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를 보내야 합니다
초가을부터 생각했고 지금은 초겨울입니다
올해의 첫눈이 왔다는데
나는 알지 못하는 첫눈이에요
그래서 기다리는 첫눈이에요
새를 보내겠다고 마음먹은 날에는
나뭇잎들이 깨끗해지고 있었지만
색들이 피처럼 번지지는 않았습니다
새를 보내야지
마음을 펼치고 또 펼치는 사이
나뭇잎들은 눈앞에서
색색으로 말라갑니다 사방이 그런 나무들인데
나무와 나무 사이를 긋고 가는
날개달린 것들을 보지 못했어요
오늘은 꼭 새를 보내야지
어제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두달이 지났습니다
새장이 없어서라고 생각한다면
아닙니다
새는 얌전하게 들어가 있는 걸요
그곳을 새장이라고 부르는지는 모르지만요
나는 이 새를 잘 알아요
부리와 가장자리가 진하거든요
새도 자신의 테두리를 아주 잘 알아요
그래서 날개를 가늠하지 않아요 깃털도 가늠하지 않아요
아 나는 새의 몸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어요
새를 보내야지
오늘도 생각합니다
지금도 생각합니다
지금은 날이 춥고 허공이 투명해요
잎을 모두 떨군 나무들도 하늘도 간결하긴 마찬가지에요
나는 중산간에 지어진 교회를 떠올려요
웅덩이에 제 형상을 원죄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전신이 유리로 되어 있는
교회에서 가까이 낮은 지붕의 호텔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호텔로 가는 길은 기억나지 않고
빛을 넘치게 받아들이지 않던
어둑했던 호텔의 테이블이 나타나요 테이블 너머 창 너머
바람에 흔들리던 잎 없던 까만 나무들도요
오늘은 꼭 새를 보내야지
그러기 위해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물끄러미],난다, 2024.
카페 게시글
시사랑
스틸 라이프 / 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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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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