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계곡산행-지리산 한신계곡
백무동-가내소폭포-한신폭포-세석산장-장터목산장-참샘-하동바위-백무동야영장(16km)
2007년 7월 22일 체리부부카페회원들과 신선부부
88고속도로 지리산 가는 길에 들른 휴게소는 작고 아담하지만 한켠에 탐스런 조롱박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해외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라더니 우리 것에 굶주려 있었는지 비록 초가지붕은 아니지만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그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아침 5시인데 밤사이에도 비를 뿌리던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산행은 날씨만큼이나 유쾌한 산행이 될 것 같습니다.
실상사부터 백무동까지의 도로는 강을 끼고 이어지는데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어서 가는 길을 찍을 수가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주차장에서부터 상백무마을까지 깔끔하게 단장된 펜션들이 인상적입니다.
일단 세석까지 가는 것으로 하고 출발을 하지만 과연 목표지점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많습니다. 하동바위길로 갈라지는 지점을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계곡의 모습은 그 많은 걱정을 기대로 바꾸어줍니다.
여러 번 계곡을 가로질러서 출렁거리는 철제다리가 걸쳐있기도 하고 단단한 나무다리가 걸려있기도 합니다.
이전에 도벌한 목재를 운반하기위해 만든 길이라서 널따란 길이 이어지고 그 곁으로는 이름도 없는 많은 폭포와 소들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아쉬운 것은 느린 발걸음이 혹시 다른 동행인들에게 페가 될까 서두르다 보니 하나하나 음미하듯 감상할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 넓던 도로가 좁아지면서 양쪽으로 늘어선 울창한 숲은 곧 길조차 점령해 버릴 것 같은 기세입니다.
다리를 건널 때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계곡의 장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뱀사골이 깔끔하게 단장된 듯한 느낌을 준다면 한신계곡은 자연의 미, 원시림의 깊은 맛을 고스란히 안겨줍니다.
오늘은 천왕봉이 목표가 아니고 세석에만 올라 만세 부르고 올 예정이건만 선두그룹은 벌써 저만치 앞서가기 시작합니다. 덕분에 대장님의 설명을 들을 기회가 없어 아마 어디선가 첫나들이폭포를 알아보지도 못한 채 지나간 모양입니다.
상백무마을을 출발한 지 1시간쯤 되니 가내소폭포를 내려가는 길목에 다다릅니다. 아무래도 나머지 3시간을 견디려면 체력을 비축해야할 듯 싶어 신선에게 사진을 부탁했더니 아주 멋진 폭포사진을 선사했습니다.
간밤에 술을 많이 마셔 힘들어하는 남자들을 두고 씩씩하게 앞서나가는 여자회원들입니다. 산을 오르는 길에 숨을 고르기도 쉽지 않건만 오순도순 다정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먼저 출발하면 그나마 덜 쳐질 것 같아서 서둘러 일어섭니다.
나무들 사이 저 아래로 수없이 많은 폭포들이 이어진다했더니 드디어 오층폭포 안내판이 있는 곳에 다다릅니다. 숲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오층폭포에는 햇살이 가득 비치고 있습니다.
오층폭포 상단 근처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니 저들이 신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길을 따라서 이어지던 계곡과 잠시 숨박꼭질을 하는 듯 싶더니 한신폭포에 다다릅니다. 이번에는 아예 폭포가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다시 신선에게 디카를 건네주고 기다리려니 모두들 내려가 할 수 없이 따라가보니 거대한 암반을 지나 빨려들어갈 듯 떨어지는 폭포가 장관입니다.
단체사진을 찍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동안 숲속과 계곡만을 보고 오노라고 보지 못했던 하늘이 시원스러워 보입니다.
원래의 등산로로 가려면 이런 산죽길을 헤치고 다시 급하게 올라가야 합니다. 모두들 특전사부대원들처럼 잘 올라갑니다. 하기사 전 KGB요원도 있다하니....(뭐 코리아 게리슨 방위라나!!!)
한신폭포를 지나면 다소 급해질 거라던 경사는 그다지 힘들게 하지 않습니다. 선발대가 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마도 마지막 급경사길에 곧 접어들 모양입니다. 초코렛도 먹고 사탕, 쵸코파이도 먹으며 마지막 힘이 솟아나기를 기대해봅니다. 지금까지 5km정도를 왔다는 말인데 생각보다 그리 힘에 겹지 않아 마지막 구간을 잘 올라갈 것 같은 자신감이 생깁니다.
