보다.
피사는 1,119년부터 15년간 제노바와 전투를 벌이면서도 남쪽 해운 강국 아말피를 약탈 하고
시칠리아왕 로저의 군대를 격퇴하며 독일황제의 지원하에 나폴리 인근 지배권 을 확보하자...
위협을 느낀 교황과 노르만왕국 및 제노바와 피렌체 연합군이 결성되어
1,165년 롬바르디아 전투에서 승리한후에.....
제노바 가 남이탈리아의 이권을 차지하니 다급해진 피사는 베네치아 와 협력한다.
피사와 제노바 진영이 서로 대치하는 중에
1,187년 10월에 성도 예루살렘이 이슬람의 손에 떨어지는 비보를 접하자......
기독교 세계는 서로 휴전을 하고 제3차 십자군 에 나선다.
살라딘의 사라센군에 의해 지중해 연안의 십자군 도시들이 함락하자
사라센의 포위공격을 간신히 버틴 티루스에서
1,189년 8월에 남쪽 아코 (이스라엘 최북단) 를 탈환하려는 십자군이 출발한다.
이슬람이 점령한 아코를 재탈환하려는 전투에서 바다쪽에서 보급을 담당하고
함대로 공격한 세력은 제노바와 베네치아 그리고 피사 였다.
이슬람군이 아코 항구 입구에 쳐놓은 쇠사슬을 끊기 위해 3척의 범선을 모아 일제히 돛대를
올리고 항구로 돌격해 들어간 최선봉은 그중에서도 "피사의 해군" 이었던 것이다.
그후 50년이 흘러 독일 프리드리히 황제의 6차 십자군도 끝난 1,238년에 교황 그레고리 9세가
제노바와 베네치아를 끌어들여 신성로마(독일) 황제를 파문 에 처하자.....
3년후 기벨린 Ghibelline ( 황제파 ) 당인 피사 는
구엘프 Guelf ( 교황파 ) 당인 제노바 함대를 공격해 25척의 갤리선을 파괴한다.
하지만 피사의 전성기는 저물어 1,284년 멜로리아 섬 전투 에서
제노바에 대패 하니 사르데냐와 코르시카 섬을 잃고
6년후에 제노바는 공격을 재개해 피사항을 철저히 파괴 하고 소금으로 덮는다.
이는 마치 예전에 로마의 스키피오군이 카르타고를 함락한후 다시는 부흥하지 말라고
시가지며 성벽을 파괴한후 소금을 뿌렸던 고사 를 답습함이라....
해전에서는 패했지만 상업적으로 건재 했던 피사는
1,315년에 몬테카티니 전투 에서 나폴리 와 피렌체 연합군을 격파하고 재기하여서는!!!
1,343년에 피사대학 을 설립하여 학문의 중심지로 발돋움하는 데,
루카 및 피렌체와의 전투 가 끊이지 않다가
1,406년에는 피렌체의 총공격 으로 피사가 함락되어 속국 으로 전락한다.
이후 1,494년에 프랑스군의 이탈리아 침입시에 기회를 틈타 궐기해
독립을 회복했으나, 내분과 피렌체의 집요한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드디어
1,509년에 재정복 되어 피렌체 에 속하게 된다.
피렌체는 오랜 숙적 피사를 점령한 이후
1,569년에는 토스카나 대공국으로 발전하는데, 그럼에도 피사는 문예의 중심지 로서
번창하여 갈릴레이 도 이곳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가 피렌체를 위해 공성무기 등을 제작한 것은
피사를 공격한 1,509년의 2차전투 때 였다고 한다.
하지만 한 때 번영의 흔적은 여기 기적의 광장에 대성당과 사탑 이며
세례당과 캄포산토 공동묘지 등 역사적 건축물 들이 화려한 과거를 웅변하고 있나 보다.
피사 대성당 을 나와 바로 맞은편에 있는 왕관인지 아님 투구인지....
모습을 닮은 백색의 건물 세례당 으로
들어가는 데 꼭대기의 세레 요한의 동상을 포함하면 사탑보다 더 높다.
1,153년에 디오티살비가 건축을 시작하여 준공까지 무려 200년이나 걸렸다는데
아랫부분은 둥근아치가 연속되는 로마네스크식 이고 윗부분은 개방형 아치의 고딕식 이다!
피렌체에도 대성당 두오모 바로 앞에 세레당이 있는데 거긴 거리도 가까울뿐더러
포장된 돌 바닥이었는 데, 여긴 잔디 광장 이라 좀더 푸근한 마음이 든다.
세례당 은 외벽을 우아한 기둥으로 두른 둥근 건축물로 4개의 문 중에서도
피사노 파의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한 두오모쪽으로 난 문이 특히나 아름답다고 한다.
입장을 하니 내부는 원통형인 데, 어두운 실내는 시간이 좀 지나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천장은 둥근 것이 마치 하늘을 상징 하는 듯 하다.
중앙에는 자그만 제단 이 있는 데...
세례 받는 이가 저 위로 올라가는 것인지 궁금하지만 딱히 잘 알 수는 없네?
세례당 ( Baptistery , 洗禮堂 ) 은 이탈리아어로는 Battistero 인데
원래는 냉수욕탕 을 뜻하며.....
4세기 부터는 기독교 세례용의 물웅덩이 이자.....
세례성사 가 행해지는 건물을 의미한다.
초기 기독교의 세례는 성인에 대한 침수세례 였기 때문에
큰 물통 을 갖추었고, 성당에서 독립된 별도의 건물로 만들어졌다.
외형은 팔각형으로서 내부에는 평방을 받치는 여덟 개의 원주가 원을 이루며,
또 둥근 천장을 받치는 여덟 개의 대리석 원주 가 줄을 지어 들어서 있다.
우리 일행은 벽에 난 문으로 위로 올라가니
저마치 아래로 세레당 바닥 이 보이는 것이......
마치 로마의 바디칸 성당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내부로 들어가 내려다본 모습이 연상된다.
그런데 피사인들이 유럽에 끼친 참으로 유익한 일이 있으니...
"1,2,3,4,5,6,7,8,9,0" 를 "아라비아 숫자" 라고 하는 데,
서기 1,200 년경 피사인 이 동방에서 배워서는 유럽에 소개했다.
첫댓글 제가 두 차례의 이태리 여행에서도 피사가 꼭 빠졌는데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올려주신 사진으로 대리만족합니다.
아..... 저도 3번째 이탈리아 여행에서야 피사를 가게 되었네요!
주요 여행루트 동선에서는 조금 벗어난 도시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