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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讀>이런 일본이기에 가능했다 아래 글은 어떤 분의 글인지 필자를 모르겠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이 글을 보고 나는 전율(戰)을 할 만큼 소름이 돋았다. 우연히 발견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알고 싶어 하는 일본인 내가 최소한으로 알고 있는 일본인 것이다. 일본인 그들은 결단코 우리의 질시(嫉視)나 폄하(貶下)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다. 그래서 나는 일본을 배우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글쓴이도 모른 채 이 글을 퍼 나르는 것을 그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언제고 기회가 있다면 직접 사과드릴 수 있으면 한다. . KTX 특실에서 만난 네 사람 지난 2월23일 밤 9시30분에 부산역을 출발한 KTX 특실에 올랐다. 출발하자마자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실내에선 전화를 걸지 맙시다』고 호소하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동대구역에서 20세 전후의 여자 두 사람이 올라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한 여자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대전역까지 가는 동안 쉬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 내가 옆자리에 앉은 그녀의 친구한테 『좀 조용히 하라고 전해 달라』고 했다. 전화 말소리는 다소 약해졌지만 통화는 끊지 않았다. 열차에서는 객실 바깥으로 나가서 전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듯했다. 저 나이에 특실을 탈 정도면 수입이 많은 직장에 다니든지 父母(부모)가 부자일 것이다. . 다행히 두 여자는 대전역에서 내렸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40代 후반으로 보이는 뚱뚱한 여성 두 사람이 탔다.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실내가 쩡쩡 울렸다. 그 큰 목소리로 휴대전화를 걸고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이건 완전히 교정 불능의 수준이었다. 聲帶(성대)가 어떻게 되었는지, 목소리를 작게 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 사회생활을 하면서 목소리가 크다고 한 번도 경고를 받아 본 적이 없는 듯했다. 기고만장 그 자체였다. 야간열차여서 승객들은 대부분 잠을 자고 있었다. 두 여성의 목소리는 열차 객실 끝에서 끝까지 들렸다. 충고도 희망이 있을 때 하는 것이지, 저 수준이면 포기하는 것이 낫다. 다행히 두 여성은 천안역에서 내렸다. 이날의 문제적 인물 네 사람은 남한테 폐를 끼치고도 폐를 끼친다는 의식조차 없었다. 그런 어머니는 그런 20代 딸을 만들 것이다. . 지난해 6월 후쿠오카의 하카타역에서 신칸센(新幹線)을 타고 혼슈의 남쪽 야마구치縣(현)의 아사에서 내려 나가토로 가는 支線(지선) 기차로 갈아탔다. 운전사 한 사람이 움직이는 한 輛(량)짜리 원맨 카였다. 승객은 거의가 통학하는 중학생들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 이들을 한 시간 동안 관찰해 보았다. 12명 중 책 읽는 학생이 8명, 조는 학생이 3명, 한두 명은 휴대전화기를 열고 이리저리 누르기만 했다. 한 시간 동안 지켜보아도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이야기도 조용조용하게 했다. 잠을 자는 학생도 단정하게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일본식 예절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현장이었다. 불법주차 지난해 12월 말 일요일 오후 경기도 안성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아내가 운전하는 승용차가 한남대교와 1호 터널을 지나 을지로로 진입하는 데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겨우 을지로로 들어섰으나 시청광장을 지나는 데 30분을 더 停滯(정체)했다. 교통체증의 원인은 서울시청 광장 주변의 法(불법)주차였다. 광장에 마련된 스케이트장을 찾는 청소년들을 태우고 온 차들이 광장을 삥 둘러 두 車線(차선)을 차지한 채 서 있었다. . 