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생각한마리님 메일을 받고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사실 저는 글 쓰는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좋아하는 편입니다. 가끔 이런류의 졸작을 붓가는 데로 써서 마눌에게 읽어보라 건네 주면 그냥 웃고맙니다.ㅎㅎㅎ
게시판에 올려 놓고 다시 읽어보니 챙피했습니다. 그래서 삭제 해 버렸는데 방장님이 잠깐 스치셨군요..다시 읽어보고 싶다고 메일을 보내셨습니다.. 감사합니다....고민고민하다 다시 올려봅니다
개인적 가치와 현실이 충돌이 생길 때 중간적 입장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란 너무나 어렵습니다. “영화란 돈이다” 자본주의에서 ‘돈’이란 부의 정도에 따라 인간의 가치를 저울질 해 버리는 무정한 놈이 되어버렸죠. 이런류의 이야기는 이제 T.V문학관에서나 볼 수 있는
돈안되는 퀘퀘묵은 낡은 이야기로 사장 되 버리기 쉽상입니다. 영화 ‘살인의추억’을 보면서 ‘이렇게도 돈을 버는 구라‘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사실 저는 살인의 추억의 배경인 “화성연쇄 살인사건을 담당 했던 ” 경찰관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지요? 한 마디로 "다 갉아먹은 수박껍질로 돈을 긁어 모으는 방법이 있구나’ 라고 생각 했습니다
제가 쓰고 있는 소설의 간단한 줄거릴 소개하면
가난한 시골에 한 소년이 동네 이웃친적(?)이 데려온 집 나온 여자애를 만나게 되면서 애절한 사랑과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깨달아가는 이야기, 무너져 가는 가정윤리를 따금하게 지적 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이어질 키워드는 박선생이 유괴에 휩싸이게 되며, 전형적인 농부로 귀향하게 되고, 헌신적인 사랑에도 불구하고 병에 걸려 죽습니다. 비정한 가정이야기....시골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사람 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해야하는 지.........그냥 옛 날 생각하면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담벼락 위에 걸친 해가 점점 웃자란 옥수수 잎 사이로 벌겋게 익은 얼굴을 감출 무렵이면 누런 암소가 앞서고 지게 위에 한아름 가득 꼴을 지고 있는 아버지 뒤로 남산만한 배불뚝이 염소가 대문을 밀치고 들어오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면 동네 하나밖에 없는 우리 집 대문 앞 우물은 주로 동네 여자들이 모여 저녁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대부분 우리 집안과 친척들이다. 세평 남짓 미끌미끌한 시멘트 바닥엔 섬진강 물줄기에서 금방 잡아온 피라미가 더위를 먹은 냥 축 쳐져 하얀 배를 내밀고, 시든 호박잎 위의 내장은 하얀 풍선과 함께 훑어져 나와 쌓이고, 바로 옆 학독에선 검푸른 보리쌀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몸의 때를 벗는다.
스무 척이나 되는 우물은 붕어가 살고 있다. 나는 이 우물을 동굴이라 생각했다. 까마득하게 깊게 들어간 동굴은 어두워 바닥은 보이지 않으나 차곡차곡 쌓인 돌 위의 녹색 이끼가 인고의 세월을 말해 주듯 눈 쌓이듯 자라고 있다. 붕어를 낚으려고 낚시 바늘을 드리웠다가 동네 어르신께 호되게 혼쭐난 적이 있었다. 언젠가 그 붕어와 한판 결투가 벌어질 것이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닌 동네 아이들 모두의 생각이었다.
붕어의 실체를 본적은 없지만 동굴 안 벌레는 이 붕어가 잡아먹는다고 했다. 이 물을 마시고 마을 사람들이 무병장수 한다는 말을 어른들을 통해 들어 왔기에 더욱 그놈의 실체에 대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우물 입구에 대고 “야” 하고 소리치면 “야-아”라고 한 수 더 떠 되돌아오는 메아리는 그곳에서 노닐고 있는 그놈의 실체에 대해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꼭 그 놈을 보고야 말리라. ......’
동네 여자들이 차지하고 있던 동굴터에선 연신 시원한 물이 두레박에 담겨져 퍼 나오고 있었다. 열 서넛 남짓한 가구엔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다 형님 동생이다. 하루 일상의 찌든 흔적을 씻겨 내는 시간 그 곳은 동네 아낙들의 일기를 육성으로 감상 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 아까 저녁 무렵에 박선상이 열서너므 정도 돼 보이는 왠 지지배를 자전거에 태우고 오던디 가가 누구여?”
말을 꺼낸 건 박선생 바로 옆집에 사는 길수어머니였다.
“나는 못 봤는디!...”
“그려”
“핵교서 뎃고 온 학상이겄제”
“아녀. 머리꼴이 꼭 국시 말아 논 맨치로 실성헌 지지배 하나를 뎃고 오더랑게. 첨 보는 애 던디-”
“실성허긴 뭐시가 실성혔다고 그랴... 박선상이 할 일 없어 그런 미친애를 데려온당가?”
“아녀. 몇 일간 물 꼴도 못 본 애처럼 얼굴이 히뜩히뜩 허니 드럽게 생겼드랑게”
동네 우물가는 언제나 그렇듯 주로 남의 집 얘기가 단골 메뉴로 등장했으며 그렇게 고된 하루를 정리하는 장소였다.
나는 이곳을 통하여 어른들의 세상살이를 엿볼 수 있었다.
‘타잔’에서 나오는 원주민 추장의 까무잡잘한 몸이며 껑충껑충 뛰어 대는 모습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처럼......... 어느새 나는 박선생님 집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월남치마에 머리는 정말 국시를 말아 놓은 듯 헝클어지고, 손톱 밑엔 시커먼 때가.....며칠째 몸을 물에 대지 않았는지 하얀 버짐까지 피어 누가 봐도 집 나온 아이나, 실성한 아이요. 어느 한구석 모자란 듯한 모습 또한 분명 ‘주어온 애’였다. 가끔 실실거리며 웃어대는 모습은 영락없이 나의 상상을 더욱 반증하기도 했다. 그 얘는 마당 언저리에서 공기돌 다섯 개 중 하나를 하늘에 던지고 동시에 나머지 네 개의 돌을 땅바닥에 흩뿌리는 행동을 하고 있었고, 살짝 올라간 윗도리 밑으로 보이는 옆구리 살은 하얗다 못해 백옥 같았으나 반대로 검정고무줄로 월남치마 윗부분을 돌돌 말아 허리에 차고 있는 모습은 필시 다리 밑에서 주어온 아이임에 틀림없었다. 나이는 나와 비슷하거나 한 살 정도 어려 보였다 .