산듯한 계단으로 시작되던 급경사길은 곧 커다란 바위 옆 좁은 길을 통과하기도 하고 나무뿌리를 잡고 오르기도 하고 너널지대를 건너기도 합니다. 오르면서 보니 내려갈 일이 더 걱정입니다. 바위들은 온통 물을 잔득 머금고 있어 조금만 딴생각이라도 할라치면 그대로 미끄러져서 돌부리에 몸을 다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그 힘든 중에도 시원스레 펼쳐지는 마지막 폭포의 모습에 탄성을 지릅니다. 보통은 물이 마르기도 하는데 마침 장마 뒤끝이라 이름이라도 붙여주어야할 정도로 멋진 폭포의 모양을 갖추고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단풍잎 사이로 보이는 폭포의 모습이 더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남은 체력을 모두 쏟아부어야하는 급경사길이지만 이런 아름다운 경관을 선사해 주어 또 찾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1시간 가량을 고생을 하고 나니 드디어 세석평전에 이릅니다. 지리산 주능선을 감싸고 있는 운무 덕에 광활하게 펼쳐지는 평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11시 30분이지만 대피소 아래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을 뒤로 하고 한가하게 서 있는 고목과 잠자리들을 바라봅니다.
점심식사를 하고 난 후 코스를 수정했습니다. 하늘이 벗어질 듯 하여 장터목을 향해 주능선을 걷노라면 혹시나 멋진 지리산의 파노라마와 멀리 남해바다를 조망할 수도 있고 또한 장터목에서 하동바위를 경유하는 길이 위험하지 않아 하산길로는 훨씬 더 좋다는 의견입니다.
장터목이 1600정도이니 1703.7m인 촛대봉을 오르는 길은 그리 높이 올라가는 것이 아닐진대 식후여서인지 모두들 가뿐 숨을 몰아쉽니다. 하늘도 막혀 눈길을 땅으로 주다보니 길 옆으로 펼쳐지는 야생화 화원이 주목과 어울려 아쉬움을 보상해줍니다.
열릴 듯 열리지 않은 하늘 덕에 갖가지 형상을 하고 있는 나무들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옵니다.
나무와 야생화와 새들에 둘러쌓여 홀로 산행하는 묘미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연하봉 주변에는 노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어디선가 아름다운 새소리도 들려옵니다.
초원에 홀로 서 있는 고사목의 기상이 비록 죽었어도 늠름해 보입니다.
여느 때 같으면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게 펼져질 연하선경이지만 오늘은 구름에 가려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늘 주능선 종주를 꿈꾸면서도 화개재부터 세석구간을 아직 밟아보지 못했습니다. 마치 정원 길처럼 편안한 주능선길입니다.
잠시 햇살이 비쳐서 하늘이 벗어지나 했더니 장터목대피소는 다시 구름에 가리워집니다.
세석을 떠난 지 1시간 30분만에 장터목산장에 도착합니다. 1653m 높이에 서 있는 빨간 우체통이 인상적입니다.
멀리 남해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던 우리 대장님은 저 구름이 야속하기라도 한 모양입니다.
10분정도를 쉬고 별로 어렵지 않다는 하동바위길로 하산을 시작합니다. 아까 주능선 중간부분부터 아파오기 시작한 무릎이 걱정입니다.
자꾸 뒤쳐지는 우리가 걱정이 되었던지 방장님도 우리와 보폭을 맞추기 시작합니다. 하산 길은 부드러운 흙길로 이어지며 죽죽 뻗은 나무들 사이로 시원한 조망을 선사하기도 하나 오늘은 단지 구름 속을 지날 뿐입니다. 가끔 쉬면서 듣는 걸죽한 이야기도 피곤을 덜어줍니다.
무릎 보호대도 빌리고 스틱도 하나 더 얻어서 걸었지만 참샘을 앞두고 급경사로 계속되는 돌계단에서는 그만 주저앉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1년동안 산행을 쉬었어도 다른 운동 덕에 체력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무릎 통증으로 고생을 하게 되어 결국 남들에게 폐를 주게 생겼습니다.
참샘에서 2.6km, 팔공산 수태골 아이스크림 파는 사거리에서부터의 거리인데 하며 계산을 해 봅니다. 모두들 활기차게 일어서는 모습을 보니 부럽기조차 합니다. 하동바위를 지나고 나니 가끔 흙길을 지나기도 합니다.
주능선에서 우리를 가두었던 구름은 드디어 벗어났는가 봅니다. 나뭇잎에 떨어지는 햇살이 갑자기 힘이 솟구치게 합니다.
이제 다리만 지나면 백무동 야영장이랍니다. 체력의 한계까지 소진하고 지쳐서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다리가 떨려오기까지 하지만 한여름 오후의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장장 16km의 장엄한 산행을 마무리하는 내 자신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서산대사가 지리산을 일컬어 ‘장엄하지만 빼어나지는 않다’고 하였다지만 한신계곡의 투박하지만 아름다운 암반들과 폭포들을 보고도 그리 하였을까 의구심을 갖습니다.
무릎이 좀 안정이 되면 다시 지리산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나 또한 지리산 매니아에 합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07년 대구에서 신선과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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