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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린은 디자엘 재상에게 놀림 받은 것으로 앙심이 가득 남았는지 원숭이처럼 소파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는 '나 삐졌어' 라고 쓰여있는 듯한 얼굴로 무언의 시위를 하고 있었다. 두 손을 양 뺨에 대고서 주둥이를 쭉 빼놓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는 재상의 입장으로서는 당황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욱 귀엽게 보이는지라 그녀에게 빙긋 미소 지은 채 바라보기만을 하였다.
카린은 속으로 재상이 무슨 말로 자신을 달래려 하든, 절대로 듣는 시늉도 하지 않겠다고 꼭꼭 다짐했지만, 막상 재상이 아무 말도 않고서 미소만을 지은 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자 오히려 그녀 자신이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전하?"
한참을 바라본 채 미소만 짓고 있던 재상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카린은 지칠 대로 지쳐가던 중, 속으로 '물었구나!'라고 외쳤지만, 겉으로는 입술을 더욱 삐죽 내민 채 재상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획 돌렸고, 그런 그녀의 반응에도 재상은 더욱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는 상인이 수도에 왔다고 합니다."
재상은 그녀의 호기심을 끌어보려 하려는 듯한 말을 꺼냈지만, 카린은 계획대로 계속해서 듣지 않는 척했다. 하지만, 역시나 어른스러운 재상이 그녀보다 몇 수는 위였다.
"귀엽고 진기한 애완동물을 취급한다고 하는군요."
카린은 '안 들려, 안 들려' 란 말만을 속으로 되뇌이며 속마음은 어떻게든 버티려 했지만 '귀여운 애완동물'이라는 말이 그녀의 귀를 계속해서 간질였다.
"정말?"
결국, 마음속에서부터 간질여오는 속마음을 참지 못하고 카린은 고개를 슬그머니 돌리며 물었다. 그런 그녀에게 재상은 여전히 미소만을 지은 채로 계속해서 말했다.
"전하께 제일 먼저 보이고 싶은 상품이 있다고, 알현을 청한다고 합니다."
"오케이~, 접수했어"
카린은 벌떡 일어나서는 재상에게 손가락을 세워 삿대질하며 크게 말했다. 그녀의 삐쳤던 속마음은 어느새 싹 날아가 버린 채, 머릿속에는 초록 들판이 펼쳐지며 상상 속의 귀여운 동물들이 뛰어놀기 시작했다. 지루하고 무겁기만한 여왕으로서의 삶 속에서 이런 유흥거리는 흔치 않았기에 그녀는 이 미끼를 물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행복은 잠깐으로 끝이 나 버렸다.
"카린! 그만 쳐 놀고 일하지 못해!"
갑작스레 들려오는 평소 이상으로 무지막지한 베르제바브 대공의 외침에, 카린의 머릿속에서 푸른 초원은 싹 불타버리고 뛰어놀던 동물들은 휑하니 도망쳐 사라졌다. 그와 함께 현실 속의 재상실 문이 덜컹 열리며 대공이 악마 같은 눈빛을 이글거리며 들어왔다.
"노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눈감아주고 있었더니 아주 여기서 죽치고 있을 거냐!"
대공은 카린의 얼굴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침이 튀겨라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나서는 앙상한 고목만치 마른 손가락으로 그녀의 볼을 잡아당기며, 카린이 아파하든 말든 무시하고 끌고나가기 시작했다.
"하으라버쥐, 아으파요~"
카린은 아파서 말조차 제대로 못 하며 끌려나면서도 어떻게든 재상 쪽을 돌아보며 강아지 마냥, 애처로운 눈길로 도움을 청했다. 허나, 재상은 그런 그녀의 기대를 부응하는 건지 배신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이 말을 던졌다.
"그 알현은 가장 마지막으로 잡아두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정무에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상의 미소는 왠지 모르게 그녀를 가지고 노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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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쓰기에는 상당히 넓은 방, 카린은 편한 옷차림으로 책상에 붙어 있다시피 앉아서 열심히 서류에 인장을 찍고 있었다. 서류를 읽고 찍고 치우고, 읽고 찍고 치우고를 반복하던 카린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서류 더미를 보았다. 일을 해도 해도 줄어들지 않는 일감에 카린은 속에서부터 한숨이 밀려나왔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지팡이가 그녀의 뒤통수를 향해 날라왔다.