경찰이 이런 法주차를 일시적으로 허용한 것인지, 아니면 집단 法에 경찰이 손을 들고 말았는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한심한 시민이고 경찰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면서 자녀들에게만 즐거움과 편안함을 선사하겠다는 마음 아닌가? . 지난여름에 일본 시모노세키의 뒷골목을 한 시간 동안 걸어다녔다. 한국의 거리풍경과 다른 모습이 하나 있었다. 거리에 자동차를 세워놓은 모습이 하나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모든 집이 주차장을 갖고 있었다.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마당이나 건물 속을 주차장으로 내어놓고 있었다. 좁은 길임에도 마음 놓고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 『화장실에서 구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오피스텔 빌딩 복도 벽엔 이런 요지의 告知文(고지문)이 붙어 있다. <밤중에 술에 취해서 고층의 창문을 열고 바깥으로 구토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구토물이 강한 酸性(산성)이고, 벽을 타고 내리면서 더럽힌 것은 청소하기도 어렵습니다. 부디 화장실에서 구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 다른 오피스빌딩 엘리베이터 안 스크린에는 이런 당부의 말씀이 나온다. <문을 열고 깡통이나 병을 바깥으로 던지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20층에서 아래로 물건을 던지는 것을 자제해 달라니? 금지해 달라고 해야 할 것을 어중간하게 표현한다. 교통방송을 들어보면 「통행금지」를 의미하는 데도 「통제」라고 말한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렇게 분명히 하는 것을 죄송스러워하는 당무자가 있는 한 행패 전문가를 막을 순 없다. . 지난 6월 일본의 혼슈 남단 야마구치縣의 新야마구치역에서 하카타(후쿠오카)로 가는 新幹線 열차를 타자마자 화장실을 찾았다. 깨끗했다. 종착역에 가까이 왔으면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사용해 지저분할 텐테 출발역인 것처럼 청결했다. 나는 KTX 열차를 자주 탄다. 특실 화장실도 출발해서 몇 정거장 지나면 지저분해진다. 승객들도 함부로 화장실을 이용하고 열차 관리자들도 청소를 소홀히 한다. 화장실이 그 모양이니 KTX 전체가 불결해 보인다. 일본의 新幹線보다 40년 늦게 개통했으면 모든 면에서 더 좋아야 한다. 定時 출발률이 더 높아야 하고 더 깨끗하고 더 편해야 한다. KTX는 7~10분 연발착이 보통이다.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같지 않다. 新幹線은 全구간의 1년분 연발착 시간을 다 모아도 한 시간이 되지 않을 것이다. 화장실을 깨끗이 유지하는 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종업원들의 정성, 서비스 정신의 문제다. 그러니 더 창피한 일이 아닌가? 할 수 있는 일을 게을러서 안하는 것이니 더 문제인 것이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 KTX 특실을 이용하는 이들은 한국의 지도층일 것이다. 그들이 화장실을 깨끗이 이용할 줄 모른다면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10만 달러까지 올라도 一流국가가 될 수 없다. 여행을 많이 해보니 一流국가의 특징이 이렇게 잡힌다. . 1. 화장실이 깨끗하다. 2. 사람들의 목소리가 작다 (일본의 경우 텔레비전 뉴스 앵커들의 목소리가 특히 낮다). 3. 인물을 기리는 銅像(동상)과 기념관이 많다. 4. 사람들이 친절하면서도 절도가 있다. 5. 옷차림이 간소하다. 6. 일을 하는 모습이 즐겁게 보인다. 7. 보통국민들도 글을 잘 쓴다. 8. 경찰에 대드는 사람이 없고, 경찰도 듬직하고 친절하다. . 선진국일수록 목소리가 낮다. 만원인 식당이 조용하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침묵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댄다. 한국에선 목소리가 커야 제 몫을 찾아먹는 경우가 많다. 銃器(총기) 소지가 허용되는 미국에서 한국식으로 고함을 치다가는 총격을 받을 수 있다. . 일본의 유적지에 가 보면 幕府(막부) 시절의 무사가 다이묘(大名)라고 불리는 主(영주)한테 보고하는 장면을 모형으로 再現(재현)한 것을 보게 된다. 부하도 칼을 차고 보고하고 영주도 칼을 차고 보고받는다. 