“ 니 어디서 왔냐?”
“............”
“어디서 왔냐니께”
“...............”
“이 가시네가”
한 개의 공기돌을 발로 날렸다. 그러자 갑자기 흰눈동자를 위로 걸쳐 뜨고 나를 꼬나보다 멀찌감치 달아난 공기돌을 주어 오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이 어찌나 표독스럽던지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그 애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남들이 박선생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나의 아버지께서 삼촌이라 호칭하니 나는 할아버지인 셈이다. 박선생은 왜정 때 고등공민학교를 졸업하여 어렵게 돈주고 산 교사자격증으로 산골 조그만 국민학교 선생으로 일하고 있었고, 5.6학년 담임을 하기엔 벅차 주로 1.2학년 담임을 하였다. 동네에선 그 어느 집보다 땅이 많아 주변 논마지기가 거의 박선생 형인 박가의 논바닥 이였고 그의 재력은 옆 동네 춘새아저씨를 데려다 일을 부릴 만큼 재력이 있는 박가라 불리는 집 동생이었다. 나는 왜 박가와 박선생을 할부지로 호칭해야 하는 이유를 몰랐다. 나보다 어린 만수에게 삼촌이라 불러야 하는지도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나의 불만은 배고픔을 채워주는 유일한 이웃이었기에 천민 자본주의 산물인 부의 계급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즉자적 민중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다. 박선생 집 대문 옆 담장으로 몰래 기어 들어가 달짝지근한 대추를 몰래 따먹다 걸려도 호된 야단은커녕“쐬기 쏘일라...” 라는 말 한마디가 나의 친척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반추 해 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어른들 세계에서 유행하는 구차한 변명 따윈 관심이 없었다.
얼큰하게 취기를 풍기며 집 앞 대문만 도착하면 쓸어 지시는 아버지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원초적 문명도구라 할 수 있는 분필은 땅따먹기 할 때 가장 좋은 도구였다. 박선생 딸인 명숙이 고모의 손에 의해 내 손에 전달되었고, 분필은 모종 시멘트 바닥에 쑥을 뜯어 선을 그려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는 최고의 선긋기 도구로 선생을 아버지로 둔 특권이었다.
가끔 학교에서 배급하고 남은 둥근 학교급식 빵은 친척일 수밖에 없다라는 생각을 더욱 올곧게 만들었다. 하물며 누나뻘 대는 명숙이 고모는 가끔 미국 밀가루에 계란을 섞고 소다를 뿌려 불에 구운 누렇고 까므잡잘한 빵을 만들어 한 조각씩 내 손에 쥐어 줬기에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으며 오히려 가까운 친적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외양간에서 풍기는 지독한 암소 분뇨 냄새가 사시사철 코를 자극하는 우리 집에 비해 박선생 집은 아담한 화단에 비가와도 질퍽거리지 않는 시멘트 바닥이었고 창문은 미닫이 창문으로 된 새쉬문과 노란장판이 정갈하게 깔려 있는 기와집이었다.
“야 얼릉 들어와 씻어”
한참 후 명숙이 고모의 매몰차고 쌀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분명 나를 보며 내지른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그 애의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멋 적은 듯 고개를 숙인 채 일어서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옷에 오줌싼 선 머슴애처럼 보였다.
“빨랑 정지 가서 씻으랑게 뭣 허고 있어!!
“..........”
“야! 내말 안들려?”
“..........”
“얼른 들어가 씻거라”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미동치 않고 옴짝달싹하지도 않던 애는 안방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박선생 말 한마디에 다소곳하게 일어나 부엌 쪽으로 들어갔다.......‘박선생과 어떤 관계일까?...’궁금증은 나를 또 다른 생각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공기돌을 발로 걷어 찾을 때 표독스런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말 한마디에 저렇게 고분고분 해 질 수 있는지 의아스럽기까지 했다. 부엌 쪽으로 다가가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은 그 어느 누구의 머릿속에서도 유추 해 낼 수 없고 글로 표현 할 수 없는 야릇한 감정이 일으켰다. 부엌문 사이로 어둠과 밝음의 형체가 출렁거리며 눈에 아른거렸다
밥숟가락을 입에 넣을 때도 그 애에 대한 의문은 씻기지 않았다.
“엄니!!. 명숙이 고모네 온 지지배가 누구대여?”
“아까 선생님 집에 가본께로 왠 지지배가 하나 와 있데요”
“어디 가서 뭘 봤다고 그리쌌냐?”
“시암에서 발 씻을 때 길수엄니 한테 들었는디. 선생님이 자전거 뒤에다 싣고 왔다기서 가 봤는데 진짜로 와 있더만요”
“뭐시 왔다고 씨브리냐 뱁이나 먹지” 아버진 밥을 입에 물고 다구치 듯 물었다
“아따 참말로오-- 명숙이 고모집에 지지배가 하나 왔당게로요. 시방”
“엄니 정말 몰러요?”