"아야야야"
카린은 혹이 난 뒤통수를 부여잡으려 불만스러운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그녀의 뒤에서는 악마가 그녀를 감시하고 앉아있었다. 그 악마는 두 개의 뿔을 연상시키는 브이 형태의 흰 머리에서 불타오르는 듯한 분위기를 내뿜었고, 그녀와 마주친 두 눈에서는 붉은 안광이 쏟아져 나왔다.
그 악마 아니, 베르제바브 대공은 '뭐 불만있냐?' 라는 무시무시한 얼굴로 노려보자, 카린은 깨갱거리며 기세가 꺾일 수밖에 없었다.
"여,열심히 할게요!"
카린은 불만스럽던 얼굴을 싹 지우고 억지로 방실방실 웃으며 다시 일에 집중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불평, 불만을 쏟아내었다. 차라리 재상이라면은 자신의 기분을 맞춰주거나 불만을 들어주기라도 하지만, 대공에게는 불만이고 나발이고 일제 통하지를 않았다. 그녀는 그저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주기만을 바라며 죽어라 일만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소망은 이루어졌다.
"전하, 재상입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응, 들어와"
카린은 자신을 구해줄 것 같은 천사의 목소리에 감격하며, 감정이 담긴 톤이 높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소망을 이루어준 신에게 연신 감사를 표했다. 저 신이 내려주신 천사라면 뒤에 있는 악마를 무찔러 주리라.
"실례하겠습니다."
디자엘 재상은 역시나 젊은 집사를 연상시키는 멋진 예복 차림에 한 손으로는 세 개의 찻잔이 담긴 쟁반을 멋들어지게 받쳐 든 채로 들어왔다. 카린에게 재상의 미소는 늘 보기 좋았지만, 특히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천사의 미소처럼 너무나 보기 좋았다. 그런 카린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상은 찻잔을 대공과 그녀에게 한 잔씩을 넘기고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잔을 들었다.
"피로를 풀고 집중을 돕는 차라고 합니다."
재상은 짤막하지만, 지적인 목소리로 설명하고서 한 모금 마시기 시작했다. 카린 역시, 쉽게 오지 않는 휴식시간을 대공 앞에서 당당히(?) 즐기고자 잔을 들어 최대한 천천히 차를 마셔갔다. 티타임을 갖기 시작한 두 사람과는 달리, 대공은 차에 입조차 대지 않고서, 잔 속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만을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재상이 차를 내온 목적을 눈치를 챈 것일까, 대공은 늦게나마 잔을 들어 억지로 한 모금을 마시고는 재상을 돌아보며 품고 있던 불만을 토해냈다.
"너무 감싸도 안 좋다고 말하지 않았나?"
"제 생각입니다만, 이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재상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감싸는 답언을 하면서, 대공을 향해 재상 특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카린은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의 의미는 알듯 말 듯했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여유로이 마시던 잔을 조용히 내려놓고는 두 사람 중 아무나 한 명이 나가주기만을 바라며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대공은 그런 카린과 미소 짓고 있는 재상을 번갈아 본 후, 다소 불만인 듯 주름진 얼굴을 찌푸렸으나, 곧, 두어 모금 정도만을 마시고 남은 찻잔을 재상에게 돌려주며 툭 던지듯 말했다.
"자네가 알아서 하게."
대공은 이 한 마디만을 남긴 채 쩔뚝거리며 지팡이를 짚으며 방을 나갔다. 그때까지의 두 사람의 눈치만을 살피던 카린은 드디어 악마가 물러나자, 풀려가는 긴장과 함께 기지개를 활짝 켜며 의자에 기대 늘어졌다.
"와아, 살았다."
카린은 중얼거리고는 재상 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재상은 그런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빙긋 미소 지어 보이고는 서류 더미 중 일부를 집어들고는 대공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서며 말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재상은 이 한마디 후, 차를 홀짝이며 금세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지만, 막상 카린은 자신은 일에는 전혀 집중하지 못한 채, 그녀의 뒤에서 일에 집중하는 재상의 모습을 슬금슬금 훔쳐보기만 하였다.
