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 -최석영- 1부 모가지가 없다. 10회 고일령이 사건을 맡고 취재를 시작하고 연이를 사건 현장으로 불러 내린 것에 대한 연관성이나 의도성은 없다. 지난 10년간 한결같은 연이에 대한 고일령의 관심 그것뿐이다. 그런데 지금 연이 가심 한 켠 에서 연이가 겪는 일련의 사건이 고일령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연이가 심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렇게 얼토당토 않는 상상을 하며 의심 같지도 않은 의심을 하며 고일령을 경계하다니, 연이는 자신이 정신이 나간 게 분명하다고 여겼다. 그렇지 않고서야 연행되어가는 경찰차 안에서 그것도 농담이라고 지껄이고서 하하 거릴까. 연이 스스로도 대책 없는 이 돌출행동에 입이 벌어 지는데 당황스럽고 경황없는 고일령이야 오죽할까. 연이가 곁눈질을 하는데 고일령이 손톱을 뜯으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 하더니 뭔가를 결심한 듯 전화기를 들었다. “황 선배? 나야 고일령. 응, 다름이 아니고. 내가 후배의 차를 몰다가 교통사고를 낸 거 같아. 아니, 나는 전혀 기억이 없는데 내가 교통사고를 내고 도주를 했다는 군. 응 나는 기억이 없어. 차주였던 후배도 마찬가지고. 경찰이 증거품 이라는 것을 가지고 와서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는 증인이 있다며 나를 지목해서 지금 연행 돼 가는 중이야. 응. 전북 남원. 응. 선배가 알아서 조처 좀 해줘.” “어디… 든든한 연줄이라도 있으신 모양입니다. 허지만 증거가 확실한데다 피해자가 차 넘버를 확실히 기억 허고 있어서 합의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을 거신 디요.” “외지 사람이 남원서 연줄 이라는 게 있겠습니까. 변호사를 부탁하는 중이었습니다.” “아~ 예! 그러셔야죠. 법은, 법으로다 다스려야 헝깨요이.” 최 형사가 기분 나쁜 미소를 거두며 얼굴을 돌렸다. ‘해 볼 테면 해봐라. 이제 너는 꼼짝 못하게 걸려들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눈 빛, 말 투 하나하나에서 기분 나쁜 섬 뜻함이 연이와 고일령을 억눌렀다. 서울, 하다못해 대전이나 전주쯤 만 가서 이런 일을 겪어도 이렇게 답답하고 막막할 것 같지는 않았다. 전화를 끊은 고일령이 멍하니 창밖을 보는 연이를 쳐다봤다. 좋지 않은 일이 연달아 일어나고 보니 연이를 괜히 불러 내렸다는 후회가 든다. 특종은 아니더라도 그동안 모아놓은 자료들만 잘 정리해도 2-3년은 충분히 우려먹을 수 있을 텐데…. “연이야.” “응, 고 선배.” “나는 당분간 유치장에 있겠지만 너는 간단한 조사만 받고 풀려 날 거야. 사고가 났었다는 현장을 가보고 의문 난다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정리해서 내게 말해줘. 그리고 신문사에서 다른 사람이 내려올 거야. 그 사람한테 네 얘기 해 놀 테니까 그 사람하고 공동취재 하고.” “알았어. 걱정하지 마.” 불안한 고일령의 눈이 연이를 담는다. 발작을 일으킨 이후로 딴 사람처럼 되어 버린 듯 한 연이. 심리적 불안에서 오는 돌출 행동일 수도 있었고 수치심을 감추기 위한 과장된 행동일 수도 있었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접신이나 영매 같은 일을 당하였을 수 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것이든 연이를 바라보는 고일령에게는 고통의 연속이다. “그래….” “곧 풀려날 거야. 우린 사고를 안냈으니까.” “확신하니?” “그 때 우린 라이트가 깨질 정도로 빨리 달리지를 않았잖아.” 그랬다. 초행길인데다 앞이 보이지 않아 갓길 주차를 하고서 쉬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고일령이 그 길을 운전 했으니 확신이 없을 리 없었다. 그러나 확신을 확신하는 만큼 임 형사의 덫일 거라는 확신이 든 것도 사실이다. 차라리 임 형사의 덫이 아니었으면 이 난관을 헤쳐 나가기가 수월할 것이다. 때문에 확신을 부정하고 싶다. 