“핵교서 불쌍한 학상 하나 데리꼬 왔껏제...얼릉 뱁이나 먹거라”
사실 박선생님은 학교에서 육성회비를 납부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대신 회비를 납부해 준 적이 있었고, 때론 이런 애들이 가끔 집에 들러 포도를 따먹으며 놀고 가곤 했다. 어머니는 당연히 그런 애들 중 한 명일 거라고 믿었기에 더 이상 왈가불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런 애들이라면 이 시간에 집에 돌아가지 않을 리 없으며 명숙이 고모의 말투로 봐서 박선생이 데려온 제자가 아닐 거 라는 점과 제자를 부엌에 데려가 멱까지 감길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척이라면 더 더욱 그럴 것이다. 아무리 박가가 땅 많은 지주라 하지만 박선생에게는 땅 한 마지기도 물려주지 않는 강직하고 욕심 많기로 소문난 사람이었기에 집안 살림은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가까운 친척으로 수원에 사는 막내 동생과 더불어 세 형제 뿐 이었기에 일가친척이라 해봐야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뻔했다. 박가는 동네 이장인 우리 아버지와 자주 다퉜다. 신청한 비료와 농약이 덜 왔다느니, 버르장머리가 없다며 멱살을 잡고 싸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닌 곰상스런 사람이었다. 부의 가치로 아버질 주눅들게 하였다. 하릿 논을 경작하고 있는 아버지로선 완장 하나 차고 있는 거 외엔 내세울게 하나 없는 촌부였다. 화풀이를 술로 대신한 날이면 동구 밖 먼 곳에서부터 고래고래 소릴 지르시는 목소리로 온 동네가 쩌렁쩌렁 했고, 술만 먹으면 한 얘기 또 하고 또 한다는 어머니의 바가지가 이어졌다. 술만 드시면 자주 등장하는 얘기의 정체는 박 정권 초기 당시 선조에게 물려받은 아버지의 땅덩어리는 무려 40필지였었는데 정읍에서 유신정권에 맞서 출마했던 돈 없는 후보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 많던 논을 박가에게 팔아 두 번씩이나 뒷돈을 대 주어 결국에는 그 많던 재산을 들이고서도 정치 꿈을 버리지 못한 아버지는 빈털터리가 되었고 그 이후 박가는 아버질 깔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부의 가치 정도에 따라 수염을 쓰다듬을 수 있는 현실을 생각 할 때 자존심 강한 아버진 이장이라는 완장이라도 차고 있어야만 박가에게 팔아 넘긴 땅을 보며 한탄의 세월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는 수 있었고, 그 후부터 아버지와 박가는 앙숙이 되었다. 하지만 박가와는 다르게 박선생과 아버지는 비슷한 나이로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은 없었다.
박선생의 막내아들인 만수는 나보다 두 살 어리지만 순간순간 배고픔을 대신 해 주는 동생이었다. 또한
그 지역 환경에 익숙한 재주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뛰어 난 나에게 은연중 그런 행동들을 전수 받기를 원했다. 물 속에 뛰어들면 개구리헤엄은 물론이고 속 헤엄, 다이빙은 그 또래에서 나를 따를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 속에서 오랫동안 숨쉬지 않고 진흙더미를 뒤져 곧 잘 메기나 모래무지를 잡아내는 기술은 부의 상징으로 만들어 놓은 허울 좋은 촌수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가끔 만수 큰아버지인 박가에게 들켜 혼 줄이 나긴 했으나. 노란 배급 빵을 건네주는 대가로 나에게 삼촌이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었다. 은연중 만수는 박가에게 촌수의 중요성을 강요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만수를 삼촌이라 부르지 않았다.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 물줄기는 궁핍한 생활의 먹거리를 제공 해 주는 천혜 수산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사시사철 철마다 잡아내는 고기가 달랐다 잉어, 왕치, 눈치, 붕어, 빠가사리, 불거지, 피리, 메기, 자라, 가물치, 장어, 은어, 말조개, 재첩, 개구리, 참게, 먹치, 청둥오리 등은 대게 그 시절 고추장에 고추나 오이를 물 말아 찍어 먹던 다른 집 밥상에 비해,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호박을 굵직굵직하게 썰어 넣고 메기나, 참게를 더해 푸짐하게 끊어내던 매운탕은 제법 풍요로운 밥상을 제공했고 물론 아버지 소주에 궁합이 딱 맞는 안주로 안성맞춤이었고 “어! 시원허다”라는 말은 “내 아들 기특허다”는 말로 들리게 했다.
책보를 집어던지고 강가로 나온 건 만수와 길수가 먼저였다. 길수는 나와 한 살 차이로 아버지가 이모라 부르는 집 손주다. 오히려 만수보다 피가 섞여도 많이 섞인 게 길수였다. 하지만 길수가 나에게 건네주는 옥수수나 고구마는 도움이 별로 되지 않았다. 구운 빵과 급식 빵이 내 배를 채웠고 만수는 고분고분 내 말을 잘 들었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많은 곳은 바위와 진흙이 많은 곳으로 내 키보다 두 배 깊은 물길을 숨을 오랫동안 참고 한참동안 헤집고 다녀야만 손바닥만한 메기나 참게를 건져 낼 수 있었다. 물깊이는 위에서 내려다보아 검푸르스름 해야 하며 물세가 빠르지 않고 잔잔한 곳으로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음산한 곳에서 잡히기 때문에 주로 버드나무에 가려 그늘진 곳을 가려 잠수하여야 한다.
이들에게 한 수 가르쳐 줘야한다. 빵에 비해 고기 잡는 기술이 비교우위에 있다는 것을 단번에 보여줘야 한다. 만수의 조카가 아닌 수영이 형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라도 깊은 물 속을 헤매어야 한다. 버들가지를 꺾어 ‘꾸미’를 만든 다음 물세 빠른 곳에서 피라미를 잡던 길수와 만수를 불러 ‘꾸미’를 건네준 다음 나만이 알고 있는 공간으로 깊이 잠수해 들어가 진흙 벽을 훑는다. 주로 참게는 입구에 발자국을 남겨 놓지만 메기는 구멍입구에서 물방울이 뽀그락 뽀그락 핀다.
큼직한 말조개는 입을 떡 벌리고 있다가 원하지 않은 먹이감이나 침입자가 나타나면 합죽이가 되는데 손다박에 밀가루를 묻혔다가 손뼉을 치는 순간 구름같이 일어나는 현상처럼 문을 닫아 버린다
마을 우물속에 사는 붕어는 낚시를 드리워야 잡을 수 있지만 응큼한 메기는 참게들이 파놓은 동굴을 자기 집인 냥 들어가 살다가 날이 어두워질 무렵 기어 나와 미꾸라지나 조그만 송사리 등을 잡아먹고 산다. 침입자가 접근하면 곧바로 도망가기 때문에 구멍을 발견하면 일단 손바닥으로 입구를 잽싸게 막아야 한다. 가끔 이곳에 모래무지나 빠가사리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낭패를 본다. 빠가사리 양쪽에 달린 흉기기의 위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동굴입구에 다가가면 말조개가 뿌려대는 밀가루는 아니지만 이놈은 뽀그락 뽀그락 하얀 물방울을 내보낸다. 뻑뻑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살피니 마을 우물속 같이 캄캄한 동굴이 눈에 들어온다. 뭔가 들어 있다는 직감에 오리발에 힘을 가했다. 오른손을 쑥 집어넣자 흙탕물이 진흙과 섞여 시야를 막아 버린다. 이놈들은 자기의 영역에 인간의 살 냄새를 풍기면 더 안쪽으로 기어 들어가는 습성이 있다. 하지만 나는 동굴을 발견한 순간 그 끝이 어딘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내 생각에도 변함이 없었다. 손 길이가 짧아 어깨 죽지가 구멍 입구에서 맞닥트릴 때까지 동굴의 끝을 손끝으로 확인해야 하는 버릇은 언제나 마찬가지다.