의자에 다소곤히 기대 앉아서는 한 손에 서류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간간히 찻잔을 입에 대면서도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는 그의 지적인 이미지는 카린의 눈에는 너무나 근사해 보였다. 자신이 곤란할 때마다 은근슬쩍 다가와 자신을 구해주는 그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믿음직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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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에야 간신히 찾아온 알현의 시간... 먼 땅에서 찾아와 진귀한 동물들은 보이고자 한다는 소문이 왕궁 전체에 펴졌는지, 알현의 홀 안에는 많은 이들로 북적거렸다. 가운데 왕좌에까지 쭉 깔려있는 붉은 양탄자를 경계로 좌우로 나뉜 많은 이들은 선 채로, 각자 잡담을 나누며 빨리 그 상인의 차례가 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카린 역시 우아한 흰색의 드레스에 머리에는 갸름한 형태의 왕관을 쓰고는 앉아있었다. 상인의 차례가 올 때 까지, 그전의 다른 이들의 알현은 대충 설렁설렁 넘겨버릴 만큼 카린의 머릿속에는 그저 진귀한 동물이라는 것만으로 꽉 차 있었다.
드디어 상인의 차례가 왔다. 열린 문으로 약간 통통해 보이는 상인이라는 중년의 남자가 들어왔다. 그 상인은 홀의 중간쯤까지 다가와서는 고개를 숙이어, 윗자리에서 위엄있는 자태로 거만하게 앉아있는 카린에게 예를 표해 보였다. 카린은 그 상인의 인사 따위는 어찌 됐든 속으로는 빨리 귀여운 애완동물을 구경하고 싶어 애가 탈 지경이었기에 그런 조급함을 억지로 참아가며 기품있게 말했다.
"그대가 진귀한 것을 보이고 싶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러하옵니다. 여왕 전하"
상인은 고개를 들고는 대답했다. 그는 높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익숙하였는지 재상과 대공은 물론 수많은 이들이 그 짐승을 구경하고자 모여 있음에도 전혀 긴장하지 않은 듯했다.
"이렇게까지 먼저 보이고 싶다... 하다면은 상당히 귀한 것이겠군요."
"예, 저는 세상 이곳저곳을 다니며 진귀한 짐승들을 보아왔고 그중에서도 상품가치가 높은 것만을 취급해 왔습니다. 타국에서도 아름다운 아가씨들께서 원하시는 건 어떠한 것이라도..."
상인은 카린의 말에 일부러 느릿느릿하게 말을 질질 끌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말에 카린은 속으로 '뭘까뭘까' 하고 조급해하면서도 겉으로는 조급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상인은 이미 처음부터 카린의 속마음을 간파하고 있었고, 그 상인이 그러한 조급함을 노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녀는 눈치채지 못하였다.
상대는 어린 여왕이고 어찌 됐건 사치를 부리는 걸 좋아하는 상류층의 여성 중의 하나일 것이며, 손에 넣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을 상인은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질질 끌면서 그녀의 애간장을 슬금슬금 태워갔다.
"말은 됐네, 어서 보여주게"
카린의 속마음을 눈치챈 것인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인지 베르제바브 대공이 나서서 상인의 말을 잘랐다. 상인은 좀 더 그녀의 속을 애태워 가격을 높일 수 없다는 게 아쉬웠지만, 어찌 됐건 상품을 보여줘야 했다.
"네, 그러하오면.."
상인은 몸을 일으켜 뒤에 자신을 따라온 몸종들에게 손뼉을 쳐 신호를 보내자, 뒤의 두 명의 몸종들은 두 사람이 간신히 안을 법한 크기의 나무상자를 들고와서는 조심스레 상인과 카린 사이에 내려놓았다. 그들이 상자를 놓고 물러나자 상인은 자신이 직접 상자를 열어야 할지, 주변인들의 눈치를 보는 척 하자, 그 잠깐을 참지 못한 카린이 결국 열 것을 명령했다. 이에 상인은 직접 상자의 뚜껑을 열고는 눈치 있게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꺄앗..."