그렇다면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좀 더 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이 이지경이 된 것은 고일령이 임 형사를 너무 얕잡아 본 게 실수라면 실수였다. 지방 토호세력이 임 형사의 눈이 되고 손발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놓친 것이다. 하지만 임 형사가 어떻게 알았을까? 고일령이 임 형사 뒤를 캐서 자리를 뺏어 버리겠다는 말을 한 것은 연이에게 뿐이다. 임 형사 뒤를 캐 보라고 시킨 취재원도 외지 사람인데다 몇 년간 일을 맡겼던 믿을만한 사람이다. 그런데 어디서 정보가 샜을까? ‘저 희뿌연 빗줄기 뒤에 누군가 따라오고 있다는 느낌 안 드세요?’ ‘글쎄..........’ ‘누군가 따라오고 있어요. 분명히.’ 가능성 이라면 그 때다. 그 때 고일령과 연이가 나누던 얘기를 뒤따라 온 누군가가 엿듣고 임 형사가 고일령을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위험을 느낀 임 형사가 사건을 조작해 고일령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만일, 이 일을 임 형사가 조작한 것이 사실 이라면 임 형사의 최종 목적은 고일령을 기자직에서 내 쫓는 것일 것이다. 고일령은 유치장에 구금되었다. 사망사고가 아닌 이상 신체구금까지는 가지 않지만 뺑소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까지 붙이며 양해를 구하는 최 형사의 눈이 능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쇠창살 안으로 구금되는 고일령이 연이를 쳐다봤고 연이가 걱정 말라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힘든 일이겠지만 고일령과 연이가 가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잘 알기 때문이다. 8월의 뜨거운 태양이 경찰서 마당에서 지글거린다. 불판 위 삼겹살처럼 육수를 쏟으며 오므라드는 피의자들이 뒤집어 지는 주차장을 가로 질러 나오는데 검정색 자가용 한 대가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호텔로 가십니까?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최 형사였다. 연이가 최 형사임을 확인하고도 주위를 둘러본다. 최 형사의 차를 얻어 타는 것이 내키지 않아 택시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곳은 외져 있어서 민원인이 택시를 타고 들어오는 일 외에는 택시 잡기가 어렵습니다. 시내 까지 라도 모셔다 드릴 테니까 어서 타십시오.” “고맙습니다. 그러면 시내까지만….” “…!” 연이가 최 형사 옆자리에 타자 차가 미끄러지듯 경찰서 마당을 나서고 기다렸다는 듯이 에어컨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남원이 덮기로는 전국에서 3위권 안에 듭니다. 분지 위에 도시가 세워진데다 녹지 공간도 부족하고 산으로 막혀서 바람도 잘 안 불죠.” “제 차는?” “일단은 증거품 보관소에 있습니다. 차를 사용 하시려면 1-2주 정도는 기다리셔야 될 겁니다. 검찰 송치가 끝나야 되니까요.” “가능 하시면 렌터카 업체에 좀 내려 주시겠습니까?” “그러죠.” 구 시가지를 지나 신 시가지로 나오자 렌터카라는 카센터 옆구리에 세워진 곳이 보였다. 최 형사가 자신의 명함을 주며 5시 쯤 사고 현장에 가볼 수 있다고 했다. 연이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명함을 받고 차에서 내렸다. “때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편할 때가 있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편하다? -> 계 속 |
출처: 최석영이의 이야기 보따리 원문보기 글쓴이: 최석영
첫댓글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
ㅎㅎ 재밌네요,, 다음편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