허파 속에 남아 있는 산소가 고갈되어 있음은 물의 깊이 만큼이나 두렵고 무섭다.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추구하는 목표를 향해 돌진하여 내가 가지려고 하는 무언가를 건져내야 한다. 메기는 내 손에 잡혀야 하고 너를 노린 이상 끝장을 봐야한다. 양발에 힘을 주어 어깨 깊이까지 손을 밀어 넣자 메기의 미끈미끈한 주둥이가 닿는다. 순간 본능적으로 엄지와 검지를 아가미 사이에 집어넣었다. 물러설 틈이 없는 이놈을 끌어내야 하는데 힘을 써도 좀처럼 끌려 나오질 않는다. 꼬리를 진흙 속에 쳐 박았거나 수컷이 암놈의 꼬리를 입에 물고 있음이 분명하다. 손바닥에 쉽게 안기지 않는 것으로 봐선 만만치 않은 놈이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내 손에 잡힌 이상 이놈의 아가미를 놓지 않으리라 결코 숨을 쉬기 위해 너의 아가미를 놓진 않으리라. 먹물 먹은 낙지 머리와 왼쪽 무릎을 대칭으로 진흙 벽에 대고 오른쪽 어깨에 힘을 주었다. 뽀르륵 소리를 내며 푸르뎅뎅한 메기가 머리에 진흙을 쳐 바르고 드디어 동굴 밖으로 나오자 최후에 발악을 하듯 꼬리를 흔들며 요동을 친다. 무의식적으로 왼손을 아가미를 잡은 오른손에 힘을 보태어 목을 조르듯 죄어 하늘로 치켜들자 길다란 꼬리가 나의 목덜미를 내리 쳤다.
나는 지금껏 이렇게 큰놈을 잡아 본적이 없다. 하늘을 날아 풀밭에 내동댕이쳐진 메기를 바라보던 길수와 만수가 겁을 먹었는지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선 손으로 머리를 툭툭 친다. 미리 만들어 놓았던 ‘꾸미’는 이놈의 아가미를 끼어 넣기엔 너무 작은 듯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내가 그녀를 두 번째 본 건 동네 사람들이 우물가에 모여 내가 잡은 메기를 구경하던 자리였다
만수 엄니 뒤로 바로 그 애가 머리를 빼꼼히 내놓고 큰 눈을 깜박이며 지켜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따 디지게 크다-이.”
“저 허연 수염쪼께 바라-이”
“뭘로 잡었냐”
“수영이 형아가 손으로 잡었어라” 만수였다
“수영이 니가 잡었다고”
입술이 파래 있던 나의 어깨에 잔득 힘이 들어갔다. 양은 솥 단지에 보글보글 끓고 있는 매운탕 생각에 침이 절로 넘어가고 ‘어 시원허다’, ‘내 아들 기특허다’ 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말이 귓전에 쟁쟁했다. 손질이 어느 정도 끝나자 동네 사람들의 메기 얘기는 벌써 저 산마루 언저리까지 뿌옇게 흩어지고 어느덧 만수 집에 들어온 여자 애에게 시선이 쏠렸다
공기돌을 발로 걷어 찾을 때 그 앙칼지고 표독스런 모습, 라면을 삶아 놓은 듯한 머릿발과 꾀죄죄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노르딩딩한 원피스 등 뒤로 가지런히 잘 빗겨져 길게 늘어트린 검은 생머리에, 버짐 피었던 얼굴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불그스레 홍조 띤 볼과 오밀조밀한 까만 눈썹, 적당히 선 코, 도톰한 입술은 어른들이 주로 쓰는 고혹이라는 단어를 굳이 쓰지 않아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자 가 선상님이 데려온 앤가?”
“이쁘게도 생겼다이--”
“워디 사는 얘 대여?”
“몇살여?..
“우리집 딸여!!”
만수 어머니 말에 주변 사람들은 농인 줄 알면서도 눈을 휘둥그레하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됨을 감지한 것일까! 대추나무가 있는 그 기와집으로 뛰어가는 모습은 어제와는 너무 달랐다. 아프리카 원주민이 얼굴에 형형색색의 그림을 그리던 호기심에서 파란해골 13호를 물리치는 “아라치”를 떠올렸다.
박선생은 국민학교 선생님이라는 직업 외에 양봉을 쳤다. 만수 어머니 친척들이 사는 집에 벌통을 뿌려 놓고 주기적으로 찾아가 꿀을 채집하곤 했다. 집엔 일 할 사람이 없어 호기심 많은 나를 데리고 다닌 적이 많았고 나는 그 대가로 댓병에 반쯤 담은 꿀을 아버지에게 가져다 드렸다.
가슴속에 호젓이 자리잡고 있는 매달림의 정체는 뭘까? 어떤 형용의 절묘함과 수사 치레를 써서 나의 마음을 정확히 헤아릴 수 있을까.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보다. 어른들이 쓰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추상성에 아무리 구체성을 부여하고 아무리 논리적인 말로 표현한다 하더라도 호기심이라는 단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다.