상자 쪽으로 가까이 다가간 카린의 눈에 상자 속의 내용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는 흰색, 갈색, 검은색... 각각의 특이한 색을 가진 새끼고양이들의 모습에 카린은 참지 못하고 탄성을 질렀다. 카린은 뛰어내려 가고 싶은 충동을 참으면서, 일단은 몸에 배어 있는 대로 우아하게 드레스 자락을 들고 몇 계단 내려가 상자 앞에 서서는 허리를 굽혀 고양이들을 구경했다.
구슬처럼 크고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새끼고양이... 머리가 가려운지 이리저리 구르거나, 자신의 털을 핥거나 하는 고양이들의 애교에 카린은 여왕으로서의 위엄 따위는 머릿속에서 점차 녹아버리더니 어느새, 쪼그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찔러보거나 자신의 손을 핥게 하거나 하면서 그것들을 만지며 구경하는 카린의 얼굴은 풀릴 대로 풀려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겨우 고양이가 진귀한 동물인가?"
대공은 그런 귀여운 새끼고양이들을 보고도 별 감흥이 오지 않는지, 이마의 주름을 가득 찌푸리면서 기분이 안 좋다고 과시하는 듯한 표정과 함께 빈정상한듯한 목소리로 상인에게 물었다. 그럼에도, 상인은 전혀 당황하지 않는 얼굴로 술술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상품의 눈을 잘 살펴보십시오."
"눈?"
카린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는 고양이 한 마리를 조심스레 집어 눈을 살피었다. 집어든 고양이의 눈은 한쪽은 파란색, 한쪽은 노란색...?
"좌우 눈 색깔이 다르네..."
카린은 고양이의 눈 색깔이 다른 것이 신기해 중얼거렸다. 그 고양이는 자신을 집어든 카린에게 호기심을 느꼈는지 짧은 앞발을 들어 닿지 않는 그녀의 얼굴을 향해 휘둘러댔다.
"너무너무 귀여워~"
여왕으로서의 체통은 완전히 망각한 채 구경하는, 헤벌래 풀린 카린의 모습에 대공은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분노의 기세를 내뿜어대기 시작했다. 그런 대공의 분노로 주변인들이 그를 피해 갈라진 파도처럼 물러났지만, 그런 사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카린은 고양이 구경에만 몰두해 정신이 없었다. 그런 그녀의 근처로 조심스레 다가온 상인은 입을 열었다.
"네, 오드아이 라고 해서 굉장히 희귀한 종입니다. 이런 희귀한 짐승들은 나이가 들수록 상품가치가 떨어지기에 구하자마자 이렇게 전하께 가장 먼저 보여 드리고자 달려왔습니다. 물론 고양이 같은 네발짐승뿐만 아니라, 관상용 새라던가 혹은 충분히 조련된 매와 같은 상품은 물론, 뱀이나 곤충, 심지어는 코끼리 같은 거대한 짐승도 원하신다면 구해다 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에는 조금 추가 비용이 붙기는 합니다만..."
상인은 옆에서 정신이 홀딱 빠진 그녀를 향해 자신의 취급상품을 설명하고 있었지만, 담긴 말 속에는 그녀의 사치와 허영심을 계속해서 충동질하고 있었다. 그런 상인의 속셈을 눈치채고는 카린의 모습을 보다 못한 재상이 직접 중재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전하, 가격도 들어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디자엘 재상이 상인의 말 사이로 적절히 끼어드는 말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카린은 곧, 완전히 나사가 풀린 자신의 모습에 당황해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얼마나 쪼그리고 앉았는지 무릎이 다 저려왔지만, 약간 떨어진 장소에서 분노로 홀 전체를 태울법한 악마 같은 대공이 노려보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머릿속은 싹 날아가 버린 채, 대공의 교육으로 베일대로 베인 예법대로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카린은 되감기 동작처럼 우아하게 자신의 왕좌에 돌아가 앉고는, 한 쪽 다리를 꼬고 앉아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한 품위있는 미소를 지으며 상인에게 물었다.
"그래, 이런 귀한 것들이면 가격도 상당하겠군요."
"네, 전하께만은 특별히 가진 상품 중 가장 가치가 높은 것만을 엄선하여 골라 온 것입니다."