「이런 관계에선 허위보고가 어렵겠구나, 상관이라도 부하에게 함부로 인간적 모독을 주어선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악수와 같은 公衆(공중) 예절의 상당부분은 무장한 사회에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경계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려는 몸짓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영국·독일·일본 등 무사, 騎士(기사) 지배, 즉 군사문화가 지배했던 나라에서 공중도덕이 성숙해진 것이다. . 잊을 수 없는 일본 택시 기사 1975년 4월 어느 날 저녁 일본을 혼자서 여행하던 나는 유명한 해안 휴양지 아다미(熱海) 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린 나는 근처 여관에 들었다. 저녁을 먹을 겸 도시 구경에 나섰다. 택시를 타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여관으로 돌아가려는데 「아차」했다. 여관 이름을 기억해 두지 않았던 것이다. 명함이나 성냥갑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우선 택시를 잡아 탔다. 『아다미에 여관이 몇 개 있습니까』 『400개입니다』 택시로 400개를 전부 뒤지다간 날이 샐 것 같았다. 택시 운전자에게 여관을 잊어버렸다고 했더니 그는 흔쾌히 말했다. 『같이 찾아봅시다. 그런데 역으로 돌아가서 거꾸로 내려옵시다』 택시기사는 역에서 바다 쪽으로 내려오면서 골목을 누볐다. 여관마다 들렀다. 『비슷하지 않습니까』 『아닌데요』 『혹시 바다가 보였습니까』 『기억이 안 나요』 이런 식으로 한 시간 정도 헤맨 끝에 눈에 익은 한 여관 앞에 닿았다. 내 여관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몰아 쉬었다. 택시 기사도 『야, 참 잘 되었습니다』면서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요금도 더 요구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 나는 첫 일본여행에서 만났던 이 택시 기사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만큼 일본 홍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은 그 택시 기사가 나에게 베풀어 준 好意(호의)는 몇 배의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일본회사와 오랫동안 거래해 온 한 기업인은 『나는 일본이라면 세 단어가 생각 난다』고 말했다. 정직, 청결, 친절. 평소 생활이 청결하니 정직하고 친절한 것이다. 청결은 남에 대한 배려다. 친절의 표현이 청결이다. 청결하지 않은 음식점이 친절할 수는 없다. 청결은 형식이고 정직은 내용이다. . 지난 1월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삿포로 근방의 新치도세 공항에서 있었던 일이다. 4박5일 동안 尙美會(상미회) 여행단을 태우고 다녔던 관광버스 운전기사는 30代의 말없는 사나이였다. 눈이 쏟아지는 고속도로를 그렇게 부드럽게 달릴 수 없었다. 불평 한마디 없이 暴雪(폭설)과 한파 속 장거리 운전을 해준 것이 고마워 여행객들이 헤어질 때 박수를 쳤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헤어졌던 운전사가 뛰어오더니 출국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줄을 서 있는 尙美會 여행단을 찾았다. . 버스를 주차장으로 몰고 가서 정리하다가 손님이 놓고 내린 물건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운전사는 한 30분간 차를 몰고 가 車內(차내) 청소를 하다가 분실물을 발견하자마자 다시 달려온 듯했다. 그가 내어놓은 것은 돋보기 안경이었다. . 그때까지도 안경 주인은 버스에 놓고 내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2년 전 이탈리아 여행에서 한 여성이 버스 안에 막 구입한 화장품 세트를 놓고 내렸다. 버스 회사에 연락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한 평범한 일본인 운전기사의 정직과 친절은 수십 명의 한국인을 감동시켰다. 이런 친절이 국가경쟁력이다. 안경을 찾은 한국인은 자주 일본을 찾을 것이고, 화장품을 잃은 한국인은 이탈리아에 대한 險談(험담)을 열심히 하고 다닐 것이다. . 일본 교수 부부의 친절 2004년 5월22일 나는 일행 19명과 함께 일본 가고시마에 있었다. 현직 일본인 교수 부부가 하루 종일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오후 늦게 그는 우리 일행을 가고시마 시내에 데려다 주었다. 우리는 전세 버스에서 내리면서 두 시간 후에 버스가 그곳으로 오게 한 뒤 시내 구경에 나섰다. 일본인 교수 부부와는 작별 인사를 했다. . 오후 6시 우리는 내렸던 장소로 돌아와 버스를 기다렸다. 