머리에 모기장을 뒤집어쓰고 중무장한 나의 역할은 박선생이 수많은 벌들이 살고 있는 벌통 속 꿀 친 소초를 예리한 송곳으로 떼어 내는 순간 약쑥을 태운 훈풍기를 벌들에게 품어대는 일이다. 비바람 몰아치는 전쟁터에서 애써 종족번식을 위해 담아놓은 잉걸의 꿀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달려드는 벌을 향해 품어대는 약쑥 연기는 벌들은 온순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잠시 집을 떠나 있으라는 포악한 물질이다. 벌들 중에는 약발이 먹히지 않는 강한 놈도 있다
모기장을 헤집고 들어오지 못하면 겨드랑이 밑에 앉아 있다 손이 하늘로 올라가는 순간 어느 찰라에 기어들어 일침을 가하는 충성심 강한 벌들도 있으며, 얼레통까지 따라와 머리를 쳐 박고 끝가지 농성하다 돌아가는 통속에서 일용할 양식과 함께 생을 마감하는 벌들도 있다.
얼레는 주로 만수와 명숙이 고모 담당이다. 나와 그 애가 정면으로 마주치게 된 것은 만수어머니 손에 새참거리가 들려져 오고 있을 때였다. 노란 양은 주전자가 손에 들려 있었다. 나를 보자 그 애의 시선은 언덕배기에 앉아 일을 하던 박선생에게 돌아가 버렸다.
“아부지 수박 드세여”
명숙이 고모의 외침에 박선생은 하던 일을 멈추고 손에 붙은 벌들을 털어 가며 걸어왔다
“금영이도 왔냐?”
나는 그 때 그 애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금영’ 수많은 계집애들 중 가슴 한구석에 사정없이 각인되어 버린 "금영이......’ 내 또래 계집애들이 봉녀, 금옥, 희순이라는 지극히 촌스런 이름에 거무티티한 피부색,앙칼진 얼굴과는 단번에 선이 그어 졌다. 주어 왔을 거라는 생각보다는 만수어머니가 우물가에서 얘기했던 말 데로 딸이거나 친척일 수도 있다는 생각과 혹 박선생과 가까운 사이라면 나와도 친척일 수 있다라는 애틋한 마음까지 들었다
“수박이 잘 익었다. 수영아 너도 한쪽 먹어봐라”
만수어머니가 건넨 수박을 한 입 물고 힐끔 쳐다보니 그 애는 뒷꿈치를 치켜들고 얼래통 안에 머리를 디밀고는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니 그러다 벌 쐬인다”
명숙이 고모 말에 화들짝 놀란 얼굴이 꼭 토끼 같았다.
“한 바탕 비가 퍼부을 것 같은디. 얼른 끝내고 가야 쓰겄다”
“금영이 너도 거들거라”
“벌쐐니께 조심혀”
“네”
기다렸다는 듯 주저 없이 대답하는 금영이의 목소리를 난 그때서야 처음 들을 수 있었다. 얼레통에서 헛껍데기가 된 소초를 가져다 주곤, 주변의 벌떼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며 겁을 먹었는지 벌통으로 쉽게 다가오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시장에서 갓 사온 토끼새끼가 주인이 처음 넣어주는 풀을 먹을까 말까 눈치를 보면서 빠알간 큰 눈을 껌뻑 거리는 모습과도 같았다.
“괜찮여야 얼릉 줘”
“무섭잖아!”
“뭐시 무섭냐!”
맨 처음 나와 주고받은 말이다. 어딘지 겁을 먹은 듯 던진 말에 여자보다 강하다는 남자의 원초적 우월성이 내포된 듯이 내뱉었다
“벌에게 왜 연기를 뿌려”
“자기 밥을 뺏기는데 벌이 가만이 있건냐? 너라면”
박선생이 말을 받아 버렸다
수많은 육각 벌집 속에 벌들은 꿀을 채우고 자신들이 입에서 직접 쏟아 내는 밀납으로 뚜껑을 닫아버린다. 이 부분을 예리한 칼날로 도려내어 얼레통에 넣고 돌려야만 꿀이 모아지는 것이다
“자 요거 한번 먹어봐라”
박선생은 벌집 뚜껑을 칼로 쓸어낸 밀납을 금영에게 건넸다. 사실 나는 너무 많이 씹어 본 경험이 있어 그 맛이 어떠리라는 것은 뻔히 알고 있었다. 밀납을 입에 넣고 조심스럽게 씹는 모습은 주인임을 의심치 않는 토끼가 질경이와 씀바귀 맛을 비교․음미하듯 했다. 종합병원 인큐베이터 안에서 축복 받으며 태어난 아이와 한 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태어난 미혼모 아이가 먹는 꿀맛의 차이는 전혀 다를 것이다. 과연 금영이는 어디서 태어나서 어떻게 여기에 와 있을까!
금영이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마당 평상 위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 속에서 우연찮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금영이는 자신의 거처를 잘 기억하지 못했다. 부모 없이 할머니와 단 둘이서 살아왔으며 집나간 어머니를 찾기 위해 이틀 간을 헤메다 박선생이 다니는 학교 근처 하천에서 세수를 하다 그만 물에 빠져 울고 있던 것을 박선생이 발견하여 집으로 데려 온 것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곧 바로 집을 나가 버렸고 술로 겨우 겨우 하루를 연명하는 할머니 밑에서 양육은커녕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끼니꺼리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박선생 집에서 금영이의 생활은 종합병원의 인큐베이터보다도 더욱 아늑했다. 조그만 단칸방에서 술 냄새 풍기는 할머니 술 주정을 받으며 살던 때와는 너무도 달랐다. 자상하고 조용한 박선생의 보살핌 아래 일손에 쪼들리는 만수어머니, 외지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명숙이 고모를 도와 허드랫일을 하였고, 만수에겐 여자 친구로서 역할을 충분히 해 낼 수 있는 얼굴 반반하고 똘똘한 계집애였다. 박선생은 가을이면 손수 벼 추수를 하였고 조그만 텃밭에서 나오는 야채며 과일 등은 만수에게 충분한 푸성귀거리를 제공했다. 뒤안 닭장에서는 오골계와 장닭이 금영이가 주는 모이에 따라 널 빛깔이 달랐고 대추나무 옆에서 자라던 염소새끼는 금영이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가끔 학교 선생들이 들러 투망을 들고 나의 영역을 침범할 때도 금영이는 박선생의 뒤를 따라다니며 걸려든 물고기를 주워 담는 등 제 몫을 충분이 감당했기에 그 집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부여했으며, 박선생은 금영이의 집을 찾기 위해 다녔던 학교를 백방으로 수소문 했다하나 이는 동네 사람들의 사시눈을 잠재우기 위한 술책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는 박선생은 달랐다. 개인의 가치관이 현실과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상황의 중간적 위치에서 만난 갈림길을 쉽게 결정하기엔 많은 갈등을 하고 있는 듯 했다.