상인은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적당한 가격을 셈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린은 잊고 있었고 노련한 상인도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들을 지켜보는 자들 중에는 교활한 악마라도 등쳐먹을 수 있는 무지막지한 구두쇠 노인이 있다는 것이었다.
"전하, 이제 그만 돌려보내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보는 눈이 있기에 경어를 사용해 끼어들어 온 대공은 상인이 보나 마나 높은 가격을 부를 것을 역시나 같은 상인으로서 젊음을 투자한 적 있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대공의 '사지 않고 그냥 돌려보내기' 발언에 상인은 당황해 어떻게든 팔아보고자 말을 계속했다.
"이 상품은 진귀품 중에도 진귀품입니다. 이렇게 어린 새끼들은 구하기도 어렵고 구한다 해도 힘들게 돌아왔을 때는 이미 커버리기 때문에 아가씨들께서도 구하지 못해 애태우시는 물건들입니다. 게다가 굳이 이런 종이 아니더라도 타국의 아가씨들께선 희귀한 애완동물 정도는 한두 마리 이상은 다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한 나라를 쥐고 계신 전하께서 그냥 돌려보내시겠..."
이렇게 긴 말을 숨조차 돌리지 않고 말하는 상인의 긴 설득을 듣던 중, 카린은 끝까지 듣지 않고 도중에 손을 들어보이며 말을 중단시켰다.
"그대의 성의에는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 나라의 국고는 백성들이 피땀 흘려 쌓인 것으로 제 이기적인 목적으로 쓸 수는 없습니다."
카린은 겉으로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아쉬워서 눈물이 나올 판이었다. 하지만, 굳이 대공의 말이 아니더라도, 대공이 없었더라도 그녀는 이 '사치품'을 사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훌륭한 여왕'으로서 성장하고 있는 그녀에게는 자신의 사치를 목적으로 이런 비싼 물건에 국세를 허비할 만큼의 어리석음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까워...'
하지만, 위엄있는 척하는 겉모양과는 다르게 카린의 속마음에서는 계속해서 미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혹시나 싶어 있을 리 없는 꿈을, 어린 아이가 품을 법한 소망을 품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 누군가 사주지는 않을까? 아니면 상인이 한 마리 정도는 그냥 주지 않을까?' 싶은 비현실적이고 가능성 없는 소망을 품으면서 말이었다.
그런 그녀의 속마음을 읽은 재상이 한 발짝 걸어 나왔다. 한 마리 정도라면은 자신의 사비로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상인에게 가격을 묻고자 했다. 이 모습을 본 카린은 속으로 쌍수를 들며 외쳤다.
'역시, 재상'
하지만, 그런 재상의 행동을 대공은 그의 옷깃을 붙잡아 막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의 돈은 그냥 돈이 아닐세."
의미를 축약한 대공의 한마디지만 영리한 재상은 그 말뜻을 알아듣고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대공은 이런 '사치품'에 나랏돈을 낭비할 수 없었기에 막아 세운 정당한 행위였지만, 카린은 대공의 그 행동이 올바른 행위인 것을 알면서도 그 아쉬움이 원망으로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재상은 대답하면서도 속마음은 자신의 짧은 생각으로 그녀가 겪을 미련과 괴로움에 후회로 가득 찼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차라리 저 상인을 그녀에게 보이지 않는 편이 더 나았으리라... 그런 재상의 속마음을 모르는 카린은 애달픈 눈길로 계속해서 그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에 속마음이 더욱 괴로워진 재상은 그런 그녀의 눈길을 피했다.
카린은 그런 재상을 붙잡은 대공이 매우 미웠다. 어릴 적부터 자신을 돌봐오셨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사치에 돈을 낭비하는 게 잘못됐다는 것도 그녀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꿈을 막아서는 대공이 정말로 미웠다. 평소에 혼나오고, 지팡이로 맞기도 했지만 적어도 미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갈 곳 없는 그녀의 불만이 대공에게 향해서인지 너무나도 너무나도 자신의 할아버지가 미웠다.
"여기까지 왔는데 미안하게 됐군요."
카린은 결국 포기하며 상인을 향해 아쉬움의 한마디를 남긴 후 일어서서는 말없이 나가버렸다. 미련이라던가 귀여운 고양이라던가 하는 생각은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그저 자신의 할아버지를 원망하며 어딘가에서 혼자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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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꺼낸 말인가..."