그때 두 시간 전에 헤어졌던 교수 부부가 다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교수 부부는 우리 일행이 시내에서 길을 잃지 않고 빠짐없이 재집합 장소에 모였는지를 확인한 다음에 歸家(귀가)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교수 부부는 일부러 두 시간 동안 시내에 머물러 있다가 점검차 다시 들른 것이었다. 부부는 다시 헤어지면서 과자가 든 봉투를 선물로 주었다. 車中(차중)에서 이 과자를 나눴더니 1인당 하나씩 정확하게 스무 개였다. 생전 처음 만난 사이이고 다시 볼 일 없는 외국인에 대한 친절과 배려가 습관화한 일본사람들이다. 알수록 무서워지는 사람들이다. . 일본의 온천탕에 들어가면 시설이 간단한 데 놀란다. 샤워기가 앉은키와 같은 높이에 붙어 있어 서서 할 수 없다. 쪼그리고 앉아 몸에 먼저 비누칠을 한 다음 옆사람에게 물을 튀기지 않도록 조심조심 샤워기 물을 머리에 뿌린다. . 욕탕으로 들어올 때는 호텔방에서 가져온 얇은 수건 하나만 휴대할 수 있다. 이 수건이 특이하다. 때를 미는 데도 쓰고 몸을 닦는 데도 쓴다. 아주 얇은 데도 흡수성이 좋고 빨리 마른다. 한국의 공중 목욕탕에 들어가보면 한 사람이 평균 석 장 이상의 수건을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일본 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하나에 200엔 하는 일본 목욕탕 수건을 몇 장 선물로 사와서 나눠 준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 집 목욕탕의 많은 수건들 가운데 일본 수건이 끝까지 남게 된다. . 2003년 말 일본의 시고쿠(四國: 막부 시대에 네 개의 藩이 있었기에 그렇게 불린다)에 있는 古都(고도) 高知(고치)의 400년 된 淸酒(청주) 공장을 방문했을 때다. 우리 여행단은 공장 구경을 끝내고 공장 간부와 인사를 한 뒤 골목에 세워 둔 버스에 올랐다. . 인사를 끝낸 공장 간부가 갑자기 버스 앞을 지나 골목 입구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다른 차가 골목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아 주려고 그러는 것이었다. 차내에서 우리는 『한국 같으면 인사한 뒤 사무실로 돌아가 버렸을 터인데』라고 감탄했다. . ‘한국어 교가’ 일본에 울려 퍼졌다… 교토국제고 고시엔 제패 https://www.msn.com/kokr/news/world/ .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제패 기사가 대한민국의 탑 뉴스가 되었다. 메이저 3대 신문을 필두로 kbs. mbc. sbs, 4대 종편과 도하의 각 신문은 물론 찌라시까지 대서특필하고 있다. 나쁘지 않은 일이다. 어찌 이 기쁨을 참을 수 있을까? . 그러나, 정말 그러나 모든 매체들이 크게 실수한 게 있다. 지난 광복절날 일본인 투수가 공을 못 던지게 민원을 재기한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이 땅의 배달민족이라는 이름의 엽전들의 협량(狹量) 함을 간과한 것이다. . 내 것의 자랑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하고, 남의 지난날 과거를 들추어 패대기치는 속 좁은 민족성을 반성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신문 기자들이라면 아니 일반 저널리스트들은 인간 삶의 등대지기여야 하는 것이다. 어두운 곳은 밝혀 내고 밝은 사실은 더욱 밝게 비추이는 등대 같은 것이어야 한다. . 교토국제고 고시엔 제패에는 본문에 드러난 일본이라는 나라와 그 국민인 일본인이 있기에 가능 했다.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저런 일이 이 땅에서 벌어졌다면 밴댕이 소갈머리 같이 협량한 배탈민족의 나라에선 결단코 불가능(可能)한 일이다. . 교토국제고 고시엔 제패는 주일 한국인 학생들이 이루었지만, 그 바탕은 일본 당국과 일본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본과 일본인에게 반일을 조장하는 자생 빨갱이 엽전들을 대신하여 진심 감사드린다. . 덧붙임, 위 본문의 필자는 문체나 필법이 유추하건대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인 것 같다. by/오병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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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어 빼앗은 일본이 밉지만 그래도 배울 것이 있다면 미워 만 할 것이 아니고 배워야 합니다 친일 친일 하는데 배우는 것이 친일인가요 ㅎㅎㅎ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