현실과 가치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금영이가 염소에게 먹이를 줄 때면 마당 평상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며 빨간 담배갑에서 꺼낸 연초를 입에 물고 하늘을 향해 뿌연 연기를 품어 대는 모습은 나의 아버지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행동과 비슷했다. 굳은 일을 혼자서 해 대는 금영이의 모습을 보며 술을 벗삼아 사시는 할머니의 얼굴을 떠 올렸을 것이다.
“오빠” 혹시 만수 못 봤어?“
당황했다. 돼지 먹이로 개구리를 삶아주기 위해 마당 한 켠에 만들어 놓은 가마솥에 불을 지피던 참이었다. 평범한 가족들의 삶에서 호칭되는 상투적인 말,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묶어두기 위한 통속적인 ‘오빠’라는 말은 이해보다도 가슴으로 느껴지는 그 무언가가 밀려 올 것을 예상이라도 하듯 금영이는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와 서 있다.
“못 봤는디”
“어디갔지?”
“선생님이 찾는데”
“뭣 땜시 찾는 디”
“투망치러 가실 건가봐”
“투망”
“강가에 고기잡으러”
“너도 가냐?”
“응. 이따 손님들이 오시나 봐”
“오빠도 갈래?”
“알써”
기울어 가는 해는 강물 속에 있고 피를 토하듯 스멀스멀 위로 갔다 아래로 갔다 넘실거리고 껍질을 벗긴 듯 광활한 모래밭은 뜨근뜨근한 아랫묵과 같고 부끄러운 듯 드러난 모래섬 위에서는 물총새들의 지저귐이 한창이다. 강속에 물고기들은 뜨거운 대낮에는 물세가 잔잔한 곳에서 펼쩍펄쩍 뛰놀다가 해가 뉘엿뉘엿 할 무렵 물결이 빠른 곳으로 모여든다. 공중에 은빛 몸을 내보이며 뛰는 놈들은 잔챙이 피라미로 투망을 쳐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놈들이다. 사람이 다가가면 금방 날아가듯 도망가기에 접근할 때는 도둑고양이가 나무에 걸린 참새를 채듯 투망을 던져야 한다. 둥그렇게 펴진 그물 안에서는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몸부림치다 서서히 옥죄어가는 순간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다 새끼손가락 만한 구멍에 목을 맨 피라미들이 은빛 자태를 드러내며 울부짖는다. 걸려든 물고기들도 나름대로 성질이 있다. 모래바닥에 바싹 몸을 밀착시키고 모래 속에 붙어 있는 미생물을 잡아먹는 무래무지는 잡혀 나와도 입만 뻐금거리며 억울하다는 눈치조차 없다. 성질 급한 피라미는 어찌해볼 틈도 없이 벌써 은빛 배를 하늘로 치켜들고 움직이지 않는다. 그중 어쩌다 올라온 붕어만이 길지도 않은 생명을 그나마 며칠 더 연장할 뿐이다.
“요것이 모래무지여”
“모래무지?”
“색깔이 모래 색이잖여”
“요것은 피라미 암컷이고 이 불거지는 수컷여”
금영이는 물고기를 양손으로 퍼담지 않고 한 마리 한 마리를 손에 들고 표본실에 갇힌 생물을 감상하듯 불거지 한 마리를 내 코앞에 드리밀며
“이게 숫컷? 하며 살포시 보조개를 띠며 멋쩍은 듯 방긋 웃는다
“그려”
“우리 아부지는 고건 안 드셔. 심심해서 맛이 없대”
“그럼 뭐가 맛있는데”
“암컷”
“니는 여태 물고기도 한번 안 봤냐? 이 바보야”
“..............”
금영이는 과거 얘기만 나오면 말을 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박선생이 투망 치러 나간 방향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모습이 나를 숙연케 했다. 과거로의 회귀는 곧 떠나야 함을 반추하듯 기억저편으로 남겨두길 바라는 것일까!...... 동진강 여름은 물고기 천지다. 몇 번 던지지 않아도 가져간 양동이는 어느새 물고기로 가득하다.
“ 잡을 만큼 잡았다. 가자.”
“ 배는 따 가꼬 가지요.”
“ 시암 가서 따자”
“ 무거워서 그라지라”
“ 이리 줘 바라”
박선생은 오른쪽 어깨에 투망을 걸쳐 메고 왼손에 무거운 양동이를 들고 앞선다.
“ 니가 시방 2학년이제.?”
“ 그러지라”
“ 고등학교는 시내로 가야제.?”
“ 모르겄써라. 아부지가 보내줄란지.”
“ 시내로 갈 형편도 안되는디 그냥 소재지로 갈람니다”
“ 그리도 고등학교는 존디 가야쓴다”
“.......................”
“ 금영이는 중학교 안 보낸대요.?”
“ 금영이 학교가고 싶냐?”
“ ................"
“ 왜 말이 없어.?”
“ 그냥 안 갈래요.”
박선생은 누구보다도 그 대답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이유와 다시 할머니 옆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집 나간 어머니에 대한 설움과 증오, 술로 하루하루를 지내는 할머니, 이로 인한 빈곤, 그 빈곤을 심화시키는 자본의 논리를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는 이미 깨달아 버렸을 것이다. 어느 부유층의 너그러운 적선으로 해결되지 않고 우연히 복권에 맞듯 주어지는 행운으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결손가정이라는 굴레를 떠나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던 슬픔을 박선생을 통해 보상받고 싶은지 모른다. 따뜻한 가상의 부모를 만나 함께 살고 싶다는 보상심리,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했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 듯 집안 일은 금영이에 의해 해결되는 것 같았다. 먹고 입는 것은 물론이요. 텃밭 잡초도 작고 흰 손에 의해 야무지게 뽑혀져 나갔고, 어느새 어린 염소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금영이가 되어버렸다.