재상은 재상실에 홀로 앉아서 손으로는 입을 가린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저 자신의 여왕이 보면 기뻐하리라 생각해서 꺼낸 알현 건인데 그녀가 이렇게 실망하는 단계까지 갈 줄은 그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아니 자신이 멍청했다.
"후우...."
재상은 한숨을 쉬며 창 밖을 보았다.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빛 때문인지 날씨가 너무나 더웠다. 자신 안쪽의 죄책감과 어리석음에 가슴 안쪽이 뜨거웠다.
"물이라도 끼얹을까?"
재상은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키고는 방을 나갔다. 방 밖의 비서실에서는 슈가 흘러내릴 듯 말 듯한 거대한 안경을 고쳐 쓰며 책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을 보고는 재상은, 그가 방해될 새라 옆의 메모지에 '샤워'라고 적어놓고는 조용히 나갔다. 그 미소년(?)은 재상이 자신의 머리맡을 지나 비서실 밖으로 나간 지 한참이 됐음에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다가 뒤늦게서야 누군가가 지나간 기척을 떠올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돌아봤다.
"에... 재상님?"
슈는 작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쓸데없이 커서 늘어진 옷의 양 소맷자락을 붙잡고는 재상을 찾아 돌아다녔다. 재상실에도, 자신의 비서실에도 그가 없다는 걸 그제야 안 슈는 점점 당황하기 시작했다. 바로 자신의 책상 모서리에 메모가 적혀 있건만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할 만큼 슈는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으아아앗....할... 때가 아니지."
슈는 혼자서 긴 소맷자락을 흔들며 귀엽게 요란을 피우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재상을 찾아 복도 쪽으로 나가고자 했다. 재상이 어떠한 업무로 어디로 갔는지 파악하는 것도 비서의 역할이었기에 슈는 다급하게 복도로 튀어나갔지만, 눈앞에 보이는 인물에 슈는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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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훌쩍"
카린은 드레스 차림 그대로 침대에 누워서는 울먹이고 있었다. 고양이를 가지지 못한 게 억울해서가 아니었다. 재상이 사주지 않은 게 억울해서도 아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 하나 제대로 해주는 게 없는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너무해..."
카린은 중얼거리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자신은 이렇게 노력하고 있거늘, 이렇게 힘든 책무를 떠안고 사는데 소녀로서 그저 평범한 소녀가 원하는 작은 것 하나조차 가질 수 없다는 게 정말 괴로웠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시녀들 역시 어쩔 줄 몰라했다.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녀들의 여왕이 이렇게 울고 있는지 모르는 그녀들은 그저 답답하기만 할 뿐이었다. 여왕다운 모습보다는 평소의 활발하고 다양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더욱 좋아했던 그녀들이었지만, 이렇게 어리디어린 소녀처럼 울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들에게는 굉장히 보기 안쓰러웠다. 그런 그때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기척을 느낀 시녀 하나가 급히 방 밖으로 나갔다. 지금의 여왕 전하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전해야만 했다.
그런 주변인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불에 파묻은 채 울면서 대공을 원망하고 있는 카린은, 누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혼자 있고 싶었는데, 혼자 있고 싶었는데 누군가가 자꾸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전하... 죄송합니다만...?"
"귀찮아! 나중에 와!"
카린은 짜증이 올라와, 평소와는 다른 진심으로 화가 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는...
"야옹~"
"에....?"
카린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녀의 눈앞에는 사람이 아닌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좌우가 다른 두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부들부들 떨리는 두 손을 들어 조심스레 그 고양이를 안아보았다. 두 손에 느껴지는 고양이의 감촉은 정말 부드럽고 따뜻했다.
카린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한참을 울어 새빨갛게 충혈된 두 눈으로 고양이를 가져온 인물을 보았다.
"에... 슈 라고 했지?"
카린은 자신의 눈앞에서 새빨개진 얼굴을 푹 숙인 채 두 팔로 고양이가 담겨 있던 통을 내미고 있는 미소년(?)에게 말했다.
"예, 전하"
슈는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서도 어째서인지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굴고 있자, 그런 슈의 반응이 귀엽기도 했지만 어째서 그가 당황해 하는지 이상하게 여기며 카린은 고개를 숙여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가슴 옷깃은 침대에서 난리를 쳐서 그런지 풀어져서 그녀의 미끄러질 듯이 납작한 두 언덕과 골짜기가 드러났다. 카린은 당연히 이 귀여운 치한(?)의 볼을 잡아당겨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다.
"아우우우..."
"어딜 보는 거야, 고개를 들어 나를 보라고"
슈는 그녀에게 볼을 잡히자 저항하지 못한 채 귀여운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 소년의 반응이 재밌는지 카린은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는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너, 말이야 방금 그거 대역죄인거 알아?"
"예....?"
카린의 말에 슈의 얼굴은 금세 새파래졌고, 그의 내려앉는 마음속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이 안경은 주르륵 흘러내리다 콧잔등에 결렸다. 그런 그의 귀엽고 솔직한 반응에 카린은 좀 더 겁을 주었다.
"사형이야 사형"
카린은 웃는 얼굴로 왼손으로는 고양이를 안은 채, 오른손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히이익..."
더욱 새파래졌다. 그럼 조금만 더...
"뭐가 좋을까.. 교수형? 화형? 아니 그래도 해온 일들을 봐서 특례로 참수형으로 할까?"
"저... 전하.. 살려주세요."
슈의 새파래지다 못해 죽을 것처럼 글썽거리는 눈시울에 카린은 자신의 장난이 심했음을 알고 미안해졌다.
"아... 미안미안, 농담이었는데 이렇게 놀랄 줄은 몰랐네."
카린의 농담이라는 말에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다리가 풀려 주저앉는 그의 반응은 왠지 모르게 재밌었다.
'이럼 안되지 안되, 재밌다니... 저쪽은 목숨이 왔다갔다 했을 텐데...'
카린은 자신의 생각 없는 말과 행동을 잠깐 반성하고 나서, 그녀는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근데 이 고양이 어디서 났어? 네가 산 거야?"
카린은 물으면서도 속으로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만약 이 눈앞의 소년이 자신이 사온 것이라고 대답한다면 이건 결코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기에 말이었다. 다행히도 그런 그녀의 걱정은 금세 무너졌다.
"베르제바브 대공님께서 전하께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카린은 그 대답을 듣고서도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돈 쓰는 걸로는 최악의 구두쇠인 할아버지였다. 항상 입고 다니는 옷들조차 기워가며 버리지 않으시고, 무슨 낙으로 사시는지 작은 것 하나에도 돈을 쓰려고 하지 않으셨다. 그런 분이 이런 비싸디비싼 새끼고양이를 사셨다는 게, 눈앞에 그 고양이가 있음에도 믿기지도 실감이 나지도 않았다.
"사온 게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산 것도 아니라고...?"
카린은 새끼고양이가 그녀의 배를 앞발로 살살 긁자, 무심결에 쓰다듬으면서도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사온 것도 아니고, 상인에게서 빼앗거나 하실 리는 더더욱 없으실 것이다.
'어떻게 된거지...?'
한참을 고민하던 카린은 결국 생각을 포기했다. 어찌 됐건 할아버지가 준 선물이었고 미워하던 감정은 금세 죄송함으로 바뀌었다. 혼자 속으로 할아버지를 원망한 게 괴로웠기에 그녀는 사과하자고 속으로 마음먹었다.
'나중에 꼭 사과드려야지...'
카린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양이를 번쩍 들더니 안으며 뒤로 넘어졌다.
그런 그녀가 즐거워하는 모습에 슈는 자신은 나가야 할지, 계속 여기에 있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던 중 고개를 돌리니 문 저편으로 시녀들이 자신을 보고는 키득키득 거리며 웃는 모습이 보였다. 아까 카린이 겁을 줄 때, 그녀들은 그게 농담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혼자서 몰라 겁먹어 우왕좌왕하는 그가 귀여웠던 것이리라. 슈는 다시 얼굴이 새빨개졌고 그런 그를 향해 시녀들은 여전히 웃음을 가득 지은 채로 손짓을 하여 그만 나올 것을 권했다.