지리한 장마가 지나고 푸른 하늘이 더 멀리 달아나 버렸다. 담장 위에 걸린 벌건 호박이 달덩이 같은 아들을 잉태한 양 따가운 햇살을 피해 넓은 녹색 양산으로 몸을 가리고 꼬불꼬불한 고샅길은 피 빛으로 포장 비단길을 연상케 한다. 그 곳에선 고추잠자리들의 춤판이 벌어진다. 귀청이 떠나갈 듯 울어대는 매미 소리는 얼추 오백 년이 넘는다는 정자나무에서 들리는 소리다. 동네를 삼켜 버릴 듯 거대한 몸짓은 바람이 불면 그 위용을 떨친다. 온갖 날짐승들이 살고 있다 . 어른들에 의하면 그 곳엔 수 백년 묵은 구렁이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비 오는 날 나무 밑 언저리에 살고 있던 김생원 집에 들어와 천정 상냥에 몸을 칭칭감고 있는 것을 작대기로 내리쳐 죽였는데 그 해 가을 집 위에 있던 집채만한 팽나무가 지붕를 덮쳐 몰살당했다는 것이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집 터 옆에는 우물 둘레만 한 팽나무 그루터기가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소풍만 가려면 비가 오는 이유는 모두 그 구렁이 장난이라는 것이다. 어른들은 정자나무 가지를 꺽거나 밑둥에 살고 있는 뱀 한 마리조차 잡지 못하도록 교육시켰으며, 매년 명절이면 갖은 음식을 올려놓고 제를 지내는 어른들의 행동은 단지 모든 병과 재앙을 대신 막아주는 주술관념이라기엔 너무 진지했다.
길흉화복의 근원이 동네를 지켜주는 정자나무가 막아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나무에 올라가 산 가지를 꺽어 내는 것 조차 호되게 혼 줄을 내던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농촌 들녘에서 그늘을 찾아 쉴 수 있는 안식처는 이 거대한 정자나무가 만들어 주었으며 나른한 낮잠을 청하는 동네 노인들 모르게 담뱃대를 입에 댈 수 있는 한가롭고 신성한 장소였다. 하지만 그런 어른들의 말은 ‘강가에 가지 마라’ 정도로 들렸다. 뙤약볕이 내려 찌는 오후 그늘진 밑둥은 개구리들이 떼를 지어 살고 있었는데 태고적 우리들 선조에게 땔감을 제공했던 것처럼 마른 나뭇가지와 거북이 등 같은 껍데기는 개구리를 구워 먹기에 좋은 연료로 쓰였다. 노릿노릿한 뒷다리에 굵은 소금을 솔솔 뿌려 호호 불며 씹어먹는 담백한 뒷다리 구이는 연중 행사로 귀한 고깃국을 보충하는 영양제였고 분유 깡통을 걸어 놓고 고추장과 마늘 꼬댕이를 넣고 끊인 개구리 탕은 어른들이 먹는 매운탕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한 해를 마무리 하기 위해 줄줄이 여문 고즈넉한 가을 들녘 굽이굽이 흐르는 저녁 강가는 횃불이 넘실거린다. 노란 양은 주전자를 허리에 차고 얕은 물살을 조심조심 걷노라면 손바닥만한 검은 참게가 강 하구에 알을 낳기 위해 엉금엉금 기어 내려온다. 노란 모래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다가 건져 나오면 허연 집게발로 뭐든 잘라버리겠다는 듯 발버둥친다. 발바닥이 물러터지며 잡아낸 참게는 새까만 간장 독에서 겨울을 난다. 때론 매운탕거리와 함께 끊여지는데 아버지 입 속으로 들어가는 껍데기는 벌건색으로 변해버린다
길수는 나와 촌수가 같다. 같은 중학교에 다니지만 항상 겁이 많아 배꼽이상의 물 속은 스스로 들어가지 못한다. 아버지가 길수 할머니에게 호칭할 때 항상 “이모”라 부른다. 길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에게 형님이라 불렀고 나와 길수는 똑같이 할머니라 불렀다. 맨 날 꽁보리밥에 된장을 말아먹는 우리집에 비해 길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반쯤 섞은 쌀밥이 항상 밥상에 올라왔다. 길수가 손주임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마당 뒤편에서 놀고 있는 나를 불러 밥을 덜어 주시곤 했다. ‘돌아가신 니 할머니가 너를 그렇게 이뻐했는데’ 하면서 길수 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덜어준 쌀밥은 개구리탕 보다 더 맛있었다. 나는 그 답례로 나의 독무대인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길수에게 건네주며 ‘니네 할머니 같다드려’라고 건네곤 한다. 길수집 뒤 마당은 항상 ‘단쑤시’라는 단물나는 사탕수수가 자라고 있다. 길수를 꼬드겨 몰래 잘라먹다가 할아버지에게 들켜 호되게 혼이 나고 있을 때 할머닌 아직 덜 자른 몇 토막을 손에 안겨주며 ‘얼른 집에가서 먹어라’ 라고 말하는 한 분에 밖에 안 계시는 나와 가장 가까운 피붙인 셈이다.
조용하던 동네가 온통 떠들썩했다. 길수 집 쪽에서 들여오는 여자 울음소리는 분명 심상치 않았다. 그 해 가을 소뿔에 받쳐 시름시름 앓던 길수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이다. 마당에 멍석이 깔리고 여기저기 사람들이 하얀 소복을 하고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인다. 그 옆 쭈그려 앉아 있는 길수 어머니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목놓아 소리를 내어 우는 길수 어머니의 통곡은 동네사람들이 들으라고 울부짖은 소리였는지 모르지만 목이 메어 넘어가지 않는 마른침을 억지로 넘겨보려는 내 눈엔 어느새 굵은 물방울이 고여있었다. 모퉁이 담벼락에서 놀고 있는 나에게 앞치마로 돌돌 말아 맨 뜨끈뜨끈한 고구마와 감자를 내 손에 안겨주던 할머니가 돌아가시다니...늘어진 정자나무 가지가 나를 바라보며 나무라듯 쳐다본다. 혹 길수가 할머니 몰래 나뭇가지를 꺽었던 것은 아닐까. 나무그루텅이를 잘라 연필통을 만들어 쓰면 좋겠다는 내 말을 실행에 옮긴 것은 아닐까...... 점점 그 정자나무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설사 길수가 정자나무에 해꼬지를 하지 않았더라도 할머니를 데려간게 분명했다. 정자나무에 살고있는 구렁이를 김생원이 때려 죽여 죽고만 것처럼 정자나무가 노한게 분명했다.
길수와 몇 일전 갈라진 나뭇가지에 고무밧줄을 메달아 놓고 타잔놀이를 하다가 나뭇가지 하나를 부러뜨린 것이 아닌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가끔 떨어지는 물소리만 청아하게 들리고 내 온 몸은 더욱더 깊은 어둠속으로 밀려들어간다. 손에 잡히는 건 온갖 지저분한 벌레와 지네들 뿐 빈데가 우굴거리고 찍찍거리는 박쥐들이 얼굴을 스치며 달려든다. 놀라 떨어진 곳은 회오리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시퍼런 물구덩이 정신을 잃고 눈을 떠보니 물 속 동굴이다. 숨을 쉴 수가 없다. 답답하다 눈을 떳다 동굴입구를 막고 있는 집체만한 구렁이가 내게 다가온다.
“ 악!---
모종이었다. 눈 주위가 말라버려 쉽게 눈을 뜰 수가 없다.
첫댓글일단 저번에 갑자기사라져 상심 하던 경험 때문에 일단 복사해놓고 읽었습니다 ㅎㅎ 엄청난 작품 이네요 자칫 숨겨져 그 결과만 볼뿐 하였습니다 아마 먼저 소설로 정리되어 나온다면 충분히 영화화 될 수 있도록 제가 발품을 팔고 싶을 정도로 누군가는 해내어야할 그런 종자 같습니다 도저히 서울에서 못할것 같아
금요일 새벽 집도 없는 산촌에 갔다가 이제야 돌아와 보니 떡 다시 올려져 있어 너무나 반가움에 조용히 읽었는데 너무 좋은 환타지 ? 로 개인적으론 다가옵니다 물론 모두가 좋아할 것이 아니더라도 이런 영화 좋아할 세계인은 아직은 많을 것 같습니다만 .. 좀더 새로운 포장 전략도 필요할 것 같고요 여튼 이뒤가 너무
아따.. 태어나서 이런 칭찬은 처음 들어불어요....더욱 노력하라는 충고로 받아들입니다..태고적 사람들이 살았던 이야기도 아닌 불과 수년전 우린 이렇게 살았었죠. 자극적,유혈낭자, 박진감 넘치는 환타지 영화가 판을 치는 요즘에 점차 사라져가는 어릴적 우물에 눈을 돌려 보고자 끄적거려 보았는데..
아닙니다 저는 수직적 내러티브와 수평적 내러티브로 교직된 서사의힘을 보고서 일찌기 판단 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수평적 내러티브는 묘사나 대사 캐릭터 라면 수직적 내러티브는 서술적 이야기구조라고한다면 그 작품은 단순히 이야기의초입이지만 무궁한 수평적 내러티브가 걸쳐 있다는 판단을 하기에충분합니다
첫댓글 일단 저번에 갑자기사라져 상심 하던 경험 때문에 일단 복사해놓고 읽었습니다 ㅎㅎ 엄청난 작품 이네요 자칫 숨겨져 그 결과만 볼뿐 하였습니다 아마 먼저 소설로 정리되어 나온다면 충분히 영화화 될 수 있도록 제가 발품을 팔고 싶을 정도로 누군가는 해내어야할 그런 종자 같습니다 도저히 서울에서 못할것 같아
금요일 새벽 집도 없는 산촌에 갔다가 이제야 돌아와 보니 떡 다시 올려져 있어 너무나 반가움에 조용히 읽었는데 너무 좋은 환타지 ? 로 개인적으론 다가옵니다 물론 모두가 좋아할 것이 아니더라도 이런 영화 좋아할 세계인은 아직은 많을 것 같습니다만 .. 좀더 새로운 포장 전략도 필요할 것 같고요 여튼 이뒤가 너무
궁금 하지면서 소나무 2 가 이제야 한국 창작사에서 나올수도 있겠다는 ... 섣부른 생각을 하여봅니다 혹 제가 이 작품에 어떤 방식으로든 필요하시면 어떤 일이든 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언제또 읽을 수 있을 지 정말 ...제 새로운 도시에서의 기쁨을 주셔 감사드립니다
아따.. 태어나서 이런 칭찬은 처음 들어불어요....더욱 노력하라는 충고로 받아들입니다..태고적 사람들이 살았던 이야기도 아닌 불과 수년전 우린 이렇게 살았었죠. 자극적,유혈낭자, 박진감 넘치는 환타지 영화가 판을 치는 요즘에 점차 사라져가는 어릴적 우물에 눈을 돌려 보고자 끄적거려 보았는데..
감사합니다..결말을 짓도록 틈틈히 써 볼람니다..영화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가끔 생각한마리님의 거침 없는 말씀에 넔을 잃고 바라 볼 때가 있습니다..뭔가 새로운것을 위해...만들어진 가치에 편승하기 보단 뭔가를 창조하기 위해 달려라
아닙니다 저는 수직적 내러티브와 수평적 내러티브로 교직된 서사의힘을 보고서 일찌기 판단 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수평적 내러티브는 묘사나 대사 캐릭터 라면 수직적 내러티브는 서술적 이야기구조라고한다면 그 작품은 단순히 이야기의초입이지만 무궁한 수평적 내러티브가 걸쳐 있다는 판단을 하기에충분합니다
정말 작가나 감독으로 태어나서 이런 작품 한번 해보는 게 참 귀한 작업 같은데 ... 당장 돈있으면 판권을 사버리고싶은 그런 마음입니다 ㅎㅎ 여튼 연재 해주시면 창시가 커서 출판도보게 해주시면 ㅎㅎ
누가 지금 부터라도 만화로 만들고 탄생의차별 을 꾀한다면 더 빨라지고 더 좋아지지 않을 까 싶기도하네요 ㅎㅎ
모든 예술 처럼 그 궁극에 있어서는 손 으로만든 문화 와 기계로 만든 문화의 전쟁에서 결국 "손"으로 만든 문화가 승리할게 뻔 하듯이 이 작품 의 우물의환타지처럼 기막힌 손의문화에서빚어진 공간이 참 매력적입니다 언제 또 볼수 있지요 ?ㅎㅎ 진짜 기다려질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의 의견도 좀 듣고 싶은데 ㅎㅎ 토론 함 하면 좋을 텐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