그렇게 슈가 나가거나 말거나 카린은 그 새끼고양이의 이름을 뭐로 지을지 고민하고 있었지만, 적당한 이름이 머릿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바로 떠올랐다. 카린은 벌떡 몸을 일으키며 새끼고양이의 얼굴을 주시하 채로 말했다.
"좋아, 넌 이제부터 프롬이다"
그녀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했는지 프롬은 두 눈을 반짝이더니 대답하듯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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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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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인에게서 어떻게 구하신 겁니까?"
재상은 샤워라도 했는지 짧은 셔츠를 입고 목에는 수건을 감은 채, 자신의 반걸음 앞서서 걷고 있는 대공에게 물었다. 이에 대공은 빈 머리가죽을 쓰다듬으며 답했다.
"거래를 했지."
"거래... 말씀이십니까?"
그 거래라는 것은 앞면의 물건을 사고파는 거래가 아니라, 뒷면을 말하는 것을 금세 알아들은 재상은 대공이 어떤 거래를 했는지 궁금했다.
"어떤 조건이라도 달으신 겁니까?"
재상의 말에 대공은 걸음을 멈추더니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마도 여기서 말하기에는 조금 곤란한 대답이리라. 그런 대공의 행동에 복도의 인물들은 알아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곧, 복도는 두 사람 외에 텅텅 비었고 그제서야 대공은 고개를 돌려 재상을 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거래세를 낮춰준다고 하고서 한 마리 받았네."
주변인들이 힘들게 자리를 비켜줬다는 게 억울할 정도의 짧은 대답이었지만, 재상은 역시나 금세 알아들었다.
사치품에 대한 세율은 어느 나라를 가든지 굉장히 높았다. 부유층 인물들의 사치를 막는 것은 물론, 세금 이외의 방법으로 큰돈을 뜯어낼 방법이니 높을 수밖에 없으리라. 그렇지만, 세율이 높으면 당연히 그 사치품의 가격도 각각 오를 수밖에 없고, 그러면 아무리 돈이 많은 자들이라도 사들이는 양은 적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상인들의 입장에서는 세율이 높을수록 손해였다. 두 개를 팔 수 있는데 한 개 밖에 못 팔아치운다면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본인도 한때 세상을 누비던 큰 상인이었기에 그런 상인들의 심리를 잘 아는 대공은 세율을 낮춰주는 것을 조건으로 한 마리를 받아냈으리라.
"그러면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재상은 곧 생겨난 궁금증을 물었지만, 오히려 물어보고 나서 바로 답이 떠올랐다.
"사치품 중에 산짐승에 관련된 세율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아. 워낙에 종류가 다양하니 그렇지만, 어쨌든 그때그때 다르니 문제없네."
뇌물이라고 한다면 뇌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손녀를 그토록 사랑하는 대공에게 과연 그러한 말을 할 수 있을까?
말을 한 대공은 곧, 복도 저편에서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 것이 보였는지 허연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주름진 얼굴을 더욱 주름지으며 자신 쪽으로 허겁지겁 달려오는 품위 없고 버릇없는... 허나, 아끼고 사랑하는 단 하나뿐인 손녀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사~랑~해~요~!"
카린은 숨 넘어갈 듯이 외치며 전력으로 달려와서는 그녀의 할아버지의 품에 뛰어들듯이 안겼다. 그런 만면에 진심으로 우러난 미소와 함께, 그녀의 따스한 포옹에도 대공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이 고개를 돌려 뒤편의 재상 쪽을 바라보았다.
그때, 재상의 눈에는 잠깐이었지만 보였다. 카린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린 대공의 얼굴에는 잠시나마 행복한 듯한 작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자신의 손녀에게는 이를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걸까? 자신은 언제까지나 그 아이에게 엄격하게 보이고 싶었던 걸까? 그는 다소는 엄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돌려 품에 안겨온 카린을 내려다보며 소리질렀다.
"내가 복도에서 뛰지 말라고 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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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위의 내용은 픽션이며 전체 내용에 등장하는 인물, 지명 등 모든것은 현실의 정치,종교,지역,인물, 기타 등 모든 것과 절대 연관이 없으며 숨겨진 뜻 같은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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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아직 이래저래 글짓기가 엉성한지라... 열심히 쓰면서 